보쿠아카 | 생의 반대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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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록 열심히 살았다. 새벽같이 일어났고 시계의 바늘이 모두 오른쪽으로 돌아가야 잠이 들었다. 피곤은 달았다.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누군가 일을 부탁해도 거절하지 않았다. 죽을만큼 열심히 했다. 죽기 위해 열심히 했다.
그리고 바로 이 순간이었다.
아카아시는 자신을 덮쳐오는 새하얀 빛 속에서 생각했다. 이제야, 됐다고.
*
10년 전 한 고등학교 배구부가 합숙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 큰 교통 사고가 있었다. 버스 탑승자 대부분이 크게 다쳤고 한 사람이 죽었다. 장차 우수한 배구 선수가 될 것이라 모두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사람이었다. 쾌활하고 밝아 다들 그를 좋아했다.
죽은 단 한사람, 만 18세의 소년 보쿠토 코타로였다.
*
아카아시는 세상의 전부가 없어지면 그 상실을 느낄 수도 없다는 것을 그 때 배웠다. 주위가 모두 새하얗게 비어버리고 남은 것이 없었다. 빈자리라는 것은 다른 어떤 것들 사이에 비어버린 공간이라는 것이다. 그 다른 어떤 것들조차 없이 모든 곳이 빈 자리가 되면, 오히려 모두 있는 것 같다.
아카아시가 살아온 것은 그런 방식이었다.
그가 눈을 떴을 때 제일 먼저 마주한 얼굴은 부모님이었고 그 다음은 코노하였다. 코노하는 아카아시 앞에서 한참이나 말을 잇지 못했다. 그가 눈을 떴던 그 날이 발인이 있던 날이었다고 했다. 장례식조차 참석하지 못하여 상실에 대한 실감은 더욱 먼 일이 되었다.
사람들은 아카아시가 살아남은 것이야말로 기적같은 일이라며 눈물흘렸지만 아카아시는 알고 있었다. 그건 기적같은 게 아니었다.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상실도 존재도 느끼지 못한 채, 아카아시는 버티듯 살아왔던 것이다. 오로지 한 순간의 기억에만 기대어.
‘아카아시, 아카아시. 그거 알아?’
‘네?’
‘죽을 때 말야, 저승사자,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하고 찾아온대!’
난 그럼 아카아시가 찾아오겠네? 보쿠토는 그저 재밌고 즐거운 얘기를 한다는 투였다. 큰소리로 웃으면서 늙고 주름진 얼굴이라고 놀리면 안 된다며 그를 향해 농담을 던졌다.
아카아시가 비틀거리던 순간 벼락같이 그를 붙잡은 것도 보쿠토의 말이었다. 기다리는 것도 보쿠토의 농담이 되었다. 죽는 순간에 찾아와 그를 향해 목소리를 내어줄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면 그 순간에야말로 그를 바라보는, 그와 눈을 마주할 보쿠토를 볼 수 있을 테니까. 그 안에 든 게 누구라도 좋았다. 그저 한 번만 더 그 얼굴을 보고 싶었다. 어쩌면 보쿠토가 어디선가 주워들은 얘기인 게 분명한데, 어쩌면이라는 말도 필요없이 분명 그러할 것인데 그것 말고는 기댈 것이 없었다. 그것뿐이었다.
세상이 깨부숴지는 것 같은 굉음, 사람들의 비명소리, 신음소리보다 눈물이 먼저 나오는 격통이 차례로 지나갔다. 누군가가 다급하게 그를 부르는 것도 같았다. 온통 붉은 색이 흩어져간다. 순간 위아래가 뒤집히는 것같은 느낌과 함께 퍼뜩 정신이 들었다.
“정신이 드십니까!? 혈압, 혈압 유지해! 사고났었습니다. 병원 얼마 안 남았어요, 조금만 버티…….”
“……이는, 요……?”
“말씀하지 마세요, 지금…….”
“아이, 아이는…….”
“아, 네, 무사합니다. 그러니까 이제 더 말씀하지 마시고, 정신 붙드세요!”
구급요원들의 목소리가 점점 더 멀어지고 다시 의식이 가라앉는다. 눈앞의 불빛이 흐릿해졌다. 이제 됐다. 이제 모든 걸 다 했다. 누구도 책잡을 수 없이 그린 듯한 삶을 살아냈다. 마지막은 낯모를 아이가 차에 치일 뻔한 것을 구해내기까지 했으니 이젠 누구도 무어라 할 수 없을 터였다.
지금 아카이시의 흐르는 눈물은 몸을 부서뜨리는 통증 때문이 아니었다. 아주 오래도록 달려왔던 고된 달리기의 끝이 드디어 눈 앞으로 다가왔다는 지친 안도감 때문이었다. 끝을 알 수 없는, 길고 긴 트랙이었다. 언제 어느 순간 눈 앞에 끝이 나타나더라도 놓치지 않도록 눈을 뜨고 감는 매 순간 되새기며 살아왔다. 그에게 생은 엄격하고 가혹했다. 매 순간 순간이 심판의 잣대이고 저울이었다. 어느 순간에 그 저울에 올라서더라도 무게에 모자람 없도록 살기 위해 애썼다. 그 사람을 희생하고 살아난 생으로써의 그 값을 다하였느냐 묻는다면 고개 끄덕일 수 있도록.
지금 이 순간, 온전히 고개끄덕일 수 있었다.
이제 그의 얼굴만 있으면 된다. 눈을 감아본다. 빛이 멀어지는데 다가오는 것도 같았다. 멀리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카아시, 아아, 꼬박 10년만에 겨우 듣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 아카아시의 입가에 흐린 미소가 스르르 떠올랐다.
*
“-아시, 아카아시!”
아카아시는 천천히 눈을 떴다. 어딘가 아픈 듯도 했는데 통증이 멀고 몽롱해 아픈 부위를 특정지을 수 없었다. 눈을 깜박여본다. 눈앞이 새하얗게 번졌다가 겨우 한 사람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아카아시는 의심하지도 오해하지도 착각하지도 실수하지도 않았다.
“아, 아카아시!”
와락 몸을 날렸다. 눈앞의 남자가 뒤로 넘어가며 당황해 이름을 부르는 걸 아는데도 팔을 풀지 않았다. 정신없이 불러본다. 선배, 선배. 선배, 보쿠토 선배, 선배, 선배…….
“우, 우왓. 아카아시 완~전 응석꾸러기 됐네!”
“보쿠토 선배, 선배…….”
“어떠냐, 응? 보고싶어 죽는 줄 알았지? 응?”
아카아시는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그를 안아주고 있는 몸이 순식간에 뜨거워지는 것까지, 아카아시가 생전에 기억하던 그대로였다. 계속 안겨있고 싶은데 얼굴도 보고 싶어서 아카아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얼굴을 마주하게 한 건 상대방이었다. 부드러운 동작으로 아카아시를 떼어내 눈을 마주한다. 아카아시는 멍하니 그 얼굴을 바라보기만 했다. 상대가 그의 뺨을 쓸어주기에 그제야 알았다. 자신이 울고 있다는 것을.
“보고 싶어서……. 죽으려고……. 죽고 싶어서…….”
한 번도 말하지 못했던 말들이 새어나왔다.
보쿠토가 죽고 그 뒤로 몇 년간 코노하는 병적으로 아카아시를 살폈다. 모두들 멀쩡하게 살아가는 아카아시를 보고 무정하다고도 했고 동시에 안심하기도 했지만 코노하만은 기민하게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카아시의 그 무정할 정도의 냉정함은 그가 생을 뿌리치기 위해 달려가는 데에 모든 힘을 소진하고 있기 때문에 비롯되는 것이라는 것을. 그런 코노하에게 이런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코노하가 아니었더라도 누구에게도 말 할 수 없었다.
아카아시는 천천히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리워서 그리워서, 고등학교 시절의 앨범은 한 번도 펼쳐보지를 못했다. 앨범의 표지는 그가 하염없이 쓸어보는 사이에 닳아버렸지만 그 안을 볼 수는 없었다. 휴대전화의 사진 파일은 모두 압축해 온갖 저장장치에 백업해대기를 수십차례였으나 그 역시 폴더를 열어보지 못했다. 기일에 찾아갈 수도 없었다. 그의 부재함이 지나쳐 상실을 인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얌마! 그렇다고 어, 다 큰 녀석이 이렇게 울고 그래?”
“……안 보고 싶었어요?”
아카아시는 멍한 얼굴로 고개를 들고 상대방을 바라보았다. 일렁이고 물결쳐 흐리게 보이기에 아, 아직도 내가 울고 있나보다, 생각하기는 했으나 눈물을 그칠 수는 없었다.
“선배는 나 안 보고 싶었습니까……?”
나는 너무 보고 싶어서 죽는 줄 알았어요. 보고 싶어서 죽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냥 죽어버리면, 그러면 당신이 와주지 않을까봐. 그래서 살고, 살고, 또 살고, 언제 죽을 수 있는지만 바라보면서 살고…….
“나는 당신이…….”
“나는 안 보고 싶었어!”
보쿠토가 돌연 홱 소리쳤다. 아카아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보쿠토를 바라보기만 했다. 보쿠토가 입술을 삐죽거리고, 아카아시의 눈에서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나는 아카아시랑은 한참 뒤에 만……. 아, 아냐! 아카아시! 아카아시, 아냐! 아냐! 아니야! 보고싶었어! 너무 보고 싶었다고! 보고 싶었는데…….”
아카아시는 자신의 눈에 비치는 보쿠토의 모습이 너무나도 기억 속 그대로라는 것을, 마지막으로 헤어지기 직전에 보았던 모습 그대로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고등학교 3학년, 앳된 소년의 기가 여전히 남아있는 얼굴. 시간이 흐르지 않은 건 그에게 더 이상 흐를 시간이 없어서.
그리고 그것은 자신때문에.
“보고싶었는데, 더 오랜 시간이 지나서 만나가지고, 아카아시 막 할아버지 됐다면서 놀려주고 그러려고 했다고. 이렇게 빨리 만나는 거 계획에 없었는데.”
“……선배가 언제부터 계획같은 게 있는 사람이었다고 그럽니까.”
“우리 아카아시보다는 좀 더 계획 있는 거 같습니다요? 응? 아카아시 어른 되자마자 술 마셔, 담배 펴, 밤새서 일해! 운동도 안하고, 응?”
“……당신이 있어줬으면 됐잖아…….”
그랬으면 내가 이렇게 되지도 않았잖아요. 옆에 있어줬으면 됐잖아. 그럴 수 없었으면 함께 데리고 갔으면 됐잖아. 혼자 남겨두고서 가놓고서, 어떻게, 어떻게 그런 말을. 어떻게 그렇게.
소년이 짓궂게 씩 웃으며 그의 머리를 흐트러뜨렸다. 아카아시는 억울해서 울었고 화가 나서 울었고 또 역시 너무나 그리워서 울었다.
10년 전 버스가 전복되었을 때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지만 아카아시만은 알고 있었다. 몸이 기우는가 싶었고 옆에 앉은 사람을 쳐다보았을 때 그 사람은 이미 자신을 감싸고 있었다. 정신이 들었을 땐 몸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고 뺨으로 무언가 액체가 뚝 하고 떨어졌다. 처음엔 물인줄 알았고 다음엔 눈물인줄 알았고 그 다음에서야 그게 피인 것을 알았다. 보쿠토가 그를 감싸고서, 언제나처럼 웃으려고 노력하는 얼굴을 하고서, 그에게 말했다. 비밀이야. 알았지?
비밀을 싫어한 건 보쿠토였다. 두 사람이 사귀는 걸 비밀로 하자고 했던 건 아카아시였고 보쿠토는 그 말에 몇 번이나 입술을 삐죽거렸다. 아카아시는 그게 당신을 위한 거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보쿠토가 그 뜻을 헤아려주서 둘의 관계는 비밀의 장미 아래에 놓일 수 있었다. 그래도 그가 비밀로 하는 걸 싫어했던 건 변함이 없었다.
그 보쿠토가 먼저 비밀이라고 했다. 무엇을? 알 수 없었다. 보쿠토가 아카아시의 뺨을 한 번 쓸어주었고 이마를 맞대고서 천천히 눈을 감았다. 비밀이야, 아카아시.
보쿠토가 무엇을 비밀로 하고자 했는지는 그가 병원에서 눈을 떴을 때 알 수 있었다. 보쿠토가 죽었다고 했다. 그의 자리는 창가도 아니고 뒤쪽 복도 자리라 근처의 모두 크게 다치지 않았는데 그만 죽었다고 했다. 위험할 뻔 했던 건 오히려 창가쪽에 앉아있던 사람들이었는데.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아카아시는 무언가 말을 하려고 했지만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비밀이야. 보쿠토가 했던 말이 계속 귀에 감겼다. 비밀이야.
보쿠토가 아카아시를 감싼 탓에 죽어버린 걸 알고 있는 사람은 아카아시 뿐이었으므로 아카아시는 누구에게서도 비난도 원망도 사지 않았다. 몇 번이나 말하려고 했는데, 그 사람은 단지 운이 없어서 죽은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감싸기 위해 그리 된 것이라고 몇 번이나 말하려고 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비밀이었다.
“고등학교 다닐 땐 아카아시가 나 막 챙겨줬는데.”
끝까지 그럴 수 있게 해주지, 그 말도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보쿠토가 씩 웃으며 눈물에 젖은 아카아시의 뺨을 쓸어주었다.
“그러니까 이제 내가 챙겨주려고 했지.”
“이제 없으면서. 없었으면서.”
“없기는, 왜 없어. 다 보고 있었지. 하늘 나라에서~!”
와하하 웃어버리는 것까지 지독하게 똑같았다. 10년의 세월이 순식간에 빛의 가루가 되어 날아가고, 자신도 그도 10년 전 그 때 그 고등학생이 된다. 아카아시는 눈물을 떨쳐내기 위해 하염없이 눈을 깜박거렸다. 저 웃는 얼굴이 보고 싶었다. 저 웃음을 터뜨리는 목소리가 필요했다.
죽는 순간에 사자는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하고 온다 하던, 그 말에.
그 말에만 기대어…….
아카아시는 천천히 눈을 내리감았다. 눈물이 타고 흐른다. 웃는 걸 보았으니 되었다. 웃는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는 걸 들었으니 되었다. 이걸로, 됐다.
다시 눈을 떴을 땐 여전히 보쿠토가 그를 보고 있었다. 소년 시절의 모습 그대로 천진한듯이 웃으며 그의 눈물을 닦아주고 있다. 그 웃음이 진정 그에겐 태양이었다. 그래서 그간 태양이 없는, 혹독하게 추운 계절을 살아야 했다.
그 얼굴의 진짜 주인은 정말 아무 후회하지 않았습니까. 아파하지는 않았나요. 괜찮았습니까. 묻고 싶은 말은 많은데 말은 완성되지 않았다.
“아카아시.”
“……네.”
“조금만 더 힘낼 수 있지.”
“……네?”
아카아시는 퍼뜩 혼란스러운 얼굴로 보쿠토를 바라보았다. 보쿠토는 어딘가 미안한 듯 어딘가 기쁜 듯, 알 수 없는 얼굴이었다.
“다음 번에는 조금만 더 천천히 오기로 하자.”
“어디, 를…….”
“이제 이렇게 빨리 가버리면 진짜 안 된다. 혼나.”
“무, 무슨…….”
“다음엔 정말로 할아버지 돼서 같이 오는 거야!”
보쿠토가 활짝 웃기에 아카아시는 한참이나 정신을 차리지 못하다가, 마치 유리컵을 깨는 것처럼 정신을 차리고 보쿠토의 양팔을 붙잡았다.
“아, 아니, 아니야, 싫어, 안 돼, 선배, 저 더는 못해요. 더는 안 해. 더는 못 살아, 선배 없이 저 이제 정말, 못 살겠단 말이에요…….”
“……사실 나도 그랬어.”
보쿠토가 어울리지 않을 만큼 부쩍 어른스러운 얼굴로, 아카아시의 눈에 흐르는 눈물에 입을 맞추었다. 아카아시는 멍하니 보쿠토를 바라보았다.
“아, 그치만 어쩔 수 없었지 뭐.”
“그럼 같이 죽었으면 됐잖아요…….”
“그러니까 그게 싫었대도. 우리 아카아시 고집은 진짜.”
보쿠토가 이마를 맞대고 문질렀다. 그의 마지막 순간에 해주었던 그대로였다.
“그치만 이럴 거야, 아카아시? 응?”
“……제가 뭘요.”
“내가 당당하게 어, 짠 하고 아카아시가 좋아하는 사람 얼굴을 하고서 데리러 오려고 했는데…….”
보쿠토의 뺨이 조금 붉게 물든 것이 그제야 보였다. 아카아시는 이해하지 못하고서 보쿠토를 바라보기만 했다.
“지금 너무 좋은데 너무 좋아서 싫다, 어쩌지…….”
“그게……무슨…….”
“보자, 음, 내가 사고가 났을 때가 아카아시가 음, 열 여덟살이었나, 열 일곱살이었나? 열 일곱살 차이……. 아카아시 힘내주라!”
보쿠토가 활짝 웃었다. 태양같은 웃음이었다. 아카아시가 멍하니 그 얼굴을 바라보는데 보쿠토가 그를 끌어안았다.
“이제 계속 같이야.”
“아……?”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그러니까 돌아가. 내가 기다리고 있잖아.
눈앞이 새하얗게 번져갔다. 아카아시는 당황해서 보쿠토를 붙잡으려고 했다. 보쿠토가 그 손을 먼저 잡아주었다. 그리고선 다시 이마를 맞댔다. 기다리고 있을게. 얼른 가.
아카아시가 눈을 떴을 땐 그의 곁에서 그의 부모보다 더 서럽게 우는 꼬마아이가 있었다. 그가 구해주었던 바로 그, 올해로 꼭 열살이 된 황금색 눈동자의 아이였다.
**
“아카아시한텐 저 사람이 가는 거야?”
“사람은 아니고, 저승사자지만요.”
아카아시의 얼굴을 한 남자가 담담하게 말한다. 보쿠토는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서 무표정하게 서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네가 아카아시 얼굴을 하고 있는건…….”
“당신이 저 소년을 사랑하기 때문이지요.”
“그럼 저 사람이 내 얼굴을 하고 있는 것도.”
“사람은 아니지만요, 네. 그렇습니다. 저 소년이 사랑하는 건 당신이기 때문이지요.”
말투마저도 아카아시와 꼭같았다. 보쿠토는 이제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 것을 실감하며 정신을 잃은 아카아시를 내려다보았다.
그와 아카아시가 있던 자리의 버스는 거의 박살이 나다시피 했고 주위는 구급차와 온갖 비명소리로 아비규환이었는데 이곳만 거짓말처럼 고요했다. 죽음이 자리를 틀고 앉아서 그러했다.
“아, 저기 형님들. 한 명만 합시다, 예?”
“…….”
그가 사랑하는 소년의 얼굴을 한 남자가 묵묵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보쿠토는 자신과 똑같은 얼굴이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보며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역시 이런 걸로는 안 되나. 그, 뭐냐. 명부같은 게 있겠지? 막 수명이 적혀 있고 그런 거. 보쿠토가 한숨을 내쉴 때 보쿠토의 얼굴을 한 남자가 보쿠토에게 다가왔다.
“한 명만이라는 건 너만을 말하는 건가.”
“그……쵸?”
“그럼 시간이 지나 저 아이가 명이 다 하였을 때, 저 아이를 데리러 가는 건 네가 할 테냐.”
“에? 내가?”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몇 년, 혹은 몇십 년 후에, 그 때 저 아이가 사랑하고 있을 다른 사람의 얼굴을 하고서 사랑을 속삭이며 저승으로 데려오는 역할을 네가 하겠느냐고.
보쿠토는 조금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웃했다. 그의 말은 마치 시험하는 듯이 들렸다. 하지만 그에겐 조금도 시험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보다 더.
“좋아! 대신.”
“뭐?”
“그 때도 내가 내 얼굴로 아카아시한테 갈 수 있으면, 그 땐 아카아시랑 같이 있을 수 있게 해줘!”
“……여기서 더 얹어 돌려받겠다고?”
“원래 한 사람만 데리러 왔던 거 아니었어?”
보쿠토가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샐쭉한 표정을 지었다. 본래 그들이 데리러 오려고 했던 건 아카아시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저승사자들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보쿠토는 말없이 아카아시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의 소원이 진실로 그것을 바랐기 때문은 아니었다. 기왕이면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맞이하러 가고 싶었다. 그 때에는 아무리 아카아시라 하여도 보쿠토가 자신의 얼굴을 하고 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저 심술처럼 꺼낸 말에 불과했다.
“억울하지 않으냐.”
“응? 뭐가?”
보쿠토는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남자를 보며 활짝 웃었다. 남자가 무엇을 묻는지는 분명했다. 죽어야 할 다른 사람을 대신하게 되었다. 약속되었던 찬란한 장래를 버리고서 저승사자와 함께 걸어가고 있다.
하지만 보쿠토의 대답 역시 분명했다.
“나는 이 얼굴, 봤는걸!”
보쿠토는 자신의 저승사자가 아니라 본래 아카아시를 데리러 왔던 남자를 바라보다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뒤를 돌아보았다.
아카아시가 사랑한 사람이 자신이라는 걸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보게 되자. 아카아시를 마중하러 온 사람이 보쿠토 자신의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자.
“왜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로 마중온다는지, 정말로 알겠어. 따라갈 수밖에 없네.”
아카아시의 얼굴을 한 저승사자는 꼭 아카아시처럼 말이 없었다. 보쿠토는 저승사자들보다 더 서둘러 걸음을 재촉했다. 둘이 의아해할 정도였다.
“아카아시가 눈 떠서 덜컥 같이 오겠다고 하면 어떡해. 빨리 가자.”
“……그가 마음아파 할 것이다.”
“아카아시는 항상 내 고집 들어줬으니까, 괜찮아.”
“평생 울며 살지도 모른다.”
“에에~ 그렇게 생각 안하니까 나보고 다른 사람 얼굴 하고서 아카아시 데리러 가라고 한 거잖아?”
“네가 이길지도 모르지.”
“……그건……좋지만 싫네…….”
보쿠토가 제 손을 마주잡고서, 어쩔 수 없을 만큼 빨갛게 웃었다. 싫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데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기쁨이 물든 얼굴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아카아시가 울었던 시간 전부 갚아줄 거야. 저승사자들이 남겨진 아카아시를 흘끗 돌아보았다.
그렇게 생의 반대편으로 향하는 문이 열렸다. 보쿠토는 한 순간도 망설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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