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쿠아카 | Dear. Winter
수인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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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
맥주를 사러 이 한밤중에 슬리퍼를 끌고 나왔던 보쿠토가 멈춰선 건, 화단에서 느낀 묘한 기척 탓이었다. 수풀에서 조그맣게 숨죽인 소리와 함께 질척한 냄새가 감돈다. 보쿠토는 미간을 찌푸린 채 몸을 굽혔다. 화단을 조성하고 있는 덤불은 단단해서 손으로 헤집고 있자니 긁히고 생채기가 났지만 보쿠토는 개의치 않았다.
“우왓.”
뭔가 수상쩍은 게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인데, 그 수풀 아래엔 그의 예상보다 훨씬 더 기묘한 게 있었다. 보쿠토 코타로가 살면서 실물로는 처음 본 생명체였다.
“어, 어쩌지? 어떡하지…….”
기세좋게 덤불을 헤칠 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까무룩 느리게 열렸다 닫히는, 어떤 생물의 눈동자 속에는 밤하늘같이 깊기만 한 것이 새겨져 있었다. 그 새의 깃털엔 짙은 색 얼룩이 묻어 있다. 그의 손길을 피하려고 했지만 지쳤는지 동작은 둔했고 그의 손을 쪼는 것에도 힘이 없었다. 보쿠토는 일단 그 올빼미를 단숨에 번쩍 들어올렸다.
“으, 으왓, 피나!”
그의 손을 벗어나려는 올빼미의 날갯짓에 핏방울이 튄다. 보쿠토는 뺨을 스치는 핏방울을 느끼며 울상을 지었다. 하지만 그 날갯짓에도 힘이 있지는 않았다. 내버려두면 죽어버릴지도 몰라, 보쿠토는 새를 내려놓지 못하고서 발만 굴렀다. 맥주 생각은 이미 다 달아난 지 오래였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달까지 어둠에 잠긴 시간이라 지나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보쿠토는 결국 빌라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가 그나마도 승강기를 기다리지 못해서 우당탕 계단을 박차고 올라갔다.
“얌전히 있어라, 으응~!”
현관 전자 도어락 비밀번호를 급히 누르느라 비밀번호를 한 번 틀렸다. 겨우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와 수건 위에 새를 내려놓은 보쿠토는 있는 줄도 몰랐던 구급상자를 찾아냈다. 그러느라 TV를 받치고 있던 협탁 안에 든 것이 엉망으로 쏟아졌지만 살펴볼 겨를이 없었다.
그나마 구급상자도 거꾸로 엎은 보쿠토는 그 중에서 거즈와 소독약을 꺼내들고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지었다. 올빼미는 날개도 제대로 접지 못한 채 쓰러지듯 수건 위에 몸을 뉘이고 있었다. 수건에 붉은 물이 들어가는 건 분명 이 새의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피일 것이었다.
한 손에는 소독약, 한 손에는 거즈를 쥔 보쿠토는 가슴팍이 불규칙하게 오르내리는 새를 내려다보며 어쩔 줄 모르다가 다시 벌떡 일어나 수건과 티슈를 왕창 품에 끌어안고 다시 새 앞에 주저앉았다.
“가만 있어라, 가만히, 알았지? 가만히…….”
가져온 수건으로 조심조심 피를 닦아낸 보쿠토는 거즈에 소독약을 묻혔다. 이게 맞는지 어떤지 알 수는 없었지만 저대로 두어도 되는지도 확신할 수가 없었다. 보쿠토는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조심스레 거즈로 날갯죽지 근처의 상처를 닦아냈다. 숨만 몰아쉬고 있을 뿐이었던 올빼미가 거칠게 날개를 움직인다. 보쿠토는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최대한 조심스레 몸통을 부여잡고 상처를 닦아냈다. 새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는 것은 처음인데다가 동물의 몸에 난 상처를 어떻게 해야 할지는 더욱 모르는 일이라 보쿠토의 손길에는 확신이 없었다.
“으, 으아아, 아파? 많이 아파? 그래도 참아, 조금만, 응?”
어설프게 붙잡으니 새는 더 날뛰고 덕분에 상처가 벌어지는지 붉은 액체가 왈칵 흘러나와 수건을 물들였다.
“내, 내일 병원 가자. 오늘밤만……. 으, 응급실에서 새도 봐주나? 오늘만, 제발, 다치게 하려는 거 아니니까, 착하지, 응?”
날개와 부리가 뺨을 할퀴고 지나갔지만 보쿠토는 올빼미 가까이 바짝 붙어 끊임없이 말을 걸듯이 중얼거리며 피를 닦아내고 상처를 소독해주었다. 보쿠토가 거의 주문처럼 중얼중얼하면서 겨우 소독을 마쳤을 땐, 새도 지쳤는지 아니면 보쿠토의 뜻을 알아들었는지 얌전히 그의 손에 몸을 맡긴 채였다. 보쿠토는 이마의 땀을 훔쳐내며 겨우 허리를 폈다. 거즈로 반창고를 만들어 붙여두기는 했지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상처인지 구분하는 것조차 무리였다.
“나, 나 동물 제일 가까이서 본 거……. 우리 할머니 집 멍멍이 뿐이라고…….”
피는 당장 그친 것 같은데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건 여전했다. 올빼미는 수건에 몸을 맡기듯 누운 채 한 번 눈을 깜박, 하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언뜻 새카만 눈동자가 그를 바라보다가 이윽고 스르르 감겼다.
보쿠토는 힘이 쭉 빠져 바닥에 드러누운 채,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는 올빼미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하얀 깃에 검은 무늬가 마치 눈밭 위의 발자국처럼 아름다운 모양새로 찍혀있는 새였다. 건드려보고 싶었지만 아파할까싶어 차마 손을 내밀 수가 없다. 보쿠토는 내일 눈 뜨자마자 동물병원에 데려가야겠다고 다짐했다.
*
병원에 출근하기 위해 차를 주차하고 내려섰던 수의사는 새 한 마리를 품에 안고서 병원 앞에 앉아있는 보쿠토를 보고 흠칫 놀랐다가 서둘러 병원 문을 열었다.
도시에서는 보기 어려운 맹금류를 보고서 조금 놀랐던 의사는 어설프게 마감되어 있는 새의 상처에 눈살을 찌푸렸다. 반창고를 떼어내고 상처를 치료하는 동안 보쿠토는 온통 안절부절못했지만, 의사는 그런 보쿠토를 탓하지는 않았다.
달그락!
의사가 새의 날개를 펼쳐 상처를 살펴보다 핀셋으로 무언가를 집어냈다. 철제 트레이 위에서 핀셋을 쥔 손에 힘을 빼자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곁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보쿠토가 눈을 깜박였다. 금속성이 도는 은빛 트레이 위에 붉은 얼룩이 묻은, 아주 작고 하얀 구슬 같은 것이 또르르 굴러갔다.
“BB탄이네요.”
“아…….”
“상처는 이것때문은 아닌 것 같은데 사실 이 정도도 충분히 위협적이죠.”
의사는 그나마 소독을 해두어 심해지지는 않았다며 처치를 마무리 지었다. 새는 얌전했다. 간혹 움찔거리기는 했지만 어젯밤처럼 심하게 움직이지는 않았다. 움직일 기력이 없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인 듯 했으나.
보쿠토가 안아들고 온 새는 감고 있는 붕대의 흰 빛이 무색하게 희었는데, 그래서 붕대를 감고 있으면 알아보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웬걸 그것만 눈에 밟힌다. 보쿠토는 울상을 지으며 수의사를 올려다보았다. 올빼미는 그렇게 보쿠토 품에 맥을 추지 못한 채 안겨 있었다. 수의사는 서랍장에서 미리 준비해둔 유인물에 중요한 부분만 체크를 해서 보쿠토에게 내어주며 주의사항을 일러주었다. 상처는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병원에는 언제 또 와야 하는지, 먹는 것은 어떻게 해주어야 하는지…….
보쿠토는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그 움직임에 올빼미가 또 움찔해서 서둘러 목을 움츠렸다. 한참 설명을 늘어놓던 의사가 보쿠토를 빤히 바라보다 짤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거.”
“네?”
“얼굴에 상처. 이 녀석 때문이죠?”
의사는 앉아있는 의자를 쭉 밀어 뒤쪽 찬장을 뒤지고는 연고와 반창고를 가져왔다. 보쿠토는 눈을 끔벅이며 의사를 바라보기만 했다. 의사는 보쿠토의 뺨에 난 생채기에 연고와 반창고를 붙여주며 그의 품에 안겨있는 올빼미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그냥 평범한 새나 개 같은 걸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얘넨 사람 손을 타는 애들이 아니에요.”
“앗, 아야……. 네…….”
“예쁘장하게 생겼어도 맹금류라는 건 잊지 마시고. 건강해지고 나서부터는 손대는 것도 주의하셔야 됩니다. 튼튼한 녀석들이 할퀴면 이정도 상처로는 안 끝나요.”
“아……. 네에.”
보쿠토의 상처까지 다 보아준 의사는 보쿠토에게 명함을 하나 내밀었다. 새의 상태가 갑자기 나빠지거나 하면 아침 댓바람부터 병원 앞을 지키고 있지 말고 전화하라는 이야기였다.
“먹는 거, 잘 살펴보셔야 됩니다. 먹을 기력이 없어서 못 먹는 걸 방치하면 안 되고요.”
의사의 당부에 보쿠토는 걱정이 그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눈 위의 발자국 같은 무늬를 가진 하얀 새는 그의 품에서 꼼짝도 않고 죽은 듯이 눈을 감고 있을 뿐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보쿠토의 걸음이 빨라졌다.
*
보쿠토는 거실 바닥에 엎드려서 턱을 괴고 눈앞의 새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새 앞에는 조그만 접시에 고기가 담겨있었다. 어린아이용 카레 요리에나 들어갈 법한 크기로 자잘하게 자른 이 모양새를 위하여 요 며칠간 보쿠토는 도마와 식칼 사이에서 혈투를 벌였다. 사실은 그런 주방 도구가 집안에 있다는 것에 더 놀랐지만.
“아직 먹기 힘들어?”
바로 얼마 전까지, 이 올빼미는 상처가 심하여 제대로 앉지도 못한 것을 보쿠토가 곁에서 눈을 떼지 않고 먹이고 돌봐주었던 것이다. 요 며칠 들어서 겨우 앉아 제 힘으로 먹이에 입을 대게 되었지만 그게 불안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보쿠토는 한 뼘 더 가까이 다가가 고기를 한 점 한 점 집어주었다. 한 점이라기에도 무척이나 작은 조각이긴 했으나.
올빼미는 잠깐 보쿠토의 손끝에 놓인 고기를 바라보다가 말없이 받아먹기 시작한다. 보쿠토는 괜시리 마음이 찡 하고 울려, 올빼미가 부리 안에 넣은 것을 삼킬 새도 없이 부리나케 새 고기를 집어주었다. 새가 먹이를 삼키는 속도가 늦어 보쿠토 혼자만 마음이 바쁜 모양새였다. 그릇의 반절 정도를 비웠을 때 새가 부리를 닫고서는 더 이상 고기에 입을 대지 않는다. 보쿠토는 울상을 지었다.
“이거 다 먹어야 되는데…….”
새가 말을 알아들을 리가 없는데도, 보쿠토는 엎드려있던 자세에서 일어나 새 앞에서 무릎 꿇은 자세로 간절하게 말했다. 조금만 더 먹자, 응? 그래야 낫지. 보쿠토의 눈물로 호소하는 말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올빼미는 잠시 머뭇거리는 듯 하다가 고개를 숙여 보쿠토의 손끝에 있는 고기를 받아먹었다. 보쿠토가 꽃이 피는 듯이 활짝 웃으며 얼른 다음 고기를 집어 먹인다. 그것은 그릇의 고기가 모두 빌 때까지 계속되었다.
“자, 그럼 약도 먹어야지.”
보쿠토는 빈 그릇을 치우고 바늘이 없는 플라스틱 주사기를 챙겨들었다. 주사기 안에 시럽과 액상으로 준비된 약을 채운 보쿠토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서 겨우 몸을 가누고 있는 올빼미를 내려다보았다.
살면서 정말로 동물을 가까이 해 본 경험이라고는 시골 조부모 댁에서 키우는 개 한 마리가 전부였다. 그 개는 제법 덩치가 있어서, 어린 보쿠토가 달려들거나 장난을 쳐도 개의치 않고 함께 뒹굴곤 했다. 엎치락뒤치락 하다가도 먹을 걸 들고 오면 눈동자부터 반짝거려 혀를 빼물고서 그를 맴맴 돌던 개, 그 개가 보쿠토의 동물 체험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10년 전? 솔직히 말하면 20년 전에 더 가깝지?’
그 개에 비하면 이 새는…….
일단 약을 채워 넣은 주사기를 내려놓고, 보쿠토는 조심조심 올빼미를 안아들었다. 새를 어떻게 안아 들어야하는지 조금도 모르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 새의 날개 부분엔 큰 상처까지 있다. 보쿠토의 자세가 어설픈 것을 보쿠토의 탓으로 돌리기엔 그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으, 으아아……. 아파? 괜찮아?”
올빼미는 그 품에서 바르작거리기는 했지만 크게 움직이거나 보쿠토를 할퀴지는 않았다. 보쿠토는 주사기의 입 부분을 부리에 대어주며 초조하게 눈동자를 굴렸다.
이렇게 상처를 봐준 지가 며칠이나 지났는데 이 올빼미는 도통 상태가 호전되는 것 같지 않았다. 보쿠토가 어떤 먹을 걸 가지고 나타나도 이 새는 큰 움직임을 보여주지 않았다. 수의사가 올빼미를 보고서 사람 손을 타는 생물은 아니라는 얘기를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조용한 건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상처가 정말로 낫고 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나 개강하기 전까지는 나아야 되는데…….”
내일 다시 병원에 가보자, 보쿠토는 올빼미에게 약을 먹여주며 중얼거렸다. 학기가 시작되면 지금처럼 돌봐주는 건 무리였다. 약을 다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는 눈을 감았다. 오르내리는 가슴팍이 불규칙한 것도 상처 때문인 것 같다. 보쿠토는 연신 울상을 숨기지 못하고서 조심스레 날개를 접어 새를 뉘어주었다.
잠든 새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어본다. 그 손길이 닿은 방향 쪽으로 느리게 눈을 꿈벅이던 새의 호흡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보쿠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아카아시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느리게 깜박이는 눈동자는 깊은 청록색이다. 보쿠토가 덮어주었던 얇은 손수건이 사르르 흘러내려 그의 다리 위로 떨어졌다. 투명한 달빛이 창으로 스며드는 밤이었다. 옆을 쳐다보자 걸친 티셔츠를 가슴팍까지 끌어올리고서 세상모르고 자고 있는 보쿠토가 있다. 그의 뺨에 비친 달빛이 부서지며 조각 같은 굴곡을 만들어냈다.
아카아시는 팔을 조금 움직여보았다. 아직 어색한 동작인 것은 여전히 아릿한 통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아카아시는 보이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고개를 조금 돌려 어깨 너머의 등허리를 흘끗 보았다. 날개를 거의 찢어놓았던 상처는 그래도 많이 나아지기는 한 것 같았다.
아카아시는 다치지 않은 쪽의 팔을 움직여 보쿠토의 옷을 끌어내려주고, 다시 이부자락을 그의 목까지 덮어주었다. 보나마나 자다가 금방 걷어차 버리겠지만 밤은 그의 시간이고 달이 저물기까지 여유는 느긋했다.
달이 한 번 눈을 깜박인 시간, 아카아시가 있던 곳에는 다시 작은 올빼미 한 마리가 몸을 뉘이고 있었다. 흘러내린 손수건을 부리로 집어 들어 몸을 덮은 올빼미는 보쿠토가 깔아준 담요 위에 몸을 기대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보쿠토가 몸을 뒤척이고는 이불을 걷어차 버린다. 작은 올빼미가 슬쩍 눈을 뜨곤 한숨을 내쉬었다.
*
보쿠토가 새를 돌보는 데에 그럴 듯한 재주가 있느냐 한다면 전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의 지대한 정성이 아니었다면 올빼미가 그토록 빨리 낫지는 못했을 것이다. 수의사는 이 올빼미가 너무 조용한 것이 어딘가 아픈 게 아니냐며 울먹이는 얼굴로 나타난 보쿠토를 보며 웃음을 섞어 한숨을 내쉬었다.
“아픈 데는 없고, 날개도 보자……. 다 나은 것 같고. 곧 있으면 제대로 날 수도 있겠네요. 특별히 더 얌전한 개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 아이가 그런 것 같네요.”
“그, 그래요?”
“그러지 않았으면 보호자분이 여기까지 오는데 그 쪽이 상처하나 없이 무사했을 리가요.”
“아.”
수의사는 새의 이곳 저곳을 꼼꼼하게 살펴보고는 손을 놔주었다. 보쿠토가 서둘러 팔을 뻗는다. 올빼미는 얌전히 그의 품으로 돌아갔다.
“보호구 같은 건 없으십니까?”
“네? 없는데…….”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건 맹금류입니다. 조심하셔야 돼요. 안 그러면 병원 신세 지는 건 보호자분 되십니다.”
“에…….”
보쿠토는 어색한 얼굴로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방심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이 새를 두고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영 낯선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새는 보쿠토가 걱정을 하다 못해 병원에 다시 올만큼 얌전했고, 그가 들어 올리거나 안아 올릴 때에도 도망치지도 할퀴지도 않았다.
수의사에게서 몇 가지 얘기를 더 듣고 집으로 돌아온 보쿠토는 짐을 내려놓고 뒹굴거리다가 몸을 굴려 바닥에 엎드렸다. 새는 그런 보쿠토 앞에 가만히 서있을 뿐이었다. 올려다보면 깊은 눈이 그를 지긋이 바라본다. 보쿠토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다 나으면……. 가야하지?”
팔을 내밀고 손가락을 뻗어 새의 뺨을 부벼보았다. 새는 살갑게 붙어오지는 않았어도 보쿠토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었다. 무언가를 입 안으로 웅얼거리던 보쿠토는 우당탕 몸을 일으켜선 와락, 올빼미를 껴안아보았다. 수의사가 했던 경고를 가볍게 듣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품 안에서 새는 날개를 바르작거리기만 할 뿐, 그를 할퀴지는 않았다.
“좋아! 그럼 같이 있는 동안만!”
보쿠토는 씩씩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며 새의 뺨에 자신의 얼굴을 부볐다. 올빼미는 그런 보쿠토가 번거로운지 몸을 빼려고 했지만 보쿠토는 놓아주지 않았고, 결국 올빼미는 한참이나 보쿠토의 포옹 세례에 시달려야 했다.
*
새의 날개가 모두 나았다는 걸 알게 된 건 보쿠토가 개강하고서 몇 주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수업과 과제를 끝내고 동기들과 저녁까지 먹고서 집에 들어오니 항상 느껴지던 기척이 없다. 보쿠토는 들고 있던 책이며 꾸러미를 내팽개치고서 주위를 뒤지다 테라스의 창틀을 횃대 삼아 조용히 앉아 있는 새를 발견하고는 그대로 우뚝 얼어붙었다.
보쿠토가 창을 열어둔 건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이었다. 가을에 접어들며 더위가 한 풀 꺾이기는 했으나 열기가 완전히 식지는 않아서, 냉방을 하기 보다는 창을 열어두었던 것뿐이다. 그러니까 보쿠토는 그 창을 통해서 새가 바깥을 인지할 수 있을 거라고는 미처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보쿠토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서 천천히 걸어 테라스로 다가갔다. 눈 위의 발자국을 얇은 옷처럼 두른 흰 새는 가만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그를 기다린 것 같았다.
“어어……. 다 나았어?”
남들이 보면 이상한 모습이라고 고개를 갸웃할지도 모르지만 보쿠토는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올빼미는 눈만 깜박, 깜박, 했다. 그리곤 날개를 한 번 펼쳤다 접어 보인다. 유려하고 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보쿠토는 연신 허둥지둥거리며 손을 뻗었다가 서둘러 등 뒤로 감추었다.
“가, 가는 거야?”
새가 또 눈을 깜박, 깜박, 했다.
보쿠토는 무언가 말을 하고 싶었지만 막상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없어서 손을 쥐었다 풀었다 하기만 연신 반복할 뿐이었다. 이런 마음을 뭐라고 하더라, 보쿠토는 한참을 생각했고 서운함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 있었다. 흰 새는 가만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 다치면 또 와, 알았지……?”
몸을 조금 숙이고 눈을 마주한 채 말을 붙여본다. 새가 알아들을 리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새의 눈동자가 가만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달빛이 비쳐서일까, 새의 깊은 눈은 마치 저 심해의 바다색 같기도 했고 여름이 짙어진 숲의 그늘 같기도 했다.
“배고파도, 와야 되고, 또…….”
다친 동안 잠깐 돌봐주었을 뿐이었는데 무어라고 이게 그렇게 마음이 이럴까, 보쿠토는 울상을 지은 채 입을 삐죽거렸다. 속이 상하는데 토로할 곳이 없었다. 떠나기 위해, 그에게 등 돌리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새에게는 그런 말을 할 수 없지 않나.
올빼미가 그를 들여다보듯 바라보다 부리를 열었다. 그리곤 닫는다. 마치 할 말을 망설이는 것 같았다. 보쿠토가 저도 모르게 몸을 바싹 기울여 새에게 다가갔을 때였다.
“……!”
올빼미가 슬쩍 몸을 기울여 그의 목덜미에 고개를 부볐다. 보쿠토는 그대로 얼어붙어서 숨도 쉬지 못했다. 올빼미는 그의 뺨에도 제 부리를 한 번 부비고는 그대로 날개를 펼쳤다.
보쿠토는 그 흐드러지는 눈의 그림자 같은 무늬를, 그것을 옷깃처럼 두른 흰 올빼미를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올빼미는 아무런 전조도 예고도 없이 그렇게 그에게서 떠났다. 날갯짓은 밤처럼 고요했고 하얀 것이 그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갔어?”
진짜 가버렸어?
보쿠토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테라스 밖을 바라만 보다가, 그만 주르르 주저앉았다. 그 새가 조금쯤 망설여주었으면 하고 바랐던 것이 뒤늦게 새어 나와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보쿠토는 무릎을 감싸 앉은 채 유리창에 기대어 입술만 삐죽거렸다.
그렇게 매몰차게 가버릴 거야 있어. 저녁도 아직 남아 있는데 그거라도 먹고 가지. 아니, 아무리 야행성이라도 이렇게 해 떨어지기가 무섭게 가는 건 너무한 거 아닌가. 그렇게 빨리 가고 싶었어? 그래도 나름대로 우리 잘 지냈는…….
“……잘 지냈는데.”
보쿠토는 유리창을 검지 끝으로 꾹꾹 눌렀다. 그의 새는 애교가 많거나 살갑게 굴거나, 그런 일은 없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보쿠토가 확실히 알 수 있을 만큼 그에게 둥근 면이 있었다. 수의사가 누누이 했던 경고가 그에게는 무의미했던 것이 그랬고, 먹지 않으려는 것도 그가 내밀면 결국 먹어주곤 했던 엷은 빛 부리가 그랬고, 때로는 가만히 그를 바라보던 그 깊은 달밤 같은 눈이 그랬다.
나름대로, 우리 잘 지냈는데.
보쿠토가 그렇게 제 무릎에 자신의 이마를 문지를 때였다. 달그락, 보쿠토는 뒤쪽 테라스의 펜스에서 들린 소리에 퍼뜩 고개를 들었다. 쇠로 된 기둥에 날카로운 것이 부딪히는 소리는 이 높이에서 들릴 리가 없는 것이었다.
“아…….”
눈 내린 달밤의 발자욱을 어깨에 두른 올빼미가 테라스의 펜스를 횃대 삼아 앉으며 천천히 날개를 접고 있었다. 새의 눈은 그새 달빛을 담고 청록색으로 깊이 있게 물들어간다. 보쿠토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서 올빼미를 바라보기만 했다. 새는 가만히 그를 바라보기만 하다가 테라스의 펜스에서 뛰어내려 바닥에 주저앉은 보쿠토 앞에 섰다.
보쿠토가 천천히 팔을 뻗어 그 뺨에 손가락을 가져다대었다. 올빼미는 그를 빤히 올려다보다 그 손에 부리를 부볐다. 보쿠토가 돌연 와락 새를 껴안은 통에 흰 깃털 몇 가닥이 테라스에 흩날렸지만 올빼미는 보쿠토가 하고 싶은 대로 놔두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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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下)
아카아시는 졸린 눈을 느리게 깜박거리며 보쿠토가 아무렇게나 벗어두고 간 티셔츠 한 장을 몸 위에 걸쳤다. 집안은 아주 엉망진창까지는 아니었지만 제대로 정리가 된 꼴도 아니었다. 요 며칠 과제로 바쁘다 하더니 슬슬 어지러워지고 있었다. 아카아시는 한숨을 삼켰다.
돌아갈 생각이었다. 상처는 나았고 제대로 날 수도 있게 되었다. 돌아가려고 했다. 밤이 찾아온 시간, 잠에서 깨었을 때 곧장 열린 창으로 떠나지 않고 보쿠토가 귀가하길 기다린 건 그간의 시간이 그의 발목을 붙잡았기 때문이었다. 얼굴을 보고서, 아마 소리를 내어 안녕을 말하지는 못하겠으나 작별의 인사는 하고자 했다. 그렇게 했고, 떠났다. 보쿠토를 뒤에 두고서 날았다.
왜 돌아왔는지는 아직도 스스로 대답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되어버렸으니, 아카아시는 이유를 따져 묻는 것은 그만두고서 시간이 허락하는 곳까지 머무를 생각이었다. 보쿠토가 귀찮아한다면 그때 떠나도 될 일이다. 그 때가 되도록 늦었으면 하고 바랐던 마음은 아카아시가 인지할 새도 없이 스르르 안으로 가라앉았다.
아카아시는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는 현관 쪽에 떨어져 있는 수건을 주워 신발장 위에 올려놓고, 세 바퀴쯤 뒤집어진 슬리퍼를 바로 했다. 보쿠토가 자신을 안고 구르느라 떨어진 깃털은 주워서 창 밖에 내다버리고 엉망이 된 소파 커버를 당겨 바로 했다. 켜진 욕실의 불은 끄고 마르기 일보 직전인 설거지에 조금 물을 대어주고 나면 아카아시의 낮 동안 일이 끝이 난다.
더 많은 걸 해줄 수도 있었지만 그래서야 아무도 없는 시간에 사람이 드나든다는 걸 알리는 꼴밖에 되지 않아, 아카아시가 해주는 것은 언제나 이 정도였다. 티 나지 않게, 조금씩만 손을 보아주는 것. 아카아시는 마지막으로 바깥에 나와 있는 우유만 냉장고에 넣어주었다.
보쿠토가 잠옷 삼아 걸치는 티셔츠는 그가 언제나 침대 위에 던져두고 가기 때문에 입지 않았던 척 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다시 새로 변하여 적당히 옷을 흩어두면 보쿠토는 절대 눈치 채지 못했다. 아카아시는 부리로 옷가지를 잡아당겨 두고서는 보쿠토가 마련해둔 담요에 자리를 잡았다. 이제 조금 더 자고 일어나면 보쿠토가 돌아올 시간이었다.
그의 주인은 자신의 올빼미를 도통 품에서 놓질 못하고 괴롭히는 것에 가까울만치 붙어대는 통에, 낮 동안 충분히 자두지 않으면 피곤해서 견디기가 어려웠다. 아카아시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단잠이었다.
*
-일어나세요.
-더 주무시면 늦어요, 어서.
보쿠토는 무언가가 자꾸만 옷깃을 잡아채는 통에 부스스 몸을 일으키고야 말았다. 어젯밤엔 팀프로젝트 하나가 끝이 난 기념으로 죽을 만치 술을 마시고 들어왔던 차다. 머리가 웽웽 울리는 건 그 술 때문인 것 같았다. 보쿠토는 부어서 제대로 뜨이지 않는 눈으로 더듬더듬 팔을 뻗었다. 어젯밤에 휴대전화를 제대로 충전해 뒀던가? 보쿠토는 불안함에 휩싸여 눈을 가늘게 뜨고 남은 배터리를 확인했다. 다행이 술김에도 제대로 충전기에 연결해둔 모양이었다. 배터리는 완충되어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우와아앗!”
보쿠토는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욕실로 뛰어 들어갔다. 급하게 샤워와 양치를 하고서 옷을 껴입는다. 어느덧 밤낮으로 일교차가 심해져 입을 옷을 고심하게 만들고 있었다. 겉옷을 하나 더 챙겨, 말아, 초조하게 고민하다가 덥석 집어든 보쿠토는 퍼뜩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그의 침대 곁 협탁에는 올빼미 한 마리가 몸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어…….”
방금 전에 나 일어날 때, 누가 깨워주지 않았나?
뭔가가 자꾸만 옷을 잡아당겨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잠결에도 얼핏 기억이 났다. 혼자 사는 자취방에서 그를 제외하고 무언가 움직임이 있는 것은 저 새 한 마리 뿐이다. 보쿠토의 얼굴에 서서히 함지막한 웃음이 꽃피었다.
“나 깨워준거야?! 응응?!”
까무룩 다시 잠들려하는 올빼미를 와락 끌어안고서는 뺨을 부비고 부리에 쪽쪽 소리 나게 입을 맞추고, 보쿠토는 한참이나 난리 법석을 피웠다. 평소였으면 이쯤 돼서 몸을 빼고 도망쳤을 올빼미도 잠에 취했는지 피하려는 소극적인 행동도 그만두어 보쿠토가 뽀뽀 세례를 퍼붓도록 내버려두고 있었다.
보쿠토가 새를 내버려두고 집을 떠난 건 마지막 알람이 겨우 울렸을 때였다. 보쿠토는 잠에 겨워 어쩔 줄 모르는 새의 뺨에 마지막으로 얼굴을 부비고는 곁에 흘러내린 손수건을 덮어주고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났다.
코노하는 그 아침의 일을 연거푸 들으며 그의 집으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 새가 범상찮기는 하네, 코노하의 그런 시큰둥한 말에 보쿠토가 발끈해서는 발을 구르고, 그러다가 어떻게 직접 보여주겠다는 얘기가 나오기까지는 순식간이었다.
보쿠토가 먼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고 코노하는 그런 보쿠토의 뒤에서 안을 흘끗 들여다보았다. 보쿠토가 신발을 내팽개치듯이 벗고 뛰어 들어가는 곳은 그의 침대가 있는 쪽이었다.
“헤, 진짜 올빼미네…….”
코노하는 보쿠토의 품에서 느리게 눈을 깜박거리는 새를 바라보았다. 무늬가 있는 흰 깃털 위로 짙은 눈동자가 낯선 그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코노하는 어떤 의미에서는 보쿠토의 말을 인정했다. 묘하게 관찰당하는 것 같은 저 시선은 보통 평범하게 생각하는 조류에게서는 느끼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래도 손님은 손님이라고 보쿠토가 코노하의 몫으로 물잔까지 내어준다. 코노하는 건성으로 물을 마시며 신기한 듯이 올빼미를 바라보았다. 이런 맹금조류를 가까이서 보는 건 드문 기회였다.
“야, 애 좀 그만 괴롭혀라. 애를 잡네, 잡어.”
“아, 아니거든!”
품에서 새를 내려놓질 않고서 머리를 쓰다듬었다가 손끝으로 뺨을 부볐다가 날갯죽지를 매만졌다가, 코노하는 쉴 새없이 보쿠토의 손을 타고 있는 올빼미를 가엾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학교에서도 보쿠토는 묘하게 한 번 정을 주었다 하면 한정 없이 군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렇게 보니 그린 듯이 뚜렷했다. 그렇게 코노하가 놀리듯 혀를 찰 때였다.
“어!”
“어엇.”
보쿠토의 손길에 포기한 듯이 얌전히 있기만 하던 새가 돌연 가볍게 날개를 움직이더니 보쿠토의 손을 벗어났다. 그대로 향한 곳은 코노하의 품이었다. 코노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팔을 벌리는데 올빼미가 눈을 내리감는다. 코노하는 올빼미와 보쿠토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그만 풉 하고 웃음소리를 흘렸다.
“이, 이거 진짜 똑똑하긴 하네. 네가 괴롭히니까 도망 왔잖아.”
“아, 아냐!”
“진짜 사람 말 다 알아듣는 거 아냐? 장난 아닌데. 얘 이름이 뭔데?”
“어?”
올빼미를 향해 손을 뻗으려고 안달복달하던 보쿠토가 움찔했다. 새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던 코노하고 고개를 들고 보쿠토를 쳐다보았다. 보쿠토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그를 보고 있었다.
“왜?”
“아, 이름……. 이름 아직 몰라.”
“엥? 몰라? 네가 주운 새 아냐?”
“어, 근데……. 아직 몰라…….”
“안 지어줬어?”
보쿠토가 어물쩍 말미를 흐리다가 왈칵 성을 내듯이 코노하의 품에서 새를 뺏어왔다. 코노하가 기어코 웃음을 터뜨린다. 보쿠토는 한껏 서운한 얼굴로 입술을 삐죽거리며 품 안의 새를 내려다보았다.
“너무해, 너!”
“말한다고 아냐.”
코노하는 새와 진심으로 투닥거리고 있는 보쿠토를 보며 웃다가 슬쩍 입을 다물었다. 새가 보쿠토의 손에 뺨을 부비는 건 아무리 봐도 보쿠토를 달래려는 것 같았다. 이쯤 되면 사람 수준인데, 코노하는 속으로 혀를 찼다.
“야, 쟤가 너보다 더 똑똑한 거 아니냐?”
“코노하!”
“아이쿠야.”
코노하는 엄살 피우는 표정을 지으며 손을 내저었다.
한참이나 투닥거리고 나서 보쿠토가 저녁 먹고 돌아가라 권했지만 고개를 저은 코노하는 현관에서 신발을 신다 고개를 들고 보쿠토를 쳐다보았다. 보쿠토의 어깨 위에는 새가 가만히 앉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뭐냐……. 이런 새는 보호구나 뭐 그런 거 있어야 하는 거 아냐? 없어도 괜찮아?”
코노하가 묻는 말에 보쿠토가 눈동자를 굴렸다. 그렇다고는 하는데, 하고 말미를 어물쩍 흐리며. 코노하는 알만 하다 싶어 고개를 흔들고는 내일 보자는 말만 남겨두고서 보쿠토의 방을 나섰다.
빌라를 나와 몇 걸음 걷다 고개를 드니 보쿠토가 테라스에 서서 그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의 어깨 위 올빼미는 여전하다. 코노하는 보쿠토를 향해 손을 흔들다 그만 저도 모르게 살짝 목례를 하고 말았다. 보쿠토가 그런 코노하를 보고 고개를 갸웃하며 뒤를 쳐다 보았지만 그의 뒤엔 아무것도 없었다.
어깨 위의 올빼미가 보쿠토의 눈가에 살짝 뺨을 부볐다.
*
겨울이 찾아오는 것에는 예고가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입김에 하얀 안개가 섞이기 시작했고, 보쿠토는 곧 겨울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보쿠토는 본디 추위에는 강한 편이라 겨울이 온다 해도 크게 신경 쓰는 것은 없었다. 외출할 때 긴 팔과 외투를 걸치게 되긴 했지만 다른 사람에 비하면 얄팍했다. 잘 때 입는 옷을 긴 팔로 바꿔 입게 된 게 대단한 일일 정도였다.
그런 보쿠토이니 만큼 본인의 자취방 난방에도 크게 성의가 없는 편이었는데 돌연 신경을 쓰게 된 건 함께 지내고 있는 새 때문이다. 보쿠토는 도대체 어떻게 실내 온도를 유지해야 할지 몰라 한참을 고민하다가 가을 수준으로 결정했다. 덕분에 얇은 카펫을 깔아둔 내부는 따뜻한 편이었다.
보쿠토는 습관처럼 집으로 돌아와 올빼미를 붙들고서 장난을 치고 뒹굴다가, 문득 담요를 둘둘 말고서 바닥에 엎드린 채 팔에 턱을 괴고 눈 앞의 새를 가만 들여다보았다. 새는 어디론가 날아가지도 않고서 그런 보쿠토의 앞에서 눈을 마주하고 있었다.
“있지…….”
보쿠토가 한참이나 말이 없어, 흥미를 다한 듯이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던 새가 다시 그와 눈을 마주한다. 보쿠토는 그 눈동자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이렇게 가까이서 보고 있자면 저 새의 눈에 녹빛이 살풋 드는 걸 알 수 있었다.
보쿠토는 한쪽 팔을 풀어 손을 뻗었다. 새의 눈매 근처를 쓸어본다. 새가 눈을 감고 그 손길에 몸을 맡겼다.
“근데 말야, 너……”
보쿠토의 손길을 내버려두고 있던 올빼미가 눈을 뜨고 깜빡, 했다. 그의 말을 듣고 있다는 것처럼.
보쿠토는 마침내 말했다.
“너하고……. 언제 손 잡아볼 수 있어?”
올빼미가 눈을 깜박이지도 못하고서 그를 쳐다본다. 보쿠토는 올빼미의 부리와 눈매 근처를 쓸던 손을 천천히 내려 새의 날개 깃털을 쓸었다.
“날개도 좋긴 하지만…….”
보쿠토는 중얼거리듯 말하며 새를 한 번 흘 끗 쳐다보았다. 그러다 반짝 하고 떠오른 생각이 있는 것인지 그의 얼굴 위로 빛이 스쳤다.
“아! 혹시 그건가!? 뽀뽀하면 돼? 그럼 되나!?”
새의 반응은 보지도 않고서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보쿠토가 덥썩 올빼미를 움켜 쥐듯이 끌어안았다. 반년 가까운 시간동안 내내 얌전하던 새가 처음으로 날갯짓을 어떻게든 하며 그의 품을 빠져나가려고 난리법석이었는데 보쿠토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담요로 감싸고서는 새의 뺨을 부비고 쪽쪽 소리가 나게 부리에 입술을 댄다. 새의 날갯짓은 격했지만 보쿠토의 몸에 상처를 내지 않으려는 탓에 한정되어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마침내.
“-! 보, 보쿠토 씨! 그만, 그만!”
보쿠토의 품에서 한 순간에 무게감이 훅 하고 사라졌다가 그 몇배의 존재감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 달의 목소리를 낸다.
허공에 깃털이 흩날리고 그 사이 어깨에 담요를 두른 남자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서 당황이 역력한 얼굴로 그를 보고 있었다. 보쿠토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진짜 뽀뽀였어!?”
“아닙니다! 아니에요! 아니, 그보다 어떻게…….”
당황한 아카아시가 어떻게든 말을 이으려는 시도는 비누방울처럼 흩날렸다. 놀라서 눈을 크게 떴던 보쿠토가 이윽고 몸을 날려 그를 껴안았던 것이다. 아카아시는 보쿠토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눕고 말았다. 그의 위로 올라탄 보쿠토가 아카아시의 뺨에 제 뺨을 부볐다.
“진짜 진짜로 보고 싶었어~! 엄청 기다렸다고!”
“……도대체 어떻게…….”
“이름이 뭐야?”
“네?”
터질 듯이 나오려던 한숨이 턱하고 막혔다. 아카아시는 자신의 위에서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보쿠토의 눈에서 도망치지 못했다. 보쿠토가 부족한 숨을 몰아쉬는 소리를 낸다. 아카아시는 몇 번이나 자신의 입술을 잘근잘근 씹다가, 밀물이 들어차는 것처럼 깨달았다. 보쿠토는 한 번도 자신을 특정한 호칭으로 부른 적이 없었다. 여지껏 그럴 필요가 없었다. 같은 공간에 있을 때면 보쿠토는 언제나 그를 보고 있었다. 보고 있고, 끌어안고 있다. 이름을 부를 일이 없었다. 단 한 번도.
“……아카아시. 아카아시, 케이지……입니다.”
“아카아시! 아카아시!”
도대체, 언제부터?
아카아시는 묻고 싶었지만 동시에 부질없는 질문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태양처럼 빛나는 눈동자가 그를 보며 어쩔 줄 모르는 듯이 웃고 있다. 아카아시는 결국 한숨을 내쉬고 천천히 그를 밀어냈다.
“일단, 옷을 좀…….”
담요로 겨우 몸을 가리고 있는 처지였다. 여지껏 끌어 안고 뽀뽀를 해대고 난리 법석이었으면서 보쿠토는 이 한 마디에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고는, 우당탕 소리와 함께 안으로 달려가서 옷가지를 가져왔다. 아카아시는 개중에서 익숙한 옷을 골랐다.
이제 와서 유난을 떠는 것도 우습다 싶어 적당히 등을 돌리고 티셔츠를 걸치려 담요를 끌어내릴 때였다.
순간 등에 뜨거운 손이 닿았다.
“보…….”
“이, 거…….”
아카아시는 자신의 등을 볼 수 없었지만, 순식간에 눈물로 가득찬 보쿠토의 목소리만으로 그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알아차렸다. 아카아시는 자신의 등에 닿은 보쿠토의 손을 천천히 떼어내고는 옷을 걸쳤다. 제대로 옷을 모두 입고서 마주앉았는데 보쿠토의 눈은 아카아시의 얼굴이 아니라 다른 곳, 그러니까 그의 등을 향하고 있었다.
“그냥 흉터만 남은 거예요.”
금빛 눈동자가 일렁거린다.
아카아시는 천천히 눈을 내리깔았다. 제대로 날 수 있게 되기까지도 한참이 걸렸던 상처였다. 흉터 하나 없이 나을 수가 없는 일인데 보쿠토에겐 그렇지가 않은 것 같았다.
“상처는 다 나았어요.”
“…….”
“이제 괜찮아요. 날아가버릴 수도 있을 만큼.”
“그건 안 돼!”
번쩍 고개를 든 보쿠토가 아카아시의 손을 꽉 붙잡았다. 어떤 반짝이는 액체같은 것들이 흩어진다. 아카아시는 제 손을 붙잡은 보쿠토의 손을 내려다보다 가만히 눈을 내리감고 고개를 기울였다. 그를 잡지 않은 다른 한 손이 그의 뺨에 닿는다. 보쿠토의 손이었다.
“가면 안 돼…….”
“……안 가요.”
나는 왜 돌아왔을까요.
붙잡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는데, 상처마저도 모두 나았는데 결국 돌아오고 말았다.
왜 돌아왔을까요. 알 수가 없었다. 돌아온 그를 보고서 울 듯한 얼굴로 웃으며 반기는 보쿠토를 보고도 알 수가 없었다. 지금도 알 수가 없다. 왜 돌아왔을까요, 나는.
다만 아카아시는 보쿠토의 손에 천천히 뺨을 갖다댄 채 입을 맞추었다. 닿은 손 끝에서부터 열이 오른다. 슬쩍 눈을 떠 위를 보자 새카맣게 깊어진 금빛 눈동자가 그를 보고 있었다.
손을 쥐었던 손이 멀어졌다 다시 뺨에 닿았다. 아카아시는 보쿠토의 양손에 시선을 고정당한 채 눈을 감았다.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벗어나고 싶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기다리는 그에게, 이름을 알려주고 싶었다는 것을.
겨울이 왔다.
눈 위에 발자국이 새겨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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