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카와가 발끈한 얼굴로 뾰로통하게 말하곤 모친의 옆에 앉아 어린 시절 받아온 통지표 몇 개를 열어봤지만 다 비슷비슷한 말이 적혀있을 뿐이었다. 아드님이 인기가 많습니다, 친구와 사이가 좋아요,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뒤로 고집이 있는 편이네요, 어리광이 좀 있어요, 눈물이 많네요. 오이카와는 입술을 몇 번 삐죽거리고 낡은 통지표를 다시 상자 안으로 밀어넣었다.
“나 고집 안 부리는데.”
“하지메 군이 다 들어주니까 그런거지.”
“고집은 이와쨩이 더 해요!”
오이카와는 아들인 자신보다 친구 편을 더 드는 부모님을 바라보다가 들고왔던 간식을 다시 챙겨들곤 쿵쾅대며 위로 향했다. 아래층에서 부모님들이 ‘어휴, 저 응석을 어쩌면 좋아’라며 웃음 섞어 중얼거리는 걸 알면서도.
*
“이-와쨩!”
“……나 죽는다, 오이카와…….”
아침 부활동을 위한 이른 등교길, 이와이즈미는 목을 대뜸 감아오는 팔에 겨우 몸을 지탱하고 섰다. 오이카와가 겨우 팔을 풀고는 이와이즈미를 보다가 퍼뜩 생각난 이야기를 꺼냈다.
“이와쨩, 초등학교 때 통지표 같은 거 아직 갖고 있어?”
“어? 글쎄. 나는 모르겠는데.”
“어제 우리 엄마랑 아빠가 그거 꺼내 보는데 있지. 뭐라고 적혀 있었는지 알아?”
“고집 많다. 어리광 많다. 떼 쓴다.”
“…….”
“뻔하지.”
이와이즈미는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 세 개를 탁탁탁 말했고 오이카와의 입을 다물리는 데에 성공했다. 잠시 말이 없던 오이카와가 한층 더 못마땅한 표정이 되어 이와이즈미를 바라보았다.
“그걸 어떻게 알아?”
“뭘 어떻게 알아……. 너에 대해 써있을 거 아냐.”
“나 고집 안 부리거든? 떼 안 쓰거든? 어리광 같은 거 없거든?”
“너 고집, 하. 네 고집이 그게 사람 고집이냐? 그리고 떼 미친듯이 많이 써. 마지막으로 지금 이게 어리광이야.”
“…….”
오이카와가 입술을 꽉 깨물고는 이와이즈미를 노려본다. 이와이즈미는 해 볼테면 해보라는 표정으로 멈춰서서 그 표정을 바라보았다.
“내가 언제 고집부렸는데!”
“지금. 고집 안 부리는 사람이면 이쯤에서 ‘아, 내가 그런가?’하고 물러선다고.”
“…….”
“연습 늦는다. 빨리 가자.”
“……이와쨩은 그럼 통지표에 뭐라고 적혀있었는데?”
“난 그게 아직 있는지도 모르겠다니까.”
이와이즈미는 거짓말을 하며 인상을 쓰고 오이카와를 바라보았다. 빨리 가자는 재촉에 오이카와가 몇 번 입술을 삐죽거리긴 해도 결국 그와 걸음을 맞춘다. 이와이즈미는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한 오이카와의 얼굴을 흘끗 한 번 보곤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곧장 오이카와가 왜 자길 보고 한숨을 쉬냐고 빽빽거린다. 이와이즈미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몇 번이나 말을 해야 겨우 오이카와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
어렸을 때 오이카와는, 볕 한번을 못 본것처럼 허옇게 질려서는 키는 겨우 보통이었으나 팔다리도 말라붙고 가느다래 잔병치레가 잦았다. 계집애마냥 곱상하게 생긴 녀석이 마르고 약하니 또래 남자애들과는 곧잘 시비가 붙었다. 시비라기보다는 상대들의 일방적인 괴롭힘이었는데 그걸 일일이 옆에서 챙기고 다닌 건 이와이즈미였다.
초등학생 수준의 유치한 괴롭힘인 것을 조금만 굽히고 들어가면 무마될 텐데도 매번 꿋꿋하게 자존심을 세우고 버텨 상처를 더 만드는 오이카와였고, 그렇게 독하게 눈물 한 방울 흘리질 않다가 이와이즈미만 오면 그에게 매달려 훌쩍대곤 했다. 그게 고집이지 그럼 무엇이겠는가.
그러던 녀석이 어느날 갑자기 뜬금없이 배구를 하겠다고 했다. 애들끼리 술래잡기를 한다고 달리기만 해도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는 녀석이 TV에서 봤다며 공 하나를 챙겨들고 나타나서는, 혼자서 공을 던지고 받고 난리인데 그걸 어떻게 또 두고만 볼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말려도 봤지만 내가 왜 이걸 못할 거라고 생각하느냐고 눈을 새파랗게 만들어서 쳐다보는데 결국 어찌할 수 없어 같이 하게 되었다. 하겠다고 하겠다고 하는 걸 말릴 수 없다면 눈이 닿는 곳에 두는 게 나았다. 저 하고싶은 대로 하다가 또 시퍼렇게 질려서 뻗어있으면 그걸 어쩌려고. 원하는 포지션은 세터라고 하기에 그래, 그러면 옆에서 공을 쳐주마 하고 자연히 그는 스파이커를 하게 되었고 그 고집이!
그 고집이 지금 여기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이, 이와쨩? 왜 그렇게 노려보는 거예요……?”
“아니다. 됐다. 가자.”
“이와쨩? 화, 화났어?”
그런데도 자긴 고집같은 거 안 부린다고! 잘도 그런 뻔뻔한 말을 해?
지금의 오이카와에게서는 어린 시절 창백하게 말랐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그 덕에 오이카와의 부모님은 지금도 여전히 이와이즈미라면 버선발로 맞이해주곤 했다.
“빨리 안 오냐! 늦는다니까!”
“이, 이와쨩~!”
이와이즈미가 버럭 소리치는 말에 오이카와가 서둘러 그에게 달라붙었다.
*
“…….”
“…….”
이와이즈미는 죽고싶다고 생각했고 오이카와는 꽃이 피어나는 듯이 웃으며 안으로 달려들어갔다.
오후 부활동까지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이와이즈미의 모친에게서 연락이 왔다. ‘오늘 토오루까지 불러서 같이 저녁먹자~’라는 상냥한 메세지였다. 매일같이 투닥거릴 수 있을만큼 친한 사이였고 저녁을 이웃에서 함께 하는 건 일상적인 일이었다.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에게 모친의 메세지를 보여주었고 오이카와는 선뜻 고개를 끄덕여 둘이 함께 이와이즈미의 집으로 들어가는데 그 집안엔 이미 손님이 있었다. 오이카와의 모친이었다.
“이와쨩 통지표예요? 뭐라고 쓰여있어요?”
오이카와가 거의 신발을 내팽개치듯이 벗어두고는 이와이즈미의 모친에게 한껏 애교를 섞어 말을 붙였다. 오이카와의 어머니가 어젯밤 아들의 초등학교 시절 통지표 얘기를 했다가 자연스레 열어보게 된 것 같았다. 이와이즈미는 득도한 심정으로 오이카와가 엉망으로 벗어놓고 간 신발을 대충 툭툭 발로 쳐서 정리하곤 안으로 들어갔다.
“에엑.”
“뭐, 왜.”
“재미없네, 이와쨩 건…….”
이와이즈미는 한껏 입꼬리를 끌어올려 비웃음을 그렸다. 오이카와의 모친만 없었어도 바보카와, 하고 쏘아붙여주었을 일이었다.
“좋은 말만 있잖아?”
“토오루는 그렇게 고집쟁이라고 쓰여있다며?”
“……네에…….”
이와이즈미는 어머니의 곁에 털썩 앉아 자신의 유년기를 기록해놓은 종잇장을 펼쳤다. 쓰여있는 말은 대개가 비슷비슷했다. 끈기가 있습니다, 책임감이 투철합니다, 친구를 잘 챙겨줍니다, 착한 아이입니다.
이와이즈미가 언성을 높여 겨우 통지표를 정리하고, 오이카와의 모친까지 함께 다같이 저녁을 먹었다. 식사를 끝내고 나서 어른들의 심부름으로 주스와 과자를 사러 마트에 가는 길은 둘의 몫이었다.
“이와쨩은 어차피 좋은 말만 적혀있었으면서 왜 말 안해줬어.”
“있는 걸 지금 봤다니까. 너희 어머님이 와서 얘기 안했으면 몰랐어.”
“치.”
오이카와가 불퉁한 표정을 짓는다. 이와이즈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끈기가 있습니다, 무슨 끈기를 말하는가. 우는 오이카와의 손을 놓지 않는 끈기일 것이다. 책임감이 투철합니다, 무슨 책임감일까. 아픈 오이카와의 손을 놓지 않는 책임감일 것이다. 친구를 잘 챙겨줍니다, 어떤 친구를. ……오이카와를. 착한 아이입니다, 착한.
오이카와는 투덜거리다가 금방 통지표에 대한 것은 잊고 마트에서 저 좋을대로 간식을 고르기 시작했다. 이와이즈미는 세 개중에 한 개 꼴로 허락해주었다. 그 고집쟁이가 그래도 말을 듣기는 듣게 되었으니 장족의 발전이네, 이와이즈미의 말에 오이카와가 고집 안 부린다고 또 투덜거린다. 이와이즈미는 피식 웃고는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