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카와 토오루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의 뒤에 서서 그 등을 바라보며 때때로 생각했다. 저건 정말 사람일까? 가끔 인간 아닌 것이, 신령이나 요정 혹은 신이 되다 만 어떤 것이 인간 가죽을 뒤집어쓰고 사람 행세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이와쨩~!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머리 나빠진다?”
“닥쳐.”
“히엑.”
실없는 소리를 하고 있을 때면 영락없이 보통 또래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어서 매서운 소리를 뱉으면 울상을 지으며 매달린다. 아니, 이런 면은 오히려 또래들에 비하자면 훨씬 애교가 있다는 느낌일테지만.
“자, 스파이크 다시!”
네트 근처에 서서 오이카와가 웃으면서 공을 올렸다. 이와이즈미는 망설이지 않고 뛰어올라 공을 내리쳤다. 코트 바닥과 공이 부딪히고 시원한 소리가 난다. 오늘 컨디션 좋네, 이와쨩? 오이카와가 싱긋이 웃었다.
3학년 마지막 봄고가 얼마 남지 않았다.
*
패배 앞에서 일어서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누적된 패배는 사람을 지치게 한다. 이와이즈미는 고등학교 2학년 여름에 그것을 실감했다. 몇 번째인지 세는 것을 그만 둔지도 오래였다. 시라토리자와와 붙으면 졌다. 듀스, 동점, 어쩌면, 혹시, 그런 단어가 쓰인 적은 제법 있었지만 결과는 한결같았다. 붙으면, 졌다.
라이벌? 서로를 의식하고 난 이후로 한 번도 이기지를 못했는데 그런 것을 두고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나. 한 세트를 빼앗았다는 게 의미를 가질 정도라면 그건 호적수니 라이벌이니 그런 거창한 표현을 할 수 없다. 저쪽은 일방적인 승자, 이쪽은 언제나 도전자일 수 밖에 없었다. 언제나, 무참히, 박살나고 부서지고 깨져 산산조각나는 도전자.
그러면 그 무참히, 박살나고 부서지고 깨져 산산조각나는 도전을 계속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이와이즈미에게 그것은 오이카와였다. 그러면 오이카와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자신에게는 오이카와가 있다. 오이카와의 바람이, 그가 존재함이 이와이즈미를 떠밀어 끝없이 노력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러니 오이카와가 그렇게 노력할 수 있는 원동력이 자신이 될 수는 없었다. 그건 모순이다.
전국으로 가겠다는 꿈이 그의 원동력일까? 그렇다면 오이카와는 그 목표가 내리 거친 삭풍을 맞고서도 그 형체를 제대로 유지할 수 있도록 지키고 있다는 뜻인가.
도대체,
어떻게?
노력이 부족했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누군가 그에게, 그들에게 조금 더 노력하지 그랬느냐며 동정하고 위로한다면 이와이즈미는 그 동정과 위로 모두 내팽개칠 자신이 있었다. 감히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적어도 그럴 만큼은 당당하게 노력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러면 도대체 무엇이 부족해서 지고 말았는가. 그런 식으로 파고들어가면 남은 이유는 둘 뿐이었다. 상대가 우수해서, 우리가 부족해서. 그런데도 오이카와는.
그 매서운, 시라토리자와라는 이름의 삭풍 앞에서 목표를 지키기 위해 성벽을 쌓을 수도 있었고 해자에 물을 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오이카와는 상대의 재능을 탓하는 것으로 성벽을 쌓아올리지 않았고 자신의 부족함을 자책하는 것으로 해자에 물을 대지 않으며, 오로지 스스로 더 노력하는 것만으로 매서운 삭풍 앞에 유리등불같은 그 꿈을 지켜왔다.
차라리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가 때때로 그러지 않기를 바랐다. 공평하지 않은 재능을 앞에 두고 같은 출발선을 디디고 선 현실을 탓하기를 바랐다. 저런 재능 같은 건 정말로 어쩔 수가 없다고 조금쯤은 억울해하기를 바랐다.
패배하고 부서져도 꺾이지 않는 모습을 보는 것은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사무치게 가혹했고. 그 깊이를 짐작할 수 없는 마음은 경이를 불러일으켜 따라갈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칫. 서브, 맘에 안 들어…….”
“오늘은 할 만큼 했어, 가자.”
“하지만 이와쨩…….”
이와이즈미는 마음에 들지 않으니 조금 더 하고 싶다고 말하는 오이카와의 뒷목을 잡아끌었다. 사람 속을 득득 긁어놓는 말을 우습게 하곤 하는 오이카와지만, 이와이즈미가 행동으로까지 나서는 일에는 잠자코 따르곤 했다.
“조금만 더 연습하면 될 것 같은데.”
“내일 해.”
“좀 더 빨리 하고 싶은데.”
“내일 하라고 했다.”
“윽. 알겠습니다아…….”
오이카와가 입술을 삐죽거리며 투덜거렸어도 쿨다운을 하곤 얌전히 샤워실로 간다. 이와이즈미는 먼저 옷을 갈아입고 오이카와가 나오길 기다렸다.
오이카와는 노력하기 위해 흘릴 땀을 무서워하지 않고 비참해하지 않는다. 날 때부터 손에 모든 걸 쥐고 태어났다는 듯이 여유로운 얼굴을 하고서, 온힘을 다해 달려오는 모습을 보이는 것에도 한 점 두려움이 없었다.
‘넌 사람들이 왜 저런 말을 하는지 알겠냐?’
아마도 시험기간이었을 것이다. 점심 시간,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와 함께 복도에서 바깥을 내려다보다 지나가는 학생들이 떠드는 말을 듣고 오이카와를 바라보았다. 그의 곁에서 주스를 야금야금 마시던 오이카와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말?’
‘오늘 테스트인데 어제 드라마 봐버렸다, 라거나. 그런 말 하는 거.’
‘아……. 뭐 이해는 안 되지만 알기는 알아. 필사적으로 열심히 해서 나온 점수보다 애쓰지 않았는데도 받아낸 점수가 더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아니면 실패하면 창피하다고 생각해서 미리 선수쳐서 변명하는 거라거나.’
오이카와가 다 마신 주스 팩을 꼼꼼히 접으며, 그 행동과는 다르게 시큰둥하고 건성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와이즈미는 그런 오이카와의 손끝을 바라보았다. 열심히 하지 않았는데도 좋은 성적이 나온다면 그것은 자연히 타고나길 명석하게 태어났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귀결되어서. 만약 좋은 성적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건 마땅히 내가 노력했는데도 얻지 못한 것이 아니라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이해는 안 되냐?’
‘응. 뭐든지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편이 훨씬 멋지다구? 이 오이카와 씨처럼!’
그렇게 말하며 흡사 천진한 어린 아이처럼 활짝 웃는데…….
철렁, 하고 무언가가 뚝 떨어졌다. 아마도 자신의 심장이었으리라, 이와이즈미는 생각했다.
*
오이카와는 천재성이, 재능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가지지 못하고 가질 수 없는 걸 탐하는 건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고 비겁하게 만든다. 가지지 못한 것을 탓하게 되고 가진 자를 질시하게 되고 그것이 스스로의 발밑에 늪과 같은 구덩이를 만든다는 것을 배운 건 중학교 3학년 때였다. 그리고 그 뒤로 오이카와는 그런 것들을 그저 깨끗하게, 마음에 들어하지 않기로 했다.
“아, 역시 싫네! 천재들이란!”
오이카와가 뾰족한 목소리로 말하고 이와이즈미가 그런 오이카와를 질질 끌고 코트로 향했다.
“난 네가 더 싫거든.”
“왜요? 이 오이카와 씨 어디가 싫은데요, 이와쨩!”
“후배 괴롭히지 좀 마라!”
“조언 해준건데?”
“얼씨구.”
오이카와는 매몰찬 이와이즈미를 향해 몇 번더 입술을 삐죽거리고는 얌전히 워밍업을 위한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이와이즈미가 그를 타박하는 것은 지난 월요일, 우연히 만난 지난 중학교 후배와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오이카와는 팔을 쭉 뻗는 것으로 스트레칭을 마무리짓고 가볍게 어깨를 주물렀다.
이와이즈미는 공을 가지고 코트 한 쪽으로 향하는 오이카와의 뒷모습을 흘끗 바라보곤 자신도 공을 챙겨들었다. 지금 오이카와가 그 후배에 대한 감상은 간단히 말하면 ‘싫다’이지만 동시에 오로지 그것뿐이었다. 아주 담백하게, 좋아하지 않으니까 싫어한다. 굳이 몇 가지를 더 덧붙이자면 세터로서는 지지 않겠다는 것 정도일까.
‘후배랑 진심으로 경쟁하는 거 쪽팔리지도 않냐.’
‘에? 왜?’
두 살이나 어린 후배. 누가 보아도 폭발적이고 화려한 천재성을 온몸에 가득 채우고서 나타난 후배를, 적어도 지금 당장은 월등히 우수한 실력을 가진 선배가 유치하게 괴롭히거나 심술궂은 말을 하곤 하는 모습은 그저 장난처럼 보였지만 이와이즈미는 알고 있었다. 진심으로 전력을 다해서 그에게 지고 싶지 않아, 이기겠어, 오이카와의 그런 생각이 손에 잡혔다.
‘나이가 나보다 어리다고 걔가 세터 안 한대?’
‘누가 그렇대냐.’
‘그럼 누구나 다 경쟁자야. 그런데 그 중에서 토비오쨩이 제일……. 아아! 정말 이런 말 하게 하지 말라구! 그 녀석이 제일!’
‘그래, 그래. 알았다. 됐어.’
처음 보았을 때 상대는 중학교 1학년, 키도 몸집도 기술도 아직은 오이카와에게 미치지 못하고서 겨우 초등학교 티를 벗고 있었다. 중학교 3학년에 그 또래중에서는 가장 완성되어 있는 오이카와가 주전을 뺏길 일도 없고 이 1년만 지나면 한동안은 후배와 부딪힐 일조차 없을텐데도, 오이카와는 진심으로 전력으로 카게야마에게 지지 않겠다는 열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를 뜯어보듯 바라보았지만 오이카와는 괜히 카게야마의 이야기로 자극받아, 잔뜩 불퉁한 표정을 지으며 서브 연습을 하러 가버렸었다.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의 어떤 것들이 보통 사람과는 다른 것으로 빚어져 있다는 걸 그 때 새삼스레 깨달았다. 그의 자존심은 진주와 같아서 진흙에서 태어난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그의 노력은 다이아몬드와 같아서 어디에 대어도 부서지지 않고 영롱하기만 했다.
*
“너, 시라토리자와에 갔으면 어땠을거 같냐?”
그 말을 한 건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서 오이카와의 반응을 떠보려는 생각은 아니었다. 다만 그쪽의 에이스이자 주장인 우시지마가 지치지 않고서 오이카와에게 시라토리자와에 오라고 권유하기에 되레 듣는 쪽이 나가떨어졌던 평범한 오후, 평범한 귀갓길이었다. 그 말을 들은 오이카와는 멀뚱하니 대답했다.
“몰라.”
“야. 대답을 좀 성의껏 해봐라.”
“모른다니까? 그런 거 생각 해본 적도 없어. 앞으로 생각해 볼 일도 없고.”
내가 시라토리자와에 왜 가?
오이카와는 화가 나지도, 토라지지도 않은 채 그저 무덤덤하게 음료를 입에 넣으며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정말로 한 번도 생각도 해보지 않았고 생각해 볼 일도 없는, 조금도 관심 없는 화제에 응하는 태도였다.
“왜? 우시와카가 이와쨩한테도 뭐라고 했어?”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으으. 뭐 갔으면……. 우시와카쨩한테 토스 올려줬으려나?”
그래도 이와이즈미가 물었다는 이유만으로, 결국 오이카와는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을 하고 답을 말해주었다. 가서 배구를 할 것이고 그는 세터, 우시지마는 스파이커니 그닥 대단찮은 답이랄 것도 없었으나. 이와이즈미는 양손으로 음료수 병을 붙들고 있는 오이카와를 멀거니 바라보다가 그의 주름진 미간을 손으로 꾹 눌러주었다.
“이와쨩?”
오이카와 그가 그렇게 바라는 전국으로의 길을 매해 당연한 것처럼 밟아가고 있는 시라토리자와에서, 지치지도 않고 손을 내민다. 그가 가장 원하는 달콤한 과실을 흔들며 유혹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탐나지 않았냐.
당장 그렇게 묻지 않은 건, 그 질문을 했다간 눈 앞의 저 녀석이 당장이라도 주먹질을 해버릴 거란 걸 잘 알아서였다.
“……가고싶단 생각은 한 적 없냐?”
그런데도 묻고 말았다. 고개를 갸웃하며 음료수 병을 조물거리던 오이카와의 움직임이 딱 멎었다. 이와이즈미는 변명하지도 않고 다른 설명을 덧붙이지도 않은 채 멈춰 서서 오이카와를 바라보기만 했다. 오이카와가 백지처럼 표정 없이 그를 쳐다보았다.
“-내가.”
“어.”
“시라토리자와에 가고 싶다…고 생각한 적 없냐고? 지금 그렇게 물었어?”
“어.”
그리고 물론 당연하지만 얻어맞았다. 맞을 소리를 했다는 걸 알면서도 이와이즈미는 왜 때리느냐고 성질을 부렸고 오이카와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커다란 눈에서 구슬같은 것이 방울방울 떨어지고, 오이카와는 자신이 우는 줄도 모르고서 이와이즈미의 멱살을 쥐어틀고 노려보았다.
“왜 그런 걸 묻는건데, 이와쨩.”
이와이즈미는 터져나간 입술 끝에서 올라오는 통증에 표정을 바꾸지 않기 위해 힘을 주고서 오이카와를 바라보았다. 오이카와는 이맛살을 일그러뜨린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와이즈미가 처음으로 보는, 비참해하는 오이카와의 얼굴이었다.
“……오이카와.”
“왜, 도대체 왜 그런 걸……, 어떻게 이와쨩이 나한테 그런 걸 묻는 건데! 내가 그래보였어? 내가, 내가 여기가 아니라 시라토리자와에서…….”
“아니야. 아니다. 오이카와. 미안해. 아니야. 그런 게.”
이와이즈미의 옷깃을 쥐어틀었던 오이카와의 손에서 힘이 풀리고 그가 바닥에 주저앉는다. 이와이즈미는 한숨을 삼켰다. 우는 오이카와의 입에서 온갖 말이 다 나왔다. 내가 이와쨩에게 토스를 그렇게 못했어? 아니면, 내가 다른 에이스를 찾는 것 같기라도 했어? 그것도 아니면 내가 그저 이길 수만 있으면 다른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보였어?
이와이즈미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전부 다 틀렸다고 고개를 저었다. 눈물로 온통 젖은 오이카와의 얼굴은 엉망이었다.
“그럼 도대체 왜 물어본거야.”
“…….”
단지 ‘가고 싶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고 하면, 이 녀석은 정말로 어떤 표정을 할까. 이와이즈미는 열었던 입술을 다시 닫았다.
자신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 타인의 재능을 탓하는 일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을 비하하는 일에 몰두하지 않는 오이카와였다. 오로지 스스로의 힘만으로 올곧게 마음을 일으켜세워 다듬고 앞으로 향하는 그에게, 나는 너와는 달리 기댈 것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면 그는 어떤 표정을 할 것인가.
“……거길 가고 싶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단 말야…….”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이와이즈미를 두고서 오이카와가 엉엉 운다. 다른 에이스 같은 거 필요없어. 다른 학교 필요 없어. 너희가 아니면 안 된단 말야. 네가 아니면 안 된단 말야……. 나한테는, 너밖에는.
이와이즈미는 우는 오이카와에게 사과하며 그를 달랬다. 이 한마디를 위해서 결국 오이카와를 울리고 말았다. 눈물을 겨우 그친 오이카와가 매섭게 한 번 그를 쏘아보곤 걸음을 빠르게 앞세워 걸어나간다. 화도 났고 토라지기도 했으니 최선을 다해 달래주라는 뜻이었다.
이와이즈미는 그 등을 바라보며 오이카와가 해주었던 말을 되짚어보았다. 지금의 저 눈물과 저 말이 모두,
일생의 빚이었고
빛이 되었다.
-----
ㅠ.. 뭔말을 하고싶은건지 모르겠는글
그래도 이와오이행쇼..제발...
'하이큐 > 이와오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와오이 | 발렌타인 데이 (1) | 2016.02.14 |
---|---|
이와오이| 고백 (6) | 2016.01.03 |
이와오이| 여름의 승리를 (2) | 2015.12.27 |
이와오이| 사랑의 말 (0) | 2015.12.19 |
이와오이| 착한 아이입니다 (0) | 2015.1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