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오이 전력 주제 : 고백
비밀
“이와이즈미, 나 비밀 있다아~?”
이와이즈미는 깊은 탄식을 뱉어냈다.
*
오이카와 토오루의 주량에 대해 말하자면, 술을 됫박으로 마셔도 안색 하나 바뀌지 않았다. 이쯤 마시면 코끼리도 쓰러지겠다 싶을 때가 되어서야 겨우 취기가 도는 것이 오이카와 토오루였다. 그러니 재미가 없다는 이유로, 술자리에 동기들이 함께 모이면 오이카와의 앞으로만 술잔이 산더미같이 쌓이곤 했다. 오이카와는 투덜거리면서도 마셔주었고 그 탓에 때로는 오이카와가 먼저 취할 때도 잦았는데,
“이와이즈미.”
오이카와가 이와이즈미를 이렇게 부르면 그건 오이카와가 취하기 시작했다는 신호였다.
“에. 벌써 취했냐?”
“아닌데?”
오이카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사르르 접으며 웃었다. 하나마키가 달아오른 얼굴로 눈살을 찌푸리는데 이와이즈미는 고개를 흔들었다. 오이카와의 옆으로 늘어선 병만 봐도 취할 때가 됐다.
그리고 그렇게 오이카와가 취하고 나면 이와이즈미가 나서서 술자리를 정리하는 것이 그들 모임의 마무리였다.
“나 진짜 안 취했다니까!”
“어, 알아. 아는데 얘네 내일 출근이다. 가야지.”
“이이, 씨이…….”
눈이 도장을 찍듯이 꾹꾹 깜빡, 깜빡하며 맘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만든다.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의 지갑이며 머플러 같은 것을 챙기면서 그를 붙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보모 노릇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여전하다며 하나마키와 마츠카와가 웃는다. 이와이즈미는 둘을 쏘아보았다. 애를 이 꼴로 취하게 만든 덕분 아니냐. 하나마키의 웃음소리가 더 커졌다.
가게 밖으로 나와 둘씩 찢어지고 이와이즈미는 한숨과 함께 오이카와의 목에 머플러를 감아주었다. 밝은 베이지색 머플러에 파뭍힌 오이카와가 배시시 웃음을 흘렸다.
‘진짜 취했네.’
평소에도 웃음이 헤픈 편이지만 저렇게 녹진하게 웃는 건 술을 들이 부었을 때 뿐이다. 이와이즈미는 미간을 꾹꾹 누르며 다음 동선을 계산했다. 일단 숙취해소제 몇 개를 사서 집에 데려다 놓으면 되려나.
“이와이즈미, 2차 가자! 2차!”
“안 돼.”
“왜애, 가자아아.”
오이카와가 그의 옷깃을 살짝 붙들고서는 살랑살랑 흔들며 떼를 쓴다. 떼를 쓴다고 하기 보단 응석에 가까운 애교였다. 훌쩍 키가 큰 녀석이 그러고 있는데도 생긴 것이 원체 화려한 탓인지 보기 싫지는 않았다. 어쩌면 자신의 마음때문일지도 모르겠으나.
“너 혼자 술 얼마나 퍼마셨는지 아냐.”
오이카와가 술이 세다면 되레 약한 쪽은 이와이즈미였다. 서너잔만 마셔도 앞이 띵하게 돌고 그 이상 마시면 목부터 붉게 달아올랐다. 그런 것을, 매 술자리마다 필사적으로 정신을 다잡고 버티는 것은 그 술자리마다 언제나 오이카와가 취할 때까지 술이 집중되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글쎄에! 그러니까 가자아.”
“여기서 나까지 취하면 너 데려갈 사람 없다니까.”
“내가 대려가지요오! 가자아!”
살랑살랑 애교를 부리듯이 2차를 가자고 조르던 게 이젠 막무가내로 그의 손을 잡아끈다.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의 힘에 못 이기는 척 끌려가며 그 뒤에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술에 취하기 전까진 매번 자기만 이렇게 마신다고 투덜거리면서도, 막상 취기가 올랐다 싶으면 그 때부터 2차를 가자 3차를 가자 난리가 난다. 그래서 매번 그가 취했다 싶으면 자리를 정리하는 이와이즈미였다.
“내가 못 산다, 못 살아…….”
결국 오이카와의 조름에 못 이겨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를 데리고 근처의 조그만 술집으로 향했다. 오이카와는 벌써부터 활짝 웃기에 바쁘다.
간단하게 술과 안주를 주문하고, 안주보다 먼저 술이 나왔다. 이와이즈미가 어떻게 하기도 전에 오이카와가 잔에 술을 따르곤 연거푸 들이켰다. 술이 마시고 싶다기보다는 취하고 싶은 것 같았고 그건 취한 오이카와가 술을 마시는 버릇이기도 했다.
“아아, 취하질 않네…….”
“너 취했거든, 이미.”
“아냐, 이와이즈미, 아냐…….”
그 ‘이와이즈미’ 소리 좀 어떻게.
이와이즈미는 하려던 말과 술을 함께 목으로 넘겼다. 시커멓게 커다란 녀석이 이와쨩이 뭐냐, 하며 놀렸던 과거도 분명히 있었는데 어느새 오이카와에서 그 이름이 아닌 말이 나오는 게 더 어색하게 느껴졌다.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고, 안주를 집어먹고 술을 한 병 새로 주문할 때쯤 돌연 오이카와가 그를 불렀다.
“이와이즈미!”
“오냐.”
“이와이즈미, 나 비밀 있다아~?”
이와이즈미는 이대로 머리를 테이블에 박아 테이블 채로 부셔버리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차분한 표정으로 오이카와를 바라보았다. 애띠게 생긋생긋 웃으면서 사람 약이라도 올리는 것 같은 표정이던 오이카와가 돌연 어깨를 움츠리며 양손으로 자신의 입을 막는다.
“아앗! 비밀인데!”
“그래, 비밀이겠지.”
“나 비밀 있다? 그게 뭔지 모르지?”
“어, 몰라.”
‘이와이즈미’라는 이름이 오이카와가 취했다는 신호탄이라면, 비밀 얘기를 하기 시작하는 건 오이카와가 정말로 반쯤 정신을 놓을 만큼 취했다는 뜻이다.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의 잔에 술 대신 물을 채워넣으며 자꾸만 찌푸려지는 인상을 펴기 위해 애썼다. 저 상태의 오이카와는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도 이제 일어서면 곧장 고꾸라진다.
‘저 커다란 걸 또 어떻게 집까지 업고…….’
이와이즈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서 오이카와가 웃는다. 이와이즈미는 결국 다 포기하고서 턱을 괸 채 오이카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비밀, 있냐.”
“으응, 비밀!”
“뭔데.”
“비밀이니까 말 못하지!”
오이카와의 비밀. 이와이즈미에게는 말하지 못하는 비밀.
오이카와가 술을 강요당하며 투덜거리는 건 취하고 싶지 않아서이고, 취하고 싶지 않은 건 취하면 무슨 말을 할지 모르기 때문에. 취하기 시작할 때 이와이즈미의 이름을 평소와 달리 부르는 건 더 취해서 흐트러져 허튼 소리를 하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취해버리고 난 뒤부터 연거푸 술을 들이키는 건, 그렇게 취해서라도 하고픈 말이 있어서.
“말 못하냐.”
“응, 비밀이야.”
녹진히 풀어진 눈동자가 그를 바라보며 비밀을 말한다. 이와이즈미는 자신의 잔에 술을 따랐다. 반쯤 정신이 풀린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가 하는 대로 지켜보고만 있었다. 물 마셔라, 오이카와. 이와이즈미의 말에 오이카와는 또 고개를 끄덕이고는 꼴깍 꼴깍 물을 넘겼다.
물잔을 내려놓은 오이카와가 그를 바라본다. 단 것이 뚝뚝, 그의 시선 끝에 매달려있다. 깊이 깊이 미소를 짓는다. 테이블 위의 손이 슬금슬금 이와이즈미가 있는 쪽으로 향해왔다. 이와이즈미는 모르는 척 자신의 손을 조금 앞에 놓았다. 오이카와는 다른 그릇이라도 건드리는 것처럼 이와이즈미의 손을 매만졌다.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가 하고싶은 대로 하도록 가만히 내버려두었다. 오이카와가 이와이즈미의 손을 쥐듯이 꼭 붙잡았다.
“이와이즈미, 나 비밀 있다?”
“오냐.”
“궁금하지?”
“어어, 엄청 궁금해.”
“비밀이지롱!”
그러냐.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에게 잡힌 자신의 손을 내버려두고서 그저 그렇게 대꾸했다. 무슨 비밀인지 다 알고 있다고 말하면 오이카와는 어떤 표정을 할까. 어차피 다음날이 되면 기억도 하지 못하겠지만.
“언제 말해줄래.”
“더 취하면…….”
“이만큼 취해도 말 못하겠냐.”
“으응, 못하겠어…….”
오이카와가 눈동자를 볼 수 없을 만치 눈을 접고 웃으며 고개를 사르르 흔든다. 말 못하겠어, 그러니까 사실은 말하고 싶다는 뜻. 말하고 싶지 않은데, 말을 하고 싶어서. 그런데 이렇게, 일어서지 못할 만큼 취해도 말을 할 수가 없어서.
고백을,
할 수가 없어서…….
“왜 못하겠는데.”
“그야 비밀이니까!”
“그럼 왜 비밀인데.”
“그야……. 좋아하니까…….”
“뭐를.”
“이와쨩을…….”
“얼마만큼.”
“진짜……진짜 많이…….”
오이카와가 천천히 고개를 떨어뜨리며 자신의 팔에 얼굴을 묻는다. 헝클어진 머플러 사이로 드러난 목덜미가 사과처럼 붉었다. 그래도 한쪽 팔은 여전히 앞으로 뻗은 채 이와이즈미의 손을 쥐고 있었다.
“그러냐.”
“응, 비밀이야…….”
그 말을 끝으로 이와이즈미의 손을 쥐고 있던 오이카와의 손에서도 스르륵 힘이 빠져나간다. 완전히 취해서 잠들었다는 뜻이었다. 이와이즈미는 남아있는 술을 휙 들이키곤, 풀어진 오이카와의 손을 이번엔 자신 쪽에서 감싸듯 쥐었다.
비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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