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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지나가던 타치바나 울던…데.”


교실로 돌아왔더니 같은 반이자 동시에 같은 배구부인 코노하가 조심스레 말을 붙여왔다. 보쿠토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자신의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 그래?”

“너한테 고백하러 간 거 아니었어?”


코노하의 질문에 보쿠토는 조금 읽기 어려운 표정을 지었다.


“어, 그랬긴 했는데…….”

“어? 헉, 설마 거절했어?”


코노하가 몹시 믿기 어렵단 투로 반문했다. 과장한 기색이 선명하게 보이는 말투였다. 보쿠토는 조금 미간을 모으고서 코노하를 쳐다보았다.


“응, 거절했는데.”

“갑자기 왜?”

“갑자기라니…….”

“너 지금까지 한 번도 누굴 거절한 적 없었잖아.”


코노하가 유난스레 묻는 말에 보쿠토는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렇게 말하니까 꼭 자신이 아무 생각 없이 그를 향한 모든 고백에 응한 것처럼 들렸다. 나름대로는 생각했던 것들인데. 모두.


“뭐 좀 더 준비되고 나서……. 안 바쁠 때 만나는 게 나은 것 같아서.”

“어떻게 갑자기 하루아침에 사람이 됐지?”


코노하가 보쿠토의 말은 들은 체도 않고 고개를 기울이며 의아함을 표출했다. 보쿠토는 발끈했지만 거기에 특별한 반박을 하지는 못했다. 몇 마디 중얼대듯 대꾸하는 게 고작이었다.


“나도 다 생각이 있었어!”

“그 생각이라는 혹시 게 좋든 싫든 고백하면 다 받아준다는 거였어?”

“…….”


보쿠토는 눈을 가늘게 뜨고 코노하를 바라보았다. 코노하의 뒤에서 누군가가 조종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아서였다. 익숙한 후배의 그림자가 엿보인다는 생각은 착각인가?


“……아니 내가 그렇게 평소에 문제 있어 보였어!? 그럼 말을 좀 해주지!”

“얘 좀 봐……. 잘못은 네가 하고 고쳐주는 건 남이 해주냐? 무상 수리 서비스?”

“…….”


코노하의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도 그렇다. 보쿠토가 입을 다물자 코노하는 더욱 신묘하다는 표정으로 그를 들여다본다. 보쿠토가 입술 삐죽이는 것을 한참이나 쳐다보던 코노하가 이해되지 않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너 어디서 벼락 맞았냐?”

“……무슨 말을…….”

“아니 사람이 갑자기 어떻게 변했지? 무슨 깨달음이 있었나 본데.”


보쿠토는 주먹을 꽉 움켜쥐고 코노하를 노려보다가 곧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런 거 아니라니까.”

“뭐든지 간에 잘됐긴 하네. 드디어 우리 에이스가 철이 다 들고.”

“나는 평소랑 똑같아!”

“진짜?”


너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해? 코노하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묻는다. 한쪽 눈만 조금 커진 그 표정은 보쿠토의 평소 얼굴을 흉내낸 것이다. 입술을 달싹거리던 보쿠토가 억울하단 얼굴로 말문을 열었다.


“아니 그냥, 이번 한 번만 거절만 하고 온 거잖아. 내가 그냥 맘이 바뀌어서 그런 거지 뭐 그렇게 변했다고 자꾸….”

“다음에는 거절 안 할거고?”

“내가 좋아하는 애면 안 하지!”

“거봐, 변했다니까.”

“어디가!? 어째서!?”

“아카아시인가, 걔지?”


코노하가 알만하다는 투로 말했다. 뭐라 대꾸하기에는 코노하가 지나치게 모든 걸 꿰뚫고 있다는 목소리였다.


“너 요즘 친하게 지내는 후배.”

“네 후배기도 하잖아.”

“그런 것치곤 네가 너무 안 놔준다는 자각이 없고만.”

“뭐어!?”


보쿠토가 언성을 높였다. 심약한 사람이라면 덜컥 놀라서 몸부터 움츠렸을 정도의 움직임이었는데 코노하는 뒤로 물러나기만 했을 뿐 여전히 허여멀건 얼굴로 쳐다보고만 있었다. 보쿠토의 그 요란한 몸짓이라면 지난 1년간 지독히도 겪어왔던 것이다.


“부활동 할 때 네가 계속 걔랑 얘기하니까. 다들 이름 정도만 알지 걔랑은 말도 못 했다고.”

“그런…그런가?”


내가 그랬어? 보쿠토가 맹하니 묻는 말에 코노하는 거세게 고개를 끄덕였다. 보쿠토가 뒤통수를 긁적였다.


“방해하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네 의도가 중요한 게 아니지 않을까나~?”


코노하의 말은 들어본 적이 있다. 보쿠토는 홀린 것 같은 얼굴로 코노하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아카아시도 그런 말을 했었다.


“역시 너…아카아시와 한패?”

“……너의 집중력과 산만함은 정말 따라갈 수가 없다 야…….”


코노하는 그렇게 투덜거리면서도 어떻게 된 일인지 눈치를 챘다는 얼굴이었다. 보쿠토만이 도통 알 수가 없어서 알쏭달쏭한 얼굴을 하고 있다. 코노하가 어깨를 으쓱했다.


“뭐가 됐든 잘 됐네. 잘 됐어.”

“뭐, 뭐가?”


보쿠토가 도대체 무얼 얘기하는 거냐고 캐물었지만 코노하는 끝까지 말해주지 않았다.


*


고등학교에 입학했는데, 한 학년 위의 선배가 몹시도 성가십니다. 아카아시는 글짓기 대회에 나간다면 재미있는 제목으로 써먹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공을 챙겨 들었다.


‘누가 또 무슨 소릴 한 거야…….’


보쿠토는 말을 하는 것도 성가신데 말을 하지 않는 건 두 배로 성가시다는 걸, 아카아시는 지금 깨닫는 중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오후 연습이 시작되자마자 달려와선 종알종알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이며 그네들의 그 ‘수업’ 얘기며 바삐 할 텐데, 지금은 저 멀찍이 떨어져서는 어딘지 무언가 참고 인내하는 표정에다 시무룩함을 더한 얼굴로 여길 흘끔거리고만 있다.


‘할 말이 있으면 와서 하시지?’


뭔가 할 말이 있지 않고서야 저런 표정이 나오기도 어렵다 싶어서 다가가려고 하면 금방 다른 일이 생기거나 다른 누군가가 말을 붙여왔다. 그게 아니면 보쿠토가 홀연히 사라진다. 그러다가 또 정신을 차리고 나면 보쿠토가 무언가 꾹 참는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다.


보쿠토의 저 전에 없던 이상한 반응을 생각하면 분명히 누군가가 그에게 무슨 이야기를 한 것 같기는 한데, 무슨 이야기인지는 도통 짐작할 수 없었다. 보쿠토는 온갖 것에서 온갖 반응을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캐물어 볼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왔다. 묘하게 피하는 것처럼 굴기에 오후 연습이 끝나고 개인 연습에서도 도망가는 것은 아닐까 했는데, 보쿠토는 오후 연습이 끝나자마자 ‘아카아시~!’라며 큰 소리로 다가온 것이었다.


“…보쿠토 선배.”

“아카아시 아카아시~! 오늘 연습 잘했어? 아까 너 누구지, 타쿠미였나, 토스 올리면서 짜증 냈지? 다 봤거든?”

“…….”


어찌나 신이 나서 말을 붙여오는지 이쪽에서 순간적으로 말을 잊을 정도였다. 아카아시는 입술을 달싹이며 보쿠토를 바라보았다. 보쿠토는 오후 연습동안 한 마디도 건네지 않았던 것에 대한 반동처럼 말을 폭포 같이 쏟아내고 있었다.


“오늘 누구랑 무슨 얘기 했어요?”

“너 말야, 답답…엥?”


활짝 웃는 얼굴로 신이 나서 말을 늘어놓던 보쿠토가 눈을 꿈벅였다. 아카아시는 눈을 가늘게 뜨고 보쿠토를 쳐다보았다. 보쿠토의 금색 눈동자가 도르르 굴러가더니 시선을 피한다.


“아아니?”

“무슨 얘기 했는데요?”

“별 얘기 안 했는데~!?”

“누구하고 무슨 얘기 했어요?”

“아니 아무하고도 아무 말 안 했다니까.”

“코노하 선배하고 무슨 얘기 했어요?”

“어, 어떻게 알았어!?”


보쿠토가 눈을 화등잔만하게 뜨고서 외쳤다. 아카아시는 그런 보쿠토를 빤히 올려다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숨에 보쿠토가 수선을 떨었다.


“아, 아니~! 별 얘기는 아니었는데! 아니 애들이, 아니 그러니까, 내가 너랑 있느라 애들이…너랑 얘기 못한다고 막…….”

“…….”

“나는 잘 몰랐는데 그렇다고 하니까! 그래서 얘기 할 수 있게…내가 옆에 없으면…….”

“…….”


아카아시는 이마를 감싸쥐었다. 보쿠토는 여전히 그의 눈을 마주하지 못하고서 우물쭈물 설명하는 중이었다.


“그래서 다른 애들하고도 얘기 많이 하라고….”

“무슨 수다 떨러 부활동 해요?”

“그건 물론 아니지만…….”

“그리고 남의 말을 너무 곧이 곧대로 듣지 좀 마세요…….”

“에엥.”

“코노하 선배가 그런 말을 했다고 해도 그 뜻이 아니라…….”


분명히 전후에 다른 얘기가 있었을 것이다. 아카아시는 보지 않아도 그 상황을 알 것 같아서 웃음을 꾹 참으며 부러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저도 대화는 하고 싶은 사람과 합니다. 저 알아서요.”

“응…….”

“선배가 그런 식으로 노력할 일이 아니란 거예요.”

“응…….”

“다른 사람하고도요.”

“다른 사람하고도?”

“그러니까 저 말고, 다른…가령 선배의 미래의 애인하고도요. 그 사람의 일은 그 사람하고 얘기를 하세요. 엉뚱한 사람하고 얘기해서 엉뚱한 결론 내지 말고요.”

“핫! 이것도 수업이야!?”

“수업이라기보단…네, 수업이요. 제 말 알겠죠.”


보쿠토가 휴대전화를 꺼내더니 급히 적기 시작한다. 아카아시는 언젠가 저 메모를 없애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잠자코 보쿠토가 메모하는 것을 기다려주었다. 메모를 다 마친 보쿠토가 상쾌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그러면 부활동 할 때도 계속 말 걸어도 되는 거야!?”

“그건 선배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제가 싫으면 말 안 거시면 되는 거고요.”

“아니 너는 무슨 말을 해도 꼭 그런 얘길 하냐!?”

“보통 싫을 때 아니고서야 대화 잘 하다가 안 하는 경우가 있긴 합니까?”

“어…….”


보쿠토가 우물거렸다. 과거 자신의 경험을 되짚어보는 것이었다. 마땅한 결과를 찾지 못한 보쿠토가 어물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설마 아카아시 너도 그렇게 생각한 거야!?”

“뭐 약간은요. 갑자기 말씀을 전혀 안 하시…….”

“아니야!”


보쿠토가 순식간에 가까워져서는 아카아시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쩡 하는 소리에 아카아시가 눈을 크게 떴지만 보쿠토의 기세에 눌려 아무 말도 못할 때 보쿠토가 다시 소리쳤다.


“그런 거 절대 아냐!”

“아, 알았어요.”

“아니라는 거 진짜 알겠어!?”

“지금 아주 잘 알겠으니까요. 정말로.”


아카아시의 말에 보쿠토가 뒤늦게 손을 놓았다. 뒤늦게 부끄러움이 몰아치는 듯했다. 목까지 빨개져서는 서둘러 부채질을 한다. 아카아시는 그런 보쿠토를 멍하니 올려다보다가 보쿠토에게 붙잡혔던 팔뚝을 살짝 주물렀다.


“아, 아팠어? 미안, 내가 힘이 너무…….”

“좋겠네요. 힘 세서.”


뚱한 목소리로 대꾸하면 또 안절부절 못한다. 후배가 마구잡이로 군다고 한 마디 할 법도 하건만 그러질 않았다. 아카아시는 헤아릴 수가 없어서 멀뚱히 보쿠토를 쳐다보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머리 한 쪽 구석에서 이 사람에겐 사실 이 모든 수업 같은 것이 쓸모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금방 밀어냈다.


이 수업을 하자고 강요하고 있는 건 자신이 아니라 보쿠토였으므로, 그만 둘 시기를 정하는 것도 그일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수업에 대한 거절이라면 자신은 차고 넘치게 했다. 이 이상은 보쿠토의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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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후로는 다가오는 보쿠토 배포전에서 회지로 뵙겠습니다~! 

180p로 완결되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