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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아시는 퀭한 얼굴로 상대를 쳐다보았다. 실험실 사람들과 다 같이 저녁 식사를 하러 나가는 길, 그만 붙잡혀 학교 정문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먼저 떠나는 실험실 사람들이 그를 흘끗거리는 것이 여기에서도 눈에 들어왔다. 아카아시는 양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야! 야! 그렇게까지 좌절할 일이야!? 내 얼굴을 보는 게 그렇게까지 절망할 일이냐고!”

“하…….”


그의 앞에서 양손을 수선스레 놀리는 사람은 보쿠토였다. 아카아시는 양손에 얼굴을 묻은 채 깜깜한 암흑 속에 자신의 정신을 내맡겼다가 겨우 고개를 들었다. 보쿠토는 한참 입술을 삐죽거리며 발을 구르는 중이었다. 


“도대체…….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진짜 질색하냐, 너…….”

“모처럼 일 안 하는 날이었는데 고용주를 만나면 보통은 이렇습니다.”

“보통은 고용주한테 티 안 내거든!?”


불만스레 빽 소리친 보쿠토는 금방 어깨를 모으고 가련한 표정을 빚어냈다. 아카아시가 노골적으로 ‘으’하는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지만 보쿠토는 개의치 않았다.


“나 좀 살려주라.”

“제 수당은 제대로 결제되게 변호사와 처리해두셨습니까?”

“…….”


애걸하는 표정이던 보쿠토가 잠깐 뻣뻣하게 굳었다. 보쿠토는 입술을 한 번 악물곤 다시 애절한 표정을 만들었다. 


“해놨어.”

“거짓말하지 마시죠.”

“아 진짜 이럴래? 너 확 그냥…….”

“그냥 뭐요?”

“데이트 때마다 파스타만 먹는다.”


그 말에야 아카아시가 멈칫했다. 보쿠토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는다. 아카아시는 미간을 감싸 쥐고 심각한 표정을 짓다가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일인데요.”

“부모님이 네가 진짜로 맘에 드셨나 봐.”

“그런데요.”

“그래서 좀……. 자랑을 하셨어…….”

“저희 어제 만나 뵈었는데요? 어제!”

“그러니까 오늘 낮 동안 자랑을 하셨다는 거잖아.”

“그래서요.”


아카아시가 팔짱을 끼고서 물었다. 보쿠토가 어색하니 웃음을 그렸다.


“작은 아버지네한테도 자랑을 했나 봐…….”

“어제 만났는데요!?”

“그러니까 오늘 낮 동안 했다고! 하여간 그래서……. 사촌 그 새끼가…….”

“…….”


아카아시가 ‘말이나 해 보시죠. 들어는 드리겠습니다.’라는 얼굴로 보쿠토를 바라보았다. 보쿠토가 손가락 끝을 서로 맞대고 문지르며 어색하게 웃었다. 


“이번 주말 저녁에 다 같이 만나자고 자리를 또 만들어서…….”

“파업하겠습니다.”

“야! 야야야, 아카아시이~!”

“이거 놓으시죠.”


아카아시가 매섭게 말하며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보쿠토의 팔 힘을 이기지는 못했다. 아무리 뿌리쳐도 떨어지지 않는다. 아카아시는 욱신거리는 팔뚝을 붙잡았다. 보쿠토는 솜털을 쥐고 있다는 듯한 손짓에 완전히 애걸하는 표정이었다. 


“제발! 이거만 나가주면 성과금! 성과금 줄게!”

“성과금이요? 요즘 회사 성과금은 1000 퍼센트 단위인 건 아십니까?”

“……그…….”

“못하시겠으면 손 놓으시죠.”

“아 해! 한다고! 줘! 줄게!”

“자세한 경위를 들어보도록 하죠. 그 전에 식사부터요. 연구실 다시 가봐야 하니까 빨리 먹을 수 있는 걸로요.”


아카아시가 정문 안쪽으로 고갯짓했다. 학생 식당으로 들어가자는 뜻이었다. 보쿠토는 아무것도 모른 채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이거만 먹고 진짜 괜찮아……?”


보쿠토는 진심으로 걱정이 된다는 얼굴이었다. 아카아시는 무신경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숟가락과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학생 식당에서 나온 저녁용 단품 메뉴인 메밀국수는 다른 밑반찬이라고는 락교 하나뿐인 단촐한 구성이었다. 


“그래서 그 이번 주말에 그 자리가 어떻게 된 건데요? 꼭 나가야 합니까? 안 나가면 안 되는 거예요? 당신 성격도 별로잖아요. 왜 나간다고 했습니까? 성격대로 거절해버리지.”

“야! 내 성격이 어디가 어때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해야 되는 성격은 보통 별론데요…….”


아카아시의 표정에 보쿠토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 인내하는 표정에 아카아시는 말이 심했나 싶어 살짝 눈을 피했다. 잠깐 동안 두 사람 뿐인 테이블 위에 침묵이 흘렀다. 보쿠토는 젓가락을 양손에 한 짝씩 나뉘어 쥐고서 심호흡하는 중이었다. 


“그렇구나…….”


사과라도 해야 하나, 하고 아카아시가 생각할 때 보쿠토의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닿았다. 아카아시가 눈을 깜박였다. 보쿠토가 꾹 참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별로인거네…….”

“……아주 나쁘단 얘기는 아닙니다.”

“아무도 말 안 해줘서 몰랐어…….”


보쿠토는 지금 거의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은 얼굴이었다. 아카아시는 조금 당황했다. 무슨 말을 해도 꿈쩍도 않기에 강철처럼 단단한 마음의 소유자인 줄로만 알았다. 성격 별로라는 한 마디에 곧장 울 것 같은 얼굴이 나올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야 누가 당신한테 그런 말을 하겠습니까?”

“왜!?”


아, 또다시. 


아무것도 모르겠단 얼굴을 보고 있자니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아카아시는 입술을 달싹거렸다. 


유력한 가문, 그 장자의 외동아들로 즉 장손, 현재 최대의 관심사는 물려받을 수많은 것들 가운데에 섬 하나 뺏기지 않는 것이라는 이 남자에게 날 때부터 감히 누가 무슨 말을 했겠는가? 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현대 사회에서 저 정도의 후광이라면 그의 앞에서 그런 말을 할 의지조차 사멸했을 것이다. 아카아시는 잠시 마음을 추슬렀다. 


“보쿠토 씨.”

“응.”

“가진 게 많은 사람 앞에서는 주눅이 들게 됩니다.”

“왜?”


당신은 안 가져본 적이 없어서 모르는 거겠죠, 그 말은 이상하게도 나오지 않았다. 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얼굴은 그가 타고나길 모든 걸 손에 쥐고 태어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할 생각 때문이었다. 


“자기가 가지지 못한 걸 생각하게 되니까요. 그래서 모든 걸 쥔 상대의 기분을 거스르고 싶지 않아 하죠.”

“아니 왜!?”

“기분 상하게 했다고 그쪽에서 보복하려고 들어도 방어할 수단이 없지 않습니까.”

“기분 좀 상하게 했다고 뭐라도 하려고 하는 쪽이 이상한 거 아냐?”

“세상은 대다수의 이상한 사람과 몇 안 되는 보통 사람으로 굴러가고 있거든요. 놀랍게도.”


보쿠토가 정말 놀랍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에, 아카아시는 그만 비꼬려는 의지마저 상실하고 말았다. 


“어쨌든 그래서 왜 거절하지 않는 겁니까? 꼭 가야 하는 이유가 있어요?”

“내 성격이 그렇게 별로란 말야? 아무도 말도 못할 만큼? 나한테 뭐라 하면 내가 뭐 두들겨 패기라도 할 줄 알았단 거잖아.”


보쿠토가 아카아시의 말은 전혀 듣지 못한 것처럼 말한다. 아카아시는 ‘두들겨 팬다’ 정도의 표현에 속으로 혀를 차며 대꾸했다.


“그런 저차원적인 이야기가 아닌데요.”

“어쨌든 그런 거잖아…….”


실수했나? 아카아시는 다른 의미로 자신이 잘못했다는 걸 강렬하게 깨달았다. 보쿠토는 기존의 목적했던 화제에 관해 이야기할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았다. 밑도 끝도 없이 침울해진 얼굴, 축 늘어진 어깨, 영원히 그의 양손에 하나씩 떨어져 있을 것 같은 두 짝의 젓가락이 그걸 증명하고 있었다. 


아카아시는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휴대전화의 액정을 흘끗 바라보았다. 조금 전 연구실의 선배에게서 온 메세지가 온 덕분에 액정에는  시간이 함께 떠 있었다. 


‘삼십분 안에 돌아가야 한다…….’


이 허술한 식사를 하는 데에 10분. 보쿠토의 이야기를 듣는 데에 또 10분. 연구실까지 돌아가기 전에 커피 한 잔 하는 데에 10분. 허비할 시간은 조금도 없었다. 아카아시의 판단은 빨랐다.


“사실 제가 심술부렸습니다. 아무렇게나 말한 거예요.”

“엥?”

“보쿠토 씨 성격 좋습니다. 출중하시죠.”

“에…에에. 거짓말이지?”

“제가 싫은 말 하는 거 보신 적 있습니까?”

“……그건 아닌데…….”


미심쩍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는 보쿠토였지만 조금만 더 하면 완전히 그의 말을 믿을 기세였다.


“그럼 왜 그렇게 거짓말한 건데!”

“심술부린 거라고 했잖아요.”

“왜 심술부렸냐고 묻고 있는 거거든? 삐졌어? 뭐 화났어? 내가 뭐 잘못했어?”

“……예고도 없이 갑자기 찾아오셨잖아요. 연구실 사람들도 다 봤고요.”

“내가 남자친구로 그렇게 창피한 거야?”

“그 정도는 아닌데요. 어쨌든 귀찮은 설명을 해야 하니까요.”

“알았어, 그럼 앞으로 진짜 꼭 연락하고 올 테니까 이젠 심술부리지 마!”

“알겠습니다.”

“심술부린 것도 사과해!”

“미안합니다.”

“…….”


보쿠토의 표정이 형용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일그러졌다. 아카아시는 이젠 도무지 뭐가 문젠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할 일은 다 해줬지 않냐는 뜻이 역력한 얼굴을 보고 드디어 보쿠토가 한 손에 젓가락 두 짝을 모두 쥐었다.


“나도 갑자기 찾아와서 미안해…….”

“서로 사과했으니 이제 됐죠 뭐.”


여기서 ‘그래서 본론이 뭐죠?’라고 물으면 제아무리 보쿠토라고 해도 그의 의도를 눈치챌 게 분명했던지라, 아카아시는 조금 더 참았다. 그리고 인내의 보람이 있게도 보쿠토는 세입 만에 작은 메밀국수를 깔끔하게 해치우고 이야기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