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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은 제가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옷깃을 살짝 잡아당겨 바로잡던 아카아시는 옆에서 창백한 얼굴로 운전하고 있는 보쿠토를 흘끗 바라보았다. 주차를 해 놓은지는 한참 됐는데 보쿠토의 양손은 아직도 핸들을 꽉 쥐고 있었다. 아카아시는 작게 혀를 찼다. 


“보쿠토 씨.”

“나도 당연히 긴장되지! 잊었냐? 좋아하는 애를 데리고 집에 가는 설정이라고!”

“그렇기는 합니다만…….”

“아아아……. 집에서 뭐라고 하면 어떡하지?”

“어쩌겠습니까.”

“도망가기 없기다.”


시큰둥한 어조로 대꾸하던 아카아시는 눈을 깜박였다. 걱정하는 게 자신에 대한 거였나? 내가 못해 먹겠다고 그만두기라도 할까 봐? 보쿠토는 여전히 긴장해 차가운 손으로 핸들을 놓고 아카아시의 손을 꼭 쥐었다. 


“우리 부모님 세대가 좀 그래. 이상한 소리 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줘. 알았지? 내가 미리 사과할게.”

“……받은 돈이 있으니까 당연히 도망칠 일도 없습니다.”


아카아시는 산뜻하게 대꾸했지만 보쿠토는 불안함이 역력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 불안은 ‘부모님이 이상한 말을 해서 아카아시가 기분이 상해 도망이라도 치면 어떡하지’라는 것이었다. 심지어 보쿠토는 머리를 쥐어뜯으려고 했다가, 아카아시의 손길에 겨우 멈출 수 있었다. 


“그 정도는 알아서 잘 할 테니 걱정마세요.”

“으응…….”


매사에 뻣뻣한 도련님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귀여운 구석도 있다. 아카아시는 흐트러진 그의 넥타이를 톡톡 가리켰다.


“타이 바로 매고 가죠. 주차장에 들어간 지가 언젠데 아직도 안 나온다고 걱정하고 계시겠습니다.”

“으응…….”


하지만 집에 딸린 주차장에 차를 대어 놓고 바깥으로 나올 때까지도 보쿠토 목깃의 타이는 여전히 헝클어진 채였다. 아카아시는 혀를 차곤 손짓했다. 


‘천생 도련님인가.’


그다지 키 차이는 많이 나지는 않았기 때문에, 아카아시는 어렵지 않게 보쿠토의 타이를 바로 매어줄 수 있었다. 보쿠토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 손길을 내버려 두고서 자신은 앞일을 걱정하며 울상을 짓기에 바빴다. 


얼추 보쿠토를 단정한 꼴로 만든 아카아시는 뒷좌석 문을 열었다.


“뭐 놔두고 왔어?”

“정확히는 가져온 거요.”


빳빳하고 도톰한 종이로 만든 종이봉투 안에는 묵직한 것이 들어있는지 무게감이 느껴졌다. 보쿠토는 고개를 갸웃했다.


“뭔데?”

“따로 청구할 테니 그리 아세요.”

“뭐, 뭔데.”


아카아시는 당황이 역력한 보쿠토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피식 웃었는데, 보쿠토는 아카아시가 저를 놀리는 줄도 모르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 되어 서둘러 그를 따라오는 것이었다. 


“뭐야? 뭔데? 많이 비싸?”

“많이 안 비쌉니다. 들어가죠.”


머리 위에 물음표를 달아주면 딱이겠는데. 아카아시는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실없는 상상을 하며 현관 쪽을 향해 고갯짓했다. 현관을 보니 그제야 다시 정신이 드는지 보쿠토는 크흠 하고 목을 풀며 고개를 끄덕였다. 


*


“어머…….”

“허…….”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갔을 때는 세 사람이 그들을 맞이해주었다. 집사로 보이는 남자 한 사람과 보쿠토 부부였다. 보쿠토는 자연스럽게 겉옷을 벗어 넘기려다가 오늘 본가에 방문한 목적을 떠올리고는 손을 저어 집사를 물렸다. 제일 먼저 당황한 표정을 지은 건 집사였다. 아카아시는 이 기묘한 분위기에도 차분한 표정을 잃지 않고 보쿠토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보쿠토 부부는 보쿠토 코타로가 어디에서 난 것인지 누구라도 확답할 수 있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부친 쪽은 시간까지 얹어진 잿빛 머리, 모친 쪽은 아직도 윤기가 도는 흑발이었다. 유달리 큰 눈은 모친에게서 물려받은 것 같았고 보쿠토 특유의 매서운 안광은 부친의 것인 듯했다. 


편하지만 고상함을 잃지 않은 차림새의 부부는 처음에는 환영한다는 듯이 미소를 짓다가 자신의 아들을 보고선 멈칫했다. 


그 멈칫거림은 보쿠토와 아카아시가 부부 맞은편 자리에 앉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보쿠토가 반쯤 얼어붙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지라 자리에는 침묵뿐이었다. 아카아시는 치밀어오르는 한숨을 꾹 참고 발끝으로 보쿠토를 툭 건드렸다. 얼른 인사하라는 말이었다.


“어, 아. 아버지. 어머니. 여기 아카아시.”

“……아카아시, 케이지입니다.”

“어, 아카아시. 그러니까 우리 어머니랑 아버지. 인사해…?”

“처음 뵙겠습니다. 코타로 씨에게 신세 지고 있습니다.”

“코-커헉.”


보쿠토가 눈을 대문짝만하게 뜨고서 ‘코타로 씨!?’라고 반문하려는 걸 대뜸 발을 밟아 막았다. 보쿠토가 겨우 숨을 들이켰다. 


“어머, 사이가 좋네…….”


모친 쪽은 시종일관 놀랍다는 기색을 숨기지 않았고, 부친 쪽이 그나마 표정 관리를 하고 있었으나 그쪽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모친의 감탄사에 보쿠토가 미간을 찌푸리고 버럭 했다.


“사이 좋으니까 데려왔지!”

“너랑 사이좋은 건 쿠로오 군 정도잖니.”

“내가 사귀었던 그 애들은 다 뭐 사이 나빴어!?”


보쿠토가 버럭 외친 순간 ‘코타로!’하고 노호성 같은 소리를 낸 건 부친 쪽이었다. 아카아시도 보쿠토도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뜨는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기까지 한 부친이 언성을 높였다.


“어디 이런 자리에서 막돼먹은 소리를 하느냐!”

“아, 아버지.”

“아카아시 군에게 사과하거라!”

“아, 아니. 아니 저는, 괜찮은…….”

“코타로!”


그야말로 폭풍 같은 전개였다. 보쿠토는 익숙한지 입술을 삐죽거리더니 아카아시를 돌아보았다. 


“미안, 아카아시…….”

“아카아시 군, 아들의 교육이 부족해 미안하네. 생각도 악의도 없는 녀석이니…….”

“괜찮습니다. 코타로 씨가 나쁜 뜻이 없는 사람인 건 저도 잘 알고 있으니까요.”


아카아시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의 미소에 되레 보쿠토가 흠칫했지만 아카아시는 보쿠토의 손을 세게 쥐어 잡았다 놓았다. 그와 동시에 아카아시는 챙겨온 종이 가방을 내밀었다. 


“대단한 건 아니지만…….”

“어머, 뭐 이런걸.”


모친이 눈을 깜박이며 아카아시가 내미는 종이 봉투를 받았다. 안에는 조그만 종이 상자가 들어있었다. 


“앤틱이긴 하지만 좋은 물건으로 구했습니다. 마음에는 드실지…….”

“세상에, 향수병인가요?”

“예.”


상자를 열자 그 안에는 에어캡으로 둘러싸인 금빛 물건이 모습을 드러냈다. 크리스탈 병 위에 작은 뚜껑은 장미와 새를 조각한 것이고 바닥을 감싸는 물결 모양의 금형까지 같은 색이었다. 흑발의 미려한 중년 여성이 손에 들고 있자 그 아름다움이 한결 더 돋보인다. 아카아시는 ‘실례’라고 짧게 말하고는 직접 손을 뻗어 유리병의 뚜껑을 열었다. 안쪽으로 긴 유리 막대가 딸려 나왔다. 


“담아 사용하셔도 되고, 장식용으로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어 준비해 보았습니다.”

“이렇게 귀한 걸 받아도 될지.”

“사실은 코타로 씨가 준비하자고 얘길 한 것이니까…….”

“어머.”


모친 쪽이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상냥도 하셔라. 이래 봬도 저 아이의 엄마랍니다. 저 녀석이 이런 걸 준비할 센스가 없다는 거야 제가 더 잘 알지요.”

“어, 어머니!”

“코타로, 좋은 사람을 만났구나. 우선 식사부터 할까요?”


앤틱 향수병을 조심스레 양손으로 받쳐 든 모친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다이닝 쪽으로 고갯짓했다. 아카아시는 보쿠토의 손을 잡은 채 옅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


“보쿠토 씨. 이제 통상 모드로 돌아와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뭐, 뭐지? 뭐지? 너 뭐냐?”


점심 겸 저녁에 가까운 만찬이 끝나고 그 다음은 야외에서의 티타임이었다. 아카아시는 보쿠토 양친의 모든 대화를 매끄럽게 이끌어나갔다. 그 자리에서 고장이 난 건 보쿠토뿐이었다. 


잔을 엎고, 쏟고, 과자를 떨어뜨리고, 실수를 연발하는 아들을 보며 양친은 혀를 찼고 그와 동시에 아들의 연인에게 상냥한 목소리로 아들을 부탁했다. 그 분위기가 물 흐르듯이 매끄럽게 이어져, 지금은 안쪽에서 챙겨줄 게 있으니 준비할 시간 동안 젊은 사람들끼리 시간을 보내라는 권유에 따라 정원을 산책하는 중이었다. 


“뭐가요.”

“나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누구 이렇게 마음에 들어 하는 건 처음 봐…….”

“그렇습니까?”

“내가 사귀던 애들은 얼굴도 안 보려고 했는데. 아, 앗차. 미안. 그러니까…….”

“아, 예전 애인들 언급하는 거라면 사실 상관없습니다. 저희가 진짜 연애하는 것도 아니고요.”


아카아시가 덤덤하게 말했다. 보쿠토는 입술을 삐죽거렸지만 달리 반박을 하지는 않았다. 아카아시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부모님 앞에서는 조심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전 애인 얘길 두 번 했다간 보쿠토 씨가 산 채로 묻히시겠던데요.”

“으, 으응.”

“그리고 향수병은 구하느라 고생했습니다. 값 쳐주시길 기대하겠습니다.”

“……말씀만 하시는 대로 긁어다 드리겠습니다요.”


부모님과 만나는 자리가 부드럽게 끝난 것이 여간 놀라운 일인지, 평소라면 툴툴거릴 말에도 보쿠토는 납작한 태도가 되어 수긍하기만 했다. 이렇게 유한 반응을 보이면 놀리려고 마음먹었던 자신이 나쁜 사람 같다. 아카아시가 괜히 무안하여 목 뒤를 한 번 쓸어내릴 때였다.


“여어~! 코타로!”


어디서 눅진히 눌러 붙은 것 같은 목소리가 보쿠토를 부른다. 아카아시는 뒤를 돌아보았다. 보쿠토와 자신 또래의 젊은 남자였다. 보쿠토와는 묘하게 닮은 윤곽이 엿보이기에 누군가 싶어 보쿠토를 돌아보았을 때, 아카아시는 오늘 이 저택에 온 이후 처음으로 매섭게 빛나는 보쿠토의 눈동자를 볼 수 있었다. 


“…누굽니까?”

“내 사촌.”


아카아시가 속삭이듯 묻는 말에 보쿠토가 쥐어 씹는 것 같은 목소리를 낸다. 그 사이에 한 걸음 한 걸음 그 사촌이라는 남자가 가까이 다가왔다. 아카아시는 보쿠토의 저 불타는 듯한 눈빛과 ‘사촌’이라는 관계를 듣고 그가 누구인지 알 것 같다고 생각했다.


‘섬을 뺏길지도 모른다는 그 사촌이로군.’ 

“네 녀석이 우리 집엔 무슨 일이냐?”

“지나가는 길에 인사하러 들렀지~! 재밌는 소식도 들리길래 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