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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요? 집안에?”


아카아시의 목소리가 몹시 서늘했기 때문에, 보쿠토는 그것이 사전에 계약된, 분명하게 명시된 조건이었다는 걸 알면서도 움찔했다. 방금 전까지만해도 분위기 좋다고 생각했던 가정식 요릿집의 실내 온도가 5도는 뚝 떨어진 느낌이었다. 


“가, 가기로 했잖아.”

“안 간다고 하진 않았는데요.”

“그럼 그 눈빛 좀 어떻게 해보면 안 되겠냐?”


보쿠토는 투덜거리며 숟가락을 움켜쥐고 밥을 크게 한 술 떠올렸다. 아카아시는 슬쩍 눈매를 누그러뜨렸다. 


“보쿠토 씨.”

“으, 으응?”

“보통 만난 지 고작 한두달 만에 집안에 인사드리러 가자고 하면 진상으로 낙인찍힌다는 거 알고는 있습니까?”

“아?”


보쿠토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뜨였다. 그 얼굴만 보자면 천진한 어린애가 신묘한 것을 처음 본 듯했다. 아카아시는 구제불능을 보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보쿠토가 금방 발끈했다.


“사, 사람이 잘 모르는 게 있을 수도 있는 거야!”

“그러시겠죠.”


아카아시는 시큰둥한 얼굴로 자신의 앞에 놓인, 반쯤 먹은 그릇을 내려다보았다. 지금까지 보쿠토와 함께 먹어온 요란할 정도로 휘황찬란했던 파인 다이닝에 비하자면 아주 소박한 가게의, 한 그릇 요리였다. 


‘밥으로 식사를 하자고 해도 들은 척도 않더니.’


본인도 지금 자신이 하는 말이 부담스러운 부탁이라는 자각이 조금쯤은 있는 듯했다. 그러니까 이제야 아카아시가 먹고 싶다고 했던 것 같은 요리를 먹으러 와서 얘길 하는 것일 테다. 


“집안 어른께서 보자고 하십니까?”

“어? 왜, 왜……?”

“지금껏 제가 본 보쿠토 씨의 전 애인들만 한 손을 넘겼는데요. 그 분들하곤 집에 인사 드리러 간 적 있습니까?”


아카아시가 여상한 어투로 말을 늘어놓는데도 보쿠토는 허파를 찔린 것 같은 얼굴이었다. 입술을 비틀어 깨물더니 오른손엔 숟가락, 왼손에는 젓가락을 꼭 쥐었다. 


“아니……. 그 사람들하고는……. 없는데…….”

“그런데 한 달만에 저를 데려가면 집에서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보쿠토 씨의 결혼에 유산이 달려있다고 들었는데요. 뭐 집에서 보자고 하신 거면 그냥 방문하면 되겠지만 보쿠토 씨의 의견이라면 미루는 게 낫겠습니다.”

“집에서! 집에서 보자고 한 거야! 됐냐!”


보쿠토가 테이블을 내리쳤다. 뒤쪽 테이블에서 흘끗쳐다본다. 부엌 쪽에서도 직원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아카아시는 미간을 모으고 보쿠토를 쳐다보았다. 보쿠토가 제풀에 퍼드득 기가 죽어 수저를 내려놓고 양손을 가지런히 모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아카아시는 한숨을 내쉬었다.


“앱니까? 맘에 안 들면 내리치게.”

“마음에 안 든게 아니라 답답해서……. 아 네가 말을 그렇게 하니까 그런 거 아냐!”

“이제 남 탓까지?”


풀코스 밟으시네요, 아카아시의 말에 보쿠토는 새하얗게 재가 된 얼굴로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태어나서 이딴 대접 진짜 처음이다…….”

“그렇습니까.”


아카아시는 시큰둥한 목소리로 대답하곤 식사를 재개했다. 그 대단한 집안의 장손, 못 가진 것 하나 없이 모두 가진 남자. 조금쯤 어린애처럼 군다고 한들 누가 무어라 했겠으며 만난지 한 달 만에 집에 인사드리러 가자고 말했다 해도 아무도 꺼리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모든 말이 의미가 없는 사람이었다.


‘난 뭐 한다고 꼬박꼬박 한 마디씩 해가지고…….’


아카아시는 속으로 스스로를 질책했다. 하지만 대화는 혼자 하는 게 아닌 만치 그것이 자신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이쪽은 일방적인 고용인인 셈이니 자신의 말이야 흘려듣거나 무시하면 될 것인데, 말 한 마디를 할 때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이리저리 튀어나가니 자신도 자꾸만 하지 않을 얘기도 하고 굳이 입을 대고 하는 것이었다. 


이것 역시 남탓이니 보쿠토 씨 보고 뭐라할 게 아니군, 아카아시는 자조하곤 입을 열었다.


“언제인데요?”

“……뭐가?”

“집에 인사드리러 가자고 했잖아요. 날짜, 언제냐고요.”


준비는 보쿠토 씨가 알아서 다 해주시겠죠? 아카아시는 일부러 비꼼을 담아 한 마디 더 던졌는데, 문득 그럴 필요가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집에 인사드리러 가자는 말을 하는 아카아시를 보는 보쿠토의 눈이 태양처럼 환히 빛나고 있었다. 아카아시가 비꼬는 말은 들리지도 않은 것 같은 표정이다. 사람을 압도하는 빛 앞에서 말을 잊을 수 밖에 없었다. 


“진짜 가주는 거야? 진짜?”

“……그게 계약이니까요. 당연하잖아요.”


못 가진 것 하나 없이 모두 가진 남자, 아아. 자신의 생각은 어쩌면 이다지도 틀릴 줄을 모르는가. 기쁘다는 표정 한 가닥도 숨김이 없는 그 얼굴을 보며 아카아시는 생각하고야 말았다. 


*       


“샵에서 맞추는 게 처음이라고?”


소파에 앉아서 팔걸이에 팔을 걸치며 시종일관 심드렁한 표정으로 지겨운 것을 보듯 하고 있던 보쿠토가 자세까지 바로하곤 진심을 다해 놀란 듯이 말했다. 도리어 눈치를 보는 듯한 표정이 된 건 아카아시의 몸에 붙어서 줄자를 대어보고 있던 재봉사였다. 


아카아시는 그 악의라고는 한 톨도 없는 보쿠토의 놀람에 적절히 대꾸해주었다. 


“보통은 취직을 해야……. 취직을 해도 맞춤까지는 안 가죠.”

“맞춰 입지 않으면 뭘 어떻게 해?”

“마네킹 벗겨 입죠.”

“흐에에?”

“아, 하하……. 고객님께서는 워낙 수치가 좋으셔서 그러셔도 핏감 좋으셨겠어요.”


재봉사로서는 최선을 다한 추임새였다. 보쿠토가 그 최선에 제동을 걸었다. 


“나는? 마네킹 수준은 아닌가?”

“고, 고객님은 그…근육이 있으시니까요. 마네킹 사이즈보다는 조금 꽉 끼게 맞지 않으실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입술에 발린 말일 게 분명하다고 속으로 생각했을 텐데, 아카아시는 치수를 재는 와중에도 재봉사의 말에 작게 동감하고 말았다. 


조금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있는 보쿠토는 딱 맞게 걸친 셔츠 위로 마네킹보다 두터운 근육의 굴곡이 세심히 드러나 있었다. 실험실과 강의실을 오가는 게 전부인 아카아시로서는 보기 드문 몸이기도 했다. 아카아시는 자신의 복부 쪽을 흘끗 내려다보았다.


‘키 차이는 얼마 안 나는데 몸무게는 5킬로는 더 차이나겠네…….’


보쿠토가 재봉사의 말에 신이 나서 몇 마디 더 하려는 걸 눈빛으로 억누른 아카아시는 재봉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재봉사는 보쿠토를 막아준 아카아시를 향해 감사의 눈빛을 보내고는 작업을 속행했다. 


가봉 일정까지 받아들고 테일러 샵을 나오는 길, 보쿠토는 주머니에서 자동차 열쇠를 뒤적거리다 문득 생각난 것처럼 고개를 돌렸다. 


“요즘은 밤새는 거 없나?”

“네.”

“그 자식은 어때?”

“누구요?”


아카아시가 보조석에 오르며 반문했다. 보쿠토도 운전석에 올라 시동을 걸며 대답했다.


“왜 그 너 선배 어쩌고 하던 애.”

“아, 나미카와 선배요? 어떠긴요. 별 거 없는데요.”

“처리해줘?”


보쿠토가 아무렇지도 물었다. 시동은 부드럽게 걸리고 엔진 소리가 묵직하게 울려퍼지는 가운데에 아카아시가 안전벨트를 끌어내리다 멈칫했다. 보쿠토는 아카아시를 보지도 않은 채, 자연스레 정면을 바라보며 핸들과 스틱을 손에 쥐고 있었다. 


“……뭐라고요?”


아카아시의 목소리가 잠긴 채 울려퍼졌다. 보쿠토가 아카아시를 흘끗 돌아보았다.


“뭐냐, 감기냐? 우리 집 오기 전엔 나아야 돼. 집안에 노익장이 있어서 병자는 취급 안 한다.”


보쿠토의 말은 농담을 섞은 나름의 걱정과 염려였다. 아카아시는 마른 입술을 달싹였다. 보쿠토는 금방 저녁 메뉴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근처의 레스토랑은 전부 한 바퀴씩 돈 것 같다는 투덜거림이었다. 


“너 뭔가 더 맛있었던 데 없어? 있으면 한 번 더 가자. 아니면 쿠로오한테 물어볼까?”


보쿠토의 손가락이 리듬감 있게 핸들을 두드렸다. 배고프다는 응석어린 투정도 더해진다. 아카아시는 자신의 목을 주물렀다. 사이드미러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아카아시는 보쿠토가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하게 고개를 돌렸다.


“저 가츠동이요.”

“엑? 그건 어제 먹었잖아!”

“맛있었던 거 말하라고 하시길래 말 한건데요.”

“아 진짜 까탈스럽다 너!”

“매번 다른 메뉴를 먹어야 하는 쪽이 더 까탈스럽다고 생각합니다.”

“내 말은 다 틀려먹었지? 응? 하나도 맞는 말이 없지?”

“지금 말은 맞았네요.”

“~~!!”


보쿠토가 비명을 지를 것 같은 표정으로 옆을 쳐다보았지만 아카아시와 눈을 마주칠 수는 없었다. 아카아시가 계속 창밖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아, 내가 어떻게 너를 말로 이기겠냐? 가자, 가츠동. 먹자! 먹어! 열 그릇, 아니 열 그릇이 뭐냐? 백 그릇 먹자!”


입으로는 한 마디도 못 이기겠다며 투덜거리곤 있지만 오늘 아카아시의 옷을 새로 맞춰준 건으로 일이 뜻대로 풀려서인지, 보쿠토는 기분이 좋은 듯한 눈치였다. 아카아시는 대꾸하지 않고 차 문에 기댄 채 눈을 감았다. 


다른 세계를 살아온 사람인 것을 알면서도 모른척 해왔다는 걸 이따금 깨닫는 때가 있다. 오늘은 바로 이 순간이 그런 때였다. 저 보쿠토 코타로는,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눈앞에서 치워버리며 사는 삶을 살아온 것이다. 그게 그렇게 간단한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일도 치워버리며 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럼에도 해결할 수 없는 일은, 그가 가진 금전이면 된다. 바로 지금의 자신처럼.


아카아시는 차창 밖의 풍경에서도 눈을 감았다. 보쿠토는 분명 험한 소리만 하는 자신 역시 마음에 들지 않을 텐데, 그럼에도 참아주고 있는 건 계약이 걸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 임계선을 넘기면 자신 역시 ‘처리할’ 대상이 되는 것인가? 거기까지 생각하자 마음 깊은 곳에서 뾰족한 조각이 튀어올랐다 다시 내장을 긁으며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