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Logout Link+ Admin Write






“크흠, 아카아시 씨.”

“네.”

“그……. 셔츠 멋지네요.”

“아아, 네…….”

“…….”


보쿠토 코타로, 프로필 상의 키는 186, 직업 영화배우. 


그리고 그가 캐스팅된 ‘물빛 달그림자’ 촬영 7일 째, 그가 촬영 감독에게 사적으로 들은 대답은 ‘아아’와 ‘네’ 뿐이었다. 


*


“말이 되냐 이게?”

“뭐 네가 맘에 들었나보지…….”


코노하는 오랜 친구를 앞에 두고 그가 내민 대본을 넘겨보며 무성의하게 대꾸했다. 대본에는 거친 글씨로 여러가지 메모가 되어 있다. 보쿠토가 쓴 것인 듯했다.


“그리고 이거, 시나리오 처음 봤을 때부터 생각했는데 엄밀히 말하면 멜로는 아닌 거 같은데…….”

“어쨌든 엄청 달게 찍는 장면은 왕창 나오잖아!”

“그야 그렇지만. 그래도 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하자고 했겠지.”


코노하는 대본을 내려놓고 오랜 친구를 바라보았다. 보쿠토는 도통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그럴 만도 하기는 했다. 야미지 타케유키 감독이라고 하면 숨막히면서도 치열하고 밀도 있는 묘사로 유명한 명감독으로, 영화 배우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그와 영화를 찍어보고 싶어 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타케유키 감독이 보쿠토에게 먼저 시나리오를 보냈다. 코노하는 그 때 보쿠토가 공중제비를 돌았다고 해도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나도 못 할것 같은데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날 캐스팅할 생각을 했지?”


공황에 빠진 보쿠토가 머리를 양쪽으로 쥐어뜯으며 절박한 얼굴로 코노하를 바라본다. 코노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뭐라 말은 하지 못하고 입술만 달싹거렸다. 


그렇다, 저 보쿠토 코타로. 185에 육박하는 키와 평소의 운동으로 다져진 체격, 격렬하고 다양한 표정이 결합하여 보쿠토가 주로 찍어온 영화는 액션이나 범죄, 스릴러 쪽이었고 극장가에서도 '액션의 보증수표 보쿠토 코타로'라고 불릴 정도였다. 당연히 부드러운 드라마가 있는 영화와는 줄곧 거리가 멀었고 그런 영화를 찍는다고 해도 보쿠토의 역은 그 가운데에 가장 격렬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타케유키 감독이 이번에 보쿠토에게 내민 역은.


“음, 여자주인공을 위해서 뭐든 헌신하다가 뒤통수 맞고도 또 헌신하는 역이라……. 너한텐 좀 생소하긴 하네.”

“그치! 그치!”


보쿠토가 탁상에 손을 짚고 몸을 벌떡 일으키며 동의를 구한다. 코노하는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 보쿠토를 올려다보았다. 보쿠토는 지난 영화에서 자신을 배신한 동료 경찰들을 모조리 잡아 죽이는, 전직 경찰이자 연쇄살인범 역을 맡았었고 그 연기는 무척이나 호평을 받았다. 


“그치, 네가 뒤통수를 맞으면야 멱을 따면 땄겠지…….” 

“어떻게 이런 역으로 날 캐스팅할 생각을 하냐!?”

“배역 얘기는 해봤어? 뭐 바꿔본다거나.”

“꼭 이 역을 해줬으면 좋겠대…….”

“그럼 그냥 하지 그래.”


코노하가 정리하듯 내린 결론에 보쿠토는 탁상에서 손을 떼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잘 못하는 건 하기 싫어.”

“아, 예. 그러시겠죠.”

“못하는 꼴은 보여주고 싶지 않단 말야! 하기 싫다고!”

“아 그럼 거절 해!”

“그치만 타케유키 감독이잖아! 하고 싶어!”


코노하는 탁상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뭉툭하고 무게감 있는, 휘두르기 적합할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을 다잡은 코노하는 크게 한 번 심호흡했다. 


“그 감독도 어련히 알아서 배우를 골랐겠지. 너도 이런 연기도 한 번은 할 때가 되긴 했지 않아? 이미지 너무 고정되는 것도 그렇잖아.”

“…….”

“널 고른 게 신기하긴 하다만……. 타케유키 감독이 널 캐스팅하자고 했대?”

“이 역으로 누굴 할지 고민하다가 원랜 오디션을 보기로 했다는데……. 촬영 감독이 날 추천했대잖아.”

“촬영감독? 누군데?”

“아카아시 케이지. 들어 봤냐?”


코노하는 입을 떡 벌렸다.


“아카아시? 아카아시 케이지? 야, 당연히 들어봤지! 지지난주에 개봉한 그 뭐냐, ‘그림자 계곡의 의자’ 그거 찍었잖아. 그게 올해 상은 다 타놨다고 얼마나 난리였냐. 아카아시 케이지가 우리나라 돌아왔나? 다음 영화도 해외에서 작업한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몰라, 왔나보지……. 근데 무슨 아직 하반기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올해 상을 다 타놨대.”


살짝 흥분해 떠들던 코노하는 보쿠토의 투덜거림은 들은 척도 않고 재빠르게 말했다.


“타케유키 감독에 카메라가 아카아시 케이지면 야, 그냥 해. 어지간하면.”

“나도 하고 싶다니까? 근데 역할이! 내 역할이! 으아아!”


보쿠토가 탁상 위에 엎어져버린다. 코노하는 대본을 다시 넘겨보며 슬쩍 말을 꺼냈다.


“그……. 너 어쨌든 멜로도 한 번 찍어본 적은 있잖아.”

“…….”


보쿠토는 말이 없다. 코노하는 자신이 말을 꺼냈으면서도 입술을 안으로 말아 깨물며 조용히 대본만 넘겨보았다.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보쿠토의 첫 데뷔는 로맨스 영화였다. 남녀 주연은 당대 이름 높은 쟁쟁한 배우들이 전격 캐스팅했던 터라 배우 얼굴만으로도 손익분기점을 장담할 수 있을 거라는 얘기가 떠돌던. 당시 대중에게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게 된 신인 보쿠토 코타로에게도 살짝 관심이 기울었고 영화가 그대로 성공했다면 보쿠토도 탄탄대로를 걸었겠지만…….


“흥행은 그랬다 쳐도 그 영화가 망한 게 네 탓도 아니었고. 넌 잘했었잖아.”

“쫄딱 망한 건 망한 거라고.”


엎어져있던 보쿠토가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코노하의 팔을 쳐 그의 손에 있던 대본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보쿠토는 굳은 얼굴로 대본을 내려다보았다. 


처음 데뷔한 작품이 손익분기점의 첫 글자도 말할 수 없을 만큼 패망했다고 해서 보쿠토가 배우가 되겠다는 뜻을 꺾지는 않았지만, 그로부터 보쿠토가 지금과 같은 위치에 오르기까지 과정이 순탄하지도 않았다. 


“그치만 결국 할 거잖아. 그만 찡찡대, 자식아.”

“코노하아아!”


정말 하지 않을 거였다면 그를 붙잡고서 하소연을 늘어놓지도 않았을 것이다. 코노하는 들어줄 만큼 들어주었다고 판단하곤 몸을 일으켰다. 붙잡으려는 보쿠토의 팔을 쳐낸 건 이렇게 귀찮게 군 것에 대한 작은 화풀이였다. 


그리고 그 날 밤 보쿠토는 침대 위에서 10분을 엎치락뒤치락 하다가 영화를 찍겠다는 답신을 보냈다.


*


그 뒤로 영화 촬영이 시작되기 전까지 보쿠토는 자신을 추천했다는 그 촬영 감독이 찍은 영화를 모두 돌려보았다. 적당한 사람이 없어서 오디션을 보기로 했다는데 그걸 무르고 자신을 추천한 사람은 어떤 식으로 어떻게 영화를 찍기에 그런 건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은 그 촬영 감독의 가장 최근 작품이 화면 속에서 재생되고 있는 중이었다. 스피커에서 미려한 바람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히듯 흘러나오고 있다. 그리고 스크린 위의 여자가 뒤를 돌아본다.


“허…….”


여자는 봄 햇살에 감싸인 듯이 포근한 빛으로 둘러싸여서 카메라 너머의 보쿠토를 바라보고 있었다. 꽃향기가 감도는 듯한 느낌, 보쿠토는 자신이 그 여자를 사랑하는 듯한 착각을 할 정도였다. 


잠시 홀린 듯이 화면을 바라보던 보쿠토는 고개를 털어내고 소파 한쪽에 내팽개쳐두었던 종이뭉치를 집어 들었다. 그 사이에 영화는 끝이 났고 곧 얼마 지나지 않아 엔드 크레딧이 올라가기 시작한다. 보쿠토는 손에 쥔 시나리오 너머로 엔드 크레딧에 올라가는 이름을 바라보았다.


Executive Producers ……

Director of Photography | Akaashi Keiji 

Production Designer ……

Edited by ……


그리고 더욱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저 촬영 감독의 스펙트럼은 놀라울 만큼 넓고 다양했다. 당연히 모든 작품이 전부 흥행에 성공한 것도 아니어서 ‘맙소사, 이런 것도 찍었나?’ 싶은 작품도 있었고 ‘이게 이 촬영 감독 거였나?’ 하는 것도 있었다. 그 밖에 극장가를 굵직하게 흔든 것도 몇 개나 있다. 장르는 다양했다. 로맨스, 코미디, 액션, 스릴러, 드라마……. 


그 모든 걸 다 봤지만 도대체 어느 면에서 자신이 이 사람 마음에 들어 역까지 따내게 되었는지는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프리 프로덕션(pre production)이 진행되는 동안 보쿠토는 시나리오 작가에게서 추천받은 영상과 책을 모조리 독파하고, 초반 촬영분에서 요구하는 대로 슬렌더한 몸매를 위해 체중감량을 하며 영화를 준비했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성향의 캐릭터를 연구하고 연습하는 사이에 시간은 바람처럼 흘러갔고 촬영일이 다가오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마침내 크랭크 인에 들어가는 날 촬영스텝들과 모두 만나는 자리에서 보쿠토는 처음으로 그 촬영 감독을 보았더랬다. 그야 터무니없는 배역에 자신을 추천한 사람이라고 하니 영화를 찾아보며 그 촬영 감독의 얼굴도 사진으로 보기는 했다. 보쿠토는 촬영 감독을 실물로 본 순간 그 인터뷰의 프로필 사진을 누가 찍었는지는 몰라도 인물을 조금도 제대로 담지 못한 사진이었다고 생각했다.


‘사진보다 훨씬 더…….’


목깃이 있는 밝은 색 폴로티와 검은 진을 걸친 남자는 말수 없는 얼굴로 눈을 내리뜨고 있었다. 영화감독이 부드러운 표정으로 차례차례 소개해줄 때에나 자신의 이름을 소리 내 말했다. 


그리고 그 ‘아카아시 케이지입니다.’이후로 보쿠토가 촬영이 시작된 7일 내내 저 촬영감독에게서 들은 대꾸라고는 ‘아아’와 ‘네’ 뿐이었던 것이다. 





------


버터스님 리퀘스트인 영화배우 보쿠토x카메라맨 아카아시입니다uㅅu!

버터스님과 함께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하이큐 > 보쿠아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쿠아카 | 크랭크 인 (3)  (6) 2017.07.27
보쿠아카 | 크랭크 인 (2)  (6) 2017.07.26
보쿠아카 | 백월하향 샘플  (0) 2017.07.18
보쿠아카 | 태양의 신랑 (1)  (8) 2017.07.03
보쿠아카 | 차장님과 아침을!  (2) 2017.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