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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쿠토x아카아시

동양풍 AU 장편소설 적월하향 외전





첫 번째 이야기 

 



황후가 직접 ‘부탁’이라고 말을 하기까지 했다. 세자는 치밀어오르는 한숨을 내리누르며 깊이 절했다. 자신이 한숨을 쉬고 싶은들 황후의 마음만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 일로 또다시 황상이 또 예친왕의 세자에게 대리청정을 맡겼다며 사람들이 수군거릴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해지고 마는 것이었다. 

 

‘황상께옵서는 태자 책봉에 아무 관심이 없으십니다…….’

 

황제가 관심이 있는 거라면 딱 하나일 것이다. 바로 그의 눈앞에 있는 이 황후 말이다.

 

*

 

“아무데도 없어. 아무데도.”

 

쿠로오는 얼굴이 허옇게 뜬 채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맞은편에 앉아있는 사람 역시 굳은 얼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탁상을 앞에 두고 바삐 좌우로 오가며 아무데도 없다고 세 번쯤 더 중얼거린 쿠로오는 마침내 그 앞에 털썩 앉았다.

 

“싸웠어?”

“…….”

“뭘로 싸웠어.”

“…….”

“마마, 말씀을 좀 해주세요, 네? 무위영 애들 죽습니다~!”

 

무위장군의 말을 듣고 있던 아카아시는 입을 달싹거리다가 다시 다물어 무위장군의 속을 뒤집어놓았다. 무위장군이 쥐고 있는 탁상이 파르르 떨린다. 결국 아카아시가 한숨과 함께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후원 문제로 좀 다퉜습니다.”

“후……원? 후궁 말이야?”

 

쿠로오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사람과 사람이 다투는 이유는 무수히 많을 것이지만, 저 두 사람이라면 결코 다투지 않을 거라고 모두들 생각하는 문제가 몇 있었다. 후원 같은 화제라면 그 중에서도 장원과 방안을 가리기 어려운 것이었다.

 

“아, 아니 그 문제로 싸울 일이 있어? 어떻게 싸웠냐? 황상은……. 보쿠토는 후원엔 가지도 않잖아.”

 

모든 후궁은 후원에 있는데 황제는 후원이라면 발길도 하지 않는다. 그나마 후원에 들락거렸던 것은 아카아시가 아직 후원에 머무를 때였다. 그가 마침내 황후가 되었을 때, 황제는 후원이 지상에서 존재부터 사라진 것처럼 굴었다. 즉 황후의 침궁에만 드나들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한 마디 했더니…….”

“……아니, 지금 이해가 안 되는데……. ‘그래서’는 어디서 나온 그래서고 뭐라고……무슨 한 마디를 해?”

“후원에 있는 것도 세 사람 뿐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계속 방치하고 있고. 낮에라도 찾아가거나 그게 아니면 후궁이라도 늘리라고 했더니.”

 

쿠로오는 그야말로 입을 딱 벌렸다. 황후의 도리를 다 하는 것에도 정도가 있지, 자신만 찾는 황제를 후궁에게 내돌리려고 하는 건 또 무슨 경우란 말인가? 

 

“보쿠토가 뛰쳐나갈 만도 하네!”

 

보쿠토가 무슨 마음, 어떤 생각으로 버림받은 황자의 자리에서부터 동궁을 차지하고 마침내 보위에 올랐는지 옆에서 전부 보아온 쿠로오였다. 모든게 저 한 사람, 지금 그가 마침내 황후로 앉혀놓은 저 한 사람 때문이었고 그 탓에 쿠로오는 계속 걱정하기도 했다. 저러다 정인이 변심하기라도 하면 보쿠토도 무너질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황제의 정인은 변심하지 않고 황제는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아카아시가 쿠로오를 쏘아보았다.

 

“백가 분위기가 좋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아.”

“금빈에 대한 처우가 박한 건 사실이지 않습니까. 백가의 병권은 전부 백공이 휘어잡고 있다고는 해도 궁에서 이렇게 자기 가문 사람을 박대하니 그 안에서 반발하는 자들이 있을테고.”

“그건 좀 자업자득이지…….”

 

쿠로오는 휘파람 부는 시늉을 하며 대꾸했다. 금빈에 대한 대우가 다른 두 후궁에 대한 것보다 유난히 박한 것은 처음에 보쿠토가 후원에서 아카아시를 찾아냈을 때 아카아시에게 상처를 입힌 것이 금빈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만 아니었어도 보쿠토가 그녀에게 무심하게는 굴지언정 냉랭하게 구는 일까지는 없었을텐데. 

 

“사람이 실수 한 번 한 걸로 그러면 아니되지요.”

“…….”

“해서 얘기를 좀 했더니 곧장 뛰쳐나가셔서…….”

“…….”

 

저 무시무시할 정도의 엄격함에는 기가 질리고 만다. 한숨을 내쉬는 얄팍한 뺨을 보아도 가슴아픈 마음은 일지 않았다. 다만 보쿠토에 대한 동정심이 치솟을 뿐이었다. 

 

“너는 속도 없냐.”

“속이 왜 없습니까.”

“금빈이 어디 서왕모 아들래미 쥐어박았다고 황상이 저러냐? 너 때렸다고 그러는 거잖아, 너. 너는 네가 맞아놓고 실수 한 번이라고 넘어가냐.”

“그럼 제가 넘어가자고 해야지, 누가 합니까. 다른 사람이 그런 이야길 했으면…….”

“…….”

 

생각해보니 그건 또 맞는 말이다. 쿠로오는 마른 입을 다셨다. 금빈의 처우에 대해 용서를 해라 말아라 하고 다른 사람이 입을 댔으면 보쿠토의 그 불같은 성미에 절대 참지 않았을 것이다. 하기로 마음을 먹으면 피를 보는 것도 전혀 겁내지 않는 사람이 무슨 짓을 벌였을지 알 수가 없다.

 

“딱한 마음도 있습니다. 이 궁에 단 한 사람만 보고 입궁한 것이지 않습니까.”

“퍽이나 딱하겠다. 그 사람들이 황상하고 정애 나누자고 입궁했겠냐.”

“그래도요. 그리고…….”

 

아카아시가 나직히 한숨을 내쉬었다. 탁상 위의 화병에 꽂아둔 꽃잎이 그 한숨을 타고 파르르 떨린다. 쿠로오는 속으로는 한탄하면서도 아카아시의 말을 기다려 주었다. 

 

“어쨌든 보쿠토 씨가……황상께서 누구의 원망을 사고 할 성격은 아니지 않습니까. 궁에 들어오지만 않았더라면. 원망 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어이쿠야. 후원에서 황상을 원망하겠냐? 너를 원망하지.”

“뭐 그러면 아무래도 상관없겠지만요.”

 

아카아시는 눈썹하나 깜짝하지 않는 얼굴이었다. 쿠로오는 혀를 찼다. 무슨 말을 해도 이쪽은 후원의 다른 후궁들과는 격이 다르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나라를 사분하는 적가의 후계자 노릇을 해온 인물이고 동시에 들판에 버려졌던 황자를 황제의 자리에까지 끌어올린 인물인 것이다. 

 

“다 좋아, 그걸로 두 사람이 어떻게 사랑 싸움을 하든 마음대로 해. 그런데 궁 안에서 해주면 안 되겠냐? 평소에 도망가던 데는 전부 다 뒤져봤는데도 안 나오잖아! 다퉜다고 황상이 가출을 하면 어떡하냐, 진짜!”

“그건……. 저도 좀 곤란하긴 하네요. 공무는 세자를 불러 맡겨두긴 했는데.”

“곤란해? 나는 피가 말라요, 마마! 피가!”

 

쿠로오가 가슴을 퍽퍽 두드렸지만, 아카아시는 난처한 듯이 눈썹을 내려뜨릴 뿐 답을 주지는 못했다. 


*


황제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소년 황자 시절부터 바란 건 그저 자신의 정인과 보내는 다정한 시간 뿐이었다. 그런데 어린 소년 황자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었고 그의 정인은 모든 걸 가지고 있었던 것이 문제가 되었다. 소년 황자는 그의 정인에게 걸맞은 사람이 되고싶다는 욕심만으로 모든 것을 쟁취해냈다. 처음에는 그가 머무를 궁, 그 다음에는 친왕의 지위, 황태자의 자리, 그리고 마침내 보위에 오르기까지는 몇 년밖에 걸리지 않았더랬다.

 

황제에게는 나라에 대한 이상도 없고 꿈이나 희망도 없으며, 의무감도 없고 책임감도 없다. 그의 그 모든 것은 단 한 사람에게 쏠려 있었다. 가만히 두었으면 망가졌을 것이 분명한 험히 기울어가는 저울추의 균형을 잡아준 것은 바로 그의 정인이자 이제는 황후가 된 아카아시였다. 

 

황제는 국정에 성실히 임했다. 오로지 아카아시가 원하기 때문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금빈은 진즉 내쳐지고 후원에는 아무도 남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쿠로오는 후원의 존재 자체가 하루 하루 황제의 인내심을 갉아먹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하곤 했다. 황제는 아카아시와 자신이 멀어질 수도 있는, 그러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그 모든 것을 시야에서 치워버리려 들었다. 처음에는 금빈이었고 그 다음에는 후가 아니라 빈이라는 아카아시의 지위였다. 즉위 전후로 아카아시와 헤어져야 했던 잠깐의 시간이 황제에게 어떤 상흔을 남겼는지 잘 알고 있기에 더욱 그런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 문제를 아카아시의 입으로 직접 말을 했으니, 황제의 반응이 어떠했겠는가……. 

 

“네가 여기 있는데 어디로 가겠냐 싶긴 하다만 그래도…….”

 

*

 

두 번째 이야기

 

도성의 장터는 언제나 시끌벅적했다. 그나마 한산했던 것은 얼마 전 서북면 쪽에서 전쟁이 있었을 적 정도일 것이다. 도자기로 만든 풍경을 늘어놓고 파는 가게 앞에서 하나하나 건드려 청명한 소리를 내보던 후타쿠치는 고개를 갸웃했다. 

 

오늘도 그는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도성을 순찰 중이었다. 다른 금위영의 사람들은 그에 대해 조금 다른 의견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후타쿠치의 의견은 그랬다. 그런데 차르르 하는 풍경 소리 너머 골목 안쪽에서 수상쩍은 광경이 흘끗 엿보인 것이었다. 후타쿠치는 그렇게 세게 치다간 부서진다며 울상 짓는 상인을 보곤 풍경 하나를 아무렇게나 골라 계산하고 골목 쪽으로 다가갔다. 

 

장터의 뒷골목 쪽 그늘이 진 으슥한 곳에서 서너명이 모여 무언가를 거래를 하고 있었다. 구성원은 다양했다. 나이가 지긋한 노인네가 무언가를 파는 중이었고 사는 사람은 사내 하나, 규수 하나, 그리고 뭣도 모르는 것같은 코흘리개 어린 종 하나였다. 후타쿠치는 기척 하나 없이 숨을 죽이고서는 그들 뒤에 조용히 서서 하는 모양새를 지켜보았다. 

 

“이번에 새로 나온 거라 몇 장 없소.”

“저 나으리가 기다리고 있어서 빨리 가봐야하니까 저부터 사면 안 되나요?”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게 벌써 새치기를 하려고 해? 쩌어기 찌그러져 있어! 노인네, 내가 세 장 사겠소.”

“아니, 이보세요. 저게 딱 봐도 세 장인데 그쪽이 세 장 다 사가면 이쪽은 어쩌라고요?”

“내가 제일 먼저 왔으니 내가 먼저 사겠다는 겁니다. 뒤에 몇 장이 남든 내 알 바는 아니지 않습니까? 노인장, 셈부터 하시오.”

“상도덕이 있어야 할 거 아니에요! 적어도 두 장만 사시든가요!”

“저기요, 그래서 도련님이 두장에 아가씨까지 한 장 사면 저는요?”

“꼬맹이는 천천히 기다리면 되잖니. 누나가 급해요.”

“저 이거 못 사가면 나으리한테 맞을지도 모른단 말예요!”

“그렇게 급하면 그 나으리더러 오시라 하든가! 노인장, 계산부터 합시다.”

 

가만히 지켜보던 후타쿠치가 계산하자고 보채는 청년의 뒤에서 툭 하고 기척을 냈다.

 

“—그래서, 저게 뭐요?”

“우, 우와아아악!”

“에그머니나!”

 

바로 뒤에서 소리가 들리자 청년도 규수도 어린 종도 놀라서 비명을 지르고는 혼비백산한 얼굴로 도망친다. 남은 건 무언가를 팔고 있던 노인과 후타쿠치 뿐이었다. 후타쿠치는 줄행랑을 치는 그네들의 뒷모습을 흘끗 바라보다가 마찬가지로 도망가려 하는 노인네의 뒷목을 낚아챘다.

 

“나도 그게 뭔지 구경이나 해봅시다.”

“아, 아이고, 나으리. 그게 별거 아닙니다요. 소인은 지금 볼일이 급해서 뒷간에 얼른…….”

“그 볼일이랑 같이 뒷간에 빠지고 싶은 거 아니면 빨리 봅시다.”

“그, 그냥 그림이옵니다. 제가 정말로 급해서…….”

“어떤 그림인데요. 보자니까? 응?”

 

후타쿠치의 표정이 위험한 방향으로 곡선을 그리기 시작한다. 노인은 그의 얼굴이 어떤 미래를 내포하는지 본능적으로 알아차리고는 계속 감추고 있던 얇은 화선지 뭉치를 그에게 내밀었다.

 

“……이, 이것이옵니다. 흔한 미인도일 뿐 별 건 아니옵니다.”

“흔한 미인도를 무슨 뒷골목에서 밀수라도 하는 양…….”

 

화선지를 낚아채며 비꼬려고 하던 후타쿠치는 천천히 목소리를 죽였다. 그의 말은 제대로 끝맺지 못하고 흩어졌고 그걸 뭐라고 생각했는지 노인이 필사적으로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것이, 어여쁜 자태를 그려놓은 걸 파는 것인데, 그림이 워낙 출중하여 시장에서 찾는 사람이 많다 보니까, 하여…….

 

“……이게 뭐야.”

 

하지만 후타쿠치는 노인의 얘기는 하나도 듣지 않은 채, 실로 어처구니 없다는 얼굴로 화선지 속에 그려진 인물만 바라보고 있었다. 먹을 부어 새카맣게 칠한 머리카락과 얄팍한 턱선, 먼 곳을 보는 듯한 시선은 청록빛이다. 옷깃으로 몸을 꽁꽁 싸매다시피하여 드러난 건 담뱃대를 들고 있는 손 끝 뿐인데도 형용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있다.

 

다른 두 장도 같은 인물을 그린, 비슷한 것들이다. 입고 있는 옷이나 자세가 조금씩 다를 뿐이다. 

 

후타쿠치는 마른 입술을 다셨다. 저 담뱃대는 그의 기억에도 있는 것이었다. 그 주인에게 도로 내놓으라고 행패를 부리기도 했었다. 후타쿠치의 형형한 눈빛이 노인에게로 향했다. 노인이 까닭도 모르고서 딸꾹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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