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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듯한 옷을 입혀놓으니 그럴듯했다. 입을 다물고 있는 겉모습만 보아서는 갓 천계에 올라온 어린 신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으으…….”

“왜요? 불편합니까?”


대청마루에 선 보쿠토의 표정이 오묘했다. 허리끈을 붙잡고서는 미간을 모은 채 그를 바라보고 있다. 아카아시의 질문에 보쿠토가 형용하기 어려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옷이 미끌미끌해…….”

“네?”

“막……미끌미끌해.”


아카아시는 그제야 보쿠토의 저 말이 걸치고 있는 비단옷을 뜻한다는 걸 알아차렸다. 생전에 한 번도 저런 옷을 입어본 적이 없는 모양이었다. 보쿠토는 이젠 숫제 울상이기까지 하다. 아카아시는 잠깐 고민했다. 그의 처소에는 온통 저런 옷뿐이었다. 그렇다고 벗겨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잠시만요.”


아카아시는 가볍게 손짓했다. 곧 주위에서 노닐던 새 한마리가 그에게 날아든다. 아카아시가 손에 앉은 새에게 무어라 속삭였다. 새가 그에게 뺨을 부비고는 날아올라 어디론가로 향한다. 


“이제 곧 옷이……뭐, 뭡니까.”

“뭐야? 방금 뭐 한거야?”


이제 곧 입을만한 옷이 올거라고 말하려 했던 아카아시는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보쿠토가 반짝거리는 얼굴로 코앞까지 다가와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예? 뭘…….”


도대체 뭐가 궁금한 것인지도 알 수가 없어서 눈만 꿈벅거리던 아카아시는 쿠로오가 말했던, ‘보쿠토는 아무것도 모른다’던 말의 뜻을 알 수 있었다. 


‘정말로 아무것도.’


기기묘묘한 것을 처음 본 듯이 신비로 반짝거리는 눈동자가 그를 보고 있었다. 아카아시는 그 금빛 눈동자를 올려다보다 한 번 헛기침 하곤 뒤로 물러섰다. 


“전령을 보낸 것입니다.”

“전령? 새를 전령으로?”

“당신은 토끼였지 않습니까.”


시큰둥하게 말하자 보쿠토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윽고 배시시 웃었다. 저 얼굴만 보고 있자면 저 체격이 도통 와닿지 않는 어린애같았다.


“당신도 할 수 있습니다.”

“나도? 나도 할 수 있어?”

“제가 하는 대부분의 것들은 모두 당신도 할 수 있어요.”


아카아시는 그렇게 말하곤 뜰 쪽을 향해 손짓했다. 노닐고 있던 새 한마리가 날아올랐다. 아카아시는 자신의 손 위에 앉은 새를 보쿠토 쪽으로 내밀었다. 보쿠토는 금방 어쩔 줄 모르는 얼굴이 되어 허둥거리고 있다. 


“손 펼쳐 보세요.”

“이, 이렇게?”


아카아시는 담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보쿠토가 양손은 모아 펼친 채 그를 쳐다보았다. 아카아시가 그 손바닥 위에 새를 올려주었다. 


“이, 이 다음엔 어떻게 하면 돼?”

“전할 말과 전할 상대를 일러주면 됩니다.”


보쿠토가 손에 담고 있는 새는 보쿠토에 비하자면 정말 너무 작아서, 저렇게 보쿠토가 안절부절 못하는 것도 절로 이해가 갈 지경이었다. 그렇게 말하고서 보쿠토가 무언가를 하길 기다리던 아카아시는 보쿠토가 아무 말이 없어 고개를 갸웃했다.


“보쿠토 씨?”

“별로……. 말을 전할 상대같은 거 없는데.”


보쿠토는 언제 들떴느냐는 듯이 덤덤한 얼굴이었다. 아카아시는 잠시 입술을 달싹거렸다. 보쿠토는 특별히 비애에 잠긴 것도 아니고 애통해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 제게.”

“……어?”

“잠에서 깬지 얼마 되지 않아서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 와야하니, 제게 전할 말을 보내는 걸로 실습을 해보지요.”

“어? 어어? 주, 주위 어디로? 어디로 가는지 알아야 보내지!”

“전령이 알아서 날아올테니 염려할 필요 없습니다.”


아카아시는 그렇게 말하고서는 가볍게 몸을 띄웠다. 구름이 그의 발밑에 모여들었다. 보쿠토는 그런 아카아시를 멍한 얼굴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카아시는 고개를 한 번 까딱하고는 그대로 구름을 띄웠다. 그의 거처는 순식간에 멀어졌다.


*


“날씨 좋~다!”

“보통 비가 쏟아지는 날을 좋다고 하지는 않지 않습니까.”

“간만의 비니까.”


그간에 가물었다고, 쿠로오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바깥엔 보드라운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그의 말대로 모두 반가워하고 있었다. 동물들은 바깥으로 나와 맑은 빗물에 몸을 씻고 목을 축였다. 나무와 풀, 꽃들도 오랜만에 땅을 적셔주는 비에 흠뻑 몸을 내맡긴 채였다. 


“누구누구씨가 어찌나 푹 잠에 빠졌는지…….”


쿠로오는 탓하기보단 놀리는 어조였다. 그의 뜻을 진즉 알고 있던 아카아시는 별말 없이 대청마루에 앉아 내리는 비를 바라보기만 했다. 


용신의 권능 중 하나는 날씨를 자유자재로 다스리는 것이다.


“그나저나 옷 가져다달라며? 왜 직접 왔어?”

“상의할 게 있어서요.”


아카아시의 말을 쿠로오에게 전했던 작은 새는 아카아시의 어깨에 앉아서 뺨을 부비다 내리는 비에 목욕을 하러 날아갔다. 


“거처 문제 말인데요.”

“아아…….”


쿠로오는 아카아시의 걱정을 알아차리곤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 신들은 천계의 곳곳에서 태어난다. 그들은 태어난 자리에 제각기 둥지를 틀고, 힘의 운용이 자유로워지면서 자연스레 그에 어울리는 전각을 쌓아올리게 되는 것이다. 


“빈 곳이 있는지요?”

“음…….”


쿠로오는 눈썹을 모으고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의 눈동자가 천계의 곳곳을 훑어보고 있다는 걸 알려준다. 하지만 긍정적인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둡고 습한 곳은 있겠지만.”

“…….”

“그렇네, 그 문제가 있네.”


어린 신은 결코 다른 신의 영역 안에서 태어나지 않으며, 따라서 모두 적절한 거리를 두고 거처를 가지게 된다. 지금까지는 그러했다. 멀고 가까움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누구와도 공유하지 않는 독립된 공간을 가지는 것, 그건 천계의 신이라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당장은 뭐 살 곳이 문제가 아니지 않아?”

“그렇지만 곧…….”

“알게 뭐야. 그 얘길 해줄 사람도 너 뿐이잖아. 네가 입다물고 있으면 모를 텐데.”


쿠로오의 말은 사실이었다. 아카아시는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모든 신은 천계에서 태어난다. 그러하기에 모두 적절한 위치에 제각기의 거처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날 때부터 가진 힘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무엇에 사용해야 하는지 알고 있으며 그 모든 것들은 숨쉬는 것보다 간단한 일이기에 그들의 의무는 오로지 존재하는 것뿐이다.


하계에서부터 힘을 쌓아올려 천계에 나타난, 스스로의 힘으로 신이 된 자는 이 천계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보쿠토가 나타나기 전까지.


아카아시는 보쿠토가 천계의 신들에게 배척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가 막힌다는 얼굴을 해보였지만, 일면으로는 이해하기도 했다. 천계의 신 그 누구도 지니고 있는 힘을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심지어 아카아시 자신마저도. 태어난 순간부터 쥐고 있었던 것이고 그것은 달리 말해 눈부신 특권이었다. 


지상의 생물들은 모두 생을 영위하기 위해 치열하게 달려가고 있다. 그 경쟁에서 한 발 물러서 있을 수 있다는 것이 특권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그리고 그들이 그 특권을 누리는 대가로 무엇을 지불하고 있는가? 


“그것도 한계가 있지 않겠습니까.”

“때가 오면 생각해. 지금 고민해 봤자 소용 없잖아.”

“쿠로오 씨!”


지금까지는 그것이 특권이 아니었다. 그들은 존재하는 것으로 의무를 행하고 있으며, 누구도 탐내지 않는 자리에 앉아 의무를 행하고 있다는 것은 특권이라기보다는 호화롭고 무거운 화관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힘으로 신이 된 자가 나타났다. 갖은 노력을 다하여 신이 되어버린 이가 나타난 것이다. 누구도 탐내지 않는 자리란 것은 실상 탐내지 못했던 것뿐이고 자신들은 대단한 노력도 대가도 없이 그 모든 것들을 누리고 있다는 것, 천계의 모든 신들은 보쿠토의 존재만으로 자신이 비난을 받은 듯한 기분을 느끼고 말았으리라. 


그러니 그런 보쿠토를 위해 기꺼이 공간을 내어줄 신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당장은 보쿠토가 그의 처소에서 머문다고 해도 끝내는 문제가 될 게 분명했다.


“힘을 다스리는 것에 대해서는 제가 어떻게든 하겠습니다. 거처 문제는 알아서 해주세요.”


아카아시는 쿠로오를 보며 단단한 말투로 일렀다. 쿠로오는 그런 아카아시의 얼굴을 보며 무섭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아카아시는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 


쿠로오는 겉으로 보기만 해서는 제멋대로에 천계의 질서같은 것은 눈 하나 깜짝 않고 뒤엎어놓을 듯한 인상인데, 실상은 은근히 성정이 무르고 정이 많아 누구 하나라도 겉도는 이가 있으면 그것을 두고 보지 못했다. 자신의 구역 안에서 앓아누운 작고 여린 아기 고양이에게도 손을 내밀고야 마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아카아시였다.


‘그게 그 체격의 묘신을 상대로로 발휘될 줄은 몰랐지만.’


아카아시가 쿠로오의 전각에서 몸을 일으킬 때 이슬비가 보드랍게 쏟아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 쿠로오가 입을 열었다.


“마음에 걸리는 것치고는 네 땅을 내줄 생각은 없는 거야?”


그건 위선에 대한 비난이라기보다는 순수한 의문이었다. 아카아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그 사람이 아무것도 모르니 제가 무얼 알려준다고 해도 신은 신입니다.”

“다정하구만.”

“남말 하시는군요.”


이 문제를 자신에게 가져온 게 누군데, 그렇게 말하는 아카아시의 눈동자에 쿠로오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 때였다. 


“……너 뭐라고 했었지?”

“네?”

“전령 보내는 법 알려주고 여기 왔다고……했었……나?”

“아, 네.”


아카아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쿠로오가 살짝 질린 얼굴로 저 산등성이 너머를 가리켰다. 과연 호랑이, 먼 곳을 내다보는 눈은 남달랐다. 


“한 마리만 보내면 된다고도 했어?”

“…….”


아카아시는 아연실색한 얼굴로 쿠로오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았다. 이젠 아카아시의 눈에도 훤히 보였다. 날아들고 있는 새떼들이. 온갖 색의 깃털을 가진 새들은 순식간에 가까워져 아카아시 주위를 에워 쌌다. 


“아하하, 무슨 말을 그렇게 전하고 싶었던 거야?”


쿠로오가 배를 잡고 웃으며 물었다. 아카아시는 쿠로오의 말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새들은 그에게 무슨 말도 전해주지 않은 채 그를 둘러싸더니 그를 띄워버린 것이다. 잠깐 당황해 허우적거리던 아카아시는 힘을 빼고 새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쿠로오는 숨이 넘어가게 웃으며 옷은 따로 전해주겠다는 말만 해주었다.


새들은 그대로 아카아시를 데리고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