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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까?’


아카아시는 회사 건물의 엘리베이터 벽에 기대어 멍하니 생각했다. 그냥 이대로 콱 죽어버릴까. 어쩌자고 그런 말을 했을까! 


홧김에 해버린 말이었다.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나왔다. 외롭게 했다는 말에 자기를 가리키는 보쿠토를 아무렇지도 않게 흘려보낼 수가 없었다.


‘아니, 처음부터 말이 안 되잖아.’


아카아시는 엘리베이터의 벽에 쿵 소리가 나도록 이마를 박았다. 외롭게 했어? 언제? 자신이 혼자 두어서 그가 외로웠던 적이 있기나 하단 말인가? 그럴 수는 없었다. 외로웠으면 한 번은 찾아왔을 것 아닌가. 한 번은 전화라도 했겠지. 믿을 수 없는 건 그의 고교 시절, 보쿠토가 스스로의 외로움을 한 번도 견딘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보쿠토는 아카아시와 함께 있고 싶은 순간이 되면 망설이는 법이 없었다. 전화, 메세지, 그게 아니면 당장 집 앞으로 와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랬던 사람이 어떻게 세상에서 사라진 것처럼 말 한마디 연락 한 줄이 없었다. 그리고 그러다가 결혼을 했다. 아카아시도 TV 화면과 스크린을 통해 몇 번이나 얼굴을 본 유명한 배우였다. 아카아시는 정말로, 외롭게 했다는 말에 자신을 가리키는 그 보쿠토를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게 외로웠으면 외로워서라도 한 번은 올 수 있잖습니까. 내가 좋아서가 아니라도, 내가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도, 그냥 외로워서라도. 누구라도 아무라도 보고 싶어서, 그런 이유로라도 올 수 있었잖습니까. 자신은 보쿠토에게 그 아무나 그 누구나도 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와서 자신이 외롭게 했다느니 그런 이야기를. 어떻게 그렇게 잘도…….


‘아, 그럼 그냥 그 이야기를 하면 했지. 나는 도대체 어쩌자고…….’


아카아시는 한 번 더 쿵 소리나게 이마를 박고는 호흡을 떨어뜨렸다. 때마침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뒷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휴대전화를 꺼내보았지만 보쿠토로부터의 연락은 아무것도 없었다. 있어도 할 말은 없었겠지만. 


아카아시는 조금 답답한 것 같은 속을 쓸어 내렸다. 며칠만 지나면 급한 프로젝트도 다 끝이 난다. 최근 부쩍 차라리 바빠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일이 잦았다. 지금도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나면 서로 잊게 될 것이다. 그렇게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면 일주일은 휴가를 낼 참이었다. 보쿠토에게도 돌아가달라고 말할 작정이다. 그러면 된다. 문제될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카아시는 호흡을 가다듬고, 옷깃에 묻은 흙먼지도 한 번 털어낸 뒤에 엘리베이터 바깥으로 발을 내딛었다. 


*


아카아시는 현관문의 고리에 손을 올리고 심호흡했다. 연일 이어지는 야근에 누적된 피로가 눈앞을 핑 돌게 하는 와중에도 섣불리 집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아직 깨어 있을까?’


자정을 넘긴 시간이었다. 오늘은 야근이 계속되었던 날보다도 퇴근이 훨씬 더 늦었다. 아이는 피곤해서 진작 잠에 빠졌을 게 분명한데 보쿠토도 자고 있을거라는 확신은 들지 않았다. 


‘경주도 참가하고 한 모양이니 피곤하시겠지.’


아카아시는 낮에 잠깐 보았던 모습을 상기했다. 전력으로 달리기를 하기도 했으니 깨어있더라도 오래 가지는 못할 것이다. 제대로 된 대화도 할 수 없을 것이고. 아니, 그보다도 보쿠토가 자신의 말을 신경이나 썼을지도 의문이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어깨 한 번 으쓱하고 흘려보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지금의 이 걱정도 다 괜한 짓일 거였다. 


아카아시는 짧게 숨을 들이키고는 문고리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삐빅 하는 전자음이 나고 곧 부드럽게 현관문이 열린다. 거실의 무드등만 빛을 밝히고 있는 실내는 어둡다기보다는 아늑한 편이었다. 아카아시는 현관에 서서 구두를 벗으며  안쪽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거실 한쪽에 보쿠토의 침구는 보이는데 보쿠토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그 때 부엌쪽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선배, 뭐하세요?”


부엌으로 향한 아카아시가 식탁의 의자에 가방을 내려놓으며 다가갔다. 보쿠토는 발을 동동 구르며 가스렌지 앞에 서 있다. 약한 불이 들어온 렌지 위에는 조그만 편수 냄비가 놓여있었다.


“아, 아카아시. 아, 이게 왜…….”


보쿠토는 반쯤 울상을 지으며 냄비 앞에 서서 안에 든 것을 휘저으려고 애쓰는 중이었다. 아카아시의 눈짓에 보쿠토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선다. 아카아시는 냄비 안에 든 것을 내려다보았다. 하얀 법랑 냄비 안에는 짙고 밀도높은, 투명한 금빛의 무언가가 눌어붙어 있었다. 


“이게 뭡니까?”


아카아시는 가스 불부터 내리고 물었다. 휘저으려던 수저 끝으로 진득한 것이 묻어났다. 보쿠토는 물을 더 부으면 될 것 같다고 웅얼거리다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말했다. 


“꾸…….”

“?”

“꿀물…….”

“이게요?”


꿀 뒤쪽의 단어는 양심상 붙일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아카아시의 눈초리에 보쿠토의 표정이 한층 더 습기에 찬다. 


“그게 계속 식어서……. 계속 데웠더니 어느 순간 이렇게 됐어…….”

“뭘하고 계셨길래 이걸 식을 때까지 몇 번이나 놔두기만 한 거예요.” 

“아카아—.”


아카아시가 한숨과 함께 냄비를 싱크대에 집어넣고 물을 틀었다. 쏴아아 하는 소리와 함께 차가운 물이 눌어붙은 냄비로 쏟아졌다. 무어라 말을 하려던 보쿠토가 눈물까지 글썽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제가 다시 해줄 테니까……. 왜, 왜요. 선배?”

“…….”

“선배?”

“……아카아시 주려고…….”

“네? 뭘……헉.”


쏴아아아


두 사람 사이에 물 쏟아지는 소리만 고요히 울려퍼진다. 아카아시는 마른침을 삼키고 물이 넘치고 있는 작은 냄비를 바라보았다. 꿀물. 계속 식어서, 계속 데우다가, 어느샌가 바닥에 눌어붙을 때까지 이렇게 되고 만.


아카아시는 수도를 내렸다. 


“그……. 제가 타먹겠습니다.”

“응…….”


어깨가 축 처져서는 싱크대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보쿠토다. 아카아시는 마른 입술을 달싹거렸다. 


“……갑자기 웬 꿀물이에요.”

“아카아시 피곤한 것 같아서…….”


아카아시는 다시 한 번 냄비를 흘끗 돌아보았다. 오늘은 평소보다도 몇 시간이나 더 늦었다. 자신이 올 때 맞춰서 따뜻한 걸 주려고 계속 데운 거라면 몇 번이나 불 위에 냄비를 올렸다가, 다시 내렸다가 했을까. 아마도 냄비가 저렇게 될 때까지. 


“……미안해요. 저 주려고 하신 거라곤 생각을 못 해서…….”


결국 사과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아카아시가 미간을 누르며 사과하는 말에 보쿠토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카아시는 세상이 무너졌다고 생각했지만 이걸 복구할 방법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땐 어떻게 했더라?’


고등학교 때는 이보다 훨씬 심했던 것 같은데 어떻게 수습했는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주위 사람들의 말로는 자신이 어떻게 했던 것 같긴 한데. 확실히 그랬던 것 같은데.


“…….”

“…….”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공기가 감돈다. 아카아시는 묵묵히 서 있기만 했고 보쿠토는 이제 그런 아카아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에 무언가 기대같은 것이 어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카아시는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할 뿐이었다. 한참이 지나 어색한 공기가 질식사하고 보쿠토가 입술을 삐죽거렸다.


“내가 다시 해줄 거야.”

“네?”

“내가 꿀물 다시 해줄 거야. 그리고 내일 아침 먹을 거 준비도 다 해놨으니까 아카아시는 씻고 와.”

“네……에?”


화제의 전환을 따라가지 못한 아카아시가 얼떨떨한 얼굴 위로 미간을 모았지만 보쿠토는 굳건한 얼굴로 아카아시의 등을 떠밀었다. 욕실 앞에 그를 세워두고 오늘 새로 세탁하고 건조한 수건도 손에 쥐어주고 샤워기의 온수 온도까지 체크하고 나서야 뒤로 물러선다. 아카아시는 무어라 말을 하려고 입술을 뗐지만 보쿠토는 더 굳은 얼굴로 엄중히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아카아시를 욕실 안으로 밀어넣고는 문을 닫아버리기까지 했다. 아카아시는 눈 앞에서 닫힌 욕실 문을 바라보다가 그만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


아카아시가 샤워를 말끔히 끝마치고 가운 한 장을 걸치고 나왔을 땐 실내가 온통 고요한 정적이었다. 아카아시는 턱 끝을 타고 떨어지는 물방울을 닦아내며 주위를 살펴보았다. 부엌에는 가스레인지 위 후드등만 혼자 빛을 내고 있었다. 냉장고 문을 열어보자 과연, 어설프게나마 이것저것 찬거리 같은 게 준비되어 있다. 아카아시는 준비된 것을 몇 가지 열어보고는 다시 정리해 밀어넣었다. 


부엌의 후드등을 끄고 거실로 나가자 익숙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아카아시는 벽에 살짝 기대어 섰다. 보쿠토는 거실의 탁상에 엎드려 잠에 빠져 있었다. 옆에는 그에게 내어준 침구가 아무렇게나 흩어져있고 그 모든 걸 무드등 하나가 감싸듯 비춘다. 보쿠토가 잠든 탁상 위에는 머그컵 하나가 김을 올리며 놓여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아카아시는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움직여 보쿠토에게 다가갔다. 


“……선배.”

“으응…….”

“보쿠토 선배, 누워서 주무세요.”


오늘 아이의 운동회에 참가해주느라 그도 적잖이 피곤했을 터였다. 거기다 자신이 올 때까지 계속 기다렸으니 졸음이 쏟아질 법도 했다. 아카아시는 보쿠토를 가볍게 흔들었다. 보쿠토가 가늘게 눈을 뜬다. 아카아시는 보쿠토가 깨는 것을 보고선 침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헝클어진 요를 바로잡고 다시 일어나보니 보쿠토가 또 탁상에 엎드려있다. 아카아시는 픽 웃으며 다시 보쿠토를 흔들었다.


“보쿠토 선배. 엎드려 자지 말고 누워서 주무세요. 선배.”

“……아카, 아시……?”

“네, 저예요. 그러—!”


말을 이으려던 아카아시는 순식간에 시야가 뒤집어져, 등에 닿는 아릿한 통증은 한 박자 늦게 인지했다. 자신이 바닥에 누워있다는 것도. 가장 먼저 눈에 보인 건 두 개의 태양이었다. 지금 이 시간을 잊게 하는 형형한 빛. 


“보쿠…토 선배?”


아카아시를 바닥에 쓰러뜨리고 위에 올라탄 사람은 보쿠토였다. 아카아시는 눈을 깜박이며 보쿠토를 올려다보았다. 보쿠토의 손이 아카아시의 두 손을 붙잡고 있었다. 서로의 얼굴이 한 호흡이면 닿을만큼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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