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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아시는 그만 당황해서 입을 벌리고 말았다. 순간 흙먼지가 기관지로 들어와 기침이 올라온다. 아카아시는 고개를 돌리고서 작게 기침했다가 다시 앞을 바라보았지만 그 사이에 멀쩡한 사람이 사라지는 기적같은 건 일어나지 않았다.


‘보쿠토 선배!?’


그렇게 오지 말라고 했는데! 게다가 엄청나게 눈에 띄고 있어! 


아카아시는 기가 막혀 눈을 크게 뜨고 운동장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야 전력으로 질주하는, 185 센티미터 이상인 장신의 남자, 그것도 근육이 제대로 자리잡고 있는 남자라는 것은 주위의 학부모들 사이에서 단연코 눈에 띄는 모습이었다. 아카아시는 아연실색한 얼굴로 입을 가리고 섰지만 결승 지점을 향한 보쿠토의 달리기를 멈춰 세울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맙소사.’


아카아시는 입을 가리고 섰다가, 양손에 얼굴을 묻었다가, 팔짱을 끼고서 발끝을 타닥타닥거리다가, 마침내 눈을 꾹 감고 미간을 눌렀다. 눈을 뜨자 마스크를 내리고서 숨을 몰아쉬고 있는 보쿠토가 아이에게로 뛰어가는 게 보인다. 두 사람이 상기된 얼굴로 손바닥을 마주쳤다. 아카아시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만 실없는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정말로 오면 어쩌자고…….”


눈에 띄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했더니 또 그 말만은 들어주어, 보쿠토는 모자도 눌러 쓰고 선글라스도 끼고 마스크도 하고 있었다. 지금은 숨이 찬지 마스크를 턱 아래로 내려놓았지만. 저 모자를 하고서도 전력질주를 한 게 대단히 용하다면 용할 일이다. 아카아시는 아이를 번쩍 안아드는 보쿠토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너무 눈이 부신 걸 봐서 그런 걸까, 눈가가 시렸다. 


왜 왔어요? 마음같아서는 당장 달려가 따져묻고 싶었다. 오지 말라고도 했잖습니까. 그 애가 당신 아이도 아니잖아요. 10년만에 겨우 만난, 고등학교 때 같은 부 활동을 했을 뿐인 후배의 아이인데. 그 어린애 운동회 혼자 두는 게 그렇게 맘에 걸렸습니까? 왜요. 


처음부터, 왜 절 찾아왔어요. 


하지만 묻고싶지 않기도 했다. 굳이 딱지 않은 상처를 벗겨 내어 거기에 칼을 댈 필요가 있을까. 모르는 척 하는 게 그렇게 나쁜 것도 아니지 않나. 다른 것을 원하는 것도 아니고 바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지금 이 순간을 그대로 내버려두겠다는 것 뿐인데. 


아카아시는 두 사람이 있는 곳을 찾았다. 보쿠토가 아이의 머리를 꾹 누르며 장난치느라 바빴다. 그가 슬쩍 선글라스를 들어올려 아이와 눈을 마주한다. 둘을 저리 나란히 두니 무서울만치 닮은 꼴이다. 아카아시는 가슴께를 꾹 눌렀다. 늑골 사이로 빗물이 흐르는 것처럼 간지러웠다. 


바쁜 아비를 둔 탓에 학교 행사같은 것에는 언제나 혼자인 아이가 항상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오늘도 잠깐이라도 보고 오려고 회사를 빠져나온 차였다.  곧 돌아가야 했다. 시간이 빠듯하면 아이를 찾아볼 여유도 없을지 몰라 돌아가는 길이 마음 아프리라 생각했다. 


아카아시는 팔에 정장 겉옷을 걸치고는 스탠드 아래로 내려섰다. 구두에 금방 흙먼지가 앉아 뽀얗게 번졌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보쿠토는 학부모 달리기에서 1등하고 얻어온 메달을 아이 목에 걸어주느라 바빠서 아카아시를 먼저 알아본 건 아이 쪽이었다. 


“아빠!”


꼬박 꼬박 아버지, 아버지 하고 부르더니 당황해서인지 금방 아빠라고 단어가 바뀐다. 아카아시는 낮게 웃었다. 아이가 곧장 아카아시를 향해 달려왔다. 아카아시가 팔을 벌리고 아이가 안겨든다. 아카아시는 아이의 머리를 쓸어넘기며 뒤에 눈치를 보고 서 있는 보쿠토를 바라보았다. 


“선배.”

“아, 아카아시. 그게. 이게 말야. 그러니까…….”


모자를 꾹 눌러 쓰고 내렸던 마스크도 다시 올리며 보쿠토가 웅얼거렸다. 아카아시가 짧게 한숨을 내쉰다. 보쿠토의 어깨도 움찔했다. 아카아시는 결국 웃음소리를 흘리고 말았다.


저 사람이 지난 10년을 울게 했다. 하지만 그건 아마도 그 전의 2년, 고등학교 시절을 웃으며 보냈던 대가가 아닌가 한다. 그것을 이제야 인정할 수 있었다. 그 2년이 뒤의 10년을 감내할만큼 찬란했음을.


“됐습니다. 그렇게 오지 말라고 말을 했는데 들은 척도 안 하시고.”

“그래서 나 이렇게 막 다 가리고 왔는데…….”

“고생하셨네요, 정말. 어떻게 그러고서 달리기를 그렇게 빨리 합니까?”

“그치그치, 굉장하지!”


떠들다가 금방 또 숨이 차는지 눈치를 보며 살며시 마스크를 내린다. 아카아시는 포기했다는 얼굴로 웃음을 흘렸다. 보쿠토가 금방 신나는 표정이 되어 아카아시 곁으로 바싹 다가와 붙었다. 답답했는지 선글라스도 벗어버린다. 아카아시는 주위를 살짝 둘러보긴 했지만 다른 말 없이 아이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카즈마, 운동회 재밌었어?”

“네, 네!”


항상 또래로는 보이지 않을 만큼 침착하고 차분하던 아이의 목소리가 지금 이 순간만큼은 조금 높았다. 아카아시는 아이의 머리를 쓸어넘겨주었다. 은빛이 섞여든 머리카락이 아카아시의 손끝에서 흩어졌다. 아카아시는 곁에서 조잘거리는 보쿠토의 이야기를 한참 들어주다가 시간을 한 번 확인했다. 


“잠깐 얼굴만 보고 가려고 들렀습니다. 시간이 빠듯해서 먼저 가봐야겠네요. 카즈마 잘 부탁드립니다.”

“나만 믿어, 나만!”


보쿠토가 가슴을 탕탕 두드렸다. 아카아시는 그 모습을 가만 보다가 고개를 돌려 무릎을 굽히고서 아이와 시선을 마주했다. 발갛게 달아오른 뺨도 땀방울이 맺힌 이마도 아직 여려 사랑스러웠다. 언제나 바빠서 제대로 봐주지 못한 모습들이었다. 


“카즈마, 끝까지 재밌게 하고 다치지 말고. 집에가서 씻고 밥 먹어, 알았지.”

“네. 아버지도…….”

“응, 나도 저녁 챙겨 먹을게.”


아카아시는 아이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주었다. 아이가 뺨까지 붉히며 부끄러워한다. 때마침 본부석에서 학생들을 소집하기 시작했다. 아카아시가 몸을 펴고 일어서서 아이의 등을 밀어주었다. 아이는 몇 번 뒤를 돌아보다가 달려간다. 아카아시는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보쿠토는 아이를 바라보는 아카아시의 옆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카아시가 눈을 내리깔았다.


“……매번 외롭게 하네요. 제가.”

“누구를? 나를?”

“……하여튼 꼭.”

“카즈마는 아닌걸?”


이런 타이밍에도 농담을 하느냐고 타박을 하려고 했던 아카아시는 입을 다물었다. 보쿠토는 장난도 농담도 아니라는 얼굴로 아카아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카즈마는 외로워할 틈도 없던데. 아빠한테 걱정 끼치지 않으려고 애쓰느라.”

“…….”

“그리고 외로워하지도 않았어. 네가 어떤 마음인지 다 아니까.”


아, 이런 사람이었다. 


아카아시는 차마 보쿠토의 얼굴을 마주하지 못하고 멀어진 아이의 뒷모습만 눈으로 좇았다. 그래, 보쿠토는 이런 사람이었다. 언제나 마냥 어린애처럼 떼를 쓰고 제멋대로 구는 것 같은데 사실은 그게 그렇지가 않았다. 이쪽이 흔들리면 놀랄만큼 단단하게, 당연하다는 듯이 지탱해주었다. 일어설 수 있을 때까지 지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그 때는 그랬다. 그런데 왜 지금도…….


“…그런 거라면 정말 다행이죠. 계속 둘이서 지내서……. 아, 시간이 많이 지났네요. 정말로 가봐야겠습니다.”


아카아시는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나갈 자신이 없어 서둘러 문장을 끊었다. 보쿠토가 입술을 삐죽거린다. 아이 앞에서는 어른 행세를 해놓고서 아이가 자리를 비우자 금방 아이보다 더 어린애처럼 투정부리는 얼굴을 한다.


“아카아시 일 진짜 너무 바쁜 거 같아.”

“조금만 더 안정 되면 좀 여유가 있는 쪽으로 이직할까 하고 있어요. 카즈마와 더 있어주고 싶고. 많이 늦었겠지만…….”


이런 이야기까지는 할 필요가 없었는데, 아카아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말을 늘어놓았다. 보쿠토가 발끝으로 운동장의 흙바닥을 한 번 긁었다. 아카아시는 다시 착용하라는 뜻에서 보쿠토의 선글라스를 한 번 건드려주고는 팔에 걸치고 있던 정장 겉옷에 팔을 꿰어 넣었다.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던 보쿠토가 아카아시의 등으로 돌아가 잘못 접힌 목깃을 제대로 펼쳐주었다. 


“아카아시는 블레이저 항상 아무렇게나 입더라.”

“……입고 나서 정리할 거였어요.”


그 항상은 10년 전의 일이고 이런 건 이제 블레이저라고 하지도 않는다며 타박을 하면 되었는데 그런 말은 나오지 않고 보쿠토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저 시간에 아주 잠시만 마음을 의탁하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였다. 


아카아시는 입술을 지긋이 깨물었다. 보쿠토가 선글라스의 테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럼 선배는.”

“아, 응?”

“제 마음을 몰라서 외로웠던 건가요.”

“……어?”


보쿠토가 눈을 꿈벅거리며 아카아시를 바라본다. 아카아시는 얼른 다시 선글라스를 착용하라는 말만 서둘러 뱉고는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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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예쁜말씀 감사합니다^-^!! 공기가 많이 안좋은데 건강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