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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면 되지!”

“안 됩니다.”


아카아시는 계란을 깨뜨리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부엌에만 불이 켜져 있는 실내는 어둠이 더 깊었다. 아카아시는 식초를 반 스푼 넣고 휘저었다. 보쿠토는 눈썹이 축 처져서 아카아시 곁에 바싹 다가갔다.


“안 돼? 왜? 아카아시 바빠서 못 가잖아. 카즈마 혼자 해?”

“어쩔 수 없죠.”

“그러니까 내가 가면 되잖아!”

“안 됩니다.”

“아 왜애!”


아카아시가 달걀물 휘젓던 나무젓가락을 탁 소리내며 내려놓았다. 보쿠토가 입을 다물고 눈동자를 굴린다. 아카아시가 보쿠토를 바라보았다. 


“선배.”

“으, 응.”

“여기 왜 오셨어요?”

“에?”

“우리집에 왜 오셨냐고요.”

“에엥…….”


이 사람 또 아무 생각 안 하고 있을 줄 알았어, 아카아시는 한숨 속에서 그렇게 생각했다. 


“선배 지금 이혼하고 매스컴 들썩거리니까 그거 피해서 여기로 오신 거 아니에요?”

“아 맞다.”

“아 맞다?”

“아,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그런데 어린 애 학교 운동회에 학부형으로 나가신다고요. 거기서 사진이라도 찍히면 어쩌시려고요.”

“에……. 어떻게 돼?”


아카아시는 손등으로 미간을 꾹꾹 눌렀다. 이 사람은 애 얼굴을 본 적이 없는 건가?


“애가 있었다, 그래서 이혼했다, 이런 기사라도 뜨면 어떡하려고요. 키리에나 씨에게도 폐고…….”

“애? 누구 애?”

“선배 애요.”

“나한테 애가 있다고!?”

“카즈마요.”

“카즈마가 내 애였어!?”

“…….”


아카아시는 마른 입술을 다셨다. 어떻게 대화가 이렇게까지 튀어나가는지 이해할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어딘가에 스스로도 모르는 자기 애가 있을 수도 있는 인생이었습니까?”

“어? 아……. 아, 아니야! 아니야! 진짜 아냐! 아니야, 아카아시 아냐!” 


처음에는 눈만 깜박거리고 있던 보쿠토가 뒤늦게 문장의 진의를 파악하고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허둥지둥 부정했다. 얼굴이 납빛이 되어서는 어쩔 줄을 모른다. 아카아시는 아이가 깨갰다며 겨우 보쿠토를 진정시켰다. 


“사람들이 카즈마랑 선배를 보고 카즈마가 선배 아이인줄 알면 어쩌시겠냐는 말입니다. 선배는 그게 아니라고 해도 신문에 뜨고 나면 그게 그렇게 되는 게 아니잖아요. 카즈마도 놀랄 거고.”

“아……. 그치만 카즈마는 아카아시 완전 쏙 빼닮았고.”


내 아이라곤 아무도 생각 안 할텐데, 보쿠토가 웅얼거렸다.


“……진심입니까?”


보쿠토가 눈을 꿈벅이며 아카아시를 바라보았다. 어느 부분에서 거짓을 의심받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아카아시는 마른 입술만 몇 번 다시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안 돼요.”

“그치만 카즈마 혼자 운동회 하는 건…….”

“카즈마도 이해해줄 거예요.”


줄곧 둘이 살았으니까요,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는 거죠. 아카아시는 그렇게 말하며 내일 아침 달걀말이에 쓸 달걀물을 완성해 냉장고에 집어 넣었다. 냉장고 내부의 창백한 빛이 아카아시의 뺨에 그림자를 만들었다. 


고개를 든 아카아시는 보쿠토를 흘끗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보쿠토의 얼굴 위로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 한가득이었다. 사고를 치고야 말 것이 너무나도 분명해서, 아카아시는 한 번 더 단호하게 말했다.


“절대 안 돼요. 알겠습니까?”

“그래도…….”

“선배를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에요. 카즈마를 위해서 하는 말입니다.”

“엑.”

“선배 아이라고 소문이라도 나면 카즈마가 학교에서 얼마나 놀림받겠습니까.”


보쿠토의 얼굴에 억울함이 물씬 깃든다. 아카아시는 설명하는 것 없이 한 번 더 단호하게 말했다. 안 됩니다. 보쿠토가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한참이 지나서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


아이는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쪽을 돌아보았다가 그만 입을 벌리고 말았다. 


초등학교 운동회가 있는 날이었기 때문에 운동장은 아침부터 모래먼지로 북적거렸고 학부모들이 스탠드석을 모두 차지한 채였다. 커다란 스피커에서 경쾌한 음악이 연신 흘러나오고, 학생들은 모두 들떠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 와중에도 시선을 사로잡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틀림없이 장신의 남자였다. 


소재가 좋아보이는 천으로 만든 트레이닝복으로 몸을 빈틈없이 감싸고 머리에는 캡모자, 눈에는 새카만 선글라스에 입은 흰 마스크로 피부가 드러난 부분이라고는 귀와 손이 전부다. 이렇게나 행색이 수상쩍으니 사람들이  흘끔거리는 것도 당연했다. 그리고 아이는 저 남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눈동자라곤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선글라스 너머로 시선이 마주쳤다, 고 생각한 바로 그 순간 남자가 팔을 붕붕 흔들었기 때문이었다. 


남자가 아마 아이의 이름을 소리 높여 부르며 다가오려는 순간에 누군가가 남자의 팔을 홱 붙잡았다. 남자가 놀라서 돌아본다. 어디로 보나 연행하는 듯이 저를 붙잡은 것은 정장 차림의 다른 남자 교직원이었다. 


아이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소년답지 않은 한숨을 짧게 내쉬고는 타박타박,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는 스탠드까지 걸어갔다. 


“아, 아니, 저 수상쩍은 사람이 아니라……. 카, 카즈마! 카즈마! 여기 와서 말 좀 해줘!”

“…….”

“카, 카즈마 군? 아는 사람이니?”


남자를 붙잡고 있던 교직원도 다가온 아이를 알아보고는 말을 붙인다. 마스크가 반쯤 내려간 남자가 간절하고 다급한 목소리로 아이를 불렀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 아버지 아는 분이세요. 오늘 아버지 대신에 운동회 대신 보러 와주셔서…….”

“아, 그랬니?”


교직원은 조금 당황한 얼굴로 남자에게 사과하고는 자리를 떴다. 학생의 학부모 대신 온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주위의 시선도 잦아든다. 겨우 제대로 된 대화를 할 만큼 조용해졌을 때, 남자가 머쓱하니 뒷통수를 긁적였다. 그러다가 모자가 툭 하고 벗겨진다. 은빛이 섞여든 머리카락이 아무렇게나 바람에 휘날렸다. 남자가 허둥거리며 겨우 다시 모자를 쓴다. 아이가 한숨을 폭 내쉬었다. 


“진짜 아버지 대신 오신 거예요?”

“아, 아니……. 어떻게 알았어? 몰래 와서 놀래켜주려고 했는데.”


남자, 보쿠토가 얼떨떨한 목소리로 묻는다. 아이는 눈을 내리떴다. 어젯밤 두 사람이 큰 소리로 대화나누던 것이 다 들렸다고는 말하고 싶지 않았다. 


“안 오셔도 되는데.”

“그치만~! 모처럼 운동회고. 아카아시도 없으면 카즈마 서운할까봐!”


저 남자에게는 선글라스나 모자, 마스크 같은 것으로는 가릴 수 없는 광채가 있었다. 아이는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고개를 삭 돌려 보쿠토의 눈을 피했다. 


“—거짓말.”

“에, 거짓말 아닌데? 진짠데! 아카아시도 걱정하니까…….”

“저 때문에 오신 거 아니잖아요.”


아이가 툭 내뱉듯이 말하며 발끝으로 바닥을 긁듯이 문지른다. 보쿠토가 고개를 갸웃했다. 


“정말인데?”

“아빠때문에 오신 거면서.”

“그야 아카아시가 걱정을 하니까 나도 카즈마가…….”

“그래서 아빠한테 잘보이려고 그런 거잖아요.”


아이가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딱딱하게 말한다. 보쿠토는 입을 다물었다. 아이는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말이 없다. 보쿠토는 얼굴을 가리려고 쓰고 온 모자의 캡을 만지작거렸다. 방금 전 떨어뜨렸을 때 묻은 흙먼지가 그의 손끝에 얼룩을 만들었다.


“음……. 들켰어?”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나 안 좋아했던 거야?”

“…….”

“뭐, 그건 어쩔 수 없네. 하지만 카즈마도 아카아시가 걱정 안 했으면 좋겠지?”


아이는 억울해서 입술을 꼭 깨물었다. 걱정끼치고 싶지 않았다. 걱정하지 않아도 잘 할수 있으니까 마음 놓아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좋은, 착한 아이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아이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어른이 되기에는 아직도 너무 많은 시간이 남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매일 오후의 설거지와 숙제, 공부가 전부였다. 오늘 운동회에 오지 못한다고 말했던 자신의 부친이 그에 얼마나 마음을 쓰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괜찮다고 말했지만 그걸로 그의 걱정과 마음을 덜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자신의 말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런데 이 남자는 너무 쉽게 해내는 것이다. 이렇게 나타나서 자신과 함께 있어주기만 하면 이것으로 자신의 부친은 한결 안심한 표정을 지을 것이었다. 자신은 어떻게 말을 해도, 달리기 경주에서 1등을 하고 와도, 받아쓰기 시험에서 100점을 맞아도 해낼 수가 없는데. 언제나 걱정을 끼치는 것밖에 할 수가 없는데. 


“오늘 하루만 같은 편 동맹 하기로 하는 건 어때?” 


아이는 고개를 들고 보쿠토를 쏘아보듯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 누구에게도 드러낸 적 없는 눈빛이었다. 보쿠토만이 처음으로 마주하는 눈빛이었다. 보쿠토가 슥, 선글라스를 살짝 위로 들어올려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날 위해서가 아니라, 널 위해서도 아니라. 아카아시를 위해서. 별로 나쁘진 않은 거 같은데?”

“…….”

“자, 그러면!”


방송으로 3학년 달리기 주자들을 부르기 시작한다. 보쿠토는 선글라스에서 손을 떼고 학생들이 모이기 시작하는 운동장 앞쪽을 가리켰다.


“아카아시 카즈마 선수! 달리기 화이팅!” 


아이는 그런 보쿠토를 말없이 쏘아보다가 휙 몸을 돌렸다. 


보쿠토는 그런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뒷목을 쓸었다. 


“질투나는 게 누군데…….”


아카아시 카즈마. 


아카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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