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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아카아시.”

“…….”


퇴근하고 연구실을 나서는 길, 아카아시는 오랜만에 보는 지인의 얼굴을 보고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주차해놓은 자동차의 본네트에 기대어 있던 남자가 몸을 바로세우며 친근한 표정을 짓는다. 한 때는 하루 걸러 한 번씩 보았던 얼굴이었다. 


“쿠로오 선배.”

“아직도 선배라고 하네.”

“선배는 선배죠……. 오랜만입니다.”


그와도 이렇게 얼굴을 마주한 것도 몇 년만이다. 그 전에도 만나는 것은 우연이나 억지에 가까웠던 것이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레 끊어졌던 것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상대 쪽에서 아카아시의 마음을 배려해 주었다는 것이 옳겠으나. 


“카즈마는 잘 지내고?”

“네. 많이 컸어요.”


이젠 초등학생이에요, 아카아시는 그렇게 말하며 다가왔고 쿠로오는 자연스레 앞의 조수석 문을 열어주었다.


“저 차 끌고 왔어요.”

“내일 아침에도 데려다줄게. 타.”


반론은 듣지 않겠다는 것이 분명했다. 유하고 부드러운 것 같은 사람인데도 단호한 구석이 있었다. 아카아시는 짤게 한숨을 내쉬고 차에 올라탔다. 쿠로오는 문까지 닫아 주고 나서야 운전석으로 돌아왔다. 


좌석 사이의 홀더에는 아직까지 김이 오르고 있는 커피 두 잔이 있다. 사들고 온 모양이었다. 아카아시의 눈길을 알아챈 쿠로오가 마시라고 사온 것이라며 권했다. 그의 손 안에서 핸들이 유연하게 움직였다. 


“보쿠토 이혼했는데, 들었어?”

“…….”

“와, 표정 봐. 역시 너한테 갔나보네.”

“역시는 무슨…….”


아카아시는 차창 밖으로 고개를 돌린 채 중얼거렸다. 10년이나 연락이 없던 사이에 역시라는 단어가 붙는 것이 우스웠다. 


“보쿠토가 연락이 뚝 끊겨서 친구들도 난리 났거든. 매스컴에서는 떠들어 대는데 애하고는 연락 된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까.”

“그것때문에 찾아오신 겁니까? 수거해 가시던가요.”


아카아시가 ‘집 주소 불러드릴까요?’라며 무신경하게 뱉는 말에 쿠로오가 뭐 대단한 농담이라도 들은 양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이 격해져 아카아시가 돌아볼 즈음 해서 때를 맞추어 신호 대기에 걸린다. 아카아시는 이러다 사고 나는거 아니냐며 쿠로오를 노려보았다. 쿠로오가 겨우 숨을 정리했다. 


“아, 아니. 그건 보쿠토가 알아서 하겠지. 사안이 사안이었으니까 찾으러 다닐 일도 아니고.”

“그럼 무슨 일이신데요.”


보쿠토와도 아주 오랜만이었지만 쿠로오와도 몇 년의 세월을 틈 아래에 두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줄은 몰랐을 만큼. 아카아시가 차창에 기대어 있던 고개를 쿠로오 쪽으로 돌렸다. 쿠로오는 핸들을 손끝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아카아시를 흘끗 바라보았다. 당연한 일에 대해 질문을 받을 줄 몰랐다는 듯이 의아한 표정과 함께.


“너한테 왔는데 그럼 너 때문에 온 거지. 보쿠토가 혹시 너 찾아갔나 해서.”

“…….”

“괜찮나, 싶어서……. 건물에서 나오는 거 보자마자 괜찮구나 했는데 오랜만이고 하니까 집까지 가는 길이라도 얘기 좀 하자고.”

“……무슨 그런.”


그런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아카아시는 그렇게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차마 말로 하지는 못한 채 다시 고개를 돌렸다. 쿠로오는 그런가, 하며 웃으며 대답할 뿐이었다. 쓸데없이 다정하고 배려심 넘치는 성격이라고 생각한다. 그 성격에 도움을 받은 처지에 할 말은 아니겠으나. 


—괜찮나, 싶어서…….


아카아시는 쿠로오가 했던 말을 되짚어보았다. 연락이 끊어졌던 선배를 오랜만에 만난 것에 대해 할만한 걱정은 아니다. 아카아시는 쿠로오의 걱정을 이해했다. 쿠로오는 아이를 본 적이 있다. 아카아시가 주위 사람들과 굳이 연락을 끊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아카아시는 아이와 함께 살겠다고 마음을 먹고 나서 아이를 단 둘에게만 보여주었다. 한 사람은 쿠로오였고 다른 한 사람은 코노하였다. 쿠로오는 아이를 보고서 ‘혼자서 키우게?’라는 말을 했고 코노하는 그를 붙잡고 날밤을 지새웠다. 이 극명한 반응의 이유는 단 하나, 아이가 보쿠토를 너무나 닮았기 때문이었다.


—아니에요, 정말로 우연이에요.


코노하는 아카아시의 부정에도 한참이나 못믿겠다는 얼굴을 했다. 그래도 마지막엔 아이가 보쿠토와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관계가 없다는 것이 닮았다는 현실을 부정해주지는 않는다. 코노하는 아카아시가 보쿠토와 닮은꼴인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한 자신의 심려를 굽히지 않았다. 닮았기에 키우는 것이 아니라고 말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보쿠토 자식이 이 핑계 저 핑계 대고 너 얼굴도 안 보는데 똑 닮은 애를 잡고 키우고 있으면 그게 걱정이 되냐, 안 되냐. 


아, 정말 그랬구나. 아카아시는 지금껏 착각일지도 모른다는 울타리 안에 두었던 사실을, 그 때 인정할 수 있었다. 그 사람이 정말로 저를 보지 않으려고 했던 거로군요,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랬다간 또 코노하의 얼굴을 백짓장처럼 만들게 될테니까. 


하지만 그렇기에 더 이상은 코노하를 만날 생각도 하지 않았다. 만나서 하는 것이 걱정 뿐이라면 만나지 않는 편이 좋다. 아카아시의 고교 시절은 그런 식으로 희미해졌고 그렇기에 더욱 실감했었다, 자신의 학창시절은 정말로 온통 그 사람뿐이었다는 것을. 단 한 사람에게서 멀어지기 위해 전부를 내던져야 했다. 


“보쿠토는 뭐래? 카즈마 보고.”

“제 애냐고 하죠.”

“푸헉.”


쿠로오의, 헛웃음이 터진 소리다. 아카아시는 피식 웃고는 다시 차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자신을 빼어닮은 아이를 보고서 놀라기라도 할 줄 알았는데, 그야 놀라기는 했으나 곧장 네 아이냐고 물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래서 넌.”

“제 애라고 했죠. 카즈마가 제 애지 누구 앱니까.”


아카아시는 일부러 모르는 척하며 대답했고 쿠로오는 그에 대해 추궁하지 않은 채 정면만 바라보았다. 


“보쿠토가 뭐라 하면서 쳐들어왔어?”

“살려달라고요. 이혼했더니 매스컴이 깔려서 갈 데가 없다고.”

“헤에, 사실대로 다 얘기 했네.”

“솔직히 말해서 보쿠토 선배도 다 크셨구나 싶었습니다. 10년 전이었다면 제가 자기 결혼 사실 같은 건 모른다고 생각하고 거짓말 하려고 들었을텐데.”


쿠로오가 킬킬거리며 웃는다. 아카아시는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시간이 흐른 것이다. 보쿠토에게도, 자신에게도. 자신은 이제 보쿠토를 보아도 괜찮다. 마음은 흔들리지만 쿠로오가 보고도 ‘괜찮다’라고 할만큼은 괜찮다. 그 정도면 되었다. 


“그런데……. 어떻게 너희 집 주소를 알았네, 보쿠토가.”

“아.”

“생각해보니까 지금 나도 너희 집 주소 모르는데. 너 어디 사냐, 아카아시?”


사거리에서 신호에 걸려 서 있던 쿠로오가 어색하게 웃으며 아카아시를 돌아본다. 아카아시는 한숨과 함께 지금 머물고 있는 아파트의 주소를 불러주었다. 



*



‘정말 그 사람이 어떻게 주소를 알았을까.’


아카아시는 차창에 머리를 기대었다. 자신의 거주지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코노하 뿐이다. 쿠로오도 회사를 알 뿐이었다. 하지만 아이를 보고서 기함을 하며 놀라던 보쿠토의 모습을 보아서는 코노하가 알려주었을 것 같지는 않은 데다가 지금 사는 곳은 이사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코노하도 모르는 곳이었다.


‘사람이라도 썼나?’


그 정도로 주변머리가 되던 사람이던가. 하지만 그 외에는 알 방법이 없기는 했다. 


‘혼을 내던지 해야지…….’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10년간 단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으면서 왜 갑자기 뒷조사를 하면서까지 찾아온 것인가? 


연락을 하지 않았다기보다는 그를 피한 것에 가까웠는데 이제와서 마음이 달라져 찾아온 이유가 무엇일까. 정말로 배우와의 결혼과 이혼 탓에 매스컴을 피하려는 이유만으로? 그런 거였다면 코노하도 쿠로오도, 다른 사람들도 있었을텐데. 어쩌면 지속적으로 연락한 상대들에겐 이미 파파라치들이 가 있었던 걸까. 달리 찾아온 특별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자신이 그 어떤 이유를 바라기 때문인가. 바란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보쿠토, 언제까지 있는대?”

“글쎄요. 기자들도 인터넷도 좀 잠잠해지면 알아서 가겠죠. 남의 집에서 눈칫밥 먹는 것도 불편할텐데.”

“걔가 그런 눈치가 있었으면…….”

“…그도 그렇습니다만. 그래도 아주 둔한 사람은 아니니까요.” 


둔하다기보다는 오히려 예민한 사람이었다. 그 예민함을 코트 위에 몽땅 두고 와서 그렇지. 


쿠로오는 아카아시가 삼킨 말을 알아챈 것처럼 킥킥 웃음을 흘리며 부드럽게 운전했다. 아카아시는 여전히 차창에 이마를 살짝 기댄 채 천천히 눈을 감았다. 학창시절을 떠올려본다. 공 하나를 바라보고 뛰어오르던 보쿠토가, 아직도 빛 얼룩 하나 없이 선연했다. 


“너 잘 있는거 봤으니까 됐다.”


쿠로오는 아파트 단지 안으로 진입해 바로 앞 주차장 근처에 차를 세우며 천천히 운을 떼었다. 아카아시는 내릴 짐을 챙기려다 말고 쿠로오를 바라보았다. 쿠로오는 아카아시를 흘끗 보며 입을 열었다.


“혹시 무슨 일 생기면 연락해.”

“네.”


그 말은 아카아시가 아이와 함께 살겠다는 이야기를 그에게 처음 했을 때에도 들었다. 아카아시는 연락하지 않았다. 


“기다린다.”

“저한테 무슨 일 생기기를요?”

“아, 진짜. 아카아시. 말 그렇게 할래.”


쿠로오가 흘겨본다. 아카아시는 픽 웃고는 태워주어 고맙다는 말만 남겨놓고 차에서 내려섰다. 쿠로오는 차 안에서 손짓했다. 들어가는 걸 보고서 가겠다는 뜻이었다. 아카아시는 한 번 꾸벅 인사하곤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아, 장 보는 거 깜박했네…….’


오늘 햄버그 스테이크 해먹기로 했는데. 하지만 돌아가기엔 늦었다. 아카아시는 오늘 저녁 메뉴가 바뀐다는 이야기에 어느 쪽이 더 실망을 주체하지 못할 것인지 재어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승강기 버튼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