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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아시 씨? 요즘 일 많은가봐.”


아카아시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들었다. 파티션에 살짝 기대어 말을 거는 사람은 직장 동료였다.


“좀 지친 것 같은데, 괜찮겠어?벌써부터.”


동료의 걱정은 어쩌면 당연했다. 이제 곧 있으면 신품 개발에 들어가야 한다. 지금은 그런 때에 비하면 한가로운 편으로, 그 때가 되면 출근을 하지 않는 날도 다반사였다. 퇴근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피곤해 보입니까?”

“음, 피곤보다는 그냥 좀 뭐 신경쓰이는 게 많은 것 같아. 괜찮은 거 맞아?”


괜찮습니다, 아카아시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동료는 영양제라도 챙겨먹으라며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떠나갔다. 아카아시는 슬쩍 미간을 눌렀다. 


보쿠토가 있어도, 같은 공간을 공유해도 자신은 괜찮을 거라고 믿었다. 그 문제를 처음부터 확신한 건 아니었지만 쿠로오도 그렇게 말하지 않던가. 너 괜찮구나, 그렇게. 분명 괜찮았던 지점이 있었다. 


‘그러다가…….’


—이거, 아카아시가 좋아하는 거라서…….


아카아시는 동작을 멈추었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의자에 몸을 파묻고 눈을 감는다. 마른 눈이 뻐근하다 못해 시렸다. 보쿠토의 목소리는 녹음을 했다가 다시 재생하는 것처럼 선명하고 끊임없이 그의 귓가에 감겨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거라서 사려고 했다고?’


그걸 내가 언제 좋아했는데. 그게 언젯적 일인데. 10년도 전에, 고등학교에나 다닐 때에. 자신조차 잊었던 것을 가지고 와서는 그런 말을 한다. 하지만 시간은 흘렀고 자신은 변했다. 그 시절의 것들 가운데에 자신에게 남아있는 것은 거의 없다. 그 중에서도 가장 없는 건, 가장 남아있지 않는 건 바로 보쿠토 그였다.


‘도대체 왜.’


왜냐하면 보쿠토가 떠났으니까. 


당신이 먼저 떠났으니까. 친밀했던 선후배 사이마저 내팽개친 건 보쿠토였다. 무엇도 남겨주지 않았고 닿을 수도 없었다. 그의 결혼식마저 자신이 영국에 있을 때였지 않았나. 차라리 보쿠토의 결혼식을 눈으로 보았다면 이 끈질기고 거추장스러운 마음을 단칼에 쳐낼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한 밤이 얼마나 많고 또 깊었는지 모른다. 


그 밤과 낮의 끝에, 재회였다. 


고등학교 시절의 기억은 아카아시에게 가시관이나 다를 바가 없었고 아카아시는 제대로 호흡하기 위해 그 가시관의 가시들을 모두 쳐냈다. 웃었던 기억, 즐거웠던 추억, 함께 했던 시간들, 마주쳤던 시선, 그 모든 것들을. 


없어야 살 수 있었고 없앴기에 살아올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에겐 보쿠토와 함께 했던 모든 것들이 흐릿했다. 썼다 지워 자국만 남아있는 오래된 일기장처럼. 그래서 더욱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보쿠토와 자신 사이에 있는 것이라고는 고등학교에서의 2년이 전부다. 그 뒤로 연이 끊긴 채 10년, 그런데 어째서 보쿠토는 마치 어제 일처럼 그 시절의 자신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걸까. 


요즘은 보쿠토와 눈을 마주치면 자꾸만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데 한 집에 살고 있으니 일일이 피하는 것도 여의치가 않아 자꾸 신경이 곤두섰던 차였다. 그게 누적이 되니 겉으로도 비칠 수밖에. 


‘슬슬 돌아가라고 해야 하나.’


유명인사의 이혼 소식이라곤 해도 들어가는 장작이 없으시 시들해진다. 들썩거렸던 매스컴도 잠잠해진지 오래였다. 아카아시는 벽에 몸을 기대고 손가락 관절로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나가라는 이야기는 진작 할 수도 있었는데 지금까지 머뭇거린 것은 아이때문이다.  


‘카즈마 돌봐줄 사람을 먼저 구하고…….’


지금까지는 아이가 하교하고 난 오후 시간을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 보모를 구하려면 구할 수도 있지만 얼마나 믿을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였다. 그 탓에 오후 시간 내내 아이를 혼자 두었다. 그게 얼마나 마음에 걸렸는지 모른다. 무얼 특별히 신경써서 돌봐주는 것이 아니더라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아이와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생각보다 의지가 되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라고.’


10년동안 연락한줄 닿지 않았던 사람을 이제야 만나서 아직까지도 한다는 생각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그런 생각을 한 스스로가 믿기지 않을 지경이었다. 자신이 10년만에 이렇게나 변했듯이 보쿠토 역시 달라진 면이 있을텐데, 어쩌자고 이렇게 쉽게.


‘그래……. 일단은 사람을.’ 


신작 개발에 들어가면 퇴근 시간이 지금보다 더 늦어지게 된다. 이젠 정말로 사람을 구해야 할 때이기는 했다. 그러고 나면, 이제 돌아가라고 말을 하자. 


돌아가라고 하자, 아카아시는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지친 한숨을 내쉬었다. 



*



—야이 미친 새끼야!


보쿠토는 귓전에서 휴대전화 단말기를 떼어냈다. 친구들에게 언제까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모처럼 마음을 다잡고 코노하에게 연락을 한 것인데 신호음은 한 번도 채 울리지 못했고 보쿠토는 코노하의 이름 첫 글자도 제대로 말할 수 없었다. 코노하가 전화를 받자마자 목소리를 높였기 때문이었다. 


“코, 코노하. 귀 아파!”

—너 진짜 아카아시한테 갔냐?

“아 왜. 뭐가 문제야.”

—뭐가 문제?야! 너 당장 나와!

“못 나가, 나가면 자동으로 문 잠긴단 말야.”


보쿠토는 소파에 드러누워 볼멘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단말기 너머의 코노하는 어지간히도 열이 오르는 기색이었다. 곧 격렬한 바람소리가 들린다. 부채질이라도 하는 모양이었다.


—미쳤지, 이 새끼가 진짜 미쳤지…….

“도대체 왜 그러는데? 아카아시는 괜찮다는데.”

—아카아시가 네 문제에서 안 괜찮다고 했던 적이 있긴 했냐?

“많았거든? 내가 아이스크림 두 개 먹겠다고 하면 안 된다고 해, 연습 좀 더 하겠다고 해도 안 된다고 해, 맨날 안 된다고 했었거든.”

—그래, 10년 전에.

“…….”

—10년 전에는 그랬지. 네가 온갖 핑계 대면서 애 피하기 전까지, 같이 있었을 때는 그랬지.


보쿠토의 얼굴에서 천천히 표정이 사라져갔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 짧은 침묵이 감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노하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카아시 아이도 있어. 봤냐?

“아—, 아. 카즈마, 봤어.”

—아무 생각이 안 드냐? 그 애 보고도?

“…….”


보쿠토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생각하면 눈앞이 핑 돌았다. 


“…정말 아카아시 애더라고.”

—…….


아카아시는 아카아시로 여전했지만, 아카아시의 아이는. 


그가 아카아시를 보지 못하는 동안 무수히 생각하고 곱씹어보던 생각과 그리움의 응집체같았다. 아이가 그를 바라보는 고갯짓 하나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그는 곁에 있지 못했던 시간을 그 아이가 전부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아카아시가 온 마음을 다해, 사랑을 쏟아 키웠다는 것을. 아이에게는 아카아시가 그토록이나 전부인 것이다. 그 고갯짓 하나마저 쏙 빼어닮을 만큼. 


“놀라기는……놀라기는 했어.”

—놀랐다 한 마디로 끝이야? 그래서 어린애까지 있는데 그 집에 눌러 앉아있냐, 아직까지?

“눌러앉아 있는 거 아니거든?”


보쿠토는 미간을 찌푸리며 투덜거렸다. 매스컴이 진정된지도 사실은 며칠이나 되었다. 키리에나도 집을 떠났다고 했다. 돌아가려고 마음먹었다면 진작 이 곳을 떠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름대로 밥값은 하고 있어!”

—무슨 밥값?

“설거지도 하고……. 또 장 볼 때 짐꾼도 하고…….”

—당장 안 나오냐.

“나가면 문 자동으로 잠긴다니까.”

—모르는 척 할래, 보쿠토? 너 이제와서 이러는 거 애한테 어떨지 생각은 안 하냐.

“내가 이제와서 뭘 그러는데.”


이제와서라니, 지금까지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아무것도 하지를 못했는데. 보쿠토는 볼멘 소리를 속으로 삼켰다. 


—너 진짜 거기 계속 있을 거야?

“아카아시가 나가라고 하면 나갈거야.”

—네가 알아서 나와야지!

“그 짓 했어, 해 봤어. 10년 전에.”


내가 알아서 나왔었어. 


그리고 10년이었다. 보쿠토는 소파의 팔걸이에 목을 대고서 고개를 뒤로 젖혔다. 거꾸로 보이는 발코니의 창, 그 창으로 쏟아지는 햇빛에 그대로 눈이 닿아 아픈 듯이 시렸다. 눈을 꾹 감아 본다. 감은 시야가 새하얗게 번져가는 기분이었다. 마음도 시리고 희게 번져간다. 지난 10년 내내 아카아시가 곁에 없다는 것을 자각할 때마다 이렇게 시렸다. 


이게 무엇인지, 어떤 감정인지 이제야 겨우 알았다. 


그러니까 아카아시가 가라고 하기 전까지는 안 가. 


—보쿠토.

“어쨌든 이혼은 잘 정리됐어. 걱정할 거 없어. 아카아시는……. 아카아시는, 내가 잘 할거니까.”

—애 너무 괴롭히지 말고!


코노하는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보쿠토는 휴대전화를 자신의 가슴팍 위에 얹어놓고는 눈을 감은 채 한숨을 내쉬었다. 아카아시가 없는 자리에서, 코노하는 항상 아카아시를 일러 ‘애’, 그렇게 부르곤 했다. 애한테 너무 그러지 마라, 애 너무 괴롭히지 마라, 애 하고 있는 거 봤냐. 


보쿠토에게 아카아시는 한 번도 아이인 적이 없었는데 코노하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 걸까, 보쿠토는 툭 소파 바깥으로 팔을 떨어뜨리며 생각했다. 자신에겐 아카아시가 너무나 커서 어떻게 해도 단 한 순간도 아이 보듯이 할 수가 없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