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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아시가 승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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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하늘 위에서 벨이 울린다. 


*


승무원은 사람들이 작은 짐가방을 들고 걸어오는 모습이 언뜻 비친 통로를 확인하며 탑승구 쪽을 바라보고 옷깃을 바로 했다. 그와 가까운 사람이라면 알아볼 수 있는 피로가 붙어있는 눈매였다. 아니나다를까 곁에 선 사무장이 그 얼굴을 보곤 짓궂은 표정으로 조그맣게 웃어주었다. 


지금 탑승을 시작한 승객들은  일등석과 비즈니스클래스 쪽의 승객들이었다. 승객들이라고는 해도 이번 비행의 일등석 승객은 세 명이 전부인지라, 복도에 모습을 비춘 것도 두 사람 뿐이었다. 그리고 그 둘 중에 앞서서 경쾌하게 걸어오고 있는 남자가 있다. 옆에서 누가 기웃거리기라도 하면 10년은 알아온 친구 대하듯 인사를 할 것같은 얼굴이었다. 실제로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승무원은 그렇게 생각하며 손끝으로 미간을 문질렀다. 


“아-카-아-시!”

“…….”

“……크흠, 탑승을 환영합니다. 저는 이번 비행의…….”


사무장은 아무리 봐도 이쪽엔 도통 관심이 없는 승객을 보며 어색한 미소를 그렸다. 그래도 인사를 도중에 관둘 수는 없으니 최대한 자연스럽게 마무리짓고 조용히 곁에 선 승무원을 바라보았다. 승무원은 ‘눈도 마주치고 싶지 않다’는 표정이 얼굴 위에 선명히 드러나있었지만 상사의 눈총에 눈매를 누그러뜨렸다.


“탑승을 환영합니다. 저는 이번 비행에서 A1석부터…….”

“아카아시, 아카아시~! 잘 지냈어? 오랜만이지!”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손님. 안으로……. 들어가시죠……. 뒤에 다른 손님이.”

“앗…….”


뒤쪽에 선 다른 탑승객이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야 비행기 안으로 들어가란 말을 했다고 생의 마지막 작별 인사라도 들은 듯이 어깨가 축 처져서 안으로 들어가는 비행기 탑승객을 또 보기란 어려운 일일 터였다. 


두 번째 탑승객도 무사히 환대를 마치고 아직 오지 않은 세 번째 탑승객을 기다리고 있을 때, 객석 쪽에서 다른 승무원 한 사람이 곤란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사무장이 어련하겠는가 하는 표정으로 곁에 선 승무원을 향해 고갯짓했다.


“아카아시 씨, 들어가봐.”

“아직 다른 한 분이…….”

“그건 유코 씨 부를테니까.”

“하지만.”

“VIP잖아. 진상 피우는 것도 아닌데 잘 좀 해줘.”


순간 승무원의 표정이 무시무시하게 변했지만 사무장은 눈동자를 굴리며 안 보이는 척, 안 들리는 척 딴청을 피웠다. 자신이 이 승무원의 상사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친구였다면 숱이 얼마 남지도 않은 머리채를 잡혔을지도 모른다. 


결국 승무원이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몸을 돌리자마자 곤혹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던 다른 승무원, 유코가 반색하며 그를 환영했다. 


“아카아시 씨, 얼른 들어가봐. 엄청 시무룩해지셔서…….”

“…….”


지금껏 사무장과 대치하던 승무원, 아카아시 케이지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유코는 그런 아카아시를 보고서도 모르는 표정을 짓고는 사무장 곁으로 가 탑승객을 기다린다. 아카아시는 미련이 한껏 남은 표정으로 탑승구를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일등석 캐빈(cabin)으로 향했다. 


아카아시가 승무원으로 오르는 비행기의 A1, 창가 자리엔 언제나 한 사람이 있다. 물론 아닐 때도 있다. 당일 왕복이 끝나는 홍콩행 같은 경우엔 그가 없는 날이 더 많다. 하지만 오늘처럼 프랑크푸르트나 런던, 시드니 등 열 시간 이상의 장기 비행을 할 때면 항상 그가 있었다. 


‘VIP? VIP긴 하지, 한달에 열 번을 일등석을 타는데.’


비행 시간이 열 시간이 넘어가는 일등석 티켓은 왕복에 150만엔쯤 된다. 다섯 곳만 오가도 700만엔이 훌쩍이다. 이런 손님이 VIP지 무엇이겠나? 그리고 비행기에서 일등석 손님이란 교양과 양식있는 신과도 같다. 


그리고 저 손님은 사무장의 말대로 그다지 피곤하게 굴지 않고, 도리어 좋은 손님인 축이었다. 키 크고 잘생겼으며 몸도 좋고 돈도 많은데 덩치에 어울리지 않을만큼 사랑스러운 애교도 있다. ‘손님 점수표’같은 게 있다면 승무원들이 모두 10점 만점에 12점을 주었을 법한 손님이었다. 아카아시만 제외하고. 


“……손님, 겉옷 걸어드릴까요.”

“아카아시!”


시트에 푹 퍼지듯 누워서는 창밖만 보고 있던 남자가 화르륵 몸을 일으킨다. 아카아시는 최대한 덤덤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반가워서 어쩔 줄 모르는 얼굴이 되었다가 헛기침 몇 번으로 표정을 정리하곤 겉옷을 벗어서 아카아시에게 불쑥 내밀었다. 


“이륙까지는 조금 더 기다리셔야 하는데, 마실 것과 간식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가져다 드릴까요?”

“아카아신 아침 먹었어?”

“……저는 먹었습니다. 손님께서…….”

“아카아시 먹었으면 나도 됐어~!”


싱글싱글 웃는 금빛 눈동자가 그를 바라본다. 아카아시는 그 어떤 손님 앞에서도 평정을 잃지 않았기에 이번에도 간신히 버틸 수 있었다. 


“다른 짐은 없으십니까? 말씀해주시면…….”

“없어, 탈 때 보냈어!”


그러셨겠죠. 아카아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단정한 표정으로 남자를 주시하다 허리를 폈다.


“필요한 일이 생기면 언제든 편하게 불러주십시오. 그럼 이…….”

“앗, 아, 아! 아카아시이이~!”


‘이만’이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목소리가 쭉 늘어진다. 아카아시는 입술을 한 번 꽉 깨물었다가 펴고는 보쿠토를 바라보았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남자가 수줍은 듯한 표정을 지었기 때문에 아카아시는 이것이 무언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틀어질 전조라는 걸 알아차렸지만 차마 입을 다물라고는 말하지 못하고, 잠자코 남자의 말을 기다렸다. 남자가 속삭이듯 손을 모은다. 아카아시는 몸을 숙이고 남자의 말에 귀기울였다.


“저기, 아카아시…….”

“예.”

“엉덩이 한 번만 만지게 해주면 안 돼?”

“……손님.”


아카아시는 이 상황에서 도리어 미소를 짓고 만 자기자신을 독려하며 남자의 금빛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일등석에 제공되는 식기는 쇠로 만든 커틀러리 세트라는 걸 아십니까?”

“그…….”

“물론 아시겠죠. 이번 달에만 세 번째 탑승이시니까요. 그 나이프는 고기도 부드럽게 자르죠.”

“그, 그렇……죠…….”

“그렇겠지요? 이륙 전까지 간단한 간식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뒤에서 남자가 칭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아카아시는 깨끗히 무시하고 몸을 돌렸다. 


*


자신의 근무 일정이 새어나가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아카아시는 당장 사무장을 찾아가 언성을 높이고 대치했지만 사무장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직원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힘쓰지는 않았다. 높으신 분의 뜻이니 어쩔 수 없다고, 이번 달에도 보너스를 챙겨주겠다는 말이 전부였다. 


아카아시는 그 자리에서 사무장의 책상을 엎어버리려고 했지만 사무장이 잽싸게 도망가버리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하고 침중한 얼굴로 사무실을 나서고 말았었다. 


그야 그럴 것이, 항공사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상대는 일등석과 비즈니스 클래스 탑승 고객이다. 그 상황에서 한달에 최소 다섯 번 이상 일등석에 올라타는 손님에게 지극한 건 당연한 일이었는데 그 손님의 목적은 단 하나, 승무원 아카아시 케이지의 얼굴을 보는 것이었다. 


사실을 알았을 때 아카아시가 노발대발 한 것도 당연한 일이다. 어떻게 직원을 팔아서 고객을 유치할 생각을 하느냐고 아카아시가 목소리를 높여도 돌아오는 목소리는 한결같았다. 업무 시프트가 새어나갈리가 없다는 진심어린 부정이 당연히 첫번째였는데, 그 주장은 그 손님이 벌써 여섯차례 아카아시가 탑승하는 비행기만 골라 탔다는 사실로 인해 무산되었다. 그 다음에는 윗선에서 알아가는 것 같다는 변명이 나왔고 그 다음에도 그 다음에도 변명이 따라붙었다. 그리고 무엇도 수리되지 않은 채 여기까지 온 것이다.


“손님, 빵과 마실 걸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아카아시도 먹을래?”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저는 괜찮습니다…….”


사양의 말을 한 뒤 테이블에 테이블 보를 깔고서 빵과 음료를 올린 아카아시는, 야무지게 빵을 먹어치우는 남자를 아련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웅? 아카아시?”


그의 저돌적인 호감 표시는, 그 표정만은 천진한 어린애 같은데 얼굴을 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한 달에 700만엔을 하늘 위에 흩뿌리는 자금력과 그 만나고 싶은 사람의 업무 일정표를 기어코 손에 넣는 집념에 내키는 대로 해외를 들락거릴 수 있는 자유로운 시간 운용이 더해져 실로 무시무시한 박력이 있다. 


“손님.”

“응! 이거 먹을래? 이 빵 되게 맛있다. 얼마 전에 광고 봤거든, 프랑스 어디 버터만 쓰는 거라고 했지? 우리 빵도 여기로 바꾸라고 할까.”

“예, 빵도 바꾸시고 손님 항공사도 바꾸심이 어떠하신지요.”

“에…….”


그리고 이 남자가 그럴 수 있는 이유는 하나, 아카아시가 근무 중인 항공사와 경쟁 관계에 있는 항공사 오너의 하나 있는 장손이기 때문이다. 


아카아시가 머리를 쥐어뜯게 되는 또 다른 이유 중에 하나이기도 했다. 집안이 비행기를 굴려 먹고 사는데 왜 남의 회사 비행기를 자꾸 오르려 드는가? 심지어 저 남자는 전용기도 따로 있었다. 그런데 매번, 굳이, 아카아시가 일을 하는 일정에 항공기를 골라 타는 것이다. 물론 그 이유는 하나다. 


아카아시를 만나기 위해서. 


“아카아시, 이직하게? 우리 회사 올 거야?”


남자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아카아시는 목구멍으로 솟아오르는 울화를 꾹 눌렀다.


“개소……말도 안 되는 말씀을 하시네요. 제 말은, 이렇게 이동 시간이 기니 보다 심신에 편한 쪽을 이용하셔서 손님의 안위에…….”

“내 심신이 이거 좋대서 타는 건데.”

“안 좋습니다.”

“내, 내가 좋다니까?”

“안 좋다니까요.”

“아 진짜! 아카아시!”


남자가 체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응석부리는 투로 말을 했지만 아카아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어차피 들어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문제이기도 했다.


“곧 있으면 이륙할테니 테이블을 정리하겠습니다.”


반이나 남은 빵과 음료를 모두 치우고 테이블보까지 접어버리자 남자가 또다시 부루퉁한 표정을 지었지만 아카아시는 턱을 세우곤 ‘필요하시면 말씀해주세요.’라는 말과 함께 매섭게 등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