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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아시는 실험값을 들여다보느라 피곤한 미간을 살짝 문지르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평소라면 피곤함에 턱을 괴고 있을 오전 나절이었는데 묘하게 붕 뜬 기분이 들고 마는 것은 어젯밤 불시에 그의 집에 들이닥친 손님 때문이다. 아카아시는 어깨를 한 번 주므르고 다시 실험값 확인으로 돌아가려다 멈칫했다.


“……구 하나가 바람이 난 거지~! 성격 차이는 무슨. 좀만 기다려봐라. 이제 법정 개싸움이지. 정부에서 뭔 정책에 손이라도 댔나 몰라. 갑자기 이걸 빵빵 터뜨리고.”

“이번에 키리에나 안즈 걔 영화 찍은 거 남자 주인공이랑 케미 쩔었다며. 여우주연상 얘기도 나오고 그러던데. 그 둘이 눈 맞은 거 아냐?”

“근데 걔는 좀……. 뭐라지? 얇지 않나? 보쿠토 코타로 몸을 매일 보고도 그쪽으로 쏠릴 생각이 드나봐.”

“바람핀 게 그 쪽이 아닐 수도 있는 거 아냐? 아니면 다른 문제가 있거나…….”


다른 실험실의 동료들이 지나가며 가십으로 떠드는 대화 속에 아는 사람의, 이젠 그의 집에 머무는 사람의 이름이 떠돈다는 것은 실로 기묘한 감각이었다. 아카아시는 보쿠토의 이름이 들렸을 때 분노를 느끼거나 변론할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은 스스로를 칭찬하며 천천히 마우스의 휠을 돌렸다. 


그야 어젯밤에도 TV에서 시끄럽게 굴만큼 대단히 난리였고 그 난리법석을 피울 정도의 유명인사였다, 두 사람 모두. 한 쪽은 어려서부터 연예계에서 차곡 차곡 커리어를 쌓아온 연기력도 미모도 지지 않는 대배우였고 다른 한쪽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매스컴의 주목을 받아오며 국가대표 주장 자리까지 손에 거머쥔 배구선수, 심지어 배구 선수 쪽은 선수로서의 커리어 뿐만이 아니라 광고계의 블루칩 취급을 받으며 한동안은 매체를 틀었다 하면 90%의 확률로 그의 광고를 보아야 했다.


그런 두 사람이 결혼을 할 때에도 얼마나 요란했던가. 특히나 배우 키리에나 안즈 쪽은 스캔들 하나 없었던 사람이었던지라 더욱 날벼락같은 소식이었다. 두 사람의 웨딩 비디오가 얼마나 웹을 떠돌았는지 가장 잘 알고 있는 건 아카아시였다. 왜냐하면 당시에 아카아시는 그에 관련된 화제는 죽어라 피하고 다녔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꼭 한 번은 그에 관련된 소식을 보아야 했던 것이다. 그 소식을 보지 않으려고 혼자서 웹사이트 필터링 프로그램까지 돌렸건만 마주할 지경이었으니 보통 사람들은 아마 물리도록 그들의 이야기를 보고 또 보아야 했으리라. 


그 두 사람이 이번엔 이혼을 했다. 이게 결혼 하고 몇 년 만이던가, 아카아시는 의미 없이 마우스 버튼을 클릭하며 생각했다. 자신이 영국으로 유학을 갔다가 돌아오기 직전 해에 결혼을 했으니 아마 6년이나 7년만일 것이다.


‘그러게. 왜 이혼을 했을까.’


너무 터무니없이 얼굴을 마주하게 되어 보쿠토의 이혼에 대해 말할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아카아시는 턱을 괴고서 멍하니 숫자와 영문의 나열을 바라보았다. 


보쿠토가 결혼을 했다고 했을 때는 ‘왜’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보쿠토는 말하자면 태양과 같아서, 스스로 빛도 마음도 뿜어내는 사람이었다. 넘쳐 흐르는 것들은 그 자체로 눈이 부신 것들이었는데 보쿠토는 그 반짝이는 것들을 주는 데에도 거리낌이 없는 남자였다. 그걸 가지고 싶은 사람들은 정말 많았을 것이다. 자신이 그랬듯이. 그들 가운데에 누군가가 그것을 마침내 쟁취해 냈으리라 여겼다.


하지만 이혼은, 어째서? 


사람이 결혼을 한다면 세 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필요해서, 어쩔 수 없어서, 사랑해서. 하지만 보쿠토는 보통 사람들이 결혼으로 가질 수 있는 것들은 얼마든지 손에 쥘 수 있었고 스스로를 강제하는 것들은 다 깨부수며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러니 보쿠토가 결혼을 했다면 그것은 사랑해서이리라. 그것밖에는 이유가 없었다. 그럼 헤어진 것은 어째서? 사랑이 식었기 때문에?


“……하.”


아카아시는 헛웃을 터뜨렸다. 그래, 그것말고 무엇이 있겠는가. 사랑이 식었기 때문에. 마음이 변했기 때문에. 결혼할 때와는 생각도 감정도 달라졌기 때문에.  


그가 알던 보쿠토는 마음이 변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10년이었다. 자그마치 10년, 얼굴도 마주하지 못하고 연락 한 줄 닿지 못한지 10년. 사람이 변하기에 이보다 더 충분할 시간이 또 있을까. 자신도 어딘가 많이 달라지고 바뀌었을 것이다. 보쿠토 역시 그럴 것이다. 


보쿠토가 그가 알던 모습에서 조금도 변하지 않은 것을 보며 거북해했으면서도 막상 그가 알던 보쿠토와는 다른 사람이라 생각하자 그것도 선뜻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아카아시는 그런 스스로를 자조하며 눈을 내리떴다. 



*



들어오는 상대에게 그대로 주먹을 날릴 기세로 서 있던 보쿠토는 자신의 눈높이보다 한참 아래에 작은 소년이 들어오자 흠칫하며 자신의 손을 뒤로 돌렸다. 문을 꼭 닫던 아이가 고개를 들고 보쿠토를 올려다보았다.


“……안녕하세요…….”

“아, 아, 안녕…….”


그러고보니 벌써 오후 시간이었다. 보쿠토는 침을 꼴깍 삼키며 뒤로 물러섰다. 아이가 학교 마치고 돌아올 시간이 되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하고 도둑같은 것인 줄로만 알았다. 보쿠토가 옆으로 바짝 물러서자 아이가 제 발에 실내용 슬리퍼를 꿰어 신고는 안으로 들어왔다. 


보쿠토는 머쓱한 표정으로 눈동자만 굴리며 주춤주춤 아이를 흘끗거렸다. 자신의 방에 가방을 내려놓고 온 아이가 부엌으로 향한다. 보쿠토가 뭐 꺼내줄까, 그런 말이라도 해보려고 했지만 그보다 아이가 발받침을 싱크대로 끌고 오는 것이 먼저였다. 


보쿠토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다가 아이가 물을 틀고는 손에 고무장갑을 낀다. 조막만한 어린애의 손에는 고무장갑이 한 마디가 넘게 남았다. 그리고 아이는 아침에 먹은 그릇을 설거지하기 시작했다. 


“헉! 내, 내가 할게!”

“괜찮습니다.”


보쿠토가 다가와서 서둘러 손을 내밀었지만 아이는 어깨로 이마의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고개를 저었다. 단정한 말투에 단호함이 엿보여 더는 무어라 말을 할 수 없게 만드는 목소리였다.


보쿠토는 단번에 기가 죽은 얼굴이 되어 손만 맞잡고 어색하게 서고 말았다. 따지자면 자신의 키에는 겨우 절반, 체격으로는 절반의 절반이 될까 싶은 열살박이 어린애였다. 그런데 말투 하며 행동거지 하며 누가 아카아시 아들 아니랄까봐 전부 아카아시를 쏙 빼어닮아 보쿠토로서는 도통 어쩔 줄을 모르는 것이었다. 학창시절에도 보쿠토는 아카아시가 조금만 눈매를 세우거나 목소리를  낮추어도 꼼짝을 하지 못했다. 그에게 미움받는 건 상상도 하지 못할 영역이었다.


“아니……. 그, 내가 생각을 못해가지구……. 미안…….”

“……손님이신걸요.”


그릇을 씻던 아이가 그렇게 대꾸한다. 어린아이답지 않다 싶을 정도로 똑부러지는 말투였다. 보쿠토는 더욱 머쓱해져서 입을 다물었다. 아침식사에 쓰였던 식기뿐이었기에 아이의 설거지는 금방 끝이 났다. 아이는 고무장갑을 벗어 싱크대에 걸쳐두고는 발받침에서 내려왔다. 


아이가 조르르 방으로 돌아간다. 어쩔 줄 모르는 건 보쿠토 한 사람이었다. 보쿠토는 양손을 맞잡기도 했다가 자신의 머리를 벅벅 긁기도 했다가 결국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 때 아이의 방문이 다시 열린다. 보쿠토는 어깨를 움츠리고는 눈동자를 굴렸다. 아이의 손에는 교과서와 노트 같은 것이 들려있었다. 


아이가 소파 앞의 작은 탁상에 교과서와 공책을 올려놓고는 자리를 잡았다가 잠깐 멈칫하며 보쿠토를 쳐다본다. 보쿠토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전혀 알 수가 없어서 눈을 피하지도 못하고 손발만 허둥거렸다. 아이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에게 다가와 무언가를 쥐어주었다.


“아…….”

“심심하면 TV보세요. 아니면 책…….”


그건 아카아시가 아침에 했던 말과 똑같아서, 보쿠토는 황망한 와중에도 작게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금방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내저을 수밖에 없었다. “별로 심심하지는 않고, 책이나 볼까…….” 아이는 보쿠토의 말에 크게 상대해주지 않고 탁상 앞으로 돌아와 숙제인지 아니면 공부인지 연필을 쥐었다.


‘이거 미움받는 건가? 미움받는 거지?’


아이는 낯선 사람에 대한 일말의 호기심이나 거북함마저 없는 눈치였다. 이쯤이면 미움이라고도 할 수가 없고, 그냥 없는 사람 취급에 가깝다. 보쿠토는 애써 울상을 삼키며 조심스레 소파의 구석에 자리잡았다. 아이와 뭔가 대화를 나눠야할까 싶기도 했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화제도 없었다. 당장 생각나는 말이라곤 ‘아하하, 이 형이 TV보기가 좀 그래. 지금 내 얼굴이 너무 많이 나오거든…….’ 이런 것뿐이다. 


‘형? 형이라고 하는 게 맞나? 아카아시 아들이면, 나한텐…….’


코노하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요령있는 얼굴로 웃으며 금방 삼촌이라고 했을 것이다. 쿠로오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아직은 형이라며 농담을 했을지도 모른다. 보쿠토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아이가 흘끗 돌아보는 시선에 화들짝 놀라서는 얼른 표정을 고쳤다. 하지만 보쿠토가 애쓴 보람도 없이 아이는 다시 노트에 고개를 박고 열심히 숙제를 시작한다.


보쿠토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울상을 지었다. 


‘역시 미움받는 거야!’


하지만 이것을 어떻게 타개해 나갈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 것이었다. 보쿠토는 정신적으론 머리를 쥐어뜯으며, 얼어붙은 듯이 꼼짝않고 앉아서 오후 내내 지는 노을의 눈치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