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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겠습니다.”

“자……잘 먹겠습니다!”


보쿠토가 눈동자를 굴리며 눈치를 보다가 잽싸게 함께 외쳤다. 식탁 위에는 단정한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국과 밥이 함께 나왔고 반찬은 보기 좋게 담겨있다. 그게 꼭 아카아시 답다는 생각이 들어서, 보쿠토는 숟가락을 꼭 움켜 쥐고서도 배시시 웃음을 흘렸다. 


“빨리 드세요. 저 애 학교까지 데려다주고 출근해야 하니까. 낮 동안은 집에 있으실 수 있죠? 심심하면 TV나 책 보시던가 하시고.”

“어……. 으응…….”


아카아시가 덤덤하게 하는 말에 아이가 흘끗 보쿠토를 바라본다. 보쿠토는 금방  한껏 시무룩한 표정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로는 평범한 아침 식사 시간이었다. 아카아시는 보쿠토를 보고 빨리 먹으라며 재촉했지만 양이 단촐했던지라 서두를 것도 없이 금방 그의 식사는 바닥을 보였다. 먼저 식사를 마친 보쿠토는 차마 숟가락을 먼저 내려놓지도 못하고서 어색하게 빈 그릇에 헛수저질을 했다. 아카아시는 아이와 나란히 식사를 끝냈고, 아이가 ‘잘먹었습니다.’라고 인사를 하곤 자리에서 일어나 그릇을 싱크대에 가져다 놓았다. 보쿠토는 그 모습을 보고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는 ‘잘 먹었습니다!’ 하고 버럭 외쳤다. 아카아시와 아이가 나란히 놀라서 그를 쳐다본다. 보쿠토는 먹은 그릇을 가지고 싱크대로 내달렸다. 


아카아시는 어제부터 하루종일 표정이 이랬다 저랬다 이지러지는 무지개같은 보쿠토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리고 나직히 한숨을 내쉬었다. 


“카즈마, 책가방 다 챙겼니? 숙제는?”

“챙겼어요!”


아카아시는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평소와 다름없는, 적당히 여유가 있는 시간이었다. 


“문이 자동으로 잠겨서……. 여벌 열쇠가 없으니까 나가지 마시고 집에 계세요. 다른 약속이  있으셔서 늦게 오시면 상관없겠지만.”

“아, 아냐. 집에 있을게.”

“뭐 매스컴 생각하면 어디 안 나가시는 게 나을 수도 있겠네요……. 그럼.”


다녀오겠다는 말이 나오려고 하는 것을 잡아채어 억눌렀다. 어째서인지 말하고 싶지 않았다. 아카아시는 아이의 손을 단단히 쥐고, 반대편 손으로는 열쇠를 손으로 쥐었다. 


보쿠토가 그의 맞은편에 서 있었다. 현관에 서서는 그를 보고 있다. 아침 일찍 씻은 탓에 머리카락은 아무렇게나 흐트러진 채, 그가 기억하는 10년 전 모습 그대로 활짝 웃으면서. 마치 기가 막힌 꿈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어서 도리어 현실이라 착각하게 되는 그런 꿈. 


차가운 금속이 그의 손 안에서 감각을 일깨웠다.


“잘 갔다와!”


보쿠토가 활짝 웃으며 손을 크게 흔들었다. 아카아시의 손을 쥔 아이가 보쿠토에게 꾸벅 인사한다. 아카아시 역시 고갯짓으로 인사하고는 현관 문을 열었다. 늦가을의 선뜻한 공기가 뺨을 스치고 부드러운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닫힌다. 그와 동시에 아이가 조그맣게 안도의 한숨같은 것을 내쉬었다.


“카즈마. 많이 불편했어?”

“아, 아니요……. 그냥 아버지 친구분이시니까…….”


아이가 고개를 내저으며 다급하게 말한다. 아카아시는 그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불편했느냐고 묻는다고 불편했다고 대답할 아이는 아닌 것을, 아이를 키운 그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좋은 분이신 것 같아요!”


아마도 자신의 마음을 풀어주려고 저런 말을 하는 것이리라. 아카아시는 알면서도 살짝 고개를 돌려 아이의 시선을 피했다.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 아닌 것은 자신도 알았다. 나쁜 사람이었더라도 좋아했을 것이다. 좋은 사람이라서 사랑까지 했다. 혼자서, 그랬다. 


‘하지만 착한 사람은 아니었지.’


아카아시는 등 뒤가 무거운 기분에 절로 나오려는 한숨을 꾹 눌렀다. 자꾸 한숨을 쉬면 아이가 걱정한다. 


“학교 끝나고 집에 혼자 올 수 있겠니? 아빠 친구랑 같이 있기 불편하면 오늘은 슌 네…….”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아이가 고개를 흔든다. 잿빛 머리카락이 함께 흔들렸다. 간절한 것같은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며 걱정 말라 말한다. 아카아시는 어째서인지 마음이 아파와서 아이를 한 번 꼭 끌어안았다. 


“그럼 이따 밤에 보자.”

“네! 다녀오세요.”


아이가 등교하는 시간은 언제나 아카아시의 출근 시간에 맞추어 조금 이른 때였다. 사람이 드물어 한산한 정문 앞에서 아이가 아카아시의 뺨에 입을 맞추고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 꾸벅 인사한다. 아카아시는 아이를 교문 안으로 가볍게 이끌었다. 아이가 그를 향해 손을 흔들고는 학교 쪽으로 몸을 돌린다. 아카아시는 겨우 한숨을 한 번 내쉬었다.


“조금쯤 응석 부려도 괜찮은데…….”


도통 어리광 한 번 부리지를 않으니 서운한 마음마저 들지만, 아이가 저렇게 의젓하게 구는 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알면서도 그러지 않았으면 한다. 아카아시는 다시 한숨을 내쉬며 미간을 꾹 눌렀다. 지금 그의 집에 있는 커다란 그 남자의 어리광 반만 떼어올 수 있으면 좋을텐데. 


*


타악, 소리가 나며 묻이 닫힌다. 보쿠토는 붕붕 흔들던 손을 천천히 내렸다. 천천히 뒤를 돌아본다. 얇고 투명한 커튼에 한번 걸린 아침 햇빛이 거실을 온화한 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소파는 달콤한 베이지색. 식탁은 흰 대리석으로 만든 것. 바닥은 밝은 색의 나뭇결무늬로 깔려 있었고 벽지에는 보일듯 말듯 크림색으로 세로선 무늬가 있어 빛을 반사했다.


“아카아시, 집…….”


보쿠토가 여기에 닿기 직전까지 막연히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그야 그게 당연한가? 아카아시네 가봤던 건 10년도 전이니까.’


그리고 그 때의 아카아시네 집이라고 하면 그건 아카아시의 집이 아니라 엄밀히 말해 아카아시 부모님 소유의 집이다. 보쿠토는 겨우 여유가 생겨 찬찬히 주위를 둘러보며 10년 전에 보았던 아카아시의 방 모습과 하나 하나 대조해 보았다. 그 때 아카아시는 침구도 흰색과 남색 줄무늬로 된 것을 썼었고 벽지는 청회색 줄무늬, 그런 것이었는데……. 


그 때의 기억이 놀랍도록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 기억 속에 있는 것과 비슷한 것이라고는 부엌의 전경 정도였다.


‘애가 있어서 그런가?’


애. 아이. 


거기까지 생각한 보쿠토는 조금 침울한 표정이 되어서 뺨을 긁적였다. 아이는 누가 뭐라 할 수 없을 만큼 아카아시를 쏙 빼어닮아 있었다. 밥 먹을 때 입을 오물거리는 것이라거나 항상 말미를 단정히 하는 것이라거나, 침착하게 자기 할 일은 다 하는 것까지도. 아카아시가 아이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보쿠토는 아카아시가 그렇게 녹아날 듯이 다정히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니, 딱 한 번밖에 들어본 적이 없었다. 


—선배. 졸업, 축하드립니다.


보쿠토는 곧장 바닥에 드러누웠다. 얇은 커튼을 통과한 햇살이 그의 눈꺼풀을 아프지 않게 간지럽혔다. 눈을 감으면 곧장 10년 전의 그 날이 사진을 보는 것처럼 선명하게 떠올랐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흩날리던 날이었다. 오전 내내 사람들 사이에 이리 저리 휩쓸리고 축하받고, 축하하고, 사진 찍고, 그렇게 꽃다발까지 한가득 품에 안고서 그 후배를 찾아갔더랬다. 후배는 언제나 두 사람이 함께 귀가하곤 했던 길목의 커다란 벚나무 아래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후배의 손에도 꽃다발이 하나 있었다. 풍성하고 아름다운 것이었다. 후배는 보쿠토가 떠안고 있는 것들을 보곤 괜히 준비했다며 사과의 말을 하는데 보쿠토가 말을  끊고 그 꽃다발을 빼앗아 들었다. 후배가 그런 보쿠토를 보며 웃었더랬다. 가끔 그와 동기들이 실없는 농담을 할 때면 짓곤 하는 그런 웃음이었다. 부드러운 봄의 빛이었다. 보쿠토는 후배의 어깨에 묻어 있는 꽃잎을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보쿠토는 계속 말하고 싶었다. 아카아시, 너 어깨에 꽃이 앉아 있어.


후배는 그를 한참이나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청록빛 눈동자에 봄의 볕이 깃들어서 푸르게 보였고 그게 꼭 맑은 날의 바다같았다. 후배는 평소처럼, 그가 2년 내내 보아온 그대로 단정한 차림으로 가만히 서서 한참이나 그를 바라보았다. 보쿠토는 계속 말하고 싶었다. 아카아시, 너 어깨에 꽃이 앉아 있어! 그러면 그의 후배는 몰랐다는 듯이 눈을 두어번 깜박거리고는 아, 그렇네요, 그렇게 대답해줄 것이었다. 


목이 계속 간지러웠다. 재채기를 하고 싶은 기분인걸까, 생각했지만 재채기는 나오지 않았다. 꽃다발을 품에 안고서 후배가 자신을 바라보듯 자신도 후배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다가 후배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뜨고는 나직히 말을 하기를, ‘선배. 졸업, 축하드립니다.’, 라고. 


그 말이 어찌나 부드럽고 달게 울렸는지 보쿠토는 그만 너의 어깨에 꽃이 앉아 있다고 말하는 것을 깜빡하고 말았더랬다. 


그리고 그렇게 10년이었다. 


보쿠토는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