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쿠토는 침대에 드러누워 주섬주섬, 옆에 놓인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손바닥만한 지퍼백이었다. 안에는 깨알같이 작고 검은 알갱이가 한 줌 들어있다. 그것들이 보쿠토의 손을 따라 지퍼백 안에서 이리저리 움직였다. 오늘 그의 한 살 어린 후배가 항상 지니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건네준 것이었다.
양귀비 꽃의 씨앗이라고 했다.
*
보쿠토는 팔짱을 끼고서 눈을 가늘게 떴다. 저 멀찍이서 가볍게 스트레칭하고 있는 부원들이 눈에 보인다. 그 중에 단연코 그의 눈에 새기듯 들어오는 한 사람이 있었다.
아카아시 케이지였다.
아직 마릇한 몸이지만 그래도 갓 입부했을 때에 비하면야 일 년 가까이 시간이 지나 키도 체격도 붙은 것이다. 선배들에게는 장래의 주전 세터, 코치와 감독에게는 눈부신 기대주라던가. 동기들과도 제법 사이가 좋다고 동기가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자신에게도 좋은 후배였다. 그가 오고 나서부터는 욕심껏 스파이크 연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말도 되지 않는 고집도 들어주는 면만 보아도 보통이 아니라며 곁에서 코노하가 혀를 내두르곤 했다.
‘친한가? 친하지, 아무렴 친하지…….’
솔직히 말해서 부원들 가운데에 가장 친한 사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동기들과도 하지 못한 이야기를 늘어놓은 적도 있었다. 그야 아침 해가 뜰 때부터 해가 다 저물 때까지 매일같이 함께하고 있으면 정이 들지 않는 쪽이 더 이상하다. 지난 인터하이가 끝났을 때 가장 먼저 했던 생각조차 ‘내년에는 아카아시의 토스로……!’, 였는데.
“애 잡아먹겠다, 야.”
“자, 잡아먹기는 누가!”
“눈빛이 완~전 불타오르는데. 안 그래도 매일 매일 애를 혹사시키면서 아직도 부족하냐?”
동기 하나가 그의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보쿠토는 혹사시키기는 누가, 괜히 억울해서 그렇게 빽 소리치기는 했지만 그것이 평소의 그처럼 기세가 있지는 못했다.
보쿠토는 입술을 조금 삐죽이다가, 금방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와서는 자신의 머리를 긁적였다. 아카아시는 가볍게 몸을 풀고는 단정한 자세로 서서 선배들이 연습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언뜻 보자면 눈에 새기는 것처럼 진지한 표정인 것 같기도 했고 또 언뜻 보면 초탈한 것처럼 그 또래답지 않게 차분한 분위기인 것도 같았다.
‘차분이 아니라 저건 뭐라 그러지? 나른?’
보쿠토는 심각한 표정이 되어 미간을 모으며 아카아시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아카아시 역시 좋아하는 음식을 앞에 두고서는 욕심을 내는 표정을 지을 때도 있었고 보쿠토가 한심한 짓을 하면 놀리는 것같은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젯밤, 단 둘이 남아 연습을 끝내고 가는 길 그에게 그 씨앗 한 움큼을 주던 아카아시는 정말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기류를 몸에 휘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