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쿠토는 처음엔 멍하니 눈을 끔벅거리다가 가슴팍에서 느껴지는 체온에 스르르 미소를 지었다. 살짝 시선을 내리자 조그맣고 동그란 머리가 보인다. 아카아시였다. 어젯밤 조금 힘이 들긴 했는지, 그게 아니라면 평소처럼 그저 아침이 졸린 것인지 그의 연인은 곤히 잠들어 깨어날 줄을 모른다. 보쿠토가 그 머리칼을 살살 쓸어보고 시트 사이로 살짝 드러난 어깨에 입을 맞출 때였다.
‘아?’
그의 가슴팍 위에 손이 올라와있다. 그의 연인의 것이다. 지난밤 시트자락을 쥐고 우느라 핏줄이 섰던 손은 그래도 하룻밤이 지나 평상시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보쿠토는 그 손등을 살짝살짝 건드리듯 쓸어보며 미간을 모았다.
‘어, 진짜……?’
연인의 몸 그 어디도 모르는 곳은 없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입맞추지 않은 곳도 없었다. 가장 깊은 곳까지 하나 하나 모두 다 알고 있다. 그런데…….
‘진짜 손 잡아 본 적 없나!?’
보쿠토는 뜨악한 얼굴로 하나 하나 꼽아 보았지만 정말로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렇게 가까이 붙어있었는데, 입맞추지 않은 곳이 없는데, 지금도 이렇게 껴안고 있는데 정말로 손을 잡아본 기억만은 없다.
‘허엉……. 손…….’
필요를 의식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다른 모든 것들이 다 닿아있으니까. 하지만 보쿠토의 탐욕스러운 눈동자에 빛이 번뜩인다. 모든 것을 손아귀에 쥐기 위해 태어난 남자가 가지지 못한 부분을 인지한 것이다. 보쿠토의 손이 슬금슬금 연인의 손등을 건드리기 시작한다. 그 때였다.
펑!
“우, 우왓!”
갑자기 눈 앞이 번쩍 하더니 스르르 안개가 흩어진다. 보쿠토는 화들짝 놀라서 번쩍 손을 들었다. 눈 앞에서 빙글빙글 도는 반짝이는 것은 그가 아주 어렸을 때 브라운관을 통해서 본 것 같은 모양새였다.
“뭐…뭐야? 팅커벨?”
“나는 깍지손의 요정!”
“뭐!? 나, 나랑 아카아시 손 잡아볼 수 있게 되는 거야!?”
비현실에는 조금도 아랑곳 않고서 자기가 원하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이 보쿠토 답다면 다웠다. 그렇게 보쿠토가 환희에 들떠 눈을 크게 뜨는데 인형처럼 생긴 것이 그의 눈앞에서 바삐 날갯짓하며 파르르 한 바퀴 돌았다.
“깍지손의 요정은 잡히지 못한 손의 복수를 하러 왔어…….”
“뭐……어?”
“오늘 하루동안 네 연인의 손을 놓치면 우주가 멸망해버려!”
그리고 다시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정체 모를 팅커벨 같은 것은 그의 눈앞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토 선배. 보쿠토 선배?”
보쿠토가 다시 번쩍 눈을 떴을 땐 어느새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시야에 걱정이 물든 얼굴이 그를 보고 있다. 보쿠토는 오른손으로 시트를 끌어올려 드러난 그의 어깨 위에 둘러주면서 멍하게 눈을 깜박였다. 뭐였지? 뭔가 이상한 꿈을…….
“아, 아카아시! 나 꿈이……헉.”
왼쪽 손이 무언가를 꽉 쥐고 있었다. 보쿠토는 기가 막혔던 꿈 이야기가 급한 와중에도 손에 쥔 것을 보곤 그만 뺨을 붉히고 말았다. 처음으로 잡아보는 아카아시의 손이었다.
“보쿠토 선배?”
“우리 손 처음 잡아본다…….”
“……아.”
아카아시의 단정한 얼굴 위로 홍조가 슬쩍 스쳐갔다. 매사에 침착한 아카아시인데도 이런 화제는 빼놓는 것 없이 부끄러워했다. 보쿠토는 아카아시의 손가락을 얽어 쥐었다.
“생각해보니 그러네요.”
“그래서 그런가? 되게 이상한 꿈 꿨는데.”
“이상한 꿈이요?”
아카아시가 묻는다. 보쿠토는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했다. 이상한 인형같이 생긴, 왜 그거 있지, 팅커벨. 알라딘에 나오는……. 알라딘은 지니고 팅커벨은 피터팬인데요. 아 하여간 쬐끄만 나비 같은 거 말야. 걔가 나와서 그러잖아.
“……오늘 하루 동안 아카아시 손을 놓으면 우주……가 멸망……한다고…….”
“네?”
꿈이었나? 꿈 맞아? 너무 생생하지 않았어? 보쿠토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자신이 붙들고 있는 아카아시의 손을 집어 들었다. 아카아시가 무슨 소리냐며 그의 손을 놓고서 보쿠토의 이마를 살짝 쓸어준다. 그 때.
“어……어어! 어어어!”
화들짝 놀란 보쿠토가 다급하게 자신의 이마에 와 있는 아카아시의 손을 낚아챘다.
두 사람이 덮고 있던 시트 한 가운데에 새카맣게 구멍이 생기더니 점점 더 넓어지다가, 보쿠토가 아카아시의 손을 낚아채자 겨우 멈추었다. 보쿠토가 뜨악한 얼굴로 아카아시의 손과 그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아카아시가 잡히지 않은 손으로 천천히 시트를 들어올렸다. 시트 한 가운데에 마치 불에 타다 만 듯한 자국과 함께 훤히 빈 공간이 남아있다.
“음……자연발화?”
“아카아시, 그럴 리가 있겠어!”
“하지만 요정의 우주멸망 저주보다는 이쪽이 좀 더 합리적이지 않겠습니까?”
“아카아시이이-!”
보쿠토가 울상을 지으며 아카아시의 이름을 부른다. 하지만 아카아시도 그런 보쿠토의 손을 놓지는 않았다.
“……뭔가 있는 건 확실하군요. 뭐라고 했다고 했죠? 오늘 하루 동안만 쥐고 있으면 되는 겁니까?”
“으, 으응. 아마도…….”
“24시간? 타이밍도 참 좋은 팅커벨입니다만…….”
“타이밍?”
“주말이잖아요. 학교에 나갔으면 24시간 손잡기 같은 걸 해볼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불편해서 어떻게 버텨요. 그 전에 세상이나 빨리 멸망해 버리…….”
“안 돼! 안 돼애애애! 그건 절~대 안 돼!”
보쿠토가 버럭 소리친 탓에 아카아시도 놀라서 입을 다문다. 보쿠토는 반쯤 울먹이는 얼굴이었다. 아카아시는 눈만 깜박거리다가 결국 한숨을 섞어 조그맣게 웃고 말았다.
“예. 안 되겠네요.”
보쿠토가 이런 사소하고 거짓말 같은 일마저 진지한 얼굴을 해보이는 것은 지금 그의 가슴팍에 손을 대고 있는 아카아시 자신 때문이었다. 아카아시는 반쯤 붙잡히듯 잡힌 손을 바라보며 이번에야말로 진지하게 대책을 고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