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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트세모 | 우산

2017. 5. 18. 12:55


제트 의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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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세상을 전부 마모시켜버릴 기세로 쏟아져내리고 있었다. 세모는 신발장에서 운동화를 꺼내 신고 건물 바깥 너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새카만 하늘은 천둥과 번개까지 더해 비를 퍼붓기만 할 뿐이었다. 소년소녀들이 까르르 소리를 내며 우산을 쓰는 둥 마는 둥 하여 빗속을 뛰어서 멀어진다. 세모는 한숨을 내쉬었다. 우산은 항상 사물함에 챙겨놓기 때문에 문제될 건 없었지만 이렇게나 비가 쏟아져서야 우산이 소용이 없다. 그렇다고 천년 만년 비 그치기만 기다릴 수도 없으니. 어느새 학생들도 대부분 하교해 교정은 고요했다. 가방을 고쳐 맨 세모는 내리는 비를 다시 한 번 더 쳐다보곤 팡 하고 우산을 펼쳤다. 그리고 한 발을 내딛었을 때.



“……?”



세모는 우산을 들어올리기도 전에 발밑에 그림자가 드리우는 것을 보곤 고개를 들었다. 낯선 남자가 곁에서 커다란 우산을 세모 쪽으로 기울여 들고 있었다. 처음보는 얼굴이다. 세모는 고개를 갸웃했다. 남자는 묘하게 그의 시선을 피한 채,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모 위로 드리운 우산은 거두지 않고서 꿋꿋이 서 있었다.



“저기…….”



세모가 말을 거는데, 그 말을 듣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이쪽을 똑바로 바라보지는 않는다. 세모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그보다 키도 몸도 훌쩍 큰 성인 남자였다. 아빠보다 더 큰것 같아. 세모는 속으로 생각했다. 따뜻한 노을같은 주황색이 감도는 머리카락 아래에 어쩐지 긴장한 듯 상기된 뺨, 이쪽을 흘끗거리는 눈동자…….



“……제트?”



정말로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이름을 입 밖으로 낸 건 어째서였을까. 세모는 얼른 다시 누구냐고 물어봐야 겠다고 생각했지만 그 생각은 빗물에 나뭇잎 춤추듯 모두 흩어지고 말았다. 세모가 들고 있던 우산이 바닥을 나뒹굴고, 한참은 멀고도 높이 있던 얼굴은 뺨이 닿을 만큼 가깝다. 어느새 그가 세모를 번쩍 들어올려 껴안은 탓이었다. 훌쩍 시야가 높아지고 그의 눈과 남자의 눈이 마주한다. 기쁨이 만개하는 꽃처럼 찬연하게 피어나는 눈동자가 세모를 보더니 깊이 깊이 웃었다. 부벼오는 뺨은 조금 서늘했다. 



“-어-어떻게 된 거야, 제트.”

“리모 박사님이 이렇게 해주셨다구, 그러더라구! 나는 세모가 나를 못 알아볼줄 알았다고 그러더라구!”

“딱 보니까 넌데 뭐.”



세모는 놀란 기색을 꾹 누르고서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곤 여전히 그를 보고 싱글벙글하기에 바쁜 남자를 바라보았다. 세모가 그를 한 번에 알아본 것이 어지간히도 기쁜 눈치였다. 



“그런데 왜 말을 안 하고 서 있기만 했어.”

“그, 그게. 세모가 제트를 안 믿어 줄까봐, 걱정이……. 돼서… 라고 그러더라구…….”



남자의 귀가 빨개져서는 고개를 돌리며 시선을 피한다. 남자는 세모를 여전히 안아든 채 뜨문뜨문 말을 이었다.



“리모 박사님이, 세모를 안아 줄수 있는 로봇으로 만들고 싶다고 그러더라구. 그래서 제트도 찬성했다고 그러더라구. 그런데 이런 모습이 되자마자 박사님이 세모한테 말도 없이 마중 보내버릴 줄은 몰랐다구……. 그러더라구……. 무, 물론 세모 마중은 언제나 좋다고! 그러더라구!”



그래서 안 내려놓는건가. 세모는 바닥에 뒹굴고 있는 우산 두개를 보며 납득했다. 그런 세모를 아는지 모르는지 남자는 조심스레 세모의 눈치를 살폈다.



“세모는……. 저기, 이 모습이 맘에 드는지, 라고 그러더라고…….”

“응, 좋아.”



세모는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그러니까 이제 그만 집에 가게 내려줘’라고 말하려 했는데 그만 그 말이 쑥 들어가고 말았다. 환하게 웃는 얼굴 꿈결처럼 밝았다. 안도와 기쁨이 고운 천의 자수처럼 아름답게 맺혀 그를 보고 있다. 세모는 입술을 달싹거렸다.



“……그게 그렇게 걱정됐어?”



제트가 빠르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별로, 마음에 들고 말고 할 것도 아닌데. 어차피 다 너잖아.”



그리고 세모는 말을 한 것을 조금 후회했다. 그러잖아도 기분이 눈에 보일 듯 그림으로 그린 듯 티가 나는 제트였는데 이렇게 사람의 모습이 되니 더했다. 금방 눈이 그렁그렁해진다. 이러다가 정말로 울겠다 싶은 생각이 든 세모가 얼른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내려달라고 말을 돌렸다. 세모를 바닥에 내려준 제트가 세모의 우산을 접어 챙겨들고 저가 가져온 우산을 세모 쪽으로 기울였다. 그리고는 왠지 안절부절못하더니 조심스레 세모의 손을 잡아 저의 허리께 옷자락에 올려놓는다. 



“자, 잡고 가라고, 그러더라구…….”

“괜찮은데.”

“길 잃어버릴지도 모른다고 그러더라구…….”

“안 잃어버리는데.”

“……!”



뭔가 더 말해볼까 하던 세모는 아무래도 여기서 더 하면 제트가 정말로 울어버릴지도 모른다 싶어져 그만두곤 제트의 셔츠 자락을 손으로 붙잡았다. 금방 활짝 웃는 얼굴이 된 제트가 한껏 세모 쪽으로 우산을 기울인 채 소년의 걸음에 발을 맞추었다. 세상을 부술 듯이 쏟아지는 폭우가 우산을 때리느라 바쁜데도 이상하게 우산 속은 고요했다. 세모는 흘끗 고개를 올려 옆을 쳐다보았다. 웃고 있는 제트가 기다린듯이 금방 시선을 마주해왔다.



“제트. 너 어깨 다 젖잖아. 우산…….”

“어린이는 비 맞으면 감기 걸린다고 그러더라고! 제트는 무지무지 튼튼하다 그러더라구!”



제트의 목소리가 한껏 들떠있다. 세모는 조그맣게 웃음과 한숨을 섞어 내쉬곤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까지 말하면 이길 수가 없다.



“제트는 이렇게 사람이 돼서 좋아?”

“완전 좋다구 그러더라고!”

“왜?”



금방 대답이 나오지 않아 올려다보자 또 귓가가 빨갛다. 세모는 눈을 깜박거렸다. 잠깐 동안 빗소리만이 두 사람 사이를 채웠다.



“이제 어디든 갈 수 있다고 그러더라구…….”

“어디든?”

“세모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이미 어디든 갈 수 있잖아?”



제트가 고개를 저었다. 



“세모가 방에서 울고 있으면, 세모가 차고로 나오기 전에는……. 제트가 곁으로 갈 수 없어서……. 라고 그러더라구…….”

“벼, 별로 울거나 그런 적 없잖아.”



이번에는 세모의 귀끝이 붉어졌다. 제트는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지만. 아주 가끔이었다고 해도 그래도 곁에서 위로해주지 못했던 일을 잊을 수는 없었다. 깊은 곳에서부터 찌르르 하고 울던 밤, 수면모드를 껐다 켰다 하길 반복하며 밤을 지새우고 겨우 해가 떠 세모가 차고로 내려올 적이면 꼭 소년의 눈밑이 붉게 짓물러 있었다. 세모, 하고 이름을 부르면 그런 날의 세모는 꼭 딴청을 피우며 출발을 재촉하기만 한다. 알아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별이 떨어지고 해가 떠오르길 기다리는 것 밖에 없다.



“그래도…….”

“알았어.”

“!”

“나도 제트가 이렇게 되니까 좋아.”



그렇게 말한 세모가 잠깐 머뭇거리며 제트를 잡고 있던 손을 놓고 살짝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 그리곤 팔 근처의 옷깃을 살며시 잡는다. 그걸 보고있던 제트의 눈이 점점 커지더니    이윽고 호흡을 멈추곤 세모를 번쩍 안아들었다. 순식간에 시야가 바뀌어 당황한 세모가 제트의 이름을 부르며 그만 내려달라고 해도 제트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싱글벙글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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