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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푸치노 두 잔이요. 하나는 시나몬 뺀 걸로. 사과케이크 하나랑 치즈와 감자 올려 구운 토스트로.”


진은 노천카페의 의자에 몸을 미끄러뜨리고 앉아서 맞은편에 앉아있는 니노가 음료 주문하는 걸 잠자코 바라보았다. 웨이터가 자리를 뜬다. 니노가 고개를 갸웃하며 진을 돌아보았다.


“뭐 묻었어?”

“아니……. 너 시나몬 안 먹네, 그러고 보니까.”

“음, 향이 나니까.”

“그 향때문에 먹는 거잖아, 시나몬은.”


니노는 알듯 모를듯한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점원이 커피 두 잔과 케이크를 내어왔다. 진은 사과 케이크에 포크를 찔러넣더가 고개를 들고 진을 바라보았다.


“여기 사과 케이크도 시나몬, 안 넣는구나.”

“그렇네~.” 


니노는 이미 인지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웃는 낯인 채 포크로 사과 케이크를 잘라 입에 넣는다. 진은 반쯤 사라진 사과 케이크를 가만히 내려다보다 담배 케이스에 손을 올렸다. 둥근 카푸치노 머그에는 갈빛 시나몬 파우더가 천사의 발자국처럼 올라가 있었다. 



*



“응?그러고보니 마늘도 안 먹지 않아? 싫어하는 거 아닐까?”

“그런가……. 샐러리나 고수같은 것도 안 먹었던 것 같지.”

“응, 니노는 카레도~!”


롯타가 진 앞에 토스트가 담긴 접시를 놓아주며 말한다. 진은 김이 올라오는 치즈 토스트를 내려다보다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향이 강한 걸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네. 전혀 몰랐어.”

“니노는 자기 얘기 잘 안 하니까 말이지. 특히 뭐 싫다곤 얘기한 적 없지 않아?”


롯타가 그렇게 말하며 진의 맞은편에 자리잡고 앉았다. TV에서는 오늘의 날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오늘 바돈의 날씨입니다. 완연한 봄날씨로, 포근하고 쾌청한 하루가 지속될…….


“집에 초대해서 식사할 땐……. 뭔가 가리는 건 본 적이 없는데.”

“아, 그건 그렇다. 잘 못 먹는데 참아준걸까? 다음번에 한 번 물어봐야겠어.”


롯타가 가열차게 토스트를 입에 밀어넣으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초콜렛 좋아하는 건 알고 있는데, 롯타의 말에 니노는 턱을 괸 채 TV 화면으로 눈길을 돌렸다. 


—다만 저녁 무렵에는 갑작스러운 강수 확률이 있습니다. 소나기가 내릴지도 모르…….


“롯타, 우산 챙겨.”

“응, 오빠도! 오늘 저녁은 집에서 먹어?”

“……아니, 밖에서 먹을 것 같아. 먼저 먹고 있을래?”


롯타가 고개를 끄덕인다. 진은 한 입 베어먹은 치즈 토스트를 내려다보았다. 노릇하게 구운 치즈가 올라간 토스트였다. 진은 식탁에 턱을 괸 채 토스트를 손으로 들어 바라보았다. 


“치즈 토스트도 안 먹네, 니노 녀석.”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았는데. 진은 그렇게 중얼거리곤 덥석, 토스트를 베어먹었다. 



*



고요한 가운데에 투둑투둑,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진은 비가 오는 것을 확인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은 진의 자리에 있는 스탠드만으로 아슬아슬하게 빛을 밝히고 있었다. 빗소리가 점차 커지기 시작한다. 진은 스탠드 불을 끄고서 서류가방을 챙겨들고 사무실을 나섰다. 


ACCA 건물은 이미 모두가 퇴근해 고요했다. 복도의 창 너머로 비가 오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게 고작이다. 진은 건물의 출입구 앞에 도착해서야 망설임없는 걸음을 멈추었다. 등 뒤에서 출입문이 소리 없이 닫힌다. 진은 표정없는 얼굴로 빗방울을 바라보았다. 비에 젖어 미끄러지는 듯한 아스팔트 위로 가로등의 오렌지빛 불빛이 흩어졌다.


잠깐의 고요 끝에 그의 발치에 긴 그림자가 기울어졌다.


“—진. 우산 안 가져왔어?”

“니노.”


반 보 뒤에서 말을 붙여오는 사람이 있다. 기척도 없이 나타났지만 진은 놀라지 않고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가죽으로 만든 재킷을 걸친 니노가 빙긋 웃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손에는 우산을 쓰고 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바짓단이 살짝 젖은 걸 보면 비가 내리자마자 나선 모양이었다. 


“응. 두고 왔어.”

“집까지 가자.”


니노가 우산을 바깥쪽으로 살짝 기울였다. 우산의 천 위로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가볍게 울렸다. 진은 고개를 들고 우산을 바라보다가 니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바깥에서 저녁 먹고 갈까.”

“롯타는?”

“먹었대, 먼저.”


진은 먼저 한 걸음 내딛었다. 비가 내리고 있었기에 니노가 망설임 없이 따라붙어 우산을 기울여주었다. 찰박찰박, 비가 온 거리를 걸어간다. 진은 말을 이었다.


“뭐 먹을래?”

“글쎄, 아무거나?”

“그럼 파스타 어때?”

“파스타 먹고 싶었어?”

“응, 조금…….”


조그맣게 대답하면 금방 옆에서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들린다. 니노는 눈여겨 보아둔 파스타 가게가 있다며 우산을 들지 않은 쪽으로 골목을 가리켰다. 진은 그 방향으로 차분이 걸어가며 시야에 언뜻언뜻 들어오는 우산의 끝자락을 올려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너…….”

“응?”

“고등학교 때 말야, 한 번도 우산이 없었던 적이 없네.”

“아아.”

“내가 네 우산 열 개쯤은 가져갔던 것 같은데.”

“하하, 그야 왕자님이 비 맞게 할 수는 없잖아?” 

“그런가. 왕자는 아니지만 말야.”

“글쎄.”


니노가 딱히 긍정도 부정도 없이 어깨를 으쓱했다. 진이 무어라 하기 전에 오래된 간판을 달고 있는 가게가 나타났다. 


“아, 여기야.”


비가 와서인지 가게 안은 드문드문 빈자리가 엿보였다. 진은 니노의 곁에 서서 니노가 우산 정리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우산을 접은 니노가 가게의 문 앞에 놓여있는 철제 우산통에 우산을 넣고는 가게 문을 열었다. 진은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두 분이십니까?”


웨이터가 정중한 표정으로 묻는다. 진의 뒤에 서 있는 니노가 고개를 끄덕였다. 창가쪽으로 부탁드립니다, 그 말에 웨이터가 한 쪽으로 앞장섰다. 


진은 걸치고 있던 얇은 코트를 벗어 의자에 대충 걸치고는 자리에 앉았다. 웨이터가 메뉴판을 두 개 놓아주고 자리를 뜬다. 니노가 메뉴판을 펼쳐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뭐 먹을래??”

“음……. 고민이네.”


진은 테이블에 팔을 괴고서 메뉴판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니노는 테이블 위에 올라와있는 진의 메뉴판을 흘끗 바라보며 뭐랑 뭐, 하고 물었다.


“버섯 크림 파스타하고 알리오 올리오.”

“그럼 뭐가 조금이라도 더 먹고 싶은데?”

“버섯 크림일까…….”

“술은? 됐어?”

“달콤한 걸로.”


진의 대답이 끝나고 니노가 망설임 없이 웨이터와 시선을 맞추었다. 웨이터가 지체없이 다가온다. 니노는 메뉴판을 넘기며 주문했다. “버섯 크림 파스타 하나, 알리오 올리오 하나, 와인은 모스카토로 만든 걸로.” 웨이터가 한번 더 주문한 목록을 확인한다. “와인은 병으로 드릴까요?” 니노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주문이 끝났다. 


“너 먹고싶은 걸로 먹지.”

“먹고 싶었어.”

“알리오 올리오를?”


대답 없이, 니노는 빙긋이 웃을 뿐이었다. 그러더니 대뜸 카메라를 꺼내 진의 모습을 찍는다. 진은 미간을 모으고 한숨을 내쉬었다.


“왜 또 찍는거야? 이제 찍을 필요 없잖아.”

“표정이 좋아서. 안 찍으면 아쉽잖아.”

“어두워서 잘 나오지도 않잖아.”

“잘 나왔어.”


두 사람이 사소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먼저 와인과 식전 바게뜨가 서빙되었고 잠깐의 시간을 두고 요리가 나왔다. 


“버섯 크림 파스타는 어느 쪽입니까?”

“저쪽이요.”


니노가 진의 앞자리를 가리켰다. 알리오 올리오는 니노의 앞으로 올라간다. 니노가 파스타를 포크에 한 바퀴 감아서 입에 넣었다. 진은 파스타 면에 포크를 찔러넣었다가 한쪽 팔을 괴고서 니노를 바라보았다.


“응? 진?”


아무리 봐도 진이 무얼 먹을 기색을 보이지 않자 고개를 갸웃하며 그를 바라본다. 진이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니노.”

“응.”

“마늘 싫어하는 건 아니야?”

“……아아……. 지금 유도 신문 걸린 건가?”


니노는 한 순간에 며칠 전의 시나몬까지 연결짓고는 작게 쓴웃음지었다. 진은 둘러가는 것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니노가 와인잔을 손에 쥐었다. 


“그냥 물어보지.”

“그냥 물어보면 보나마나 둘러대거나 아니라거나 할 것 같아서.”


향채를 특별히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먹어야 할 상황이 오면 거리끼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굳이 먹지 않으려고 하는 것에는 달리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유가 있다면 그게 무슨 이유일까? 


니노의 30년은 모두 진 자신이 저당잡고 있었다.


“그…….”

“응.”

“……냄새 나니까?”

“……하?”


플레이트에 기울여두었던 포크가 미끄러지며 소리가 난다. 웨이터가 다가왔지만 니노가 아무 일도 아니라며 돌려 보냈다. 진의 얼굴을 마주하는 니노의 표정이 다소 곤혹스러운 것 같았다. 


“음, 그러니까……. 어렸을 때부터 별로 안 먹는 버릇이 들어서.”

“왜? 마늘이나 시나몬 먹으면 그렇게 냄새 나? 나한테서 그래?”

“아니, 그게 아니라. 진, 제발.” 


니노가 간절한 목소리로 진을 부른다. 진은 푸른 눈을 두어번 깜박, 깜박 했다. 전에는 무슨 일이건 깊이 캐묻는 법이 없는 진이었다. 심지어 자신의 혈통에 대한 것마저 그랬다. 물어보아야한다고 판단하고서 그를 향해 질문했지만, 거기에 파고드는 기색은 없었다. 진이 바라는 것도, 듣고 만족한 것도 니노 자신이 해준 이야기까지였다. 태도가 변한 건 ACCA 100주년 기념식이 끝나고 나서부터였다. 


‘아닌가, 어쩌면 그 전부터.’


니노는 폐부쪽으로 향하려는 자신의 손과 시선을 꾹 누르고 진을 바라보았다. 


“진.”

“재밌는 이야기를 찾았거든, 니노.”


진은 감흥없는 얼굴로 포크를 한 번 휘저었다 내려놓고는 안주머니에 넣어둔 작은 노트를 꺼냈다. 노트 안 쪽에는 작은 종이가 책갈피 역할을 하고 있었다. 진은 그 부분을 펼쳐 니노 앞에 내려놓았다. 니노의 눈길이 그쪽으로 떨어졌다. 


책을 복사해 특정 부분을 잘라낸 것이었다. 


“왕족의 시종들은 향채를 일절 먹지 않았대. 모시는 주인을 위해서. 백과사전에나 남은 이야기같은데 말야.”

“음…….”

“너도, 그런 거야?” 

“둘러대도 들어주지 않겠다는 표정이네.”


니노는 웃음 섞인 한숨을 내쉬며 그 노트를 다시 접어 진에게 돌려주었다. 


“확실히, 그래. 그랬었어.”


왕족의 시종, 그 시종을 모시던 가문으로 향이 짙은 음식을 기피하는 것은 주인을 위한 당연한 일보 중에 하나였다. 향채는 물론이거니와 치즈나 단백질, 고기도 최소한으로만 섭취한다. 곁에 섰을 때 오로지 주인을 즐겁게 할 향기만을 몸에 두르기 위해서였다. 


 식사는 언제나 밍밍했고 먹는 즐거움은 이따금씩 입에 넣는 초콜렛이 전부.


“지금은 그냥 그랬던 버릇이 남아서 좀 덜 먹게 되는 것 뿐이야.”

“싫어해? 좋아해?”


진이 진지한 표정이 되어 묻는다. 이번에는 니노 쪽이 턱을 괴고서 진의 그 얼굴을 감상했다. 100주년 기념식이 끝나고 나서부터 진은 이런 화제에서 물러서주지 않았다. 그러니까 니노가 도와 가문을 위해 얼마나 희생했는지, 무엇을 희생했는지 가늠해야 하는 문제 앞에서는.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는 단지 향채에 대해 묻는 것일 뿐이겠지만 니노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좋아해.”

“마늘도? 생강도? 시나몬도? 치즈도?”

“생강은……. 생강은 정말로 그냥 싫어하는 거야. 솔직히 말해서 생강 과자라니, 사람이 먹을 게 아니라고?”


그렇지 않냐며 동의를 구하는 말에 진이 겨우 작게 웃음을 흘린다. 니노는 마음 깊은 곳에서 겨우 안도의 한숨을 흘려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고 있지만 진이 정색을 하고 표정을 굳히면 어쩔 줄을 모르게 된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웃어 넘기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진의 웃는 얼굴은 금방 멎었다.


“좋아하는 거면 잔뜩 먹으란 말야, 바보야.”

“……바보 소리 들을 것까진…….”

“못 먹는데 억지로 먹이는 게 아니라면 됐어. 안 바꿔줄거니까 그거 다 먹어.”

“처음부터 다 먹을 생각이었다니까?”


니노는 지금까지 진이 자신의 파스타 그릇에 포크만 대었을 뿐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진이 니노의 말에 또 짤막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내가 먹고 싶어하는 걸로 골라줄 필요도 없어. 먹고 싶은 거 먹어.”

“……내가 이렇게 고르게 덫을 놓은 사람이 할 말은 아니지 않나.”


니노가 미약하게 툴툴거렸지만 진은 넘어가주지 않았다. 모른척하고서는 크림 파스타에 열중할 뿐이었다. 


“그리고 내일도 만나.”

“내일? 내일은 나 바쁘…….”

“거짓말 하지마. 오늘 그런 거 먹었다고 피하려고 하는 거 모를 줄 알아?”

“아니, 나 진짜 바쁜데, 내일은—.”

“그럼 시간을 내. 나를 위해서.”

“아—아. 정말, 내 왕자님이시라니까…….”


네, 네.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your highness. 


스스로가 니노에게 왕자가 아니길 바라면서도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기꺼이 그의 왕자가 되어버리는 제멋대로, 어쩔 수 없지 않나. 사랑할 수 밖에는. 


니노가 빙긋이 웃는다. 진은 그런 니노를 한 번 흘끗 보곤 다시 식사에 눈을 돌리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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