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쿠아카 | 버스에서 술취한 사람 도와주신 분! 샘플
2018년 1월 후쿠로다니 온리전 '사립 후쿠로다니 학원 입학 설명회'에서 발매될 짧은 단편 소설입니다~!
오래 전 도입부만 써두었던 것을 마무리해서 가져가려 합니다^-^!
140*210 | 인쇄 | 약 45p 예정 | 5,000
++샘플++
“이름은?”
“모르지, 정신이 어딨냐.”
“……나이는.”
“몰라. 내 또래였나? 연상일까? 어린가?”
“이 씨…….”
쿠로오는 험한 말을 삼켰다. 대신 옆에 놓여있던 쿠션을 후려쳤다. 퍽퍽 소리가 요란하게 난다. 하지만 보쿠토는 그것을 보고 있지 않았다. 소파도 내버려두고서 바닥에 드러누워 몽롱한 얼굴을 한다.
요 며칠 보쿠토는 틈이 났다 하면 저렇게 흐트러진 얼굴을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름이라도 물어볼걸, 아니 어디 사는지라도…….”
“그건 범죄다, 임마.”
보쿠토는 또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다. 쿠로오는 길고 깊은 탄식을 흘렸다.
*
보쿠토가 이렇게 된 것은 며칠 전으로 시간을 돌려볼 수 있다. 그 날은 낮부터 보쿠토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표정이 붉고 몽롱한 것이 미열이 오른 눈치였다. 쿠로오는 잽싸게 들어가서 쉬라고 충고해 주었지만 하필 그날 저녁에 회식이 잡혔다. 나이는 찰 만큼 찼으니 어련히 알아서 하겠는가 했는데…….
그렇게 떡이 되게 마시고 또 버스로 퇴근을 했다는 것이었다. 버스에서 기어코 먹고 마신 걸 다 토하고 난리가 났는데 누가 그걸 모두 수습해 주었다고 했다. 그리고는 그를 부축해 집까지 데려다주고, 집에서도 제대로 누울 수 있게 씻는 걸 도와주고, 정리해주고……. 그리고는 홀연히 사라졌다고.
아는 건 버스 번호 23-1번과 검은 머리라는 사실 뿐이었다. 이름 몰라, 나이 대도 몰라, 어디에 사는지도 당연히 몰라. 목소리가 낮고 나직했다 이 정도가 마지막이었다. 그런데!
저 보쿠토 코타로가 그 얼굴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만 홀딱 빠지고 만 것이었다.
말 그대로, ‘홀딱’.
지금까지 사람과 깊이 사귀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 목소리도 얼굴도 흐릿한 사람에게 푹 빠져선 말이라도 한 번 붙여볼 걸 그랬다며 앓아 눕고 있다. 저 날부터 보쿠토는 출근도 퇴근도 23-1번 버스로만 하고, 주말엔 이따금 드라이브도 23-1번 버스를 타고 하고, 자신의 집에서부터 버스 정류장까지 서성이기도 했지만 그 상대를 찾을 수는 없었고 그렇게 보쿠토의 얼굴에서 살이 죽죽 내리는 게 눈에 보일 지경이었다.
그래서 쿠로오 테츠로는 말 그대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 되어 지금 컴퓨터 앞에 앉고 만 것이다. 쿠로오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자판 위에 손을 올렸다. 보쿠토는 지금도 바닥에 누워서 소파에 발을 걸치고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제목 : xx월 xx일 23-1번 버스에서 술취한 사람 도와주신 분
글쓴이 : 네로
찾습니다 제발 간절하게...
제 친구가 저 날 몸이 안좋은데 회식 끝까지 가는 바람에
버스에서 토하고 난리가 났다는데
누가 그걸 전부 도와주셨다고 하네요
애 술이 취해서 떡이 됐는데 그거 수습해주시고
토한 것도 치워주고 근데도 정신을 못차리니까
집까지 데려다주고
어떻게 집 안에 눕혀주고 정리까지 해주고 가셨다고..
알고 있는 건 버스 탄 시간이 11시쯤이었다는 거랑
xx정류장에서 내렸다는 거
검은머리에 목소리는 좀 나직했다는 것밖에 모르는데
얘가 지금 이 분 보고싶다고 앓느라
지금 2주 됐는데 5kg이 빠졌어요
얘가 좀 애같은 면이 있긴 한데
아주 못난 새낀 아니고요...
괜찮은 애예요 돈도 많고 성격도 좋고요
아니 만나서 어떻게 해달라는 건 아니고
만나서 차주시면 안될까요
그럼 이 새끼도 정신 차리겠죠?
근데 사실 생긴것도 아주 못생기진 않았는데..
지금도 옆에 누워서 한숨만 쉬면서
저녁도 안 넘어간다고
왜 그 때 이름을 안 물어봤는지 모르겠다고
저러고만 있네요
도와주신 분 찾아서 할 부탁은 아닌 것도 알지만...
정말 제발 한 번만 만나뵙고 싶습니다...
크게 사례하겠습니다.
20대에서 40대까지도 많이 본다고 하는 유명한 커뮤니티 게시판이었다. 쿠로오는 게시글을 올리고 턱을 괸 채 웹서핑을 시작했다. 달은 높이 떠 있는데 보쿠토는 아까부터 시무룩하니 앓고 있을 뿐이었다. 저 꼴을 보고 있으니 자신도 입맛이 가신다. 그렇게 30분쯤 이것 저것 둘러봤을 때였다. 다시 커뮤니티 게시판으로 돌아온 쿠로오는 댓글이 달려있는 자신의 글을 클릭했다.
-우동에유부 : 이거 제 후배 얘기같은데요.. 혹시 이 일로 사람 찾는다는 친구분 머리카락이 은색 돌고 그럽니까?
-네로 : 헐 대박 네!!
-우동에유부 : 키 좀 크셨다던데 185쯤
-나뭇잎화관 : 헐 대박 진짜 찾았나봐 만나면 인증~!
-네로 : 허어어 네 맞습니다
-우동에유부 : 아 후배가 그 때 사원증 봤대요 혹시 이름이 보쿠x?
쿠로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옆에 누워있던 보쿠토는 그런 쿠로오를 한 번 흘끗 바라볼 뿐 전혀 관심이 없는 표정이었다. 쿠로오는 버럭 소리칠까 하다가 마른침을 다시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괜히 서둘러서 좋을 일이 없다. 확정이 되고 난 연후에 이야기를 해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네로 : 제발 만나뵙고 싶습니다.. 사례는 꼭 하겠습니다.
-우동에유부 : 근데 그 친구분께서 자기 도와준 상대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는 건 맞죠?
-네로 : 네? 아니 얘가 그 때 인사불성이어가지고요..
-우동에유부 : 이 후배도 키는 183임
쿠로오의 마우스가 덜컥했다.
-우동에유부 : 근데ㅋㅋㅋㅋㅋ 지금 말씀 보니까 꼭 한눈에 반한 사람 찾으시는 거 같고 그래서요
-네로 : 아..
-우동에유부 : 뭐 서로 뜨악하는 것도 재밌겠네요 후배한테 말해보겠음
곧 쪽지로 연락처에 대한 이야기가 오간다. 쿠로오는 휴대전화를 붙잡고 상대방 ‘우동에유부’와 대화를 마쳤다.
“보쿠토.”
“……응?”
드러누워서 달만 보고 있던 보쿠토가 한 박자 늦게 대답한다. 쿠로오는 마른침을 넘겼다.
“너 이번주 일요일 저녁에 시간 되냐?”
“일요일 저녁? 바쁜 일은 없는데…….”
“그럼 나랑 저녁 좀 먹자.”
“엑. 너랑 왜?”
“닥치고 먹자면 먹자?”
“아, 알았어. 먹으면 될 거 아냐…….”
보쿠토가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리듯이 대답하고는 또 돌아누워서 이름이라도 물어볼걸, 하며 한탄한다. 쿠로오는 휴대전화 액정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우동에유부 : 후배가 그 날 실험실 나가야된대서 오후에 시간 된대요.
일요일 오후가 지나면 이제 저 짓거리를 구경하는 것도 끝이었다. 쿠로오의 입매에 진득한 미소가 걸렸다.
*
“사례를 하고 싶대, 도와줘서 고맙다고.”
코노하는 웃음을 꾹 삼켰다. 그의 앞에 있는 후배는 영 미심쩍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책을 넘기다 말고 그를 흘끗 올려다본다.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도 못 할것 같던데 사례요?”
“기억 났나보지~! 그 쪽도 친구랑 같이 나온다더라.”
“하아.”
별로 사례 받자고 한 일은 아닌데요. 후배가 조용히 대답한다. 코노하는 어린 아이 달래듯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괜찮다고 후배를 달랬다. 그런 코노하를 보고서 후배는 더욱 미심쩍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더는 가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다.
코노하는 방금 보았던 글을 떠올리곤 또 웃음을 삼켰다. 아무리 봐도 첫눈에 반해서 사람을 찾는 느낌이었다. 코노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자신의 후배를 바라보았다. 후배는 금방 다시 책으로 고개를 돌린 채였다. 언뜻 보자면 호리호리한 선에 묘한 저 눈매가 겹쳐, 상대는 술까지 마셨다고 하니 어딘가의 듣도보도 못한 미인처럼 보여 홀딱 빠질 법도 했다.
“그런데 선배. 어떻……뭘 보고 계세요?”
“너보고 있지~! 뭐뭐? 뭐 궁금하세요, 후배님.”
“어떻게 찾아서 선배 쪽으로 연락이 됐나 해서요.”
“아아. 어쩌다보니까 연락이 닿았어. 그 쪽에서 사례하고 싶다면서 찾던데 아무리 봐도 네 얘기여서.”
“…….”
후배는 금방 고개를 숙인다. 조금 부끄러워하는 것도 같았다. 코노하는 빙글거리며 웃음지었다.
몇 주 전의 일이다. 오래 끌어오던 프로젝트가 겨우 마무리되어, 시간은 늦기는 했으나 이 후배를 불러내 축하주라도 나누려고 했던 코노하였다. 그런데 오기로 했던 후배는 하염없이 늦었고 그마저도 이미 술을 마시고 온 것처럼 술냄새가 진동하는데다가 진이 다 빠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캐물었더니 타고 오는 버스 안에서 낯모르는 사람이 인사불성이 되어 정신차리지 못하는 것을 죄다 수습해주고 왔다는 것이었다.
-그걸 다 정리를 해주고 왔다고?
-그러면 어떡합니까……. 길에서 죽게 둘 수는 없잖아요. 길도 아니다. 버스네.
그러면서 곧장 코노하 그의 오피스텔로 들어가더니 씻고 나왔다가 피곤하다며 그대로 뻗어서 자버렸다.
무정하게 생겨서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도 곤란한 사람을 보면 쉽사리 내치지 못하는 그 성미를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날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던 코노하였다. 저 후배가 도와주었다는 익명의 상대에 대해서는 굉장하네, 그렇게 생각하면서. 후배가 피곤하다며 누워선 상대에 대해 이르길 키와 체격이 상당해서 정신 차리지도 못하는 걸 집까지 겨우 부축해 눕히고 왔더니 힘이 쭉 빠졌더라며 얘기하는데, 이 후배도 결코 작은 키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고 지나가기를 열 닷새쯤 되었을 때 코노하가 그 게시글을 본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저녁을 같이 먹으려고 아카아시의 연구실에 들렀다가 실험 결과만 보고 가자는 말에 잠시 기다리며 웹서핑을 하는데, 우연히 23-1번 버스라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아카아시가 그의 오피스텔에 오기 위해 종종 타는 버스였다.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눌렀다. 그랬다가 그만 노트북에 마시던 차를 뱉어버릴 뻔했지만.
-아카아시, 너 그 왜……. 얼마전에 도와줬다는 사람.
-네? 누구요?
오며가며 이 사람 저 사람 곤란한 건 다 한 번씩 거들어주고 다니니 그렇게 말해도 모르는 게 어쩌면 당연했고 코노하는 몇 마디 더 첨언했다. 왜 너, 술취한 사람 버스에서 도와줬었다며.
-아……. 아아. 네.
-그 남자가 키 컸다고?
-저보다 더 컸으니까 185쯤 됐던 것 같네요. 왜요?
-은발이랬나?
-완전한 은발은 아니었던 것 같았는데……. 갑자기 왜요?
-뭐 더 생각나는 건 없어?
왜 묻느냐는 말에는 대답도 없이 재차 묻기만 하는데도 후배는 한숨을 조금 내쉬었을 뿐 책하는 대꾸 없이 응해주었다. 무슨 사원증 비슷한 걸 보긴 했어요. 이름이 뭐였더라, 보쿠토였나……. 언뜻 그런 게 적혀있었는데. 열쇠 찾느라 이것저것 뒤졌거든요.
그래서 코노하가 그 낯모르는 ‘네로’라는 상대와 약속까지 잡은 것은, 그로서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앓아누웠다는 말에 어떻게든 해주려 한 것은 아니었고 단지 이 표정히 희끗한 후배의 당황한 얼굴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만히 살펴보면 나름대로 표정은 이것 저것 보이는데 도무지 흔들리고 흐트러진 모습은 본 일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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