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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판 신청 안내

2016. 12. 25. 22:53

특별하지 않은 경우 대부분의 회지는 통판하고 있습니다. 통판은 크게

  1. 신간이 발행되는 행사 전후로 신간 단독 기간내 신청 통판

  2. 상시 통판


두 가지가 함께 진행되고, 구간의 경우 대개 상시통판으로 구매 가능합니다^-^



통판 회지 목록 : http://rrdrops.tistory.com/51

통판 신청 : http://friedrich.pe.kr/xe/bill/449479



상시 통판 공지 확인 후에 구간 구매 가능하세요>ㅁ<)9

SOLDOUT 표시가 없는 모든 책 구매 가능합니다!


++ 낙엽의 행방을 포함한 통판은 3월에 예정되어 있습니다.

++별도의 회원가입 필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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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애정과 사랑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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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 위치 :: D01, 02






《낙엽의 행방》

보쿠토×아카아시

140*210 | 인쇄 | UV코팅 | 336p | 19,000원



9월, 10월, 11월 웹에 공개된 원고 모음집. 미공개 원고가 60p 들어갑니다. 

웹 공개 원고는 본 포스타입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재록본이기 때문에 샘플 공개는 없습니다. 


수록된 작품은 <Moonrise Kingdom>, <Dear. Winter>, <On Air>, <너의 꿈속에서>, <생의 반대편에서>, <9월의 겨울>, <오직>, <My Love>, <내일의 우주>, <목 안의 깃털>, <팅커벨과 우주멸망 카운트다운>, <그대를 꽃으로 파묻기 위하여 나 태어났노라>, 외에 짧은 단편 <편지>, <Focus>, 그리고 미공개 원고 분량이 약 60p 가량으로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가 완결까지 실려있습니다. 


판매 이후 일부 단편이 비공개로 전환되며, 재록본이기 때문에 별도의 샘플 공개는 없습니다.


+표지 일러스트 :: Butters님이 힘써주셨습니다. 사랑합니다..S2















《푸른색 걷기 혹은 달리기》

보쿠토×아카아시

140*210 | 인쇄 | 먹박 | 98p | 9,000원



중학생 때 서로를 처음 만나게 되어 고등학교까지 이어지는

보쿠토와 아카아시의 이야기









《Dear Mine》

보쿠토×아카아시

140*210 | 인쇄 | 동박 | 250p | 15,000원



어린 도련님 보쿠토와, 불가피한 사정으로 함께 지내게 되면서 그런 도련님과 놀아주게 된 아카아시의 이야기입니다. 어린 보쿠토와 중학생인 아카아시가 만나서 성인으로 성장하며 여러색깔의 정을 쌓아나가요! 

전체 연령가의 가벼운 이야기입니다 :) 

라고 쓰고 역키잡물이라고 한다고 했습니다... 











《Sincerely Yours》

보쿠토×아카아시

140*210 | 인쇄 | 금박 | 210p | 15,000원



보쿠토보다.. 많이 어린.. 보쿠토의.. 약혼자 소년 아카아시 두 사람이 만나서 성장해나가며 연애하는 이야기입니다. (전작 Dear Mine과는 스토리 상으로는 전혀 연관이 없으며 소재가 짝을 이루어 제목과 표지를 맞추었습니다! Dear Mine - 아이보쿠토x어른아카아시, Sincerely Yours - 어른보쿠토x아이 아카아시)










《연하의 남친이 직장 상사입니다!》

보쿠토×아카아시

140*210 | 인쇄 | 42p | 5,000원


아카아시가 보쿠토의 직장 상사로, 사귀는 두 사람의 짧은 에피소드입니다. 집에서 실수했더니 회사에서 구박받는 보쿠토의 아카아시 뒷담! 


※ 인터넷 게시글과 댓글이 주된 내용으로 통신어체 + 자음 등이 난무합니다.











《꽃잎의 행방》

보쿠토×아카아시

140*210 | 인쇄 | UV코팅 | 410p | 20,000원




1월, 2월, 3월 웹에 공개된 원고 모음집. 미공개 원고가 들어갑니다. 

웹 공개 원고는 http://rrdrops.tistory.com/ 에서 확인해주세요!

재록본이기 때문에 샘플 공개는 없습니다. 


수록된 작품은 <어린애>, <달콤한 당신>, <민들레>, <병이에요>, <다시, 첫눈에>, <사막의 밤>, <부르는 소리, 맞잡는 손>, <Silent night>, <충고>, <안개꽃>, <사랑이 맴돈다>, <시작>, <그대네요>, <흉터>, <사랑을 주세요!>, <그대 가슴에 입술 자국>, <질투는 녹색 눈의 괴물>, <발끝 아래엔 구름조각을>


그 외에 비공개 원고 분량이 약 100P 가량으로 단편 <술버릇>과 중편 <Pokarekare Ana>가 완결까지 실려있습니다. 

재록본이기 때문에 별도의 샘플 공개는 없습니다. 


+표지 일러스트 :: Butters님이 힘써주셨습니다. 사랑합니다..S2









《빗방울의 행방》

보쿠토×아카아시

140*210 | 인쇄 | UV코팅 | 317p | 18,000원





5월, 6월 웹에 공개된 원고 모음집. 미공개 원고가 들어갑니다. 

웹 공개 원고는 http://rrdrops.tistory.com/ 에서 확인해주세요!

재록본이기 때문에 샘플 공개는 없습니다. 


표지 일러스트 Butters님께서 힘써주셨습니다♥


<불꽃놀이가 피어오르는 순간>, <첫키스는 레몬사탕 맛>, (Mission Impossible>, <Mission Possible>, (꿈같은 일>, <어깨 위로>, <Lunatic>, <여전히 꿈결>, <사냥꾼과 인어공주>, <늦게 피는 수국> 이 수록됩니다.










《빛에 관한 기억》

보쿠토×아카아시

140*210 | 인쇄 | 먹박 | 132p | 10,000원




코노하가 바라보는 보쿠토와 아카아시의 이야기









《Happy Beginning》

보쿠토×아카아시

140*210 | 인쇄 | 청박 | 52p | 5,000원



보쿠토와 아카아시가 동거를 시작하며 집을 알아보는 이야기. 

Butter님의 만화 신간 《HAPPY END》와는 「동거」라는 키워드를 공유하고 있지만 

내용이나 배경설정 등은 이어지지 않아요!

표지 일러스트 Butters님께서 힘써주셨습니다!♥







《Starry Starry Night 별이 빛나는 밤》

SOLDOUT

보쿠토×아카아시

140*210 | 인쇄 | 무광금박 | 88p | 8,000원



'이기는 사건'만 맡는다는 소문이 있는 차가운 인상의 검사 아카아시와 

여전히 불의에 열을 내는 형사 보쿠토의 이야기.


주의사항 - 강간 사건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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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네가 나 대신 사과해?”


그건 아마도 가을이었으리라, 아카아시는 찬찬히 기억을 되짚어 보며 생각했다.


*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마에 이름표를 붙이고 태어나는 게 아닐까. 이 애는 앞으로 사랑받을 사람. 이 애는 사랑을 줄 사람. 이 애는 사랑받지 못할 사람. 이 애는 사랑하지 못할 사람. 


아카아시가 그 생각을 처음 한 것은 고등학교에 들어와 한 학년 위의 선배를 보았을 때였다. 혼자만 체력 게이지가 하나 더 있는 것 같은 사람이었다. 본인이 납득하지 못하는 결과가 나오면 주위를 아랑곳 않고 무너지듯 처졌고 기대 이상의 결과가 나오면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뻐했다. 단순한 것 같은데도 다루기 까다롭고 제멋대로다. 아무리 실력이 출중하다 해도 저렇게 감정기복이 심하면 함께 지내기 지치고 피곤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그렇지가 않았다. 빠져드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그림으로 그린 듯한 스파이크를 꽂아 넣고서도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삐죽거리는 모습을 볼 때, 목소리조차 변치 않는 목소리로 굉장하다 시큰둥하게 말해준 것만으로 기뻐하며 코트를 가로지를 때, 먹고 싶은 것 앞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모습을 볼 때…….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그의 친구들도 똑같이 짓곤 하는 표정이었는데. 그런 것을 제외하면 금방 시무룩하게 처졌다고 또 놀라울 만큼 신이 났다가 하기를 반복하는 피곤하기만 한 사람이었는데. 


처음에는 목소리가 들리면 돌아보게 되었고 그 다음엔 그가 오기를 기다리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언제나 바라보게 되었고 마침내 눈을 마주치면 더는 보고 있을 수가 없게 되기까지는, 계절이 한 번 변하는 시간이면 충분했다.


매미소리가 귀청을 때릴 듯이 울고 습기 찬 공기가 끈끈하게 몸에 달라붙던 한 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한참을 뛰었더니 숨만 쉬어도 구역질이 날 정도라 겨우 체육관 벽에 기대어 숨을 돌리고 있었는데 불쑥 그 선배가 그의 앞에 나타났다. 다들 더위에 나가떨어져 가는데 혼자만 다른 세상 사람인 것처럼 쌩쌩했다. ‘설마 여기서 토스 올려달라는 말을 하지는 않겠지’ 라고 생각하면서도 불안해서 숨을 들이키는데 그가 불쑥 손을 내민다. 손에는 얼린 생수병이 들려있었다. 


-어…….


부에서 매니저들이 챙겨주는 드링크도 아니고 부활동 시작한지도 몇 시간이나 됐는데 어디서 얼린 생수병이, 아카아시가 그렇게 생각하는데 보쿠토는 받아주지 않는 것이 민망한지 재차 그에게 다시 내밀었다. “친구가 학원 가는 길에 들린다고 해서 사달라고 했어.” 얼결에 받았는데 그 선배가 자기 뺨을 툭툭 건드렸다.


-얼굴 빨개, 아카아시. 더위 먹겠다.


천생 남에게 보살핌을 받으면 받았지 누굴 보살펴줄 성격은 아니라고 멋대로 생각했는데 의외의 면이었다. 본인도 자주 하는 행동은 아니었는지 쌩하니 몸을 돌린다. 보쿠토가 그 일로 같은 학년 부원들에게 얼마나 놀림 받았는지는 나중에야 들었다. 


이런 자잘한 관심도 시선도, 아카아시는 사실 익숙했다. 사람들은 기꺼이 그에게 호의어린 도움을 주곤 했다. 더한 것도 많이 받았다. 그 하나 하나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언제나 감사히 생각했지만, 그래도 그 모든 게 그에게 특별한 울림으로 다가온 적은 없었다. 


그런데 고작 여름날의 얼음물 하나로 이렇게 마음이 흔들리고 마는 건 도대체 왜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억울할 지경이었다. 무어 대단한 걸 받았다고 이렇게 되는지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신이 받은 것보다 준 게 훨씬 많았다. 매일같이 보쿠토에게 붙잡혀 토할 때까지 토스를 올려주었고 기분이 들쭉날쭉한 모습을 보일 때에 달래준 것도 그였으며, 며칠 전에 부실 청소를 하던 저 선배가 망가뜨린 캐비닛을 수리한 것도 그였고, 동급생의 머리카락이 교복 단추에 얽혔을 때 끙끙거리다 머리카락을 한 움큼 뽑아버렸을 때에 대신 사과한 것도 그였다.


그런데 고작 얼음물 하나를 받았다고


이렇게 마음이


어떻게 마음이 이럴 수가 있지. 


아카아시는 더운 열기에 물방울이 잔뜩 맺힌 페트병을 이마에 대고서 한숨을 내쉬었다. 어여삐 여길 구석이라고는 없는 사람이었다. 손이 더 가기밖에 더하나. 그런데 왜 좋아하게 되는 건지, 신이 있다면 붙잡아 묻고 싶었다. 저 사람의 어디에 자신이 이렇게 되었느냐고. 이건 불공평하지 않느냐고. 사랑받기 위해 죽을 만큼 애쓰는 사람들도 있는데 왜 그 사람들은 안 되는 걸, 저 사람은 저렇게 쉽게 해내는지 알 수가 없다고. 


하지만 신이 와서 네 마음을 돌려 주겠다고 한다면 고개를 저을 것이었다. 


아카아시는 그게 가장 억울했다. 


*


그의 한 학년 선배인 보쿠토 코타로는 정말로 종잡을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낯을 가리는 것도 같고 사람한테 관심이 없는 것도 같은데, 어느 면에서는 깜짝 놀랄 만큼 거리감 없이 친근하게 굴기도 했고 다른 사람이 했으면 실례라며 질책 들었을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누구도 그를 미워하지는 않았다. 악의가 없는 것을 너무나 잘 알 수밖에 없는 얼굴인 것이 한 몫 했을 것이다. 그래도 사과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보쿠토는 사고를 치고, 그럼 아카아시가 대신 사과하는 것이 일상인 나날이 이어졌다. 


그 날은 2학기가 시작하고 몇 주인가 지났던 날이었다. 음악실에서 수업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보쿠토의 교실이 있다. 보쿠토는 친구들과 웃고 장난치고 있다가 때마침 그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선 와락 달려들었다. 아카아시가 그것을 받아주느라 뒤로 휘청거리며 음악책이 떨어진다. 주워준 건 보쿠토와 같은 반인 사람이었다. 


-아, 얘 또 후배 잡네. 


보쿠토의 반 친구들은 이미 아카아시와도 제법 안면이 있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책을 건네주며 보쿠토 탓에 고생이 많다고 사과의 말을 한다. 아카아시는 예의상으로도 괜찮다는 말이 나오지 않아서 한숨만 꾹 참는데 아카아시의 어깨에 매달린 보쿠토가 불쑥 말했다. 


-네가 왜 대신 사과해?


이해할 수가 없는 듯이 순수한 의문으로 가득 찬 목소리였고 친구는 웃음을 터뜨리며 보쿠토를 툭 쳤다. 야, 네가 민폐를 끼치니까 그렇지! 대화는 부드럽게 흘러갔고 아무도 무안해하지 않았지만 아카아시만은 그 사이에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보쿠토는 그에게는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 


거기에 또 마음이 흔들, 흔들. 


아카아시는 돌연 분한 듯이 보쿠토를 교실로 밀쳐내고는 음악 교과서를 챙겨준 다른 선배에게 꾸벅 인사했다. 그 날 오후 내도록 휴대전화는 그에게 연유를 묻는 보쿠토의 메세지로 바빴지만 아카아시는 뚱한 표정으로 응해주지 않았다. 


도대체가 대신 사과해주고 다니는 걸 당연히 여기는 것으로 마음이 또 기울어버릴 것은 무어란 말인가? 그게 무어 대단한 특권이라도 준 것이라고, 그걸로 또 혼자 기뻐하는 건 뭐야? 도리어 번거로운 일이기만 했는데 도대체 자신은 왜?


보쿠토는 오후 부활동 하는 내내 그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그러더니 마지막엔 정말로 자기가 민폐였느냐고 축 처져서 묻는다. 아카아시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자신의 가슴팍을 꾹 눌렀다. 늑골 사이가 저린 것처럼 아팠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있으려니 이제 어디 많이 아프냐고 난리가 난다. 보쿠토의 난리 법석에 선배들까지 몰려와서 아카아시의 상태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서 아카아시는 스르르 허물어졌다. 놀라서 새파랗게 질린 보쿠토가 아카아시를 받치고서는 어쩔 줄을 모르는데 아카아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보쿠토에게 기대어 있기만 했다. 그의 작은 심술이었다. 


근육의 섬유 하나 하나 사이 사이로 작은 싹이 돋는 것처럼 간지럽고 아팠다. 아카아시는 왜 사람들이 사랑을 일러 꽃이 핀다고 말하는지 깨달았다. 자신의 꽃을 피게 한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았다. 모르는 척 하고 싶었는데 모를 수가 없었다. 바라보고 있으면 뿌리가 깊어져갔고 자신을 보고 웃어주면 철모르고 잎사귀가 돋았다. 가슴에 붉은 꽃봉우리가 맺혀있는 것 같았다.


그가 고등학교에서 첫 여름을 보내고 가을이 접어들 때의 일이었다. 


*


가을이 지나고 금방 추위가 찾아왔지만, 마음에는 겨울이 올 줄을 몰랐다. 아카아시가 마음을 지키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보쿠토가 스스로 특별하게 여기는 사람에게 온 마음을 다하는 것은 감출 수도 숨길 수도 없었다.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나 알 수가 있었다. 목소리에서부터 색깔이 바뀌고 떠나면 아쉬워했으며 오는 것을 보면 빛이 넘쳐흐르는 것처럼 활짝 웃었다. 보쿠토에게 가장 특별한 건 아카아시 자신이었다. 


연인이 아니어도 좋았다. 그에게 가장 특별하면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그 이상을 바라느라 도중에 헤어지는 것보다는 끝까지 그에게 가장 특별한 사람인 것으로 충분했다. 그렇게 생각하여서일까, 마음은 시들 줄도 꺾일 줄도 몰랐다.


생일이 언제냐기에 12월이라고 했다. 며칠이냐고 해서 오늘이라고 했다. 보쿠토는 소스라치게 놀라더니 하루 종일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는 눈치였다. 아직 그는 주전도 아니었던지라, 함께 시합에 나간 적도 없는 동아리 후배의 생일에 그렇게 열을 올릴 필요는 없다고 만류하고 싶었는데 그 모습이 싫지 않아서 내버려두었다. 그랬더니 부활동이 끝나고서 무작정 그를 끌고 가 저녁은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서는 누군가에게 물어봐 알아냈다는 과자점에 들러 산더미만큼 쿠키와 과자를 사다 안겨주고 그 다음에는 초조한 듯이 길거리를 배회하다가 그를 데리고서 스포츠 용품점으로 향했다. 본인이 매번 서포터 하는 것을 생각해 서포터라도 사줄 생각이었던 것 같았다. 저 서포터 안 하는데요, 그 말에 보쿠토는 세상이 무너진 것 같은 표정으로 그를 돌아보았었다. 


그게 재작년이었다. 작년 겨울에는 만반의 준비를 했다는 듯이 뿌듯한 얼굴로  그의 생일이 되는 자정에 그의 집 앞에 나타났다. 미리 사왔다는 케이크에는 초가 불 붙어 있었는데 두어개는 겨울바람을 맞고 꺼진 뒤였다. 이거 몇 개는 꺼졌네요, 아카아시가 그렇게 말했더니 보쿠토는 또 화들짝 놀라서 덥석 케이크를 그의 손에 쥐어주고는 꺼진 초에 다시 불을 붙이고, 케이크를 다시 자기가 쥐고서 그제야 또 활짝 웃었다. 선물은 배구화였다. 작년에 섣불리 서포터를 사주려고 했던 실패를 만회하려는 듯이. 


그리고 또 다시, 세 번째 겨울이 오고 있었다. 


밤하늘은 점점 더 청명한 남빛으로 물들고 별빛이 선명하게 반짝였다. 호흡하면 공기 중에 시린 안개가 섞였다가 희뿌옇게 사라진다. 가슴 속에 꽃을 피운 지도 3년이 다 되어간다는 뜻이기도 했다.


작년 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기 전 보쿠토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조금 허전하겠다고만 생각했는데 막상 졸업식을 하느라 블레이저의 단추는 다 뜯기고 품에는 모두에게서 받은 꽃다발을 한아름 안고 있는 보쿠토를 보고 있으려니 까닭 모를 억울함이 솟구치는 것이었다. 혼자 졸업한다고 머리도 표정도 엉망이 되어서는 와하하 큰 소리로 웃고 있는 것이 그가 알고 있던 보쿠토와 똑같아서 더욱 그랬다. 괜히 화가 나서 축하한다는 말도 하지 못하고 먼저 등을 돌렸다. 이런다고 해도 그는 모를 거라 생각하니 더 속이 엉망이 되어갈 때, 보쿠토가 달려와서 그를 붙잡았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에 몰아쉬는 숨이 급하게 달려왔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보쿠토는 몹시 섭섭한 표정을 하고서 품에 있는 꽃다발들을 꾹꾹 움켜쥐었다. 그를 보고 어디갔었느냐고 묻는다. 


-3학년들 졸업식이잖아요, 2학년은 할 것도 없고…….


말을 하면서도 스스로의 졸렬함에 입술을 깨물어야 했다. 문장의 전부가 오로지 한 가지 목적만을 위해 태어난 것이다. 그를 상처주고 싶다는 목적 하나만을 위하여. 


혼자 좋아하는 것뿐인데, 그가 고백조차 하지 않은 자신의 마음에 응해주어야 할 까닭도 없는데, 그런데 혼자서 화가 났고 혼자서 섭섭하고 혼자서 속이 엉망이 되어서 당신의 졸업식 같은 건 아무짝에 상관없다는 투로 뱉고 말았다. 이렇게 말한들 그에겐 아무 의미도 없을 텐데. 상처주고 싶다는 자신의 마음은 죄를 짊어지지도 못할 텐데. 그는 자신의 말에도 상처받지 않을 것이고 자신의 그런 목적은 존재할 수 있는 조건이 결핍되어 그 문장은 태어날 때부터 미수에 그칠 수밖에 없었으므로. 


그마저도 화가 나서 사람들이 찾을 테니 가보라고 말을 하려고 했는데 그만 아카아시는 눈을 크게 뜨고 말았다. 보쿠토의 눈가가 빨갰다. 마치 어린 애가 눈물을 꾹 참고 있는 것처럼 그랬다. 그가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후두둑 눈물을 떨어뜨린다. 마음을 참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니 어쩌면 당연했다.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면서도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또 마음이, 마음이.


-아, 이, 이게 아닌데. 아, 왜 이러지, 아~! 진짜!


손으로 부채질도 하고 발도 구르면서 눈물을 그치려고 하는 보쿠토였지만 모든 건 아무짝에 소용없었고 눈물만 더 격하게 흐르도록 할 뿐이었다. 아카아시는 한참이나 말을 잃은 채 그의 눈물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 죄를 지었다…….


보쿠토는 자신의 감정도 모르고서 눈물을 참으려고 애쓰기만 했다. 한참을 그러고 있기에 결국 아카아시가 나서서 그 눈에 눈물을 닦아주었다. 보쿠토는 그 손을, 그 손의 주인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어린애마냥 소리 내 울음을 터뜨렸다. 왜 한 해 늦게 태어났느냐고 그를 비난하면서. 


유리 조각이 가슴에 박히는 것 같았다. 쇠기둥으로 찍히는 것도 같았다. 아카아시는 그것들을 천천히 조립해 가슴 위에 유리 온실을 지었다. 무너지지 않도록 보쿠토의 눈물로 덧칠한 투명하고 아름다운 유리온실이었다.


이제 보쿠토가 곁에 없어도 그의 가슴에 핀 붉은 꽃은 시들지 않는다. 


*


“선배, 연습은요.”

“하고 왔어, 하고 왔어~!”


보쿠토는 졸업을 하고서도 일주일에 한 두 번은 아카아시를 만나러 왔다. 한 학기에 한 번쯤은 학교로 직접 찾아오기도 했다. 그러지 않아도 마음이 정리될 일은 없을 것인데 꼬박꼬박 연락을 하고 찾아오니 더욱 시들 줄을 몰랐다. 


“아카아시! 생일 축하 합니다!” 

“네, 네에.”


오늘도 부활동을 끝내고 나오니 교문 앞에서 보쿠토가 기다리고 있었다. 체육관까지 찾아와도 됐을텐데 왜 추운 날 밖에서 기다렸느냐 하는 말에 보쿠토는 어물쩍 대답하지 않고서 대뜸 생일을 축하한다고 한다. 아카아시는 덤덤하게 수긍했다.


“엣! 안 놀라!?”

“……제 생일 잊으실 거였습니까?”

“무, 물론 아니지! 당연히 아니지!”


화들짝 놀라서는 부정하는 모습도 내내 봐온 그대로다. 아카아시는 작게 웃음을 삼켰다. 사실은 몇 주인가 전에, 아마도 친구인 쿠로오에게 보내는 것이었을 메세지를 봤다. ‘아카아시 생일 선물 뭐 샀어?’ 라는 질문이었다. 실수로 보낸 것인지 텍스트가 연이어 올라오며 혹시 방금 전에 보낸 메세지를 보았느냐 다급하게 묻는다. 아카아시는 그 쪽에서 삭제한다고 해서 이쪽에서도 메세지가 지워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을 해줄까 말까 고민하다가 ‘무슨 메세지 보내셨는데요?’라고 답장해 보쿠토를 안심시켜주었더랬다. 


아카아시는 자연스레 걸음을 맞추며 옆을 흘끗 바라보았다. 보쿠토는 추위에 노출된 탓인지 발갛게 달아오른 뺨으로 정면을 보며 걷고 있었다. 같은 학교에 있을 때에는 마냥 손이 많이 가는 사람이기만 했는데 대학에 가서 그런 것인지 떨어져있는 시간 탓인지 어른스러워진 것도 같았다. 눈가의 선이 깊어져있다. 자신은 모르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니 입 끝에 쓴맛이 감돌았다. 


“오늘 즐거웠어?”

“네? 네, 뭐…….”


반에서도 부에서도 요란하게 축하하고 선물들을 주었다. 단 것도 잔뜩 먹었다. 하루 종일 축하 인사를 듣고 돌아다녀, 조금 피곤하긴 했지만 보쿠토의 말대로 즐거웠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슨 말을 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아카아시는 슬그머니 입을 다물었다. 보아하니 정말로 그가 즐거웠는지 어땠는지 궁금해서 물어본 것은 아닌 듯했다. 교문 앞에서 보았을 때는 평소와 다를 바 없어 보였는데 한 걸음 한 걸음 지날 때마다 긴장이 도를 더해가는 것이 눈에 보였다. 


“보쿠토 선배?”

“어, 아, 어! 그……새, 생일 축하해!”

“아까 말씀하셨잖아요. ……저녁은 드셨어요? 안 드셨으면 저녁 먹으러 가죠.”


보쿠토가 아카아시를 만나러 왔던 지난 1년 동안 보쿠토가 저녁을 먹고 온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아카아시는 굳이 그렇게 얘기했다. 떠듬떠듬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말을 하려던 보쿠토가 단숨에 입을 틀어막고는 고개를 젓는다. 


“보쿠토 선배?”

“그, 어, 밥 말고……. 나 어디 갈 데 있는데 같이 가자!”


아카아시는 웃음을 꾹 참았다. 자신이 가장 특별하게 생각하는 후배의 생일을 위해서 무언가 준비를 하는 모양이었다. 저 배가 고픈데요, 이런 말을 하면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를 것이다. 그런 장난을 쳐볼까 하는 마음이 살짝 들었는데 그마저도 녹아내려서 그만두었다.


같은 색의 마음이 아니어도 좋았다. 보쿠토가 다른 누군가를 자신 같은 마음으로 바라보게 된다면 멀쩡할 것이라 장담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이것이면 괜찮은 것 같았다. 


그렇게 보쿠토가 그를 끌고 간 곳은 어느 백화점이었다. 10층인가 12층인가 높이 올린 곳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설마 백화점에서 선물을 사주려고 그러나, 아카아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보쿠토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보쿠토는 자주 와본 것인지 헤매는 것 없이 엘리베이터를 찾아간다. 아카아시는 묻지 않고서 잠자코 그의 곁에 서주었다. 


백화점의 안쪽 깊숙한 곳에 위치한 승강기여서인지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문이 열리고 탔던 사람들이 내리고 나서 승강기에 오르는 건 아카아시와 보쿠토 뿐이었다. 아카아시는 보쿠토가 알아서 목적한 위치를 누르는 동안 승강기의 유리벽 바깥을 내려다보았다. 백화점의 화단들 위로 부드러운 색의 전구가 장식되어 있고 사람들이 바삐 오간다. 학교를 나설 때만 해도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는데 이젠 완전히 새카만 밤이었다. 승강기가 올라가면서 바닥이 멀어지고 하늘이 가까워지며 속이 살짝 울렁거렸다. 아카아시는 바깥에서 눈을 떼고 안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또 웃음을 꾹 참았다. 보쿠토가 제 손을 꽉 붙들고서는, 연신 긴장이 역력한 얼굴로 승강기의 층수가 올라가는 것만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좀처럼 멈추지 않는다 싶었더니 옥상까지 올라가는 것이었던 듯했다. 바깥으로 나오자 서늘한 겨울 초입의 공기가 뺨을 스친다. 그들 앞에는 아주 커다란 관람차가 천천히 굴러가고 있었다. 보쿠토가 아카아시의 손목을 덥석 움켜쥐고는 앞장선다. 매표소가 따로 있는데 그 곳을 들르지도 않고서 품에서 티켓 두장을 꺼내는 보쿠토였다. 미리 준비한 것 같았다. 


옥상에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두 사람은 기다리지 않고 곧장 관람차에 오를 수 있었다. 아카아시는 관람차 안에 자리를 잡고 나서야 짧은 숨을 토해냈다.


“보쿠토 선배한테 이렇게 낭만적인 면이 있을 줄은…….”


관람차의 유리창에 손을 대고서 작게 말해보는데 대답이 없다. 아카아시는 정면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눈만 깜박거렸다. 보쿠토가 자신의 손을 맞잡고서는, 긴장이 역력한 표정으로 아카아시의 자리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눈이 마주하는 것은 아닌 걸 보니 무릎이나 발을 보고 있는 것 같다.


“보쿠토 선배……?”


관람차는 천천히 올라가며 점점 더 하늘과 가까워져간다. 아카아시가 이젠 조금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아카아시…….”


보쿠토가 고개를 들고 겨우 그와 눈을 마주했다. 아카아시는 고개를 끄덕여 듣고 있다는 뜻을 표출해주었다. 보쿠토의 얼굴이 긴장인지 아니면 다른 까닭인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쯤 되면 몸이 안 좋은 게 아닌가 싶은데 관람차 안이어서 도중에 내릴 수도 없었다.


“아카아시 그……내가.”

“네. 선배 무슨 일 있어요? 설마 누구 보증 섰어요?”

“……아니야……그거 아니야…….”


보쿠토가 그 와중에도 고개를 젓는다. 아카아시는 그럼 됐다며 무슨 일인지 말해보라고 보쿠토를 도닥여주었다. 


“네, 그럼 무슨 일인데요.”

“그게 내가……. 내가…….”

“네.”


이제 보쿠토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그러다가 보쿠토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의 손바닥에 반도 차지 않는 조그만 상자였다. 비슷한 것을 어디서 봤던 것도, 아카아시가 그렇게 생각했을 때 보쿠토가 그만 상자를 놓치고 만다. 바닥에 떨어진 상자가 배를 보이며 반으로 열렸다. 먼저 주은 사람은 아카아시였다.


“선배, 조심하…….”


아카아시는 그만 열린 상자의 내용물을 보고서 입을 다물었다. 보쿠토는 이제 목까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아카아시가 아무 말도 못하고 보쿠토를 돌아보았다. 보쿠토는 이번만은 눈을 피하지 않고 그를 마주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외쳤다.


“조, 좋아해! 아카아시 좋아해!”


유리 온실이 산산이 부서지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온 것 같았다. 


*


“어…….”

“……아, 아카아시는 싫어……?”

“아니, 그게 아니라. 좀 당황해서……. 선배 뭐라고 하셨죠, 방금?”

“아 좋아한다고!” 


아카아시는 반지를 내려다보며 한참을 생각했다. 좋아한다고? 보쿠토 선배가 나를? 내 생일에 나에게 고백? 


지나치게 꿈같은 일이라 오히려 침착할 수 있다. 관람차가 꼭대기에 다다랐을 때 아카아시는 차분히 생각했다. 이 사람이 착각했나? 너무 좋아하는 후배라서 아끼는 마음을 착각했을까? 가능성이 높았다. 기뻐한 후에 진실을 알고서 실망하고 싶지 않았다. 낙하할 거라면 처음부터 오르지 않고 싶다. 


“선배…….”

“……으, 으응.”

“저한테 키스할 수 있어요?”


그건 ‘정말로 저를 사랑한다는 뜻이 맞나요?’라는 뜻이었다. 그렇게 사랑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면, 또 후배를 아끼는 마음 위에 사랑이라는 단어를 덧씌워 그렇다고 해버릴까봐 돌려 물었다. 이런 말을 들으면 놀라서 물러설 거라고 생각했다. 그랬는데.


“해…….”

“네?”

“해도 돼!?”


반짝반짝, 겨울 밤의 빛은 관람차의 탁한 유리창을 통과해 흐릿한 흔적만 남을 뿐인데 저 사람의 눈은 어쩌면 저렇게 빛나는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보쿠토는 벌떡 일어났다가 관람차가 흔들리자 놀라서 주춤하고는 아카아시 앞에 무릎 꿇고 선다. 바닥이라 지저분하다는 말로 만류할 틈도 없이 보쿠토가 아카아시의 교복 깃을 끌어당겨 그대로 입맞춤했다. 길고 깊은, 참아온 모든 것들이 담긴 입맞춤이었다. 


“좋아해…….”

“…….”

“좋아해. 아카아시, 좋아해. 좋아해…….”

“아, 알았어요. 알겠으니까…….”

“아카아시는? 응? 아카아시는?”


보쿠토가 이제 일어났으면 좋겠고, 잡고 있는 옷깃도 놓아주었으면 좋겠고, 지금 이렇게 가까운 거리도 조금은 멀어졌으면 좋겠는데 영원히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함께 떠올랐다. 


아카아시는 천천히 눈을 깜박이며 보쿠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늑골 사이 사이가 저린 것처럼 아팠다. 숨을 쉬기가 버거웠다. 꽃이 피어난다. 한 송이, 두 송이, 세 송이, 열 송이, 수십송이, 수백송이, 수천송이가 동시에 피어난다. 아카아시는 보쿠토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그만 눈을 감았다. 


그에게 가장 특별한 후배인 것으로 만족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유리 온실 속에 꽃을 피워둘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에게 다른 누군가가 생겨도, 그래서 그 사람에게 사랑을 속삭인다고 해도, 그에게 특별한 후배는 자신 단 하나뿐이니까 그것으로 괜찮다고. 온실 속에 시들지 않을 단 한 송이 꽃으로 괜찮을 거라고. 


“……좋아했어요. 쭉 좋아했습니다.”

“지금은?! 지금은? 지금은 아니야?”


초조하게 대답을 재촉하는 그 모습마저 좋아서 아카아시는 보쿠토를 끌어당겨 먼저 입맞춤했다. 아마도 사랑하는 것 같아요. 입 속에서 속삭인다. 그 말을 듣고서 보쿠토의 얼굴이 화악 붉어졌다. 고백을 한 뒤에 먼저 입을 맞출 때까지는 아카아시가 만류할 여지도 없었건만 지금은 천진난만한 아이 같다. 반지를 끼워주려는 손이 떨리고도 있었다. 약지에 반지를 끼워주고는 한참을, 넋을 놓은 듯이 그의 손을 만지작거린다. 그건 관람차가 처음 위치로 돌아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보쿠토는 홀린 듯이 아카아시의 손을 잡고 내려섰다가 백화점 옥상의 찬바람을 맞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아!”

“왜, 왜 그래요.”

“이, 이게 아니었는데.”

“……네?”

“아, 관람차에서 야경 보여주려고 했는데! 제일 높이 올라갔을 때 야경 보여주려고 했는데……. 야경 보여주면서 멋있게 고백하려고 했는데…….”

“…….”

“너무 긴장해서 깜빡 했어……. 아카아시, 다시 탈래?”

“……됐습니다.”


아카아시가 거절했더니 보쿠토는 또 냉큼 고개를 끄덕이곤 그의 손을 잡고 앞장섰다. 배고프니 어쩌니 큰 목소리로 떠드는 게 평소와 다를 바 없어서, 잡힌 손에 땀이 흥건한 것을 몰랐으면 그가 아직도 긴장하고 있는 것을 알아채지 못할 지경이었다.


“밥부터 먹고 뭘 하던가 하지 그랬어요.”

“아, 그게……. 너무 긴장해서 토할까봐…….”

“…….”

“근데 지금은 먹으면 체할 것 같다.”

“왜요.”

“너무 좋아서…….”


꽃이 지치지도 않고 피어난다. 아카아시는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가슴팍을 꾹꾹 내리눌렀다. 보쿠토가 또 놀라서는 어디 아프냐고 묻는다. 내려가는 승강기에서도 올라올 때처럼 단 둘뿐이었다. 아카아시는 자신의 가슴팍에서 손을 떼고 보쿠토의 손을 붙잡은 채 짧게 입맞춤했다. 보쿠토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서 얼어붙는다. 


“너무 좋아서요.”


가슴에서 피어난 이 꽃을 모두 당신에게 줄 수 있어서 생에 가장 기쁜 생일이라고 말하고 싶은데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아카아시는 그저 다시 한 번 짧게 입맞춤했다. 얼었다 깨어나는 보쿠토의 눈가가 또 빨갰다. 눈물을 참는 것처럼 빨갰다. 


“왜 울어요…….”

“나, 나도 몰라! 아! 진짜! 이거, 이게 아닌데!”


보쿠토는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면서 손으로 부채질을 하기도 하고 발을 구르기도 했다. 아카아시가 그의 졸업식 날 매서웁게 말미를 떼었던 그 때처럼. 


가슴 위에 세웠던 조그만 유리 온실이 모두 부서지고, 세상 전부가 그의 꽃을 피우는 유리온실이 되어간다. 아카아시는 보쿠토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보쿠토가 아카아시의 양손을 붙잡아 자신의 이마에 대고서 흡사 기도하는 듯이 중얼거렸다. 문장은 잘 들리지 않았다. 다만 고개를 든 그의 눈이 빛으로 가득 차 있어서, 그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어떤 모양새인지 너무나 선연히 보여서, 보쿠토가 사랑을 말한 것을 알았다. 






 
















Sincerely, truly yours





아카아시 케이지, 21세, 매해 닥치는 인생의 위기…….


“아니, 저기……. 나 정말로 단건 잘.”

“가, 가지고 가서 버리셔도 되니까요! 받아만 주세요!”

“그게 아…….”


아카아시가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끝을 흐렸지만 그의 앞에 선 상대는 아카아시의 품에 정성스레 포장한 뭉치를 밀어붙이고는 후다닥 도망쳐버리는 것이었다. 아카아시는 막막한 표정으로 품 안의 상자를 내려다보았다. 달콤한 향이 떠돈다. 


밸런타인이었다. 



*



훤칠한 키에 세련된 미형의 남자가 명석하고 일처리도 유능하며 배려심도 깊을 때 어떻게 되는가? A대학 B학과의 N학번 C군은 그에 대해 간단하게 말할 수 있었다. 


바로 여기 아카아시 케이지를 보십시오! 


오늘 아카아시는 하루 종일 곤혹스러운 표정이었다. 그에 대해 가볍게 시기하는 투로 말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아카아시의 곤란한 심정을 헤아려 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카아시는 누구의 고백도 받아주지 않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받아만 주세요’ 혹은 ‘들어만 주세요’가 빗발쳤던 것이다. 거절하는 쪽의 마음도 편치만은 않은 것이 인지상정 아니던가. 


심지어 올해는 달리 마음에 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까지 했는데도 불구하고 작년과 크게 바뀐 것이 없다. 당황하는 아카아시에게 누군가가 나직하게 일러주었다. 그걸 누가 믿냐. 모두가 고백을 난처해하는 아카아시 나름의 상냥한 거짓말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아카아시가 품에 이것저것, 심지어 꽃다발까지 한아름 안고 있는 것을 본 과 선배가 위로의 뜻을 담아 그의 등을 툭툭 치고 지나갔다. 언젠가 한 번 유난히 힘들어하는 그를 향해 차라리 즐기지 그러느냐고 마음을 다해 충고했던 선배였다. 


밸런타인 날짜가 방학 한 가운데의 어정쩡한 날이어서 다행이지, 행여나 학기 한 가운데였으면 여간 난처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카아시는 받은 것을 챙겨들고 과실을 나섰다. 평소에는 단정하던 아카아시의 걸음이 축축 늘어진다. 아직 다 가시지 않은 겨울의 찬 공기가 그의 입 근처를 스치며 달큰한 안개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안개가 한 번 눈앞을 흐렸다 깨어지고 가벼운 경적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카아시는 호흡이 티나지 않게 숨을 들이켰다. 아카아시의 앞으로 세단 하나가 미끄러지듯 들어온다. 운전석에 내리는 사람은 키가 훤칠해 그저 내려서는 동작만으로 주위의 이목을 잡아끌었다. 이제 서른은 넘었을까 싶은데 표정에 빛이 넘쳐 되레 나이를 가늠할 수가 없다. 흰 셔츠에는 가느다란 빗줄기같이 보일 듯 말듯 은사 자수가 들어가 있었고 기세 좋게 움직이는 몸을 따라 넥타이도 휘날렸다. 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금빛 눈동자였다. 사람의 것이라기보다는 맹렬한 짐승의 것 같다는 느낌이 돌았는데 그가 어떤 것을 마주하는 순간 눈이 녹은 것처럼 달게 녹아내린다. 


그 시선 끝에 바로 아카아시가 서 있었다.


아카아시는 입술을 꾹 닫고서 오늘의 일을 헤쳐 나가기 위해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그의 한참 연상인 약혼자는 도무지 한 번 심통이 나면 물러주는 법이 없었다.


“아카아시!”

“……보쿠토 씨. 오셨어요.”

“응~! 오늘 우리도 일찍 끝나서. 수업은? 다 끝났어?”

“예, 뭐…….”


아카아시는 최대한 침착하게 대답하고는 몸을 돌려 보조석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 시도는 그다지 소용이 있지는 않았다. 보쿠토가 들떠서 보조석의 문을 열어주다가 기어코 봐버리고 만 것이다.


“……아.”


금빛 눈이 크게 뜨였다가 천천히 가라앉는다. 아카아시는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동작으로 짐 꾸러미를 뒷좌석에 내려놓고는 자리에 앉았다. 곧 운전석으로 돌아온 보쿠토는 처음의 불타는 태양같이 웃는 낯은 온데간데없이 잔뜩 시무룩하니 축 처진 얼굴뿐이었다. 아카아시는 암담한 표정을 애써 감춘 채 안전벨트의 버클을 잡아당겼다.


“그, 보쿠토 씨…….”

“……응…….”


아, 이미 끝나버렸다. 아카아시는 손에 얼굴을 묻고 싶은 심정으로 안전벨트를 꽉 쥐었다. 


보쿠토가 밸런타인데이만 되면 기가 죽어서 맥을 못 추는 것이 올해로 몇 년이나 된 일인지 모른다. 아침부터 긴장과 근심 걱정에, 아카아시가 초콜릿이나 선물 따위를 실제로 바리바리 받아온 것을 보면 그 날은 내내 우울해져서 표정을 펴질 않았다. 아카아시가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다. 그가 교복 차림으로 이 옆자리에 앉았을 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았다.


세단이 미끄러지듯이 학교 정문을 벗어나 시내로 향한다. 아카아시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서 어떻게 보쿠토를 달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이쪽은 정말로 약혼을 해 장래를 기약한 사이이고, 심지어 그것을 떠나 자신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받을 뜻이 아주 조금도 없다는 것은 이미 귀에 못이 박히게 이야기 했던 것들이다. 보쿠토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으로는 납득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보쿠토 스스로도 그런 자신이 답답한 것 같았지만…….


“보쿠토 씨.”

“…….”

“보쿠토 씨, 전화 울려요. 받으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사님이신데…….”

“아! 아! 자, 잠시만! 어!”


혼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핸들을 쥐고서 앞만 어질어질 바라보고 있던 보쿠토가 다급하게 골목으로 차를 집어넣고 세웠다. 평소에는 간단한 통화는 운전 중에도 받아 끝내곤 했는데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는 것 같았다. 


“아, 네. 이사님. 아……. 네? 그거는 이미 시뮬이 끝난 모델인데 왜……. 아 지금? 아니 오늘 날이 무슨 날인데 퇴근한 사람을……아니 그게 아니라, 아니 크긴 다 컸죠, 대학 입학한 지가 언젠데요! 아니……그래도 아직 앤데요 제가 저녁을……아닙니다……네……가야죠……. ……네…….”

“…….”


아카아시는 곁에 조용히 앉아서 드문드문 들린 대화의 내용을 바탕으로 상대방이 했음직한 말을 추리했다. 보쿠토가 있는 기업의 이사쯤 된다 하니 보쿠토의 정혼 상대인 자신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 듯했다. 보쿠토와는 한참 나이가 차이나는 어린 정혼자인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아마도 보쿠토는 지금…….


아카아시는 옆을 바라보았다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보쿠토는 그림으로 그린 듯이 울상이 되어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보았는데 참 한결같은 사람이다.


“가 보셔야 돼요?”

“……히잉…….”


자신이 초등학교 다닐 적에는 이 사람이 참 컸다. 숨어서 울고 있으면 이부자락은 밑에서부터 위까지 전부 들춰내고 책장의 책은 모두 거꾸러뜨려서라도 자신을 찾아내어 안아 올리는 이 사람이 정말로 컸었다. 마음껏 웃는 얼굴은 그의 깊은 곳까지 비춰주는 빛이 되었다. 그래서 빨리 자라고 싶어서 숨이 찼다. 목에 걸린 약혼반지가 그의 손에 너무 커서, 그것이 맞을 때까지 한 시라도 빨리 자라고 싶어서 호흡이 급하고 잠이 급하고 시간이 급했다. 


그래서 다 자라보니, 이제 손을 맞대어도 정면에 서서 상대를 바라보아도 모자라지 않을 만큼 자라보니, 이제 알 것 같았다. 평생을 더 자라도 저 빛을 앞지를 수는 없다는 것을. 


“일 급하게 서둘러 끝내놓고 온 거죠.”

“아, 아니. 그게 아니구…….”

“얼른 다시 가 보세요. 갔다 와서 저녁 먹을까요.”

“그치만……. 그치만 오늘 발렌타인이고…….”


이런 것은 알지도 못하던 사람이었다. 아카아시는 부드럽게 웃었다. 밸런타인데이 같은 건 챙기지도 않던 사람이었다. 그가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이것저것 받아오기 시작하니까 그 때부터 깜짝 놀라서는 챙기려고 들었던 것이었는데 한 번 마음을 먹은 뒤로는 거르는 법이 없었다. 달력에 적혀있는 기념일이라는 기념일은 전부 하나 하나 별처럼 소중하게 챙겨주었다. 


“그러니까 갔다 와서요.”

“……응, 그럼 집까지만 데려다 주고 갔다 올게. 아카아시, 미안…….”

“아니에요, 괜찮으니까요.”


특별히 약속을 한 것도 아니었으니 이렇게 미안해 할 필요가 없는데도 보쿠토는 어쩔 줄을 몰랐다. 어깨가 축 처지는 것 같았다.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올리지 않았던 머리카락이 그의 눈가를 스친다. 아카아시는 손을 뻗어 보쿠토의 앞머리를 살짝 정리해주었다. 


“저녁으로 맛있는 거 먹어요.”

“응…….”


어쩌면 차라리 이편이 더 잘 된 일일지도 몰랐다. 적어도 자신이 받아온 선물 쪽에서는 신경이 떠난 모양이니까, 아카아시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



아카아시는 천천히 실내에 빛을 올렸다. 보쿠토는 집 안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지만 아카아시가 고개를 흔들어 내보낸 차였다. 일 빨리 끝내고 와주세요, 그 말에 보쿠토는 돌연 기운을 얻었는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차를 몰아 돌아갔다. 


두 사람이 10년을 훌쩍 넘게 지내온 아파트였다. 처음 몇 년쯤 지났을 때 새로 건설하는 아파트로 이사하지 않겠느냐고 보쿠토의 부친이 말을 꺼냈었지만 아카아시가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서 보쿠토가 거절해주었다. 


그 뒤로 함께 한 시간이 쌓여있다. 실내는 조금 더웠다. 함께 지내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서먹하게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 어린 자신이 감기에 걸린 적이 있었다. 그 뒤로 보쿠토는 겨울을 춥게 나는 법이 없었다. 이쯤하면 더우니까 난방은 됐다고 해도 감기 걸릴까 걱정이 된다며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아카아시는 발코니 쪽 창가에 서서 바깥을 내려다보았다. 2월의 늦은 눈이 군데군데 남아있었다. 


서로가 기억하는 첫 만남이 어땠더라, 한다면 아카아시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너른 전통의 한가운데에 마련된 내실이었다. 가는 길은 조용했다. 멀찍이서 잉어 꼬리가 살짝 튀어 오르는 소리가 들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로 그런 소리가 들렸을 리는 없고, 아마도 어딘가에서 그저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났던 것일 테다. 어린 자신에게는 조금 높은 탁상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상대를 기다렸다. 눈앞에 놓인 찻잔에는 손을 데지 않았다. 처음엔 뜨거워서였고 나중엔 쓴 맛을 느껴서였다. 영원 같은 시간이 지나고, 자신에 비할 바도 없이 이미 어른이었던 남자가 놀란 표정을 하며 자신을 보았더랬다…….


보쿠토의 부친이 필요한 건 아카아시 가문의 이름이었고 어린 아카아시에게 필요했던 건 혼자 남겨진 그를 보살펴줄 사람이었다. 그 사이에 보쿠토가 책임과 의무를 떠맡게 되었다. 어린 마음에도 그것이 정말 미안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보쿠토가 하고 싶은 대로 해주어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약혼 같은 걸 깨고 싶어 한다면 그렇게. 자신이 독립할 수 있게 되면, 그렇게 해주어야 한다고. 그에게서 10년의 시간을 아이를 책임지는 데에 쓰게 했으니 그 이후는 마땅히 보쿠토가 바라는 대로 해주는 것이 옳다고. 


그 10년이 되기 전에, 그런 걸 바라지 않는다고 눈물로 말해준 보쿠토였다. 어린 그를 안아드는 손은 두텁고 어깨는 넓어, 안겨있으면 마냥 큰 사람만 같았는데 그렇게 눈물을 터뜨리는 모습은 아이 같았다. 


아카아시는 겉옷을 적당히 식탁 근처에 걸어놓고는 서재로 들어갔다. 보쿠토는 아카아시가 곁에 있으면 아카아시 외의 것에는 제대로 집중을 하지 못해서 결국 서재에 따로 책상을 내놓았다. 보쿠토는 반쯤 울려고 했지만 보쿠토에게 붙은 비서까지 찾아와 울며 부탁해 도리가 없었다. 아카아시는 가끔 보쿠토가 집에 없을 때면  서재에 들어와 먼지를 털기도 하고 간단히 정리를 하기도 했다. 산만할 것 같은데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놓치는 법이 없어 정리를 할 게 많지는 않았다. 그 중에서 아카아시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건 서재 가장 안쪽 책꽂이 높은 곳에 놓아둔 상자였다. 


못 보던 것이기에 그 상자를 처음 본 날은 보쿠토에게 지나가는 듯이 뭐예요, 하고 물었었다. 그랬는데 밥을 먹던 보쿠토가 덜컥 사레에 들려서는 죽을락 말락 격하게 기침을 하곤 얼굴까지 붉히고서 어쩔 줄을 모르는 것이었다. 그렇게 당황하니 정말로 뭐가 들었나 궁금한 마음에 추궁을 해 알아냈었다. 


그 상자를 열면 가장 위에 끝이 사선으로 잘린 베이지색 리본이 있다. 그 아래엔 은회색 리본도 있고 종이 안에 철심을 넣어 만든 고정 핀도 있었다. 리본들을 치워내고 나면 한 번 무언가를 감싸는 데에 썼던 것 같은 포장지가 겹겹이 쌓여 있다. 그 포장지를 덜어내고 나면 그 아래는 빈 상자였다. 초콜릿을 담았던 납작한 함이나 조그만 장신구 같은 것을 포장했던 상자 같은 것들이다. 그리고 그보다 아래엔 펠트로 구깃구깃 어설프게 만든 붉은 장미와 도화지를 접어 만든 카드가 있다. 장미 뒤에는 옷핀으로 고정시켜 놓은 걸, 카드 안에는 색종이를 찢어 붙여 글자를 만든 것이 있다는 걸, 아카아시는 보지 않아도 알았다. 자신이 만든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주 어렸을 때 보쿠토에게 직접 만들어 주었었다. 그걸 받고 보쿠토가 눈물을 흘렸다.


빈 상자는 자신이 보쿠토에게 주었던 초콜릿과 선물들을 담았던 것이었다. 포장지는 그 상자를 감쌌던 것이고 리본은 그 끝을 장식했던 것들이다. 모두 자신이 보쿠토에게 주었던 것이었다. 모두. 아주 어려서부터.


보쿠토는 그것을 하나하나 열어보는 아카아시를 두고서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몰랐다. 목까지 빨갛게 달아올라서는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서 뒤에서 왔다 갔다 하며 변명처럼 무슨 말을 하려고 했다가 다시 다물었다. 아카아시는 어려서 기억 못하는 거야,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것 같았다. 하지만 보쿠토와 함께 한 이후로 아카아시 역시 잊은 것이 없었다. 보쿠토가 이렇게 모두 담아두는 것처럼. 


그렇게까지 부끄러우면, 부끄러우니까 못 보여준다고 하면 됐을 텐데 아카아시에게 무엇이든 숨기는 게 싫다고 보여준 것도 보쿠토답다면 다웠다. 그리고 그렇게 서재 가장 깊고 높은 곳에 놓인, 먼지 앉는 일이 없는 상자는 아카아시에게도 기쁨이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기쁨이 생기기 전에 했던 대화가 어렴풋이 떠올랐다.


제가 어려서 답답하지 않아요?


아직 교복을 벗기 전, 오늘처럼 보쿠토가 운전하는 차의 보조석에 앉아서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핸들을 쥐고 있던 보쿠토가 죽을 것처럼 기침을 했다. 이 사람은 당황하면 이렇게 기침하는구나, 아카아시는 옆에 앉아서 생각했더랬다. 보쿠토는 반쯤 죽다 살아나서는 산소가 부족해 창문을 내리고 겨우 목을 가다듬었다.


답답은 아니야. 

그럼요?

무서운 거지.

뭐가요?


그렇게 물었을 때 보쿠토는 그 자리에서 대답하지 못했다. 그가 하교하는 걸 데리러 와서도 아무 말 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서야 말해주었다. 차마 어린 아카아시를 마주하지도 못하고, 입고 있던 정장을 제대로 벗지도 못한 채로. 


아직 아카아시는 많은 걸 못 봤잖아. 사회에도 안 나가봤고, 대학도 아직이고…….


그래서 답답한 건 어쩌면 자신이었다. 아카아시는 가만히 보쿠토의 얘기를 들으면서 생각했다. 보쿠토는 아, 담배 이래서 피는구나,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나는 했잖아. 대학도 나왔고. 사회생활도 하고 있고. 해서 알겠거든. 다 보고, 그렇게 결정한 거거든. 그런데 아카아시는 아직이잖아?


처음 봤을 때부터 태양처럼 빛났다. 그가 흔들리는 건 상상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런 보쿠토가 입술을 깨물며 나직하게 말하는 목소리는 정말로 무언가 무서운 듯이 불안한 듯이 떨리고 있었다.


그래서 나중에 가서, 이것저것 다 보고, 보니까, 아, 이 사람이 좋아요……더 좋은 사람이 생겼어요, 그럴 까봐.


그런데 난 그래도 못 보내주거든.


그러니까 좀 무섭지.


내가 무섭지.


내가, 무서운 사람이지…….


천천히 떨림이 잦아들어가고 목소리는 나직하게 가라앉아간다. 보쿠토는 말을 하면서도 아카아시를 똑바로 바라보지는 않았다. 조금 먼 곳을 보는 듯이 시선이 비껴가 있다. 


그래서 아카아시는 비로소 웃을 수 있었다. 


그 모든 기억, 아주 어려서부터 지금까지의 기억이 쌓여있는 집이었다. 아카아시는 발코니의 창에 몸을 기대고 앉아서 창밖을 바라보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하기를 반복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보내줄 수 없다 했던 그 말이 소년 시절의 자신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기다릴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다. 아주 어려서 목에 걸었던 보쿠토와의 약혼반지가 손에 맞을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힘이 되었다. 



*



서둘러 일을 마쳤지만 달이 중천에 떠있다. 보쿠토는 허겁지겁 현관문을 열었다가 어둠이 내려앉은 실내를 보곤 죽은 듯이 숨을 멈췄다. 발코니 쪽에 조그만 그림자가 눈 인형처럼 가만히 형상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그늘에 스치는 달빛만 보아도 누구인지 알 수 있다. 아카아시였다. 보쿠토는 소리 나지 않게 서류 가방을 내려놓고서 살금살금 다가갔다. 아카아시는 발코니의 창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었다. 잠든 것 같았다. 


이렇게 잠에 빠진 모습을 보면 아직도 앳된 기미가 남아 있다. 고등학교까지 졸업한 게 언젠데 아직도 이렇게 애 취급을 하느냐고 종종 아카아시는 입술을 비죽이곤 했지만 그 모습을 보면 더욱 앳되고 어린 것 같았다. 눈을 감고 잠에 빠지면 어여뻤고 눈을 뜨면 시선을 뗄 수가 없어, 그게 지금도 여전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눈에도 그런 것을 안다. 


아주 가끔은 그저 가둬놓고 싶었다. 어디에도 가지 못하게, 누구도 보지 못하게, 그냥 보쿠토 그만 바라보고 그만 생각하게. 다른 사람을 배려할 일도 없고 신경써줄 일도 없게. 누구도 아카아시를 보지 못하게. 


그러지 못하는 건, 아카아시가 붙잡으면 붙잡혀줄 것 같아서였다. 말도 안 되는 억지 부리지 말라며 그를 밀쳐내면 농담처럼 말이라도 해 볼 텐데 정말로 그가 바라는 대로 그늘에 갇혀줄 것 같아서였다. 자신의 터무니없는 욕심인 것을 스스로도 알고 있는데. 


그래도 평소에는 드러내지 않을 수 있는데 오늘 같은 날은 마음이 어쩌지를 못했다. 아카아시가 남들에게서 받아온 사랑을 보면 마음속에 싸매어 두었던 새카만 것들이 고삐를 잃고서 날뛰었다. 네 눈에만 보석인 줄 알았어? 남들 눈에도 그래. 이것 봐, 다들 탐내잖아. 잃고 나서 후회할거야?


그걸 다시 매듭지어주는 것이 자신을 바라보는 아카아시의 푸른 눈동자였다.


“……아카아시, 들어가서 자자.”


보쿠토는 조금 잠겨 갈라진 목소리로 아카아시를 부드럽게 흔들었다. 아카아시가 천천히 눈을 뜬다. 달빛이 물든 청록색 눈동자가 그를 바라본다. 상냥한 그 눈길이 보쿠토 안의 새카만 마음에 매듭을 지어주었다. 보쿠토는 아카아시가 아주 어린 날에 했듯이 그를 향해 팔을 뻗었다. 이젠 잠결이 아니면 안겨주지 않는 아카아시였지만 지금은 괜찮을 것 같았다. 안아 올리자 졸음에 겨운 뺨을 그의 가슴팍에 부빈다. 보쿠토는 아카아시의 이마에 가볍게 입맞춤하고는 아카아시를 침대 위에 뉘어주었다. 


“보쿠토 씨, 왔어요……?”

“응, 지금 왔어. 자자.”

“외식하러…….”

“내일 가자. 미안, 내가 너무 늦어서.”


아카아시는 어렴풋이 눈을 뜨고 보쿠토를 바라보았다. 보쿠토의 등 뒤로 달빛이 비쳐들어 그의 윤곽을 빛나게 하고 있었다. 보쿠토의 눈동자가 새카만 금빛으로 반짝거린다. 아카아시는 보쿠토의 손에 뺨을 파묻었다.


“아니에요. 내일 가요…….”


가두고 싶은 사람이 여기 있다. 갇히고 싶은 사람이 여기 있다. 사랑으로 지어진 감옥이 입을 벌리고 있는데 그 문으로 누구도 들어갈 수 없게 막아서는 것도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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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회지 sincerely yours를 읽으신 분이 계신다면.. 말하지 않아도.. 알~아욧♪

Dear dearest mine











“아~카아시이이이!”


아카아시는 보쿠토가 자신의 집 문을 전자 도어락으로 바꿔주었을 때 그가 이런 것까지 신경써줄 만큼 어른이 되었다며 기특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한 감정을 느꼈지만, 이젠 알 것 같았다. 그건 보쿠토가 아카아시를 챙겨준 것이 아니라 아카아시가 보쿠토로부터 전부 빼앗아온 그의 집 열쇠를 대신할 수단이었던 게 분명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틈만 나면 멋대로 비밀번호를 알아내 쳐들어올 리가 없었다. 


“보쿠토 씨. 도대체 비밀번호는 또 어떻게……보쿠토 씨!”


모처럼 주말 오전을 만끽하고 있던 아카아시는 보던 책을 내려놓고 일어서며 들이닥친 보쿠토를 향해 꾸중하려는 말을 하려고 했지만 그게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신발을 거의 집어던지듯이 벗어 내팽개친 보쿠토가 그를 와락 껴안았던 것이다. 


그보다 훌쩍 커진지가 언제인데 이런 것은 아직도 여전히 어린애 같았다. 아카아시가 한숨을 쉬어도 모르는 척 하던 보쿠토가 겨우 아카아시를 풀어주고는 울먹거리는 눈동자로 종이 한 장을 그의 앞에 들이밀었다.


“이거 봐!”

“뭔가요…….”

“내 시간표! 봐봐!”


이제 보쿠토는 곧 있으면 대학에 들어간다. 얼마 전이 수강신청이었는지 끙끙 앓는 듯 하더니 그 결과물을 가져온 모양이었다.


“주말은 반드시 놀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엿보입니다만…….”

“아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경영 수학! 이거 뭐냐구~!”


보쿠토는 아카아시 앞에서 한참이나 서러움을 토로하고는 비척비척 자연스럽게 아카아시의 침실로 들어간다. 아카아시는 한숨을 내쉬었다. 제 집인 것 마냥 아카아시의 침대에 몸을 뻗은 보쿠토가 베개에 뺨을 부비고 있었다.


“보쿠토 씨.”

“경상대 가면 수학 계속 해야 된다고 아무도 말 안 해줬어~!”

“제가 말씀 드렸잖아요. 일어나세요.”

“싫어, 누워있을 거야.”


이젠 대학에까지 들어갔는데도 어린애 같다. 아카아시가 부러 큰 동작을 꾸며내 한숨을 푹 내쉬자 보쿠토가 그를 향해 팔을 쭉 뻗었다. 


“그러게 왜 굳이 경영학과를 간다고 그러, 보쿠토 씨!”


무어라 타박을 하려던 아카아시는 보쿠토를 일으켜주려고 붙잡은 팔이 역으로 휙 이끌려 차례대로 천장, 천장에 설치한 조명, 그리고 바로 숨이 섞일 거리의 보쿠토 얼굴까지 보고서 엄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머리를 받치고 있는 손의 주인은 보쿠토였고 자신의 위에 올라탄 것도 보쿠토였다. 


“뽀뽀해도 돼?”

“안 돼요.”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된다고 했잖아…….”

“제가 분명히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으면’ 이라고도 했을 텐데요.”

“차가워, 아카아시 차가워…….”


조그만 짐승이 상처받은 것처럼 시무룩한 목소리를 내며 그의 목에 뺨을 부빈다. 슬깃슬깃 입술이 스치는 것을 알았지만 아카아시는 그것까지 혼을 내지는 못했다. 


그 때였다. 거실에 놓아 둔 아카아시의 휴대전화에서 벨이 울린다. 보쿠토는 벨소리를 듣고도 비켜주지 않았고 결국 아카아시가 짧은 한숨과 함께 살짝 몸을 들어 보쿠토의 입술을 콱 깨물었다. 아야야, 요란한 신음이 나오고 그 틈을 타 보쿠토를 밀쳐낸 아카아시가 서둘러 뛰어나가 전화를 받았다. 


“아, 이사님. 받았습니다. 네. 그 건은…….”


아카아시가 어깨와 뺨 사이에 휴대전화를 끼고서는 식탁에 올려놓은 노트를 펼쳐보며 무어라 상대와 대화를 나눈다. 아마 처음에 이사라고 했으니 저 회사 이사겠지, 보쿠토는 아카아시의 침실 문틀에 비딱하니 기대어 서서 팔짱을 끼곤 생각했다. 


아카아시가 그의 집을 나가버린 건 보쿠토가 고등학교 때의 일이다. 어렸을 때부터 줄곧 곁에 있어주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듯, 혹은 도망치듯 이곳으로 와버렸다. 아카아시의 돌아가신 부모님이 남겨주신 집이었다. 아카아시가 없어지면 그 곳이 커다란 구멍처럼 휑할 줄 알았는데 들고 난 줄도 모르게 하염없이 단정하기만 하여, 보쿠토는 그 때 알았다. 아카아시는 항상 어디론가 가버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짐을 늘리지 않고, 단정히 정리해두고, 그래서  언제라도 일어나 가버릴 수 있게. 


그래서 아카아시가 그대로 가버리게 내버려두었냐 하면 물론 아니었다.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당장 쳐들어오듯 찾아왔다. 어차피 아카아시에게 갈 곳은 이 곳 뿐이었다. 언제나 그에게는 무르고 다정하여 그가 붙잡으면 붙잡힐 것을, 그래서 그가 없는 사이에 가버린 걸 알았다. 자신을 보고 얼어붙어있는 아카아시에게 말했다. 좋아한다고. 싫어하는 게 아니라면 가지 말라고. 그러면 결코 싫다는 말을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새파랗게 질려서는 얼굴도 마주하지 못하고서 겨우 쥐어짜듯 싫다고 말을 하는데, 그걸 어떻게 이길 수 있겠는가……. 보쿠토가 물러서주었던 것은 딱 그 한 번이었다. 


화해 아닌 화해를 한 것은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이다. 죽을힘을 다해 봄고에서 우승하고 그 트로피를 가지고 다시 이 집으로 쳐들어왔다. 이전에 그랬듯이 또다시 붙잡아 몰아세웠다. 싫다고, 가라고, 해 보라고. 그러면 가겠다고. 하지만 정말로 그런 말을 하면 죽어버릴 거라고, 그런 눈을 하고서. 


아카아시는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못했다. 


“네, 그래서 그 쪽 이슈가 해결되면……. 네. 아, 오늘 저녁은…….”


보쿠토는 기가 죽어 시무룩한 표정으로 문틀에 머리를 기댔다. 


아카아시가 대학원까지 졸업하고서 취직을 해버린 건 보쿠토가 고등학생일 적의 일이다. 당연히 자신의 부친 아래로 들어가 일 해줄 거라고 생각했던 보쿠토도, 보쿠토의 부친 류이치로도 그 때 얼마나 실망했는지 모른다. 아카아시 본인은 더 이상 폐를 끼칠 수는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었지만.


“……오늘 저녁은 조금 힘들 것 같고 내일 저녁은 안 되겠습니까? 네. 네……. 아닙니다, 그런 거. 네.”


웃음기 섞인 곤란한 목소리가 몇 마디 안부를 전하고는 끊는다. 보쿠토는 휘청거리듯이 걸어가 뒤에서 아카아시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기가 죽은 만큼 고개도 숙여 아카아시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지금은 그래도 많이 나아졌다. 그가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기 직전의 아카아시는 한 팔에 감길 만큼 말라붙어 있었다. 그래놓고서는 잘도 싫다고, 가라고…….


“오늘 저녁에 어디 가……?”

“……가긴 어딜 갑니까.”

“아?”


보쿠토가 고개를 반짝 든다. 아카아시는 자신의 허리를 감고 있는, 아직 소년티가 남아있는 보쿠토의 손을 떼어내고는 그 이마를 찰싹 때렸다. 보쿠토는 여전히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었다.


“어, 아아? 아카아시?”

“장이나 봐야겠어요. 집에는 먹을 게 없으니까…….”

“나, 나도 가?”

“오기 싫으면 집에 있던가요.”

“갈래! 갈래갈래!”


아카아시는 또 세상을 다 부술 것처럼 자신의 곁으로 다가오는 태양 같은 얼굴을 보며 웃음을 꾹 눌러 삼켰다. 


*


아카아시가 찬을 담을 그릇을 꺼내는 동안 보쿠토는 긴 요리용 나무젓가락을 손에 쥐고서 더없이 신중한 표정으로 불판 위의 고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카아시가 그릇에 밥을 퍼 담는 사이에 보쿠토도 레인지의 불을 내리고 접시에 고기요리를 담았다. 직접 만든 요리 몇 가지만 올린 상차림은 간소했다.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함께 요리를 했으니 서로에게 인사를 하고서 수저를 집어 든다. 이런 것보다야 저택의 주방장이 해주는 것이나 바깥에서 사먹는 것이 더 맛이 좋을 텐데도 보쿠토는 아카아시와 함께 요리를 해 식사할 기회가 있으면 놓치는 법이 없었다. 아카아시가 처음 밥을 해주었을 땐 보쿠토가 너무 들떠하며 먹다가 체한 바람에 하루를 꼬박 고생해야했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보쿠토 씨, 경영 전공을 생각하는 줄은 몰랐는데요.”

“웅?”


뺨이 터져라 밥을 와구와구 먹던 보쿠토가 고개를 든다. 아카아시는 보쿠토의 밥그릇 곁으로 국그릇을 붙여주었다. 이런 면만 보면 아주 어렸을 때부터 봐온 모습 그대로인데 이따금씩 놀랄 만큼 어른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 나도 생각은 안 했는데…….”

“그런데 갑자기 왜요.”


전공 문제로 갈등을 하고 있었다면 얘기 한 마디는 할 줄 알았는데 아무 소식이 없다가 갑자기 경영학과로 진학했다고 해서 아카아시도 깜짝 놀랐더랬다. 보쿠토는 먹던 것을 꿀꺽 삼키고는 활짝 웃었다.


“아카아시 빼오게.”

“……네?”

“내가 아무리 회사 그만두라고 말해도 아카아시 안 들어주니까.”

“그게 왜 그쪽으로…….”

“그래서 내가 우리 아버지 회사 들어가서, 그 다음에 아카아시 빼내서, 우리 회사 데려오게. 그 편이 제일 낫겠더라고.”


보쿠토가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말한다. 아카아시가 바싹 마른 입술만 다시는 동안에 보쿠토의 말은 계속되었다.


“뭘 해야 제일 승진 빠르냐고 물어보니까 경영 전공이래서 여기 왔지. 아, 수학 공부해야 할 줄은 몰랐지만!”

“보쿠토 씨, 잠시. 잠깐만요. 그런 이유로 전공을 결정해서…….”

“그럼 뭐로 전공을 결정하는데?”


보쿠토가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로 아카아시를 바라본다. 이럴 때였다. 아카아시는 어쩔 줄 모르는 한숨을 삼켜냈다. 이럴 때, 깜짝 놀랄 만큼 전혀 모르는 사람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에게 져주지 않는 보쿠토의 모습을 볼 때.


“제일 하고 싶은 걸로 하면 되는 거 아니야?”

“그러니까 그런 경우엔 보쿠토 씨는 배…….”

“난 아카아시랑 있고 싶어. 그게 제일 하고 싶은 거야.”


아카아시는 쥐고 있던 젓가락을 떨어뜨릴 것 같아서 서둘러 내려놓았다. 보쿠토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학생이라곤 볼 수 없는 표정으로 아카아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계속 졸랐잖아. 우리 아버지 회사로 오라고. 싫댔잖아, 그건. 일 그만두고 나랑 있자고도 했는데 그것도 싫댔잖아.”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니까 그렇죠!”

“그러니까 내가 아카아시 옆에 있겠다는 거야.”

“보쿠토 씨!”


아카아시가 다그치듯 언성을 높였지만, 보쿠토는 움츠러드는 척을 할 뿐이었다. 


“왜? 뭐 문제 있어?”

“문제 있냐니, 당연히…….”

“내 인생 내 맘대로 하는데 아카아시가 무슨 상관이야?”

“……보쿠토 씨.”

“흥. 회사 옮기라고 해도 안 된다고만 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아카아시가 흔들리는 목소리로 부른다. 보쿠토는 고개를 휙 돌리고는 웅얼거리는 투로 투덜거렸다. 받아주기 어려워하는 아카아시의 마음을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아카아시가 어떤 식으로 생각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보쿠토 그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돌봐주었던 것도 단지 자신의 부친인 류이치로에 대한 은혜를 갚고자 하는 마음뿐이었다는 것도, 그러고서도 줄곧 빚을 지는 마음으로 지내왔다는 것도, 굳이 류이치로의 회사와 연이 없는 곳으로 정하여 입사한 것도 더는 폐를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였다는 것도, 그리하여 이제 와서 보쿠토의 마음마저 그에게는 또 다른 빚이라는 것도. 


보쿠토는 모두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카아시의 뜻대로 물러줄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건 한 번 해 보았다. 아카아시의 거짓말에 속아주었다. 넘어가주었다. 싫으니 이만 돌아가라는 말에, 새파랗게 질려서는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간신히 내뱉은 그 말에 뜻대로 해주었다. 인생에 한 번이면 족한 경험이었다.


“보쿠토 씨 이젠 숙제도 알아서 잘 하시면서 왜 자꾸 제 회사를…….”

“내가 숙제 해달라고 회사 그만두라고 한 줄 알아? 진짜 지금까지? 아카아시 멍청이!”

“보, 보쿠토 씨!”


빽 소리를 친 보쿠토는 밥그릇에 고기반찬을 쓸어 담고는 그릇과 숟가락을 쥐고서 식탁을 박차고 일어났다. 그대로 아카아시의 침실로 도망쳐 문을 걸어 잠근 보쿠토는 방문에 등을 대고 앉아 왁팍팍 밥을 퍼 입에 넣었다. 


“사람을 애 취급해도 정도가 있지!”


보쿠토가 투덜거리고 그와 동시에 아카아시가 방문을 쾅쾅 두드렸다.


-보쿠토 씨! 문 여세요! 보쿠토 씨!

“안 열어! 아카아시 미워!”

-이불에 고기 흘리면 혼납니다! 지난주에 세탁한 건데!

“아, 안 흘려!”


빽 소리를 치고서는 남은 밥을 비우는 데에 열중하는 보쿠토였다. 보쿠토는 순식간에 밥공기를 비우고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을 열자 바깥엔 방금 전까지 방문을 두드리고 있던 아카아시가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흘렸어요?”

“아, 안 흘렸어!”

“…….”

“아! 진짜! 아카아시는 손이 이렇게 될 때까지 두드리면 어떡해!?”

“누구 씨가 틀어박혀서 안 나오는데 그럼 어떡합니까.”


보쿠토가 발갛게 달아오른 아카아시의 손날을 보고서 왈칵 울상을 짓는다. 이번에 턱을 세우는 쪽은 보쿠토였다. 


“아카아시는 나만 싫어해!”

“……지금 뭐라고.”

“내가 싫은 거 아니면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보쿠토는 아카아시의 손을 자신의 손에 올려놓고서 쥐었다 놓았다 쥐었다 놓았다하며 땍땍 투덜거렸다. 


“내가 아카아시랑 있고 싶어서 하는 건 다 아니라 그러고 안 된다 그러고! 내 맘은 하나도 몰라주고. 맨날 이러고. 어리다고 뭐라고 하고.”

“지금 방문 걸어잠궜던 게 누군데…….”

“아카아시 나 싫어하지? 응? 나 싫지?”

“…….”

“내가 제일 싫지? 나만 싫어해. 이사님한테도 웃어줬으면서 나한테는 맨날 엄한 표정 하고 저리 가라고 하고 왜 왔냐고 하고.”

“…….”

“내가 아카아시랑 있고 싶어서 애쓰는 거 보고도 예쁘다고 한 번도 안 해주고.”

“…….”

“나도 아카아시 진짜 싫……. 싫으…….”


아카아시의 손을 쥐고서 한껏 입술을 삐죽거리는 보쿠토였지만, 아카아시를 향해 그간 말 못했던 원망을 가득 채워 토해내는 보쿠토였지만, 차마 그 뒷말만은 입 밖에 낼 수가 없었다.


“아 진짜! 나는 죽어도 말 못하겠는데 아카아시는 나만 싫-!”


반쯤 눈물이 들어찬 얼굴로 빽 소리치던 보쿠토의 입술을 막은 건 아카아시였다. 자신의 손으로 보쿠토의 손을 꽉 쥐고서 입을 맞댄다. 보쿠토의 눈이 화등잔만해진다. 아카아시는 짧게 입술을 대었다가 떼어 냈다. 


“……어…….”

“제발 좀 싫어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카아시는 그대로 몸을 돌리고는 부엌으로 돌아갔다. 식사가 남아있었지만 먹을 기분은 아니었다. 남은 걸 대충 치우고 싱크대에 물을 받는다. 물 흐르는 소리가 나는 사이 어느 샌가 그의 뒤에 보쿠토가 서 있었다. 아카아시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뒤를 돌아보았다. 


예전엔 그의 허리에도 오지 않던 어린아이였는데 어느새 이렇게 자랐다. 눈높이는 그보다 더 높았고 어깨도 팔도 그보다 더 두터워진지는 오래였다. 마냥 천진하게 반짝거리는 얼굴로, 때로는 눈물을 채운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았는데 이제는 때때로 그가 모르는 얼굴을 한다. 지금처럼.


“보쿠토 씨.”

“…….”

“나는 보쿠토 씨가……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하기 싫은 건 안 했으면 좋겠어요. 억지로 하는 것 없이, 바라는 건 다 하고, 원하는 건 다 가지고, 하고 싶은 것만 하고 그렇게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나 때문에 하고 싶지도 않은 공부 같은 거 하지 않…….”

“나 화낸다, 아카아시.”


보쿠토의 목소리가 쉰 것처럼 나직했다. 아카아시는 입을 다물었다. 한 걸음 뒤로 가고 싶었지만 뒤는 싱크로 막혀있었다. 


“아카아시 말 어렵고, 잘 모르겠지만……. 나 하고 싶은 대로 했으면 좋겠다는 거잖아.”

“그러니까 제 얘긴…….”

“어리다고 해서 참았어. 기다렸어. 초조해 죽을 것 같았는데 참았다고. 참아서, 참고 기다려서 이제 내 힘으로 뭔가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어. 그래서 그렇게 하기로 한 거야. 하고 싶은 대로 했으면 좋겠다고? 내가 하고 싶은 건 다 아카아시인데 그거 안 해주는 것도 전부 아카아시잖아!”


몰아세우는 듯이 울리는 큰 목소리인데 차마 아카아시의 어깨에도 손은 닿지 못했고 금빛 눈동자에는 눈물이 들어차 아주 어린 아이가 울음을 참는 것만 같았다. 


“내가 잘못한 거면 말해줘. 들을게. 그런 거 아니면, 그런 거면, 아카아시가 이제 참아주면 안 돼? 내가 참았던 만큼 참으라고 하는 거 아니야. 대학 다 해도 4년이잖아……. 나는, 나는 10년을 넘게,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서, 천장을 쳐다보고 울어버리는 남자가 있다. 아카아시는 엉엉 울어버리는 보쿠토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어렸을 때도 이렇게 울었다. 그 땐 안아 올려서 등을 쓸어주고 눈물을 닦아줄 수 있었다. 그러면 빨갛게 부어오른 눈으로 밉다면서도 그의 옷깃을 잡고 놓아주질 않았더랬다. 그게 사랑스러웠다. 그게 그의 생을 밝히는 빛이었다.


그런데 지금도 그렇다는 것을, 역시 실감하고 만다. 이제 그는 안아 올릴 수도 없을 만큼 자랐는데도.


“보쿠토 씨. 나 봐요. 미안해요. 내가 나빴으니까 이제 그만 그쳐요.”

“흑, 아카아시 미워…….”

“걱정이 돼서 그랬어요.”

“뭐가! 또 뭐가아!”

“나 때문에 싫은 거 억지로 하다가 나까지 싫어지면 어쩌나 해서…….”

“나는, 아카아시, 나는 그거 진짜 이해가 안 되거든! 진짜!”


보쿠토가 우는 얼굴로 자신의 가슴을 퍽퍽 두드린다. 답답해서 발까지 구르며 어쩔 줄을 모른다. 아카아시는 웃음을 꾹 누르고 팔을 뻗어 그 눈 끝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었다. 보쿠토는 그 손을 잡아채서 자신의 심장 위에 올려놓았다.


“나 진짜 이렇게……이렇게 좋아하는데…….”


빠르게 뛰는 심장은 단지 울어서만은 아니었다. 보쿠토는 금빛 눈동자를 눈물로 적셔 짙게 만들고서 아카아시를 바라보았다.


“정말 모르겠어? 나한테는 아카아시를 싫어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단 말야…….”


아까 아카아시가 그랬지, 차라리 싫어할 수나 있으면 좋겠다고. 이렇게, 이렇게나 마음 몰라주는 아카아시, 나도 차라리 싫어할 수 있었으면, 그런데 그런 생각도 할 수가 없을 정도로, 나는.


이젠 다 큰 것도 같은데 또 곧장 처음 만나던 그 날의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울어버리는 남자가 있다. 아카아시는 그 울음이, 자신의 손아래에서 서둘러 울리는 이 심장박동이 사랑스러워 천천히 눈을 감았다. 마침내 껴안아버리는 품은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이제 싫다고 하기 없기야.”

“싫어한 적 없어요.”

“뽀뽀도 해주기야.”

“과제 잘 하면요.”

“아카아시는 나랑 뽀뽀하기가 그렇게 싫어!?”

“하고 싶으니까 과제 잘 해주세요.”


완전 열심히 할 거야, 아직 덜 마른 눈물이 남아있는 목소리가 귓가에서 웅얼웅얼 울린다. 아카아시는 그 등에 손을 올렸다. 보쿠토는 빠르게 뛰는 심장소리가 자신의 것인 줄로만 알겠지만.


“이제 다 컸으니까 이렇게 울면 안 되는데…….”

“우는 거 다 아카아시 때문이거든…….”

“네, 네에. 제가 잘못했습니다.”


이렇게 투덜거리는 얼굴을 보자면 또 어린아이 같아서 이 사람의 인생 전부를 가졌다는 생각이 들고야 만다. 그런데 줄 수 있는 건 그렇지가 않아서 더 늦기 전에, 아카아시가 그를 정말로 놓아질 수 없어지기 전에 다른 선택을 했으면 했다. 보다 많은 것을 줄 수 있는 사람에게. 자신의 전부를 더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는 사람에게. 


“나한텐 아카아시가 전부야.”

“그런가요.”


그렇게 했으니까. 


아카아시는 그 새 발갛게 부어오른 보쿠토의 눈을 바라보았다. 스스로 돌이켜보아도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보쿠토에게 물렀다. 무르고, 다정하고, 상냥하고……. 좋아하게 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자신을 바라보는 빛이 필요했다. 


보쿠토가 필요했다.


이 사람이 없으면 안 되어서.


그 어린 소년이 없으면, 살 수가 없어서.


“보쿠토 씨. 나는 그냥……. 보쿠토 씨한테 줄 게 없는데 보쿠토 씨가 필요하기만 해서. 없으면 안 돼서……. 그래서 더 늦기 전…에.”


무어라 말을 하려고 했던 아카아시는 조금 놀라서 입을 다물었다. 보쿠토의 얼굴에 빛이 깃들어 있었다. 찬연하게 빛나는 얼굴이 그를 바라본다. 극야의 끝에 처음으로 비치는 햇빛 같았다. 


“내가 필요해?”

“……네.”

“없으면……안 돼?”

“…….”


모든 걸 다 잃었을 때, 그를 향해 손을 벌리고 울고 웃는 소년만이 그의 생을 밝히는 빛이었다. 지금도 그러했다. 너무 소중해서 감히 달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아카아시, 나는 그거면 돼…….”


그 말이면 돼.


보쿠토가 눈을 깊이 휘어뜨리고 웃었다.


아카아시.


이제 나는 정말로, 어떻게 해도, 


아카아시를 싫어할 수가 없게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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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회지 dear mine을 보신 분이 계시다면.. 그 외전격이라고 생각하셔도...^-^! 


전력주제  - 손깍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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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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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나 죽어,

내 사랑을 홀로 내버려두게 되니…….

Save that, to die, I leave my love alone



*



남자는 가장 먼저 빨래를 어떻게 하는지 차근차근 알려주었다. 세제는 얼마나 넣고, 섬유유연제는 어떤 것을 쓰면 되는지, 의류에 따라 세탁기에 돌리면 안되는 것, 손빨래를 하거나 세탁소에 맡겨야 하는 것, 색이 짙은 것은 함께 세탁기에 넣으면 안 된다는 것, 주머니가 있는 옷은 세탁하기 전에 주머니를 확인해야 한다는 것, 그런 것들을 끈기있고도 집요하게 알려주었다. 보쿠토는 관심이 없는 것에는 한없이 무딘 사람이었고 빨래는 그의 관심사가 전혀 아니었기 때문에, 보쿠토가 빨래를 제대로 하기까지는 한참이나 걸렸다.


남자는 그 다음엔 간단한 요리를 일러주었다. 처음에는 달걀을 쓰는 것. 토스트. 밥. 한그릇 요리. 요리에도 특별히 솜씨는 없기 매한가지였으나 그래도 빨래보다는 사정이 나았고, 보쿠토는 투박하기는 해도 그럴 듯한 요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도통 국만은 제대로 간을 보지 못하여 남자는 웃으며 됐습니다, 하고 포기했더랬다.


그 이후엔 어떻게 방을 청소하는지 곁에서 붙어 꼼꼼하게 알려주었다. 장식장의 먼지는 주기적으로 털어주어야 하고 쓰레기 버리는 날은 맞추어서 내놓아야 한다는 것, 플라스틱과 캔은 따로 분리수거 할 것, 신상정보가 적혀있는 건 폐기해야 한다는 것.


반년 동안 남자는 보쿠토를 붙들고 끈기있게 그 모든 걸 알려주었다. 그 사이에 겨울에서 여름으로 계절이 바뀌었고 남자는 집안의 커튼을 얇고 투명한 것으로 바꾸고 소파의 커버도 밝은 색 천으로 덧씌웠다.


그리고 이후 반년 동안 남자는 보쿠토에게 이별을 가르쳤다. 처음에는 들어오는 시간이 늦어졌다. 이르게 나갔고 늦게 들어왔다. 그 다음에는 주말 내리 아예 다른 곳에 가 있었다. 함께 있는 동안 다정한 말이 줄었다. 상냥한 손이 줄어갔다.


그리고 겨울이 왔을 때, 남자는 이제 다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보쿠토에게 가르쳐줄 것은 남아있지 않았다.


남자가 떠났다.



*



“보기만 해도 춥다, 진짜…….”



코노하는 건성으로 비밀번호를 누르고 안으로 들어와 주위를 둘러보았다. 언제 와도 어느 때 방문 해도 이 집안은 강박적일만큼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마치 모델하우스를 그대로 뚝 떼어온 듯이 생활감이 없었는데 인테리어의 대부분이 여름용 장식과 색이라 한겨울에는 보고만 있어도 등골이 선득해지는 느낌이었다. 실내에 난방이 미리 되어 있지 않았더라면 코노하는 수건이라도 떼어 와서 장식들을 모조리 덮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코노하는 가져온 반찬통을 냉장고 안에 넣어놓고 허리를 폈다. 매끈하게 마른 싱크대, 먼지하나 앉지 않은 식탁, 조미료를 담은 병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마치 요리같은 건 하지 않는 것처럼 정갈한 부엌이었지만 여기서 매 끼니가 조리되는 걸 알고 있었다. 코노하는 혀를 끌끌 차고는 침실 문을 열어보았다. 침실도 비슷한 꼴이었다. 가지런히 각잡혀있는 침구와 베개, 협탁에 놓인 생화는 무척이나 생생해서 되레 조화 같았다. 옷장을 열어봤지만 다림질까지 된 옷가지가 완벽하게 걸려있는 것밖에 볼 수 없었다.


거실도 다를 바가 없다. 코노하는 발코니 앞에 서서 얇고 투명한 천자락에 손을 감았다. 한여름에나 쓸법한 커튼이었다. 겨울에는 그 얇은 커튼 너머로 바깥 풍경이 비치는 걸 보기만 해도 추운 느낌이다. 으으으, 코노하는 어깨를 한 번 움츠리고는 거실 쪽으로 몸을 돌렸다가 그만 맥이 탁 풀려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모든 것이 지나칠만큼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실로 완벽한 그림이었다. 소파 곁 협탁에 올라와있는 책 한 권 까지도.


놓여있는 책은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모음집이었다. 코노하는 입술을 악물고 그 책을 집어들었다. 책은 오래된 것 갈기도 했고 새것 같기도 했다. 언뜻 보아서는 도무지 시간을 알 수 없는 까닭은, 보쿠토가 이 책을 마치 목숨처럼 아꼈기 때문이었다. 코노하는 책을 찢으려고 힘을 주어 펼쳤다가 차마 그러지 못하고서 다시 책을 도로 접고 말았다.


남아있는 물건은 이것밖에 없었다.


그 때 현관문에서 열쇠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코노하는 책을 쥔 채 당황하다가 얼른 들고 온 가방에 책을 집어 넣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렸다.



“어? 누구……. 코노하!”

“……보쿠토.”



조금 일찍 돌아온 보쿠토였다. 코노하를 보고서 반가운 표정을 한다. 코노하는 예정에 없이 만난 친구의 얼굴을 보고서 말 없이 그의 어깨를 몇 번 두드려주고는 부엌을 가리켰다.



“집에서 찬거리 넉넉하게 싸주셔서 좀 가져왔다. 챙겨놨으니까 이따 먹어.”

“헉, 진짜? 불고기도 있어?”

“이게 주는 대로 안 먹지? ……있다, 인마.”



보쿠토가 어린애처럼 활짝 웃고는 냉장고로 뛰어간다. 그러고서는 기껏 코노하가 신경써서 챙겨넣은 반찬통을 하나 하나 꺼내보며 좋아하는 것이었다. 코노하는 가만히 그 모습을 주시하다가 더는 바라보지 못하고 창 밖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늘에는 슬금슬금 잿빛 구름이 들이차고 있었다. 곧 겨울비가 쏟아질지도 모른다. 코노하는 우산을 챙겨오지 않았다는 핑계를 대고 현관을 향했다. 보쿠토는 그 새 벌려놓았던 반찬통을 모두 정리해 집어넣은 뒤였다. 대충 신발에 발을 집어넣던 코노하는 보쿠토가 벗은 구두가 이미 신발장에 들어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집에 우산 많아! 빌려 줄게.”

“됐어, 인마. 그렇게 가져간 우산만 벌써 몇갠데 아, 그러네. 지난 번에 빌려갔던 것도 또 깜빡하고 안 가져왔네…….”

“괜찮다니까.”



보쿠토는 친구와 헤어지기 싫어하는 어린애같은 천진난만한 얼굴이었다. 코노하는 그 얼굴을 쳐다보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반찬통은 알아서 가져다 주라는 말만 두고서 몸을 돌렸다. 보쿠토가 바깥까지 나오려고 했지만 코노하가 만류했다. 보쿠토가 다음에 보자는 말로 그를 배웅한다.


코노하는 엘리베이터에 타고 나서야 깊은 한숨을 몰아쉬었다. 가방이 쇳덩이라도 집어넣은 것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코노하는 어깨에 걸친 가방 안을 흘끗 바라보았다.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였다. 이 책 한 권으로 무엇도 변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가져와버리고 말았다. 주인에게는 말도 없이. 코노하는 양손을 맞잡았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기도는 없었다.



*



코노하가 보쿠토의 아파트 열쇠와 비밀번호를 얻게 된 것은 아카아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그 때의 보쿠토는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지 못했다. 두 사람이 마지막 반년간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알고 있었던 코노하는 처음엔 그게 그나마 불행 중에 다행이었다고 생각했지만, 보쿠토의 모습을 보고서 그 생각을 취소했다. 그 중에 다행인 것은 무엇도 없었다. 그 어떤 것도 소용이 없었다.


살아 있는 사람 하나만이라도 건사하기 위하여 코노하는 보쿠토를 거의 쫓아다니다시피 했다. 보쿠토가 아카아시를 따라 죽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사람들은 그 혼자만이 아니었다. 그 때 보쿠토의 상태는 정말로 그랬다. 아카아시의 장례식 소식마저 뒤늦게 들어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보름이 지났을 때 코노하는 소리쳤다.


아카아시가 너 이러고 있는 거 보면 참 잘했다고 하겠다!


금빛 눈동자에서는 이미 혼이 빠져나갔고 잿빛 머리카락이 아주 무채색처럼 보였다. 보쿠토를 땅에 붙잡아 두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코노하는 살려는 생각을 하지 않는 보쿠토를 붙잡고서 악에 받쳐서 외쳤는데 그 말 한 마디에 마치 벼락처럼, 그 금빛 눈동자가 깨어져나갔다.


코노하는 지금도 그 때 그렇게 말했던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보쿠토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신의 음성을 들은 것같은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코노하는 그렇게 감정이 뚜렷하게 살아있는 보쿠토의 얼굴이 너무 오랜만이어서 얼떨떨하게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그 뒤부터였다. 보쿠토의 집은 그가 정신을 차리기 전에도 사람 사는 것 같지 않았지만, 그가 정신을 차리고 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코노하도 한 시름 놓았다고 생각했다. 보쿠토를 욕실에 밀어넣었다가도 그가 오래도록 나오지 않으면 행여나 욕조에 몸 담그고 죽어버릴까 싶어 욕실 안으로 쳐들어가기까지 했던 코노하로서는 보쿠토의 번듯한 모습이 눈물날 만큼 반갑고 또 안심이 된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점점 더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알게 됐다.


마치 결벽할 만큼 똑같은 모습을 유지하는 집, 언제나 반듯한 차림새를 하고 있는 보쿠토, 현관의 비밀번호는 한결같이 아카아시의 생일이었고 그런 보쿠토에게서는 아카아시를 잃은 흔적을 엿볼 수가 없었다. 아카아시가 죽었다는 그 사실만 보쿠토에게서 증발한 것 같았다. 보쿠토는 밤이 늦으면 집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서둘러 귀가했고 특별한 날마다 꽃과 케이크를 샀다. 12월이 되면 생일 선물을 준비하느라 매일매일 귀까지 빨개져서 어쩔 줄을 몰랐다.


죽은 사람의 생일 선물을 준비하는 얼굴 그 어디에도 그늘이라곤 없었다. 그 첫 번째 겨울이 왔을 때야 코노하는 보쿠토의 집 어디에도 무엇하나 달라진 게 없다는 걸 깨달았다. 모든 것이 여름 그대로였다. 시린 듯이 얇은 커튼, 벽에 달린 조개 장식, 푸른 톤의 소파, 그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코노하는 보쿠토가 이런 것엔 도통 능숙하지 못하여 그저 계절을 따라가지 못하고서 방치해 둔 것뿐이라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다.


보쿠토가 강박적으로 청소하고 유지하고 관리하는 것은 바로 아카아시와 함께 오로지 기쁘기만 한 시간을 보냈던 바로 그 여름의 풍경이었다. 그 풍경 속에서 보쿠토의 시간은 멈춰있는 것 같았다. 여전히 아카아시가 어딘가에 살아있는 것 같았다.


그걸 깨달았을 때 코노하는 사색이 되어 보쿠토를 붙들었다. 하지만 그 순간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말은 없었다. 뭐라 말한단 말인가? 아카아시는 죽었어! 코노하는 자신의 숨이 끊어져도 보쿠토 앞에서 그 말은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그를 보고 있는 보쿠토에게 마침내 토하듯 말해버리고 말았다.


-아카아시는 죽었어!


외침이 허여멀건하게 울려퍼졌다. 코노하는 보쿠토에게서 무언가 반응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당황이나 좌절이나, 분노라도 좋았다. 하지만 보쿠토는 멀거니 눈을 뜨고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응. 알아. ……왜?


왜냐고? 코노하는 머리 끝까지 피가 몰려, 정작 그가 죽어버릴 것 같았다. 보쿠토는 천연덕스럽기까지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알고 있어. 왜? 무슨 일이야?


보쿠토는 코노하의 말에 상처를 받은 것도 아니었고 현실을 회피하는 것도 아니다. 코노하는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보쿠토는 너무나 멀쩡했지만, 그게 정말로 멀쩡한 것이 아니라는 것만 알 수 있을 뿐이었다.


-아카아시가 다 알려줬어.

-전부 가르쳐줬어, 어떻게 해야하는지.

-이제 알겠어.

-그러니까 그대로 하면 돼.

-걱정하지 마, 코노하.


그를 향해 웃는 보쿠토는 자못 의젓하기까지 했다. 마치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3학년들이 선배라며 아이스크림을 잔뜩 사들고서 체육관으로 향하던 그 날, 그들을 돌아보던 것처럼 짓궂고 의젓한 모습이었다.


가르쳐주다니 무엇을?


코노하의 질문에 보쿠토는 녹아날 듯이 진득히 웃으며 하나 하나 모두 그에게 말해주었다. 입는 것, 먹는 것, 그리고 살아가는 것……. 꽃을 들이고 분갈이를 하는 것도, 저녁에 맥주와 곁들일 수 있는 간단한 안주를 만드는 것도, 재미있는 TV 채널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수십권의 책, 모두 알려주었다고.


코노하는 알았다. 아카아시는 그 모든 것을 준비해온 것이다. 신중하게, 무엇도 빠뜨리지 않고서, 보쿠토가 혼자 남겨지더라도 망가지지 않도록. 무엇이든 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것들 중에서 아카아시가 가장 가르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도 코노하는 알 수 있었다. 마지막 반년간 까닭을 몰랐던 두 사람의 불화.


이별…….


반년에 걸쳤던 두 사람의 불화와 냉담은 오로지 아카아시만의 뜻이었다. 아카아시가 가장 알려주고 싶어했던 것이 그것이었던 게 분명했다. 다른 모든 것들을 처음 반년동안 모두 일러주었다면 이별만은 그것 하나만 공을 들여 반년 내도록, 보쿠토에게 알려주려 했던 것이었다. 코노하는 눈물을 흘리고 싶었다. 그것이 가장 무참한 실패였다.


보쿠토의 집은 정말로 무엇 하나 변하는 게 없었다. TV가 고장났을 때 보쿠토는 같은 모델을 구해왔다. 커튼도 소파의 커버도 침구도 그대로였다. 벽지도, 가구도, 장식장의 조미료 병마저 변하는 게 없었다. 가장 근사한 모습 그대로, 마치 잡지나 모델하우스에서 그대로 떼어온 것처럼 가장 깨끗한 모습 그대로였다.


보쿠토는 알고 있다고 했지만 아니, 보쿠토는 모른다. 보쿠토에게 아카아시의 상실은 없는 일이다. 같은 책을 몇 년이나 같은 장소에 계속해서 두면서 하염없이 펼쳐 보는 것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던가. 코노하는 부정할 수 있었다. 그럴 수는 없다고.


그런데 그 그럴수 없는 것이 몇년 째였다.


한 해가 지나면 보쿠토도 지치겠지, 코노하는 그렇게 생각했다. 두 해가 지나면 보쿠토도. 3년, 4년……. 기대는 허물어졌고 보쿠토는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이 어떻게 일평생을 그렇게 살 수 있단 말인가. 가장 아름다웠던 시간의 장소에 붙박혀 그 사람의 죽음이 없는 일인 것처럼, 어떻게 그렇게. 코노하는 차갑게 식은 자신의 두 손을 세게 움켜쥐었다.


보쿠토는 몇 년이나 책 한권을 같은 장소에 두고서 목숨처럼 아꼈다. 아카아시가 남겨놓은 유일한 물건이기 때문이었다. 남은 유품이, 제대로 된 물건이 단 하나도 없다고 했다. 옷은 모두 기부하거나 버렸고 소지품도 마찬가지여서 그들에게 주어진 건 영정 사진 속의 단정하고 희끗한 그 얼굴 뿐이었다. 마치 어제 만나고 헤어질 때처럼 그 모습 그대로. 그런 가운데에 딱 하나 남은 것이 바로 이 책이었다.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모음집.


아카아시는 죽음을 선고받고 남은 1년을 오롯이 보쿠토를 위하여 모두 썼다. 아카아시가 이런 결말을 바라지는 않았다는 걸, 코노하는 알고 있었다. 그러니 아카아시도 용서할 거야. 코노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


사랑만은 세월의 놀림감이 아니어라,

Love’s not Time’s fool

장밋빛 입술과 뺨은 세월의 낫에 희생될지라도…….

though rosy lips and cheeks

within his bending sickle’s compass come



코노하는 시집을 손끝으로 찬찬히 훑었다. 학창시절에도 지금도 이런 시 같은 것에 관심을 둔 적은 없었다. 보쿠토의 일이 아니었으면 그가 평생가도 펼쳐볼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 시집은 군데 군데 밑줄이 그어져 있기도 했고 접힌 곳도 있었다. 아마 생전에 아카아시가 그런 것일 테다.



‘장밋빛 입술과 뺨은 세월에 희생될지라도…….’



하지만 세월에게 휘둘릴 장밋빛 입술도 뺨도 이미 없다. 아카아시는 그들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반듯하게 웃고 있는, 한 구석에는 소년같은 색이 여전히 남아있는 청년이었다. 영원히.


세월에게 희생될 육신은 이미 재가 되어 앞으로도 영영 변할 리가 없고 남은 것은 그저 사랑 뿐이다. 코노하는 보쿠토가 왜 이 시집을 버리지 못하는지 알 것 같다고 생각했다.



사랑은 짧은 시일에 변치 않고

Love alters not with his brief hours and weeks



보쿠토에겐 평생마저 짧은 시간이다.


그리고 짧은 시간동안 영원히 변치 않을 셈인 것이다.



단지 견디어 나가느니라, 운명의 끝까지…….

But bears it out even to the edge of doom.


이것이 틀렸노라 증명된다면,

If this be error and upon me proved,


나는 글을 쓰지 않으리라, 사람을 결코 사랑하지 않으리라

I never write, nor no man ever loved.



코노하는 고개를 들었다. 겨울비가 매섭게 쏟아지고 있었다. 창을 모두 닫아두고 있는데도 한기가 여기까지 느껴졌다. 코노하는 지긋이 눈을 내리감았다.


이 생각이 틀렸다면 결코 사람을 사랑하지 않겠다. 이 생각이 맞다면, 평생을 변치 않는 사랑 속에 산다는 뜻. 무엇을 어떻게 말한다 해도 보쿠토에게는 한 사람뿐이라는 이야기였다.


아카아시가 남기고 간 단 한권의 책이 영원한 사랑을 노래하는 한 보쿠토는 돌아서지 않는다. 그럴 수 없었다. 코노하는 이 책을 불살라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러려고 해도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그에게도 이 책은 아카아시의 단 하나뿐인 유품이었다. 코노하는 마른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



코노하는 현관 문을 제대로 닫지도 못했다. 만일 보쿠토가 그를 의심한다면 코노하는 모른 척 잡아뗄 작정이었다. 화를 낸다 해도 그러려고 했다. 하지만 보쿠토는 그저 떨리는 몸으로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참혹할 만큼 애달픈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입술이 파랗게 물들어 있고 추위에 하얀 입김이 피어올랐다.



“보쿠토, 너 비를 이렇게 맞으면…….”

“코노하.”

“…….”

“있지, 내……내가 되게 아끼는 시집이 하나 있는데…….”



그의 몸보다 목소리가 바르르 떨렸다. 코노하는 아연한 표정으로 보쿠토를 바라보기만 했다. 보쿠토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하며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나 정말 그거 없으면 안 되는데, 그게……. 그게 갑자기 없어져서……. 그런데 어디에 뒀는지 생각이 안나. 항상 두는 곳에 둔 것 같았는데, 그게 없어져서…….”

“보쿠토, 너 비 너무 많이 맞았다. 일단 좀 뜨거운 물에 씻…….”

“아무리 찾아도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어. 코노하, 모르겠어…….”



그래, 보쿠토는 의심같은 걸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코노하는 자신의 마음이 어딘가 짖이겨지는 걸 느끼며 보쿠토를 바라보았다. 보쿠토의 뺨에 빗물이 아닌 것이 뚝 흘러내렸다.



“나 정말 그거 없으면 안 되는데 못 찾겠어, 어떡하지? 코노하, 어떡하지…….”

“……아카아시가 남기고 간 거……말하는 거야?”



보쿠토는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더없이 간절했다. 코노하는 일단 보쿠토를 끌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손에 닿은 보쿠토의 몸이 얼음장같았다. 아무 말 없이 보쿠토를 억지로 씻기고 옷을 갈아입혔지만 보쿠토는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는 사람처럼 그저 어쩔 줄 모르기만 할 뿐이었다. 코노하는 마른 입술을 다셨다.



“……비슷한 책으로 하나 더 사자. 비도 이렇게 오는데…….”

“아, 안돼. 찾아야 돼. 안 돼.”

“아카아시 유품이라서?”

“……그 책에…….”



보쿠토가 천천히 고개를 들고 코노하를 바라보았다. 금빛 눈동자가 아주 먼 곳을 바라본다. 코노하는 눈을 깜박거렸다. 카메라의 렌즈가 이리저리 초점을 잡는 것처럼, 보쿠토의 눈동자가 시간의 초점을 잡고 있었다. 아아, 과거로. 지금보다 더 과거로. 조금 더 과거로. 아카아시가 살아있던 겨울을 거슬러, 가을을 지나, 다시 여름으로…….



“그 책에, 내 사랑이라는 단어마다……. ‘my love’라는 말 마다…….”



-아카아시가 밑줄을 그어뒀어.



그 말을 하는 보쿠토는 친구와 싸웠다는 걸 고백하는 것처럼 쑥스러운 것 같았다. 코노하는 눈을 깜박이며 보쿠토를 바라보았다. 보쿠토는 찾지 못하는 책을 두고 절망하면서도 동시에 그 때의 기억에 잠겨 한 치의 틈도 없이 행복한 듯 보였다.



“가을 겨울에 나랑 아카아시, 정말 많이 싸웠거든……. 그래서……. 아카아시 진짜 엄청 냉정했단 말야, 그 때. 완전 북극처럼 찬바람 쌩쌩이어서…….”



어제 싸워서 이제 화해할 마음을 먹는 것처럼 조금은 부끄러워하는 목소리로 사랑을 고백한다. 우리 많이 다퉜어, 그래서. 사랑한다는 말도 안 해줬단 말야, 그래서. 그치만 거기에는 아카아시가 밑줄 전부 그어뒀어, 그래서. 그걸 보면 아카아시가 날 사랑했던 걸 알겠어,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 책이 아니면 안 돼. 그 책이 없으면 안 돼…….”



눈동자가 다시 현재를 바라본다. 그 눈을 마주하고 코노하는 얼굴을 감싸쥐고 말았다.


고장난 부품을 빼어버리고, 제대로 된 것을 다시 끼워서, 그렇게 번듯하게 살아가주었으면 했다. 아카아시가 그것을 바랐던 걸 안다. 보쿠토가 자신과 이별하고, 그 이별이 비록 죽음이어도, 그래도 이별 후에 다시 똑바로 걸어가길 바랐던 것을 알고 있었다.


보쿠토는 고장난 부품을 빼어버릴 의지도 제대로 된 것을 다시 끼울 의지도 없었다. 고장난 부품을 빼어버리면 그저 그대로 멈춰버릴 작정이었다.


없으면 안 돼, 그렇게 말하던 보쿠토가 스르르 허물어진다. 코노하는 놀라서 다급하게 보쿠토에게 다갔다. 당황해 이름을 부르니 이마가 고열로 들끓고 있었다. 코노하는 입술을 세게 깨물고 고개를 들었다. 내일이 아카아시의 기일이었다.



*



내 사랑이 진실된 사랑을 맹세하면

나 그것 거짓인줄 알면서도 믿노니…….

When my love swears that he is made of truth

I do believe him, though I know he lies


그러나 단정코 나의 연인은

잘못 비유된 그 누구보다도 진귀하여라

And yet, by heaven, I think my love as rare

as any he belied with false compare


시 속에서 나의 사랑이 오래도록 빛나게 하는 수밖에……

In black ink my love may still shine bright.



코노하는 천천히 시집을 넘겨보았다. 보쿠토의 말 그대로였다. My love, 그 말마다 아래에 검은 잉크로 밑줄이 그여 있었다. 조금 망설인 것같기도 했고 다정하고 천천히 그은 것 같기도 한 선이었다. 코노하는 단어를 손 끝으로 매만져보았다.



다만

나 죽어,

내 사랑을 홀로 내버려두게 되니…….

Save that, to die, I leave my love alone



어쩌면 아카아시는 소용없을 거라는 걸 알았을지도 모르겠다. 코노하는 보쿠토의 침대 곁에 앉아 그가 깨어나길 기다리며 그렇게 생각했다. 알아도 내버려두지 못했던 것 뿐이었을지도.


마침내 보쿠토가 눈을 떴을 때 코노하는 나직하게 사과의 말을 전했다. 미안. 내가 잠깐 보다가 가방에 넣고 깜빡했어. 보쿠토는 그런 코노하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고 코노하는 보쿠토의 곁에 시집을 내려놓았다. 보쿠토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하룻밤 새에 많이 수척해진 모습이었으나 그 눈빛에 천천히 생기가 돌아오는 모습은 코노하가 알던 그대로였다.



“괜찮아.”



그 말에 코노하의 가슴이 까닭도 모르고서 덜컥 내려앉았다. 보쿠토는 저린 팔을 주무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가 어디인지 가늠하려는 모습이었다. 코노하는 화제를 돌리기 위해 서둘러 이것 저것 얘기를 늘어놓았다. 갑자기 열이 끓어 하룻밤 입원해 있었다는 얘기에 보쿠토는 조금 놀란 듯이 눈을 끔벅이다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겨울비 좀 맞았다고 열이 나다니, 하며 스스로의 체력에 한탄하는 모습이었다. 정말로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보쿠토, 진짜 미안하다. 내가 책을…….”

“아냐, 괜찮대도!”



보쿠토가 다급히 사과하는 코노하의 말을 끊었다. 그가 책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천천히 쓰다듬는다. 코노하는 파리한 낯빛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괜찮다고 말하는 보쿠토의 표정과 목소리가 마치 그를 고등학교 시절로 되돌려 놓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이 완벽했던 그 때로. 봄이 되어 꽃이 피고 여름 되어 천둥이 쳤다가도 가을에 낙엽이 아름답게 흩어지고 겨울엔 눈이 왔던, 그저 완벽했던 그 때로.


하지만 시간은 거꾸로 흐를 수가 없고 그들 사이에 아카아시는 없다. 그런데 어떻게.



“코노하, 그거 알어? 아카아시 진짜 절~대 꿈에 안 나와준다?”

“…….”



보쿠토가 자못 섭섭한 듯이 입술을 삐죽거렸다. 코노하는 저 얼굴을 본 기억이 있었다.


-아카아시가 어젯밤에 전화도 안 받은거 있지!


고등학교 때였다. 점심시간에 나온 팩음료를 꾸깃꾸깃 접으며 투덜거리던 보쿠토의 얼굴. 바로 그 얼굴이었다.



“목소리도 절~대 안나와. 얼굴도 안 나와. 뭐 이러냐, 진짜. 제발 한 번만 나와 달래도 죽어도 사람 말은 안 들어줘. 고집 대박이야, 진짜.”



보쿠토는 웃으면서 말하고 있지만 그것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코노하는 알고 있었다. 아카아시가 죽은 직후 보쿠토가 매달린 건 그것뿐이었다.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보고싶다고 보쿠토는 몸이 부서질 것처럼 울었다. 코노하는 바로 옆에서 그 모습을 계속 봐왔다. 보쿠토가 돌연 번듯하게 살아가게 된 그 순간에도, 코노하는 전부 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남아 있는 거, 이거 뿐이었는데……. 그런데 이제 알겠어. 왜 아카아시가 꿈에도 안 나오는지.”



보쿠토가 또 녹진히 녹아날 듯이 꿈같은 표정으로 미소지었다. 코노하는 입술을 달싹였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꿈에 나올 필요 없어.”



코노하는 아니야, 하고 외치고 싶었다. 그게 아니야, 그렇게 소리치고 싶었는데 누군가가 목구멍을 움켜쥔 것처럼 말이 나오지 않았다. 코노하는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서 보쿠토의 꿈꾸는 듯한 얼굴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항상 함께 있으니까, 괜찮아.”



사람을 홀려 미치게 만드는 아름답고 견고한 성이 완성되어 가는 소리였다. 코노하는 아연하게 얼어붙어 그 성을, 보쿠토를 바라보기만 했다.


아카아시가 꿈에 옷깃 한 자락 흘리지 않아도 보쿠토는 이제 괜찮다. 아카아시의 마지막 손길이 남아있는 시집을 잃어버리게 되어도, 보쿠토는 이제 괜찮다. 집안의 모든 가구와 커튼을 바꿔도, 이사를 해도, 보쿠토는 이제 괜찮다. 저 시집이 눈 앞에서 불타버린다 해도 보쿠토는 여전히 괜찮을 것이다.


고장난 부품은 빼어버리고 제대로 살아가주었으면 했다. 코노하는 웃는 보쿠토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오로지 사랑으로 이루어진 견고한 성이 마침내 완성되어 그 문을 닫고 있었다. 고장난 부품을 몇 번, 몇 십번, 몇 백번 빼내도 똑같다. 보쿠토에겐 그것과 똑같은 모양새의 부품이 영원만큼 있었다.



“……아, 그치만~! 그래도 꿈에 나와주면 덥석 붙잡아야지!”



그래서 꿈에서 깨지 않으려고.


코노하는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다. 보쿠토가 이제 멀쩡해졌다며 팔을 붕붕 휘젓다가 때마침 들어온 간호사에게 꾸중을 들었다. 링거를 갈아준 간호사는 병실을 나갈 때 결국 웃으면서 나섰다. 항상 타인을 웃게 만드는 보쿠토였다. 하지만 자신은 이제 영영 보쿠토로 인해 웃음지을 수 있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보쿠토는 돌아가겠다는 코노하를 붙잡았다. 병실에 그 한사람 뿐이라 심심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코노하는 붙들리고 말았다. 해가 저물 때까지 수다는 그치지 않았고 그 대화 사이사이에 아카아시의 이야기가 파도처럼 들어왔다 나갔다 했다. 파도는 영원히 그치는 법이 없고 성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코노하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다만

나 죽어,

내 사랑을 홀로 내버려두게 되니…….

Save that, to die, I leave my love alone
















-아카른 전력 주제 : 낙화

-보쿠토를 짝사랑하는 한 소녀의 이야기와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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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보쿠토 x 혁명군 아카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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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가씨 AU

-영화를 보지 않으신 경우에도 이해하실 수 있도록.. 노력은 했습니다.

-큰 줄기는 비슷합니다.

-다른 부분도 많습니다. 양해부탁드립니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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